제357화
357화
“그래. 그렇지. 그때도…… 랑랑이 아니었으면 못 들어갔을 거다. 약초 관리를 잘못한 게 아니었거든. 이 녀석이 숨바꼭질을 하면서 들키지 않겠다고 네 형수가 가지고 있던 열쇠를 가지고 곳간으로 들어간 거야. 거기에 숨어 있다가 배가 고파졌는지 안에 있는 걸 뒤지고 다니다가 자기가 아는 풀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있던 독초를 먹은 것 같고.”
“…….”
그 정도면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아이가 그렇게까지 하는 걸 무슨 수로 지키고 막을 수 있겠나 싶었다.
“랑랑을 안고 억지로 토하게 했는데 그때까지 만들어진 해독약이 없어서 모두 걱정이 대단했었거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랑랑에게 중독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거야. 그때부터 이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
이미 다 지난 일이고 랑랑이 무사하다는 것을 아는 상태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아진은 걱정이 됐다.
그 조그만 아이가 독초를 먹고 고통스러웠을 생각을 하니 안타까웠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진은 긴장한 채로 도종에게 물었고 도종은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상세히 들려주었다.
“당연히 나타나야 할 증상들이 나타나지 않는 거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랑랑에게 네가 먹은 게 이게 맞냐고 계속 물었거든. 랑랑은 그렇다고 했어. 그런데 그냥 지나가 버린 거지. 아프지 않고. 우리가 다 진맥을 해 봤어. 아버지도. 나도. 네 형수도 그랬고.”
아진은 그 모습을 상상했다.
산본의가의 대공자 딸이 독초를 먹었다.
그랬으니 걱정되는 모든 사람들이 진맥을 했을 것이다.
독초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진맥 때문에 더 지쳤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후로도 계속 괜찮았고?”
“응.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네 형수가 북리세가에 사람을 보낸 거지.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다고.”
그럴 만도 했기에 아진은 계속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는 점점 한 곳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만독불침의 몸.
만독이 통하지 않고 독초를 다스릴 수 있는 몸.
암기와 독으로 유명한 사천당문에서도 지금까지의 긴 역사 동안 그런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세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확실한 거야. 형님?”
“확실하다고 하기는 어렵겠지. 거기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천당문 조차도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을 직접 보지는 못했을 테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가 봐.”
“그 사람들이 그 얘기를 알았으면 그냥 있지는 않을 텐데?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곳에 와서 랑랑을 데리고 실험을 해 보고 싶었을 거야.”
“그래.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그거였어. 그래서 그 일이 랑랑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건 말을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걸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계속 숨기는 게 잘하는 짓인지도 잘 모르겠어.”
아진은 그 말을 이해했다.
도종이라면, 그리고 산본의가의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진아? 나는 랑랑이 무공을 배우지 않았으면 했거든.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했어. 무공을 익히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도종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아진 역시 랑랑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랑랑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웬만하면 랑랑을 그 길로 인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무림은 은원이 분명했다.
특히나 원한을 갚는 것에 집요했다.
스승이나 부모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수십 년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잊고 있는 일을 혼자만은 잊지 않은 채 기다리고 참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서 복수라며 무기를 휘두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무림이었다.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 벼락같이 찾아들어 일상을 파괴하는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랑랑이 정말 그런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할 터였다.
“형님은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
“미안한 부탁이기는 하다만 네가 랑랑의 체질에 대해서 알아봐 줬으면 한다. 랑랑의 체질을 알아보려면 위험한 실험을 해야 할 거야. 그동안 사천당문에서 발견된 사람들도 모두 우연한 사고로 인해서 알게 된 거라고 하더구나. 그럴 수밖에 없겠지. 죽을 수밖에 없는 독초를 먹여야 하는 거였을 테니.”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네가 랑랑을 사천당문으로 데려가서 자세한 걸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아진아.”
그러나 그 말에는 아진이 동의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라면 그런 아이를 발견했을 때 사천당문으로 보내는 것이 최선일 수 있겠지만 아진은 그렇지 않았다.
아진은 자신이 가진 독에 대한 지식이 사천당문에 못지않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랑랑이라는 존재가 사천당문에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특이한 약초를 봤을 때 산본의가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만 봐도 랑랑이 사천당문에서 어떤 시선을 받게 될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랑랑은 특이한 약초를 뛰어넘는 엄청난 아이였던 것이다.
“내가 랑랑을 데리고 있을게. 형님. 그리고 랑랑의 체질을 알아볼게.”
“그래 줄래? 네가 그렇게 해 준다고만 하면 뭐가 걱정이겠냐.”
도종의 얼굴이 조금씩 환해졌다.
“그런데 어디로 갈 거야, 아진아?”
“비룡채 아저씨들이 약초 캐던 곳. 거기에 독초도 많이 자라잖아. 거기에서 랑랑에게 약초랑 독초를 가르쳐 주면서 체질도 알아내고 개선도 해 보고 그러면 될 것 같아.”
“그래. 그렇게 해 준다면 나도 안심이다.”
도종은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너라면 랑랑이도 잘 따를 테니까 다행이다.”
그 일은 그대로 진척이 되었다.
도종은 안으로 들어가서 아진의 결정에 대해 말을 해 주었고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모두 잘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이라면 랑랑의 체질을 사천당문보다 훨씬 잘 밝혀낼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북리소은이야말로 안심한 얼굴이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그 일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라요. 그런 체질에 대해서 알려진 게 워낙 적어서요. 그래서 도련님이 돌아오기만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그렇게 급한 일이었으면 제일조에게 서신을 보내지 그랬냐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면서 북리소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진에게 중요한 시기인 것을 알고 있는데 자기들의 일이 급하다고 서두를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랑랑이 위급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랑랑에게 생긴 위험은 제거된 상태로 그 후에 체질에 대해서만 궁금한 거였기에 기다릴 수 있었다고 했다.
아진은 북리소은의 품에 안겨 잠이 든 랑랑을 보았다.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랑랑도 아진을 무척이나 따랐고 때로는 질녀가 아니라 친딸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진도 애정이 각별했다.
“멀리 가지는 않고 산본에 있는 채운산으로 가려고 해요. 거기에 있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거든요.”
북리소은은 그 말에 한결 더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채운산이면 산본의가에서 두 시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무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신법을 전개한다면 일각 안에도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채운산으로 간다고 해도 일단 아진이 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가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출입이 통제되겠지만 그래도 멀리 가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놓였다.
“하루 이틀로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시비라도 있는 게 좋을 거다. 아진아.”
도종이 말하자 소청이 자기가 같이 가겠다고 자진하고 나섰다.
“식사 준비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소청이 네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구나.”
“그러면 제가 가는 건 어떨까요?”
벽예월이 말하자 도종이 똑같은 말을 다시 한 번 더 했다.
“식사 준비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총관님이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진은 간단한 식사 준비는 자기가 할 수 있다면서 랑랑과 둘이서만 가면 될 것 같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도 아진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복잡한 일이 될 텐데 함부로 따라나서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이 아진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 언제 떠날 생각이냐. 아진아?”
기왕 정해졌으면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가주가 물었고 아진도 시간을 미룰 생각은 없었기에 다음날 바로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준비해야 할 게 많겠어요.”
북리소은은 랑랑을 안은 채 일어났고 도종도 북리소은을 따라갔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고 얼마나 오래 랑랑과 떨어져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쓸쓸해지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소청도 마찬가지였다.
소청은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아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혼자 웃었고 가주와 가모는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자리를 이어나갔다.
아진은 속으로 랑랑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산본의가에서 그런 체질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어쩐지 아진은 랑랑이 가진 능력이 단순히 그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랑랑은 귀엽게 치장을 하고 아진이 머무는 곳으로 달려왔다.
앞으로 지내는 것이 상당히 힘들 수도 있는데 씩씩해 보였다.
“숙부님, 랑랑은 준비가 다 됐어요.”
뒤따라 온 도종과 북리소은은 모두 눈이 붉었고 퉁퉁 부어 있었다.
랑랑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밤새 많이도 울었던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일조를 보내서 바로 알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
아진이 당부를 하고, 미리 싸둔 짐을 챙기며 일어서자 린린이 그 중 몇 개를 들며 따라나섰다.
“너는 왜 와?”
“요리는 못 해도 숙수의 요리를 내가 가져다줄 수는 있을 것 같아서. 오라버니야 대충 먹어도 되지만 내 사랑스러운 조카를 굶게 할 수는 없잖아.”
거기에 흑주까지 따라나섰다.
흑주가 거기에 가서 할 일이 뭐가 있을까 했지만 흑주는 오랜만에 돌아온 아진과 이렇게 빨리 헤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아진도 산본의가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흑주를 데려가고 싶기도 했다.
랑랑은 다른 사람들은 다 놔두고 소청에게 가서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한눈팔면 안 돼. 오라버니는 수련만 똑바로 하고 있어. 예쁜 아이가 있다고 같이 놀면 안 돼.”
소청은 창피한 듯 얼굴이 새빨개졌는데 그러고도 고개를 까딱까딱 해 보였다.
랑랑에게 꽉 붙잡힌 것 같은 그 모습을 보고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진이 랑랑을 데리고 사라지자 도종과 북리소은은 그 자리를 오랫동안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 *
아진 일행이 채운산에 둥지를 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채운산에 역천마의가 나타났다.
린린의 부름을 받고 몇 가지 특별한 기구를 준비해 온 것이다.
역천마의가 고독을 키울 때, 제한된 공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빨리하는 게 가능했는데 아진은 역천마의가 그런 식으로 몇 가지 독초를 빠르게 키워 주기를 바랐다.
역천마의도 랑랑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기에 정말 랑랑이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건지 궁금해했다.
“산본의가에는 끝없이 기사가 일어나네요. 주군.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할 것 같아요. 주군이 이곳에서 태어나신 것만 봐도 그렇죠. 이곳은 정말 터가 특별한가 봐요.”
역천마의는 기구를 설치하면서 말을 했고 아진은 빠르게 키워야 할 것들을 역천마의의 옆으로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