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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52화 (352/470)

제352화

352화

복면인은 린린을 데려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진땀을 흘렸다.

‘아니. 도대체 뭘 얼마나 먹었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뚱뚱해 보이지도 않는데.’

복면인은 이런 식으로 임무에 실패할 수도 있는 건가 하면서 점점 고민이 되었다.

“흐으으읍!”

자기가 조용히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도 잊고 그는 괴성을 질렀고 그러고도 꼼짝하지 않는 린린 때문에 눈물을 찔끔 쏟기까지 했다.

린린은 끝까지 버틸 수 있었지만 일단 장이원을 보기는 해야 했기에 그 정도로 하고 힘을 빼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너무 가볍게 들려버리는 바람에 복면인은 린린을 안은 채 나가떨어졌다.

복면인이 악당인데도 왠지 복면인이 더 불쌍해 보이는 상황을 보면서 아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복면인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한 듯했고 그때부터 정신없이 서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정주장가의 심처로 린린을 데려가는 것에 성공했다.

이공자 장이원이 머무는 곳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잘 꾸며진 전각이었다.

그 주위에 여러 채의 건물이 늘어서 있었고 정주장가의 위세를 보여주는 듯 곳곳에 기강이 잘 잡힌 무인들의 모습도 여럿 보였다.

복면인은 바람 한 줄기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사실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장이원의 처소로 조용히 숨어들어 갔다.

객잔에서 린린을 본 후 오직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장이원은 드디어 린린이 오자 벌떡 일어나 복면인을 향해 마주 나왔다.

“네가 오는 것을 본 이가 없느냐.”

“예. 공자님.”

“그래. 수고했다.”

“아닙니다.”

그는 보상을 바라는 듯했고 장이원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장이원이 작은 주머니를 던져주자 복면인이 포권을 취해 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복면인이 데려온 린린은 장이원의 침상에 얌전히 누워 있었고 장이원은 침상으로 다가가 하염없이 린린을 바라보았다.

린린을 전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금 린린의 얼굴을 알아보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그것은 섬에서 나는 영초의 영향으로, 린린과 아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모습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환골탈태라고 할 만큼 대놓고 뚜렷하게 변한 것은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가 이루어져서 두 사람도 서로의 모습이 조금씩 변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장이원은 린린을 먼발치에서도 본 적이 없었으니 지금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장이원은 눈앞의 보석 같은 여인을 바라보면서 음심이 솟구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더 이상 제 마음을 통제하지 못했다.

“소저!”

장이원이 와락 린린의 몸을 덮치려 할 때 투둑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에게서 붉은 것이 솟구쳤다.

떨어진 것이 제 몸에서 나온 피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린린도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가 그의 손이 몸에 닿기 전 손목을 부러뜨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진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린린이 나설 일도 생기지 않았다.

“으아악!”

비명이 나온 것은 일이 벌어지고 얼마쯤 시간이 지난 후였다.

뒤늦게 손에 뜨거운 것이 퍼부어진 것처럼 화끈한 통증이 찾아들었던 것이다.

장이원은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비명을 참지 못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게…… 이게 대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라는 말이냐!!”

안을 비추는 빛이 충분히 밝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손목이 사라지고 그 부위에서 피 분수가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누, 누구 없느냐! 밖에 아무도 없느냐!!”

그가 기겁한 채 소리를 지르자 밖에 있던 하인이 달려 들어왔다.

“공자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게 대체…… 어쩌다가!! 저 여자가 그런 것인지요. 공자님!!”

장이원의 하인은 눈이 뒤집힌 채 소리쳤다.

멀쩡하던 공자의 두 손목이 잘려나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야, 약을 가져오겠…… 아니. 그보다 의원을, 부르겠습니다. 세상에. 어쩌다가!”

하인이 소리치며 나가려는 것을 장이원이 붙잡았다.

“피를 먼저 멈추게 해라. 묶든지 싸매든지 해서 어서 이것부터 고치라는 말이다! 이걸 이리 두고 나가 버리면 어쩌라는 것이냐. 이러다가 네가 돌아오기 전에 죽으면 어쩌라고 그냥 간다는 말이냐!”

“저는 그런 것을 할 줄 모릅니다. 공자님. 제가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나를 두고 가지 말라는 말이다!”

장이원은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지만 하인은 이미 밖으로 달려 나간 후였다.

그것은 나름대로 최선의 방책이었다.

지혈도 할 줄 모르는 이가 손을 붙잡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나았을 터였다.

장이원은 그 자리에 있다가 피가 전처럼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의 기세대로 계속 흘렀다면 지금쯤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였어야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질어질한 것도 같더니 이제는 그런 것도 없었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그는 멍하니 제 팔을 바라보았다.

혼몽을 꾸고 있는 것처럼 그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군가 그를 향해 못된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피가 멈췄다뿐이지 손이 다시 붙은 건 아니었다.

검객으로 이름을 날리고 정의맹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고 했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이게 전부 다 저년 때문이다! 저년만 아니었으면. 저년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텐데 저년이 갑자기 나타나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내가 저년을 가만히 놔두면 사람이 아니다!!’

그 생각에 장이원은 린린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제가 잘못을 저지르고 남에게서 이유를 찾는 것은 그런 놈들에게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어야 할 린린이 침상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어…… 언제 정신을 차린 거냐!”

“하고 싶은 말이 그건가?”

린린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정주장가에서 망나니를 키우고 있었군.”

“닥쳐라! 내가 네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네가 감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네가 누구인데 이런 짓을 했다는 말이냐!”

“가만히 잘 자고 있는 나를 객잔에서 납치한 놈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객잔에서 식사를 잘 하고 있는 내 오라버니에게 수면산을 먹인 놈이 할 말도 아닌 것 같고 말이다.”

“……!”

장이원은 린린이 도대체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건가 했다.

그것을 알고도 이곳까지 조용히 따라왔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했고 린린을 데려온 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라고 시켜 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데…….

어찌나 혼란스러웠는지 그는 잠시 저에게 일어난 일까지 잊어버렸다.

“정주장가 이공자 장이원. 너로 인해서 네 가문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구나.”

린린은 처음부터 그에게 하대했고 장이원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다.

장이원은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는 누구냐! 누군데 나에게 이런 짓을 한다는 말이냐!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여기에 온 것이냐. 나를 이렇게 만들려고 처음부터 네가 술수를 쓴 것이냐!”

“나쁜 짓을 한 건 너인 것 같다만. 나를 데려온 게 너이면서 그런 말을 하면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린린은 그렇게 말하고 장이원의 곁을 지나쳤다.

장이원은 린린을 붙잡으려다가 자기에게 손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게 서지 못할까. 나를 이리 만들어 놓고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아무도 없느냐!! 밖에 아무도 없냐는 말이다!”

그의 처소 밖을 따로 지키는 사람은 없어도 순찰을 하는 경비 무사가 듣고 오지 않을까 해서 밖에 대고 크게 소리친 거였는데 마침 하인이 의원을 데려오고 있었다.

장원 안에 머물고 있던 의원이 이공자의 손을 보고 깜짝 놀라 달려왔다.

“공자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요!”

의원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장이원의 손목만 성했다면 무슨 일을 벌이려고 그런 건지 쉽게 알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손목이 떨어졌고 장이원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잔말 말고 내 손이나 고쳐 놓아라!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너는 무인들을 데려다가 당장 저년을 포박하도록 해라! 왜 아직 무인이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냐!!”

하인은 이 안의 광경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도 되는 건지 몰라서 조용히 의원만 데려온 참이었다.

그러다가 장이원의 말을 듣고 무인들을 데려왔다.

하인이 서둘러 안내하자 장가의 무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느 정도 짐작을 했다.

처음에 공자의 옷에 묻은 피를 봤을 때는 그 자리에 있는 여자가 희생양이라고 생각했다가 다음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이공자의 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공자님…… 이게 어떻게 된…….”

그들은 차마 말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들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이 사라졌다가 돌아왔고 그 자리에 대공자가 나타났다.

조금 후에는 가주까지 그 자리에 나타났다.

“이게 무슨 일이라는 말이냐!!”

가주는 상황을 파악하고 대뜸 소리를 쳤다.

린린은 그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고 아진은 그들이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보려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기다렸다.

“저, 저년이……! 저년이 사특한 수를 썼습니다. 아버님. 소자는 아무 잘못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년이 갑자기……!”

장이원은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말은 더욱 꼬이기만 했다.

“닥쳐라. 이놈!”

가주는 장이원에게 크게 호통을 쳤지만 그렇다고 린린을 그냥 가도록 놔두지도 않았다.

그는 장이원이 자신의 가문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빨리 그 문제를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이원이 문제를 일으켜서 화가 난 것뿐이지 그렇다고 자신의 아들을 내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묻지는 않았지만 알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객잔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식사를 하는 동안 공자님이 오셨고 하인을 시켜 점소이에게 수면산을 타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저를 이곳에 납치했지요. 그러고는 제가 자는 줄 알고 저를 겁간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니 가주님은 거기에 맞게 판단하시면 될 것입니다.”

린린은 가주의 면전에 대고 침착하게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가주의 얼굴이 굳어졌고 대공자는 덫에 걸린 것처럼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 이원아. 이게 다 무슨 소리냐. 여기에 있는 여자가 하는 말이 다 사실이라는 말이냐!”

대공자는 가문의 중요한 시기에 이게 다 무슨 일이냐는 듯이 동생에게 소리쳤다.

장이원은 린린이 한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일이 그렇게 돌아갔다는 것을 다 알고서도 이 여인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계획을 전부 다 알고도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은 가문을 노리려고 한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주는 급하게 생각을 하면서 의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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