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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48화 (348/470)
  • 제348화

    348화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크건 작건 소속이 있는 사람들이었소. 짐은 열호문과 같은 곳을 장기적으로 후원하고 키워주는 것이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오. 우승을 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과 별도로 짐이 상품을 후원하고 싶소.

    황제의 말에 가주와 가모는 모두 반색했다.

    그들 역시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개인의 역량으로는 벅찬 감이 있어서 쉽게 시작을 하지 못한 터였다.

    그런 와중에 들은 황제의 제안은 퍽 기뻤다.

    -이번 비무 대회는 인상적이었지만 기형적이기도 했소. 모든 것이 산본의가 중심이었고 아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소. 아진은 다른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할 힘을 가졌고 자기가 원한다면 다른 이도 자기를 닮은 괴물로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일 거요. 당장은 그런 식으로 해서도 해 나갈 수 있겠지만 이게 계속된다면 아진은 반드시 지칠 거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황제의 말을 들으면서 가주와 가모는 놀라면서도 황제가 먼저 그 말을 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아진이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 역시 오래전부터 걱정이 많았던 것이다.

    지금은 아진에게 힘이 집중되어 있고 그것은 부모 입장에서 자랑스럽다기보다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사람들은 이제 당연한 듯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이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아진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졌던 것이다.

    비무 대회를 치르는 동안 다른 이들의 비무를 보며 가주와 가모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느꼈다.

    무공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게 아니었는데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진을 중심으로 산본의가에서 거칠게 단련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흐뭇했지만 그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영웅이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게 되는지, 그렇게 소모되다가 나중에는 얼마나 비참하게 끝을 맞이하게 되는지.

    부모로서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무가가 전과 같이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비무 대회의 부상으로 그들에 대한 지원을 할까 하오. 명문세가마다 전해 내려오는 무공이 실전되어 명맥이 유지되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소. 그리고 황궁 비고에는 그것들이 있소.

    가주와 가모는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얘기인지 알고 있었다.

    -폐하. 혹시 그 이야기를 아진이에게도 먼저 하셨는지요.

    가주가 묻자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은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 아진이 믿음직스럽다고 계속 아진에게 어려운 일의 해결을 맡긴다면 아진은 나중에 버티지 못할 것이오. 그 짐을 나눠서 질 수 있도록 이제 다른 이들을 키워야 하오. 그리고 나는 이번 비무 대회에서 그 가능성을 봤소.

    가모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감격했다.

    황제가 아진을 아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개 힘을 가진 이를 아끼는 사람이 보이는 총애는 그런 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총애한다는 말로 그가 가진 힘을 전부 착취하고 나중에는 빈 껍데기만 남은 몸을 돌려보내는 것이 정해진 이치나 마찬가지였는데 황제는 아진이 지치고 상하기 전에 미리 거기에 대비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진이 사파 이야기를 하였소. 백성들은 사파를 그리워한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자연스러운 것을 무조건 통제만 한다고 해서 내가 뜻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소. 그것은 사파도 마찬가지고 정파도 마찬가지일 거요.

    그 이야기는 두 사람도 들은 것이 있었기에 그 말을 이해했다.

    -앞으로는 무가와 문파들이 서로 경쟁하며 힘을 키우고 강해지도록 하겠소. 그러는 동안 아진에게는 뒤로 물러나서 개인의 수련에 힘을 쓰도록 하고 말이오.

    황제가 그 결정을 한 것에는 린린이 발견했다는 동굴에 대한 의문도 한몫을 했다.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변화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진의 시선을 다른 곳에 잡아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황제는 마선이 펼치는 무공을 보면서 탐을 냈고 아진이 마선에게 그것을 배우며 개인적으로 수련을 하고 스스로 연마하는 기간을 가지며 장차 다가올 일을 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일들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우승과 거리가 멀어져서 남의 잔치를 구경하는 것처럼 서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자기들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에 놀랐다.

    더군다나 상을 주는 이가 대회를 개최한 산본의가의 수뇌부도 아니고 황제였다.

    정의맹과 무림맹에 속해 있던 수많은 무가와 문파들이 거의 빠짐없이 호명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품을 받았다.

    그것은 반드시 본거지로 돌아간 후에 개봉하도록 했고 혹여 그것을 탐내서 뺏는 자가 있다면 백만 황군을 마지막까지 동원해서 완전히 와해시킬 거라는 엄한 경고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게 뭔데 그럴까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갔고 각자 자기들의 본거지에 돌아간 후에 그것이 오래전에 실전되었던 사문의 무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황궁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올리며 문파의 제자들은 벅찬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비무 대회가 끝난 후 스스로 봉문을 선언한 문파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황제가 원한 일이었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맹렬히 단련을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무림은 다시 태어나게 될 터였다.

    아진은 황제가 자신을 배웅해 달라고 말했을 때 다른 때처럼 신법을 펼쳐 빠르게 모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말을 타고 주변 구경도 하면서 느긋하게 가자는 말을 듣고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느리게 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진아. 짐은 네가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부르면 바로 올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며칠 후에는 네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그래서 아진이 네가 오랫동안 짐의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지치지 말고, 상하지도 말고 말이다.”

    아진은 황제가 하는 말을 듣고 조금은 놀랐다.

    자기가 지칠 일이 뭐가 있고 상할 일이 뭐가 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하는가 해서였다.

    그러나 그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것은 아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잊고 있던 것을 폐하께서는 기억하고 계신 거구나.’

    그리고 거기에 대비해서 준비하라고 그러는 건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일은 언제든지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휘둘릴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너로 인해서 많이 강해졌다. 이제는 그들을 믿어 보자. 그리고 너는 너의 때를 준비하도록 하자. 아진아.”

    아진은 그 말이 고마웠다.

    선이남과 하월도 동굴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이제는 그동안 아진이 맡아 왔던 일들을 자기들이 맡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진이 도움을 청하면 그를 위해 나설 마음의 준비를 마쳐두고 있었다.

    그때 아진에게 도움이 되려면 지금의 모습으로는 어림도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부른 거였으니 이제 돌아가도 된다.”

    “…….”

    아진은 먹먹해져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 이제 소신을 부르지 않으실 것인지요. 폐하. 폐하만 소신을 부르지 않으시면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아진이 일부러 너스레를 떨자 황제가 웃었다.

    “가능한 한 줄여 보도록 하마. 이제는 산본의가를 비우고 떠나는 것도 걱정이 크지는 않을 것 같더구나. 서 의원에게 무공을 가르쳐 놓은 건 정말 잘한 일 같다. 서 의원이 버티고 있는데 누가 함부로 산본의가를 노리겠느냐.”

    황제는 아주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는지 은근슬쩍 다른 이야기를 했다.

    모두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진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괴물 서도종.

    그야말로 이번 비무 대회의 가장 큰 성과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아진아. 나도 곤오철로 만든 그 검을 받을 수 있는 거지?”

    선이남이 묻자 하월이 그를 바라보았다.

    “선 부정은 검술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 검을 탐내십니까.”

    그러면서 아진을 바라보았다.

    자기는 검술을 하니 자기에게는 그 검이 꼭 필요하다는 듯이.

    황제는 그 모습을 보면서 확신했다.

    아진이 옆에 있는 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앞으로도 계속 아진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청하게 될 거라고.

    “아진아. 이제 돌아가거라. 산본의가에도 머물지 말고 네가 편하게 수련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도록 해. 마선은 내가 데려가고 싶었지만 특별히 너에게 내가 양보하는 것이다. 마선이 할 수 있는 것은 꼭 배우도록 해라. 너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떡 줄 마선은 생각도 안 하는데 혼자 김칫국을 마신 황제가 생색이라는 생색은 혼자 다 내면서 말했다.

    선이남은 이제 한동안 아진을 보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다음에 나를 볼 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놀라게 해 주겠다. 아진아. 열심히 수련하고 달라져 있을 거다. 그리고 너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마.”

    “형님.”

    아진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선이남을 보았다.

    주위를 돌아보자 비슷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아진을 보고 있었다.

    자기들도 선이남만큼 그렇게 하겠다는 자신은 없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진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겠다는 열의만큼은 가득 차 보였다.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씩 돌아보고 아진은 마침내 황제를 향해 돌아섰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래. 상하지 말거라. 무사해야 한다. 네가 없는 동안 산본의가는 짐이 짐의 날개 아래에 두고 보살필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수련에만 전념하거라.”

    “예. 폐하.”

    아진은 다시 말에 오르지 않은 채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밑으로 수십 장씩이 쑥쑥 지나가고 아진의 몸이 산본으로 향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의 몸을 누르고 있던 부담감이어서 그것을 버겁게 느끼지도 않고 있었는데 황제가 친히 그것을 내려 주었다.

    황제의 말이 맞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든 생겨날 것이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문제들에 매몰되다 보면 언제 그렇게 되는지도 모르게 지치고 피폐해져서 정작 자신을 기다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둔해져 버릴지도 몰랐다.

    린린과 역천마의가 발견했다는 동굴은, 그것이 무너졌다고 해서 문제가 함께 사라진 것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싸움을 걸어오는 이들을 무시하고 귀를 막는 대신 그들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야 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채.

    아진의 모습이 나타났던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렸고 산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아진이 사라진 곳으로 노을이 따뜻한 색으로 하늘과 땅 할 것 없이 주변을 붉게 물들여 가고 있었다.

    * * *

    “그것이 자연지기이다.”

    마선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그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진이 가진 공력을 자연지기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실로 고통스러웠다.

    그동안 순탄하게 통과시켜 주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번에는 제대로 수색을 하는 것처럼 아진에게 고통을 요구했다.

    린린은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동안 아진이 힘도 들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온갖 것들을 저절로 터득하는 걸 볼 때마다 약이 올랐는데 자연지기에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벅찬 감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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