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7화
347화
도종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으로 그의 주먹을 회피했다.
그런 안력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마선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도종을 바라보았다.
따져보자면 그냥 두 번의 공격이 실패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고 변명을 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여기에 오기까지 서도종이 이룬 것이 순전히 모두 우연과 행운의 결과라도 치부하는 것은 너무한 감이 있었다.
마선은 불길한 생각이 들려고 하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주먹을 내뻗었다.
이번에는 도종을 아예 땅에 박아 버린다는 생각으로 허공으로 높이 떠서 도종을 노리고 내려오던 참이었다.
그러나 도종은 훨씬 간단하게 회피했고 마선의 주먹은 바닥에 꽂혔다.
주먹이 꽂힌 청석판은 진저리를 치며 앓듯이 우드드드득 소리를 내며 거미줄 같은 균열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뒤늦게 힘에서 해방된 것처럼 일제히 위로 튀어 올랐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모든 것이 마선에게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선의 눈에서 핏줄이 터져 충혈되고 그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사방을 감쌌다.
그것은 이제 비단 도종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 밖으로도 아무렇게나 튀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린린이 앞으로 튀어나왔고 아진과 북리의천, 소청과 위도 등이 경기장 주위를 감쌌다.
처음에는 듬성듬성하게 서 있어서 틈이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들어와서 틈을 막아섰다.
하월과 선이남, 명문 고수들도 곳곳을 막아서자 마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랑스러운 선배로서 이름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순간적인 조바심 때문에 못 볼 꼴을 보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선은 잠시 서서 도종을 바라보았다.
도종은 마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초조할 필요 없다는 듯이.
어쩌다 보니 이해받는 쪽이 마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순간 마선은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있었다.
한 사람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견디고 버텨 온 시간이라는 생각.
눈앞의 이 초라해 보이는 남자가 그렇게 굳건하고 단단해지기 위해 어떤 시간을 버텨 냈는지 마선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평가절하하려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알지도 못하면서 자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선은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도종은 온몸을 짓누르던 마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때부터 몸이 자유로워졌는데 마선의 몸이 자유로워진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마선은 바람이 되었다.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바람으로 변했던 것이다.
마선이 소청과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마선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빠른 보법이 아니라 바람 자체로 변하는 것이었다.
도종은 눈을 감았다.
자신은 바람으로 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가지고 있지 않은 무기로 싸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도종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의 공력이었다.
처음에는 희미하고 옅게 어른거리며 존재감 자체가 불안하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정작 도종 자신은 그의 몸에서 그런 게 보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도종을 바라보던 마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진과 린린이 그를 응원하며 빠른 시간 동안 공력을 쏟아 넣어 주고 무공을 전수해 준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노력으로 가져올 수 있는 변화가 아니었다.
아진이 린린을 바라보았다.
형님이 왜 그러는 거냐고 묻고 싶은 듯했는데 린린도 바로 해 줄 얘기가 마땅치 않았다.
도종의 공력과 마선의 마기.
두 거대한 기운이 맞부딪쳤다.
그러던 도종이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도종의 신형을 아우르고 있던 기운이 순식간에 검신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도종은 그대로 연계된 동작으로 마선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선이 서 있는 자리에 마선이 있다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절대로 그런 식으로 쇄도해 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제동장치가 고장 난 것처럼 그는 마선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고 마선은 그대로 사라졌다.
사라진 마선은 도종의 뒤에서 나타났다.
바닥에서 흙덩이가 솟아오르더니 사람의 모습을 이루었고 그것이 도종을 덮쳤다.
도종은 마선을 피하며 검을 휘둘렀고 마선은 그의 검을 피하며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도종은 검을 든 손을 아래로 내린 채 흙바닥을 주시했다.
그리고 한 곳이 꿈틀거리는 순간 진각을 밟았다.
우르르르르-!!
천지가 요동할 것 같은 굉음을 내고 바닥이 요동쳤다.
아진은 막 바닥에서 솟아올라 사람의 형상을 갖추려던 흙이 빨려들어 가는 것을 보았다.
도종이 서 있던 바로 옆에서,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무섭도록 붉고 짙은 선혈이었다.
붉은 피가 모이더니 서서히 솟아올랐다.
도종은 검을 든 채 그것을 주시했다.
그것은 천천히 사람의 형체를 이루었다.
마선이었다.
마선의 입에서 짙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승리를…… 선언해도 되겠습니까.”
심판관이 물었다.
다들 멍하니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데 그만 홀로 현실감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선은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 대회의 최종 우승자는 서도종 의원님입니다!”
심판관은 빨리 선언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서둘렀다.
그러나 환호는 나오지 않았다.
자기들이 본 것이 워낙 이해되지 않아서 이게 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린린이 마선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
마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그 시간을 기다렸던 게 아니었다.
이렇게 되었다면 차라리 자기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마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강력한 마기를 흩뿌려 댔는데 모른 척하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가온 이들에게 린린이 말했다.
“마선님이시다. 마선님께서 오라버니의 사고님을 살리셨다.”
그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죽었던 독고소영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그 말은 오래 묵은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비무 중에 보인 기사 때문에 마선이 어떻게 독고소영을 살린 건지 사람들은 의문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나갈 수가 있었다.
더 이상 마선은 비무의 패자가 아니라 강호의 검후인 독고소영을 살린 사람으로 추앙받았고 그는 어리둥절한 채로 서 있었다.
그러나 당황한 순간에도 그는 혼자 남겨지지 않았고 그의 곁에 린린과 마두들이 성벽처럼 우뚝 서서 그와 함께해 주었다.
“…….”
마선은 희한한 기분을 느꼈다.
패배감이나 무력감이 아니었다.
패하고서도 이렇게 편안한 기분을 느끼면 안 될 것 같기는 한데 편안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누군가 다독여 주는 것 같았다.
마선은 혼란스러웠지만 혼란스럽다는 그 느낌마저도 싫지만은 않았다.
동료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마선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복잡한 감정의 이리저리 휘말리는 동안 그가 실컷 고민하고 갈등하고 번민하도록,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 나올 수 있도록 벽이 되어 주는 존재?
그러다가 마선은 자기가 다른 이의 영광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선이 너무 혼란스러워하는 바람에 비무 대회의 우승자가 되고도 도종은 여태 다른 사람들의 축하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축하하오.”
마선이 말하자 도종이야말로 뒤늦게 정신이 드는 듯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잊고 있던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북리소은이 랑랑을 데려오자 도종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랑랑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랑랑은 말할 수 없이 황홀한 얼굴을 하고 도종에게 달려갔다.
자신의 세계를 가득 채운 영웅을 향해.
* * *
황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황제는 기분이 좋았다.
아진의 패배를 예상하고 걸었던 돈이 알토란 같은 이익을 안겨 줘서였다.
“비무 대회는 수익성이 아주 좋은 사업인 것 같다. 황실에서도 비무 대회를 열면 어떨지 대신들과 상의해 보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자기들이 내야 할 돈이 줄어드니까 대신들도 좋아하겠지.”
마차의 창문을 열고 황제가 말하자 그 옆에 말을 타고 가던 선이남과 하월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 생각처럼 잘될까 해서였다.
“폐하. 폐하께서는 성공 사례만 보셔서 그런 것이고 실제로 비무 대회를 열었다가 큰 빚만 잔뜩 떠안은 곳도 많았다고 합니다.”
선이남이 말하자 황제가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도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또 왜 그런다는 말이냐. 잘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것도 아니고 너는 잘 안 될 거라고 확신한다는 것 같구나.”
“예. 폐하. 폐하께서 비무 대회를 준비하라고 하면 그 명을 받은 자들은 비무 대회를 준비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
“돈을 벌기 위한 거라면 그게 생각처럼 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선이남도 옆에서 그 말을 더 거들었다.
“산본의가의 비무 대회는 여러 흥행 요소가 있었습니다. 산본의가라는 곳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그곳에 가면 많은 영웅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같이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인맥을 넓힐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지리를 익혀 두고 사람들의 소개를 받아서 산본표국 같은 곳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해 주면서 아진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제는 나라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손을 놓은 채 세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동창과 구문제독이 사업에 관여하며 활동비를 충당해 왔다는 것을 알고 황제도 거기에 착안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 위해 여러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곧 다른 것으로 이어졌다.
애초에 아진을 데려가는 것도 조용히 그 이야기를 해 보자는 생각 때문이었기에 본론에 들어가는 데 시간을 허비할 이유도 없었다.
“폐하. 부상을 직접 내려주신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진이 말하자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 주어서 가모에게 고마웠다고 전해 주면 좋겠구나.”
비무 대회의 선물로 준비되고 거론되었던 많은 것들이 나중에 가서 바뀌었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사라져서 혼자 열심히 이곳저곳을 지켜보고 돌아다니던 황제는 대회가 끝나기 전 가주와 가모를 찾아가 제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