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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46화 (346/470)

제346화

346화

그렇지 않아도 의원들의 이야기도 거기에 이르고 있었다.

“말이 쉽지 저한테 하라고 하면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아진 공자님은 계속 움직이고 계셨잖아요. 도종 의원님도 움직이면서 침을 날린 거고요. 한쪽만 움직이더라도 어려울 텐데. 더군다나 아진 공자님의 움직임은 예측도 잘 안 됐잖아요.”

“그 말이 맞아. 내 생각에는 아진 공자님이 알았다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렇게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타났다는 건 시침의 효과만은 아닐 것 같고 침에 미리 약이 발라져 있거나 그랬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침이 옷을 뚫고 정확한 각도와 세기로 들어갔다는 건 분명해.”

마선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종이 신기에 가까운 일을 벌인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우천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당한 적이 있던 마선은 아진을 향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재미있군. 그런데 막을 방법도 어렵지 않겠어.’

침이 뚫지 못하도록 호신강기를 두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내공은 넘쳐나니 비무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호신강기를 펼치면 이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고작 일 각이나 버티겠는가.’

어차피 마지막이다.

자신이 가진 힘을 모두 드러내고 자기가 마선이라는 것을 알리면 천하에 천마신교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진은 진땀을 흘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쉬운가, 화가 나는가 하는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무념무상이었다.

산본의가 의원들은 도종이 최종 2인에 올랐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도종과 마선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마선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도종은 내원으로 돌아갔다.

각자가 새로운 전략을 알려주기 위해 도종을 찾아갔지만 도종을 만나지 못했다.

도종은 마지막 싸움을 스스로 해내고 싶어 했고 결국 다른 사람들도 아진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라버니. 랑랑이 큰오라버니를 응원하지 않았어도 큰오라버니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린린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비무 대회의 결과를 결정지은 것이 랑랑의 응원인 것 같았다.

“그러게 말이야. 곁에 있는 사람의 지나친 믿음과 기대가 사람 하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게 이렇게 쉬운 거지.”

아진은 곧장 그런 결론을 내렸고 린린도 동의했다.

“그러고 보면 오라버니는 운이 좋은 편이었던 거야. 오라버니 가족들 말이야. 오라버니를 버렸다며.”

“아니. 그건. 그게 아니지. 그걸 어떻게 운이 좋다고 할 수가 있냐? 얘는 진짜 가끔가다 이해가 안 가.”

푹푹 한숨을 쉬는 아진의 옆에서 린린은 아무래도 자기 생각이 맞는 것 같다며 열변을 토했다.

* * *

우승자를 가리는 결승전이 남아 있었지만 뭔가에 홀린 듯 이상한 표정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얼마쯤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광분한 것처럼 소리를 질러 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아진의 우승에 돈을 걸었던 사람과 아진이 우승하지 못한다는 것에 돈을 건 사람들이었다.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거기에 위험할 정도로 많은 돈을 담근 이들은 얘기가 달랐다.

이미 과열 양상으로 흐르는 게 감지돼서 산본의가 측에서도 통제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내세워 내기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아진의 우승이 눈에 뻔히 보이고 돈을 벌 방법이 눈앞에 훤히 드러나 있는데 자기만 돈을 안 걸면 혼자만 바보가 되는 것 같고, 혼자만 돈을 못 벌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조금씩 욕심을 부린 결과 결국 일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자 아진이 도종과의 비무에서 갑자기 포기하고 경기장을 떠나버린 것에 대해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무의 결과가 검격에 의한 상처 같은 것으로 정해졌다면 결과에 승복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을 텐데 개인의 감각에 의해 정해진 거라서 누구에게 보여 줄 수도 없고 난감한 일이었다.

그렇게 된 이상 이제 도종의 책임이 더욱 막중해졌다.

더 이상 그런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도종이 마선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게 필요해졌던 것이다.

아진은 어머니의 성향상 어머니도 돈을 걸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위로하러 찾아갔다.

그러다가 아버지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어머니?”

설마하니 아들이 질 거라고 그쪽에 돈을 걸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아진아. 너 때문에 우리가 돈을 많이 벌었다.”

“……네? 혹시 제가 질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네가 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닌데 다른 사람이 우승할 거라는 데에 돈을 걸기는 했지.”

그게 그 말 아닌가 하면서 아진이 어머니를 바라보자 어머니가 더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네 비무를 보는 동안 한결 마음이 편해지더라.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좋다고 생각하니까.”

“아버지도 거셨어요?”

설마라고 생각하며 물었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답이 돌아왔다.

“너희 어머니가 네가 우승하지 못한다는 걸로 복표를 하나씩 다 사 주었다. 산본의가의 의원, 의생, 의녀랑 의학당 수련생들까지 모두. 살 때는 은자 한 냥이었는데 지금은 금자 스무 냥으로 돌아왔지. 네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더구나.”

“…….”

잘된 일이기는 한데 뭔가 기분이 오묘했다.

비무 대회로 돈도 많이 벌었으니 고생한 사람들에게 같이 재미있게 구경하자고 복표를 한 장씩 사 줄 수는 있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묘했다.

‘형님이 이겨야겠는데?’

그런데 안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마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도종이야말로 신기한 사람이었다.

* * *

비무 대회는 이제 마지막 대회만을 앞두고 있었다.

결승전을 치르게 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결승전이 끝나면 비무 대회도 끝이라서 사람들은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흥겨운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진행 요원이 곧 경기가 시작될 거라는 사실을 알리자 관중들이 벌떼처럼 경기장으로 모여들었다.

경기장은 높은 단상 위에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어서 서로 다투었고 진행 요원들은 마지막까지 땀을 흘렸다.

마선은 관중석을 내려다보았다.

그중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마기가 느껴졌다.

그곳에 마두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린린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도 아직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우승자가 결정되고 그들에게 가서 자신이 마선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당장 이 모습만 해도 전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정파 무림인들의 잔치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마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와서 앉아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낯설어하지도 않고 문제 삼지도 않았다.

그게 전부 패월악이 환생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며 마선은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야말로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아낌없이 드러낸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그의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도종은 한없이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선은 처음부터 호신강기를 둘렀다.

조금이라도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 예의를 갖췄지만 이제 더 이상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가 강했다.

각자에게 반드시 우승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다.

딸의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천마신교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마선은 먼저 마기를 일으켰다.

그가 비무 대회의 경기장에서 공공연히 마기를 드러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선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이런저런 추측만 무성하게 해 대던 사람들은 마선이 뿜어 대는 강렬한 마기에 정신이 혼탁해질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존재가 저렇게 강한 마기를 뿌릴 수가 있는가!”

그 정도의 마기라면 지금의 교주와 어느 정도 견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말까지도 나왔다.

“닥쳐라! 건방진 소리를 하는 놈들은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니었고 그 소리를 들은 뇌혈검과 섬마대가 동시에 일어서며 노호성을 발했다.

그러자 자기들도 그게 위험한 발언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발언자들이 목소리를 낮췄다.

마선은 마두들이 느끼는 혼란을 보며 린린이 아직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되자 그때가 더욱 기다려졌다.

도종은 마선의 마기에도 불구하고 동요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마기라면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들 것이고 마기가 살을 찌르는 것처럼 파고들 터였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버티고 있는 도종을 보면서 마선은 궁금증을 느꼈다.

평범한 의원인데.

남다르고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그런데 무엇이 그의 존재를 다르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도종은 마선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잔인하게 유린하는 상대가 되어 그 제물의 역할을 해내기만 하면 족한 것이다.

마선은 그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3초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게 만들겠다.’

아니. 3초도 길었다.

마선이 고작 이런 의원에게 3초라니.

그래서는 자신의 이름을 밝힐 때 면이 서지 않을 터였다.

상대가 스스로 어느 정도 무명을 얻은 자라면 이럴 때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텐데 하필 무명도 없는 의원이라서 난감했다.

마선은 빨리 끝내 버리기로 하고 주먹에 공력을 불어 넣었다.

굳이 검을 뽑아 들 필요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윽고 마선이 선공을 시작했다.

어차피 선공을 양보하고 먼저 들어오라고 해도 도종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매면서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서였는데 뜻밖에도 도종이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해 냈다.

보는 눈을 가진 이들은 마선이 휘두른 주먹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고 있었고 단 한 번에 승부가 결정 나겠다고 생각하며 탄식했다.

그러다가 도종이 그것을 피해내는 것을 보고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아무리 놀랐다고 해도 마선의 놀라움에 비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그는 기가 막혔다.

그리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너무 들떠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마선은 호흡을 가다듬고 바닥을 때리듯이 차고 도종의 품을 향해 파고드는 것처럼 달려갔다.

그의 주먹이 빠르게 나갔다.

정직한 동작이었다.

그리고 정해진 결과는 하나였다.

도종이 쓰러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마선은 자기가 내뻗은 주먹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음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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