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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42화 (342/470)

제342화

342화

“아진이 너는 어쩌면 좋겠느냐.”

“저도 단정적으로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흑도를 전부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면 흑도가 선을 지키도록 확실한 통제는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황제의 시름이 깊어지는 듯했지만 처음처럼 완전히 꽉 벽에 막힌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검신 대협은 어찌 생각하는가. 사파가 다시 생겨나는 것에 대해서 말이네.”

“반길 일은 아니지만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폐하. 쥐를 잡는 일까지 혼자서 전부 다 할 수 있다면 뱀을 풀어 놓는 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파가 없는 것이 정파 무림인들에게는 좋았지만 그 피해가 의도치 않게 민초들에게 돌아간다면 그것을 계속 그들이 감당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래. 경쟁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꼭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네. 사파의 수뇌부가 생기면 그자들에게 짐이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이고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을 거네. 그런 식으로 통제해 나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군. 각지에 있는 수만의 흑도 방파를 일망타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말이야.”

백만 황군을 동원한다고 해도 그들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구성원을 달리해서 잡초처럼 다시 생겨날 것이다.

결국 그들은 거기에 대해서 뜻을 같이했다.

“이번에도 향화문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흑도 방파 중 힘을 실어 주고 키워 줄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해.”

“예. 폐하.”

세상이 다시 한번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선제대응을 하는 것이 어디선가 조용히 몸집을 키우는 거대한 악과 나중에 갑자기 맞닥뜨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도종을 찾아가려는 아진에게 철방의 방주가 급하게 달려왔다.

“공자님. 아진 공자님. 여기에 계신 줄도 모르고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공자님이 계신 곳만 빼고 다 찾아다녔나 봅니다.”

방주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무슨 일로요? 혹시 검이 다 완성된 건 아니…… 지요?”

‘혹시 검이 다 완성됐나요?’라고 물으면 너무 부담스러우려나 해서 그렇게 물은 거기는 했는데 어차피 그게 그거인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아진의 말을 듣는 방주의 표정이 그다지 부담스러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당해 보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아진의 표정이 변했다.

“설마요. 정말요? 정말 다 만드셨어요?”

그러면서 아진은 이럴 게 아니라는 듯이 방주를 놔두고 그대로 철방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고. 공자님. 저를 데리고 가셔야지요. 저는 힘이 딸려서 공자님을 못 쫓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웃는 소리인 것을 보니 정말 검이 완성된 모양이었다.

그동안 임시로 쓸 검이라도 새로 하나 장만해야 하지 않냐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버텨온 결과 마침내 제 검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아진은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흑주와 제일조가 어디선가 날아와 아진을 따라왔다.

“어디에 있었어. 흑주야? 요즘에 너희 얼굴 보기 정말 힘들다?”

요즘은 죽는 사람이 없으니 밖으로 사냥을 나가기라도 하는 건가 할 정도로 둘을 보기가 어려웠었다.

그러나 반가워할 틈도 없이 흑주와 제일조는 더 서둘러서 철방으로 사라졌다.

자기도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아진이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철방의 야장들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완성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진은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있었다.

아진은 점점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결국 달려서 그곳에 이르렀다.

그 검을 위한 검좌대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검은 검좌대 위에 황제처럼 놓여 있었다.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얼굴 가득 웃음이 지어지기만 했을 뿐.

아진이 검을 집어 드는 동안 야장들이 다가와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소리를 내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이 주인을 만난 순간.

그것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처음 만나는 순간의 감격에 비한다고 해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아진은 검을 든 팔을 쭉 뻗고 자신의 공력을 흘려 넣었다.

은은한 울림과 함께 검이 반응을 나타냈다.

그것은 완벽한 통로가 되어 주었다.

아진은 눈을 감은 채 공력을 점점 더 밀어 넣었고 검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것을 모두 받아들였다.

아진이 눈을 뜨자 검기가 맺히는 것이 보였다.

아진이 자긴 힘을 구현하는데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 검.

그것은 아진의 등에 날개가 되어 줄 것 같았다.

그런 확신을 가진 채로 아진은 더 많은 공력을 밀어 넣었다.

방주에게 물어 가면서 검을 다뤄 보려고 했지만 이렇게 조금만 검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방주가 아진에게 검에 대해 물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터였다.

그러느니 방주의 도움 없이 자기가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는 계속 공력을 불어넣었다.

검에서는 어떤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신이 그저 아진의 이어진 신체의 일부 같았다.

마침내 검에 검강이 맺혔을 때 야장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그동안 다른 검으로 만들 수 있던 것들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아진의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이거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보검에 갈급하는 거구나.

아진이 진심으로 감격한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문득 도종이 떠올랐다.

순수한 곤오철로 만들어지고 거기에 더해 방주의 피땀이 들어가 만들어진 결정체였다.

다시 그와 같은 것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자꾸만 도종이 눈에 밟혔다.

‘아진아. 너 왜 이러냐?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었잖아. 아무리 그래도 네가 먹을 건 챙겨놓고 남 챙기던 애가 진짜 왜 이러냐?’

아진은 스스로도 당황스러워서 애써 그 마음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일단은 도종이 이걸 들 수 있는지 그걸 먼저 확인해 보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 형님이 들지 못하면 고민할 것도 없으니까 일단은 들 수 있는지나 먼저 보자. 형님이 들 수 있다고 이걸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진이 마침내 마음을 굳히고 검을 들고 돌아서자 그 뒤에 서서 아진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다.

검기와 검강을 덧입히고 감격한 것 같던 아진이 갑자기 무슨 생각에 빠진 건지 말이 없이 검을 들고만 있더니 그대로 돌아서 달려가려 하는 걸 봤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혹시 검에 이상한 부분이 발견된 건가 하는 마음에 불안해하는 사람도 보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눈이 마주친 방주만큼은 여유 있게 웃으면서 고개까지 끄덕이고 있었다.

아진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 것 같은 얼굴이라서 오히려 아진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예. 공자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뭐지?’

그때는 정말 이상했다.

자기가 도종에게 가려고 하는 걸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도종을 찾아갔다.

지금의 도종이라면 아진 자신을 꺾을 수 없을 것이다.

도종에게 져 주는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도종은 그런 우승은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느니 준우승을 차지하거나 4위에 만족하려 할지도 몰랐다.

비무 대회에 참가한 수천 명을 꺾고 4위라면 그것도 무시할 수 있는 성적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진은 랑랑의 아버지인 도종에게 우승을 안겨 주고 싶었다.

그것은 도종의 도전이기도 했지만 아진의 도전이기도 했다.

자신의 손으로 도종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아진 스스로도 한 번 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 검을 갖고 여기에 적응하고 익숙해진다면 도종은 어쩌면 아진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자신만의 힘으로.

가모가 비무 대회 기간에 4강전을 앞두고 휴식 기간을 둔 것에 그런 안배는 전혀 없었을 텐데 우연히도 그 시간이 기가 막히게 맞아들어갔다.

아진에게는 그 모든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도종은 그 시간에도 소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도종의 옆에는 린린이 서서 도종의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었다.

린린이 탈락한 것도 이때를 위한 게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모든 게 척척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큰오라버니. 이제 와서 이걸 알려 주는 게 큰오라버니에게 독이 될 수도 있어서 말을 해 줄까 말까 했는데 그래도 가르쳐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이것만 고쳐도 큰오라버니의 검로가 훨씬 분명해질 거야. 이제 와서 바로 고치려면 잘 안 고쳐질 테니까 큰오라버니가 잘못할 때마다 내가 뇌기로 깜짝 놀라게 해 줄게.”

“린린.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냥 내가 잘해 볼게.”

도종이 겁을 먹고 말하는 걸 들으며 아진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형님. 이 검 좀 봐.”

그러면서 아진은 도종이 뭐라고 말을 할 틈도 없이 검을 건넸고 도종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다.

그게 무거울 거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냥 한 손으로 받았는데 아진의 생각대로라면 그의 팔이 아래로 푹 가라앉으며 몸이 덩달아 낮춰지는 게 정상이었다.

검에 들어간 곤오철은 비무 대회 접수처 옆에 있던 곤오철보다도 양이 많았고 무게도 더 나갔다.

몇 번이나 녹이고 형태를 바꾸어 겉으로 보기에는 날씬하고 날렵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도종은 그것을 가볍게 받아 들었다.

“이거 뭐야. 아진아? 네 검이야? 드디어 장만했구나?”

아진은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검의 주인은 원래 따로 정해져 있는 건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잘 만들어진 검이어서 아진도 탐이 났고 도종이 이걸 들지 못하면 그때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것으로 삼으면 되겠다고도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도종이 검을 들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도종이 그 검을 든 것을 보자 그런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휘둘러봐. 형님.”

“왜?”

“해 봐. 그냥.”

도종은 희한하다는 표정을 짓고 그것을 휘둘렀다.

도종은 자기가 곤오철로 만든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보다 먼저 이상한 낌새를 깨달은 린린이 아진에게 다가왔다.

“오라버니. 혹시 이거…… 방주님이 만드신 거야? 곤오철로 만든 검인 거야?”

린린의 말에 도종이 깜짝 놀라 아진을 바라보았다.

“뭐? 정말이야? 그러면 나 이거 못 들잖아.”

사람은 얼마나 재미있는 존재인가.

그 생각을 한순간 정말 도종의 팔이 내려갔다.

자기는 곤오철을 들 수 있는 팔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미 들었잖아. 형님. 이제는 랑랑한테 당당해져도 돼. 처음에는 린린이 도와줬지만 이제는 형님 힘으로 그걸 들 수 있게 된 거야.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스스로 해낸 거야. 형님.”

도종은 멍하니 아진과 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은 주인의 의지에 완벽히 복종하듯이 가볍게 움직였다.

도종은 그 검을 내려다보다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채 어떻게 하기도 전에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져서 흘러버렸다.

도종이 재빨리 소매로 눈물을 훔쳤지만 그가 닦아낸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이 줄을 이어 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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