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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40화 (340/470)

제340화

340화

선이남은 청석판이 깔린 경기장을 바랐지만 가모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청석으로 바닥을 까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그것을 그렇게 헛되게 낭비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청석을 깨서 공격하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대체할 암기를 따로 준비하라는 가모의 말에 선이남은 아쉬움을 달래며 스스로 암기를 준비했다.

선이남이 옷을 젖히자 그 안에서 수십 개의 암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라면 그것을 기습적으로 사용했겠지만 여유가 넘치는 선이남은 그것을 미리 보이며 마선의 공포를 극대화하려 했다.

그러나 마선은 그런 것을 보고 놀랄 사람이 아니었다.

그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것이 필요할 터였다.

선이남은 마선이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고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며 암기를 허공으로 날렸다.

그리고 마선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게 했다.

내공의 운용이 수준급이었기에 암기의 속도와 방향이 완전히 그의 통제하에 있었다.

선이남의 손이 잠깐 움직이는가 싶더니 허공에 떠 있던 암기들이 섬전처럼 달려들었다.

“저 많은 양을 동시에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경악한 채 소리쳤다.

그것은 허공섭물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선이남의 내공이 얼마나 심후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선이남은 마선에게 마지막으로 경고를 하려는 의미로 그런 것처럼 잠시 그 상태로 마선을 기다렸다.

항복하지 않으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그 정도의 의미가 그의 눈빛을 통해 표현되었다.

하나하나의 암기에서 느껴지는 예기는 그 공격이 스스로 멈추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결국 마선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게 되었고 손을 들어 허공에 대고 옆으로 그었다.

일단 그가 본신의 힘을 사용하기로 한 이상 그것으로 족했다.

허공을 새카맣게 뒤덮고 있던 암기가 사라져 버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릴 수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마……?’

사람들은 그 많은 암기가 어디로 간 건가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마선은 틈을 주지 않고 선이남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몸을 움직이기 전에 족히 오 장 정도는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순식간에 마선의 몸이 선이남의 앞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언제 뺀 건지 알 수 없는 검을 선이남의 목에 겨누었다.

“내가 이긴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선이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쉽게 끝나버렸는데 상황을 종결시키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마선의 결단뿐이었다.

선이남은 그 순간 그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처음부터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제선문주가 준비해 준 독은 사용할 틈도 없었다.

그것을 사용하려면 일단 거리를 벌려야 했는데 조금도 틈을 만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이남이 조금만 뒤로 물러나려고 해도 그때마다 마선이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경고라도 하려고 하는 것처럼 검을 더욱 깊숙이 들이밀었다.

심판관은 선이남의 패배를 선언했고 마선은 그제야 검을 내렸다.

사람들은 꿈을 꾸는 것처럼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무공이었을까?

아니면 극쾌의 움직임이 이루어낸 절경이었을까.

무엇보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그 많은 암기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든 힘이었다.

그것이 수직으로 낙하한 바람에 끌려가 미세한 흙먼지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인 린린도 상상하지 못한 것을 보면 모두가 그 일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황제는 선이남의 패배가 아쉽기는 했지만 마선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했다.

“백수 검객이라 했더냐. 하월.”

“예. 폐하.”

“저자는 내 옆에 두어야겠다.”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그것은 아닙니다만 쉽게 얽매일 것 같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하월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바람인 마선을 잡아둘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 * *

소청의 상대는 정파 무림에서 독문으로 새롭게 세력을 키워 낸 독천혈문의 문주이자 강호 십대고수 중 일인인 태월령이었다.

“소청아. 너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너를 아이로 대하지 않겠다. 그게 너를 제대로 대우하는 것이 될 거라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청의 예의 바른 말에 독천혈문의 문주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먼저 공격을 펼친 사람은 소청이었지만 소청의 검은 순식간에 거두어졌다.

생각하지 못한 뇌력이 전해지며 깜짝 놀라 저절로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문주는 그 순간을 노리지 않고 소청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묵빛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검은 독장이었다.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커다란 입을 벌리고 소청을 향해 튀어나갔다.

“저것은……!”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소청이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청은 정신을 차리고 검기를 날렸고 검기와 독장이 서로 부딪혔다.

독장이 검기를 반쯤 녹였고 검기가 독장을 반쯤 베었다.

문주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고작 어린아이 하나를 상대하면서 그런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치고 소청은 어떤 아이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쭙잖게 그가 소청을 봐주려고 했다면 그거야말로 소청을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절한 패배.

문주는 소청의 검을 피해 내면서 그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소청은 독장이 뻗어 나올 거라는 것을 알고 미리 몸을 피하려 했지만 문주의 독장이 조금 더 빨랐다.

맹수처럼 튀어나온 독장이 소청의 얼굴을 잡아채려 했다.

“아아아……!!”

안타까운 탄식이 사람들에게서 쏟아져나왔다.

어떻건 간에 소청은 아직 어린아이라 일방적인 응원을 받고 있었다.

꼼짝없이 독장에 당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소청은 믿기지 않는 유연성으로 허리를 뒤로 꺾으며 독장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일어선 채 그대로 문주에게 검을 휘둘렀다.

바람처럼 날아온 검은 문주의 목에 닿은 그 상태로 멈췄다.

소청이 멈추지 않았다면 그 검은 문주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을 터였다.

“……!”

문주는 놀란 눈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소청이 어떤 녀석인지 모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직접 손을 나눠보고 나니 정말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너란 녀석은 정말…….”

그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소청도 방긋 웃었다.

* * *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쟁쟁한 후보들이 떨어졌다.

그렇게 최후의 네 명이 남았을 때 그 중 이변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다수 포진돼 있었다.

아진과 소청을 제외한 두 사람이 모두 이변의 주인공이었다.

마선과 도종.

도종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선은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진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백수 검객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고 하며 사문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으니 더더욱 그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것을 피해온 마선이었지만 결승에 오른 후에 자연스럽게 쏠리는 관심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인물인 마선의 4강 진출이 더 의외인지, 자기들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도종의 진출이 더 의외인지 그것도 난감했다.

도종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을 혼돈 속에 빠뜨리면서 그 자리에 올라왔던 것이다.

도종은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독과 암기, 검술과 권술까지 다채롭게 활용해 왔는데 그중 어떤 것도 대충 하는 것이 없었다.

비무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독과 암기로 어느 정도 남들이 하는 만큼 해 볼 수는 있었겠지만 비무 대회에 참가한 수많은 명숙들을 제치고 그 자리에 우뚝 설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 버렸다.

이변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듣는 것만큼 마냥 달콤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뼈를 깎는 고통을 요구했고 도종은 매 순간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아진은 차라리 자기가 도종의 모습으로 바꾸고 그를 대신해서 싸워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 문제를 두고 역천마의까지 불러서 린린과 진지하게 상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종이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을 거라는 린린의 말에 결국 그들은 그 계획을 포기했다.

랑랑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그러는 건데 거기에서 그랬다가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게 되는 거라는 말에 아진은 도종에게 말도 꺼내 보지 못했다.

자기가 그 말을 했을 때 말없이 아진을 바라보는, 실망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밖에 없을 그 모습이 눈에 너무 선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거야말로 도종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아진은 그저 도종을 믿으면서 그를 훈련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도종을 우승하게 만들겠다고 목표를 세운 후부터는 아진은 무자비하게 도종을 몰아세웠다.

도종은 몇 번이나 무릎을 꿇고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말을 할 만도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진은 전율을 느꼈다.

맷집도 없는 사람이 그것을 전부 다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몸으로.

한계가 명확한 육체로.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면서 도종은 매일매일 새로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종이 남고 린린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 의외라는 말을 쉽게 했다.

특별히 도종을 무시하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어감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곤 했다.

“비무 대회 최대의 이변이지. 어떻게 서 의원님이 4강에 오른 걸까?”

“이거 남들이 모르는 환단 같은 걸 제조해서 몰래 먹기라도 한 것 아닌가? 전에 사파인들도 그런 걸 먹고 문제를 일으켰잖아. 한 번 먹으면 단기간에 강해지는 환약. 그때 산본의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니까 그런 환단 몇 개를 숨겨 놨다가 이번에 썼을 수도 있잖아.”

말이라는 것이 그랬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까지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지 않는 게 좋았을 말까지 하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그 말은 그런 식으로 나왔다.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처음부터 바로 잡거나 입을 다물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듣고 보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 이도 있었고, 비무 대회에서 일찍 떨어지고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나쁘던 차에 다른 사람의 명성에 흙탕물이 끼얹어지는 것을 구경하려는 이들도 생겼다.

한창 도종에 대해 그런저런 말이 나오는 동안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스릉-.

그리고 검 한 자루가 칼집에서 빠져나왔다.

열호문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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