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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39화 (339/470)

제339화

339화

“……!”

마석영은 남이천이 손속에 자비를 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곧바로 자신을 끝낼 생각이었다면 그보다 더 빠르게 날렸을 듯했다.

마석영이 알기로 남이천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초식을 떠올렸다.

열호문에서 배우는 초식은 정말 간단했다.

그러나 간단하다고 해서 약한 것은 아니었다.

마석영은 비무 대회에 와서 다른 사람들이 펼치는 초식을 보며 자신이 배운 초식에도 무한하게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마석영의 검이 상하좌우, 그리고 대각선으로 대기를 그었다.

그의 검을 지금껏 수도 없이 봐 왔던 사제들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형이 언제 저런 것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건가 해서였는데 검기의 궤적이 바로 눈에 드러나지 않았다.

날아오던 항아리의 파편 중 일부가 떨어졌고 남은 것은 높이 뛰어올라서 피했다.

그 자체로 대단한 동작은 아니었지만 겪어 보지 않은 공격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처음의 그에게 기대할 수 없었던 능력이었다.

마석영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남이천 역시 마석영이 그만한 기량을 보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그때부터는 호승심이 불탔다.

“소협.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이천이 손을 한 번 휘젓자 바닥에 떨어졌던 파편들이 다시 솟아올랐다.

마석영은 그것을 다루는 데 솔직히 능숙하지 않았고 이럴 때마다 매번 검을 휘둘러야 하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진다면 비무 대회에서의 도전은 그대로 끝이 날 거라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는 검막을 만들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동안은 그렇게나 갈구하고도 성공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 왜 그때는 된 것인지 마석영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벽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 한 번 뚫고 난 후에는 그것을 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가 검막을 만들어 낸 것이 그때가 처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남이천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자신과 마주했던 그 시점에는 달릴 줄 모르던 사람이 비무가 진행되는 동안 달리는 법을 막 깨우쳤다는 것을 그도 깨달았던 것이다.

남이천은 상대가 그 정도라면 자기도 제대로 대우를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와서 그만한 성장을 보였으니 져 주겠다고 할만도 했지만 남이천에게 기대할 일은 아니었다.

남이천은 다시 한번 파편을 떠올렸고 자신의 침통을 꺼내 그 속에 침까지 섞었다.

그리고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그것들을 전력으로 날렸다.

“……!”

마석영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죽음이 눈앞에 닥친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눈을 덮고 있던 것이 한 꺼풀 벗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나 매달리고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던 구결의 의미가 그 순간 제 모습을 드러냈다.

마석영이 항아리의 파편을 밟으며 기이한 신법을 펼치고 남이천의 앞으로 벼락같이 다가갔을 때 남이천은 미처 비명도 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다가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이천 의원의 실격패입니다.”

심판관의 단호한 음성이 울려 퍼지고, 모여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석영은 멍한 얼굴이 된 채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의 승리가 선언되었지만 마석영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소협이 무아지경에 든 것 같으니 열호문의 동문들은 호법을 서주도록 하십시오.”

자리에 함께하고 있던 아진이 말하자 마석영의 사제들이 일제히 다가와 마석영의 주위를 감쌌다.

사람들은 이번 비무 대회가 단순히 우열을 가리며 경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량을 이끌어 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다른 경기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어떠셨습니까. 형님.”

아진이 웃으며 말을 건네자 남이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일도 다 생기는군. 처음에는 분명히 내가 우위에 있었어. 그런데 일각이 지나지 않는 동안 점점 밀려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뒤처져 버렸어. 그 시간 동안 나를 앞서가 버리다니.”

그것은 분명히 기이한 경험이었고 남이천은 기꺼이 승복할 수 있었다.

* * *

“하월. 짐과 내기를 하면 어떻겠느냐.”

본선에 진출할 사람들이 결정되던 날 황제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폐하.”

하월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왜 말도 들어 보지 않고 그러는 것이냐.”

“소신이 왜 그러는지는 폐하께서 가장 잘 아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다 지난 일이 아니냐. 그리고 이제 내가 너를 놀리려고 속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폐하. 명을 내리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소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군. 좋다. 그러면 명으로 하자.”

좋다고 했을 때는 알아들었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하월은 자기가 황제를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하월. 반드시 이기거라. 이쯤 되고 보니 짐도 욕심이 생기는구나. 황성 고수 중에 비무 대회의 우승자가 나오면 좋겠어. 무리한 명령도 아니지 않으냐. 이기면 짐이 특별히 상을 내리겠다. 열두 폭 그림을 그려 주지.”

“…….”

그건 확실히 끌렸다.

“낙인도 찍어 주실 것인지요.”

“당연하다. 두고두고 가보로 삼아도 될 것이다. 급전이 필요해지면 팔아도 좋다. 그러면 황금 삼백 관은 족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더 이상은 갈등이 되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런데 서 공자는 어찌 처리해 주실 생각이신지요?”

“무슨 말이냐. 정당하게 겨뤄야지.”

“폐하. 그러면 처음부터 그림을 주실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까.”

“알았다. 그럼 선 부정에게나 기대해 봐야지.”

하월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폐하. 혹시 서 공자가 우승하지 못한다는 쪽에 돈을 거셨는지요?”

짧은 순간이기는 했지만 하월은 분명히 황제가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

“하월. 그걸 아느냐. 가모가 그자들에게 보호세를 받아 냈다고 하더구나.”

누가 봐도 황제가 빠져나가려고 그러는 거라는 게 분명했지만 그 말이 너무 엄청나서 하월은 또 놀란 얼굴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정말 가모를 존경한다. 돈을 뜯어낼 때는 확실하게 뜯어내고 그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게 후원을 하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쓰는 돈이 다른 사람들을 후원하는 데 쓰일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소소하게 돈을 걸었지.”

하월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단하십니다.”

“그러니 하월. 짐을 위해 우승해다오.”

“그러지 말고 그냥 서 공자의 우승에 돈을 거십시오.”

그러자 황제가 하월에게 조용히 손짓을 했다.

하월은 마지못해 황제에게 다가갔다.

“더 가까이 오너라. 정말 중요한 얘기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되는 말이다.”

“그러면 전음을 하십시오.”

“아…….”

황제의 표정을 보니 정말 자기가 전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까먹었던 것 같았다.

-하월. 이건 아진이가 준 정보다. 우승자는 자기가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월은 깜짝 놀라서 황제를 바라보았고 황제는 하월을 놀라게 했다는 사실이 흐뭇한 듯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난 정보가 아니냐.”

“그런데 그건……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요. 폐하?”

“문제가 될 게 뭐지?”

하월은 어마어마한 유혹을 느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황제와 아진에게 한두 번 속아온 게 아니라서 마음이 흔들렸다.

“안 믿습니다.”

결국 하월이 그렇게 말하자 황제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잘 알았다. 그래도 우승하기 위해서 노력은 해다오. 하월.”

하월은 깊은 수렁에 빠진 느낌이었다.

* * *

회가 거듭되면서, 그리고 탈락자가 점점 더 많이 생겨나면서 열기는 계속 더 고조되었다.

처음에 본선에 진출할 거라고 예상됐던 사람들 중 떨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검후 독고소영의 탈락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기에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정의맹의 후기지수들과 황실 십대 고수, 마두들의 이른 탈락은 예상외라고 할 수 있었다.

도종과 아진, 린린 세 남매와 북리의천과 소청은 모두 열여섯 명의 최강자에 이름을 올렸다.

아진은 형과 여동생, 스승과 제자와 함께 본선에 진출했던 것이다.

사실 그런 식으로 하자면 그와 연관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렵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도종이 그때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거기에 선이남과 하월, 위도와 마선이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강호의 이름 높은 고수였는데 그중 세 명 정도는 예상을 뛰어넘은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사람들에게는 마선도 의외의 인물이었을 것이고 그들이 얼마나 더 선전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전의 묘미가 되었다.

마석영은 끝까지 잘 싸웠지만 16강에는 오르지 못했고 그것은 하명준도 마찬가지였다.

하명준은 선이남과 허우천을 반씩 섞은 것 같은 진기한 공격법으로 허를 찌르며 적들을 쓰러뜨렸는데 내공의 조절에 실패하며 아쉽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제선문주는 참가하지 않은 건가 싶을 만큼 빠르게 탈락했는데 상대방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든 잔인한 공격에 실격패를 당해서였다.

아무리 독과 암기의 사용이 허용되는 비무라고는 하지만 제선문주가 사용한 독은 경기장 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주위에서 관전하던 이들까지 위독하게 만들었고 아무래도 그것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하에 실격패를 선언했던 것이다.

제선문주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래도 그 일을 계기로 제선문주가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이들이 많아졌다.

막판으로 가면서 응원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마선은 뒤로 갈수록 본신의 힘을 조금씩은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우승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경기가 시작되고 마선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선이남이었다.

그도 선이남이 황실 내의원 부정이라는 사실과,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사람이 가진 무위를 공공연히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는 것은 장점과 함께 단점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비무 대회에 그를 내세운 것을 보면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라고 마선은 생각했다.

알고도 막지 못한다면 아는 것이 소용이 없다.

선이남이 펼치는 공격이 그런 수준이라면 황제는 그의 무위를 선보이는 것으로 잠재적인 적들에게 경고를 보낼 수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마선은 황제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본선이 치러지는 경기장은 예선이 치러진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각자가 자기가 보일 수 있는 무공을 거침없이 선보일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였는데 선이남은 그곳을 제집처럼 누볐다.

사천당문의 만천화우를 능가한다 하여 황제가 이름 붙여준 흑천암우.

시작과 함께 그것이 선이남의 손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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