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338화 (338/470)
  • 제338화

    338화

    물론 마선은 그것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앞에서 본신의 힘을 다 드러낼 생각이 없었기에 그는 지금 번번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꼴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맞아 주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신경이 곤두섰다.

    그게 침에 미리 발라져 있던 약효라는 것까지는 마선도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소도나 비수가 날아와서 박혔으면 마선은 자신이 입은 피해를 예측하는 게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침이었다.

    그것이 참…… 묘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선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문제였는데 허우천은 마선의 움직임을 보면서 마선의 요혈을 정확하게 노렸다.

    허우천은 각 혈 자리가 관장하는 기능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극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알고 있었다.

    배변과 배뇨를 촉진하는 혈도 아는 허우천은 그곳을 집중적으로 자극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실수를 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사회적인 위신을 고려하여 배뇨를 촉진하는 혈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참을 수 없도록 자극했다.

    마선은 이런 식의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백 명이 운집해서 눈을 빛내며 자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데 미칠 것처럼 요의가 폭발했다.

    갑자기 그렇게 된 이유를 마선도 알 수가 없었다.

    “……!”

    지금까지 안 당해본 일이 없이 온갖 상황을 경험하며 전투의 달인이 되어 있던 마선도 그 상황에서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 포기하면 편하다고, 누어 버리면 되는 일이기는 했지만 체면 때문에 그러질 못하는 동안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침에 묻은 약의 효능까지 발휘되자 마선은 눈앞이 하얗게 되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지금까지의 자세와는 확연히 달라진 자세에서 벼락같은 검기가 날아가고 경기장 주위의 조형물이 일제히 터져 산산조각이 나며 파편이 허우천을 노렸다.

    “으으으악!”

    허우천은 갑자기 변한 기세에 응수하지 못하고 자신의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그것을 본 심판관이 마선의 승리를 선언했다.

    “백수 검객 송파운 대협의 승입니다.”

    접수할 때 마선이 알려준 이름이 들려왔다.

    마선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보법 중에 가장 평범한 보법으로 그곳을 빠져나가 속세의 번민을 풀어 버렸다.

    흙바닥에 구멍이 깊이 뚫릴 정도로 요의를 해결하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면서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생각이 났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다는 말이냐. 고얀 놈. 고얀 놈……!’

    그러면서도 마선은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들이 그 모습을 봤다면 차마 못 볼 꼴을 봤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어 댔을 터였다.

    엄청난 오줌 줄기의 위용을 자랑하며 혼자 웃는 모습이 실성한 사람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 * *

    “와. 정말 아까웠어요. 형님. 형님이 이기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분은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그 전에는 힘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셨던 거잖아요. 하마터면 형님이 크게 다치셨을 것 같던데요?”

    도종이 허우천의 옆에 붙어서 말하자 허우천은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어.”

    “그런데 왜 갑자기 그렇게 돌변한 거죠?”

    “내가 못 참게 만들었거든.”

    “그렇기는 한 것 같았어요. 잠시도 쉬지 않고 몰아붙이셨잖아요.”

    “아니.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러더니 허우천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도종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 방법이면 내가 아진이도 이기고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내가 떨어졌으니까 너한테 알려 줄게. 이제 네가 나를 대신해서 이 방법을 써서 우승해 줘. 내 한을 풀어 줘야 돼.”

    “뭔데요?”

    허우천은 도종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면서 비기를 전수해 주었다.

    자기도 남들처럼 멋있게 전음으로 알려 주고 싶었지만 그건 좀 어려웠다.

    “네에?”

    도종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허우천은 거절은 사양한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대협의 표정은 너도 봤지? 이건 충분히 승산이 있어. 그리고 내가 알려 준 걸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그런데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어.”

    “……뭔데요?”

    별로 내키지도 않는 비법인데 주의할 점까지 있다니.

    여러모로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말은 들어 보기로 했다.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상대가 상황을 모면하지 못했을 때 말이지.”

    “사람들 앞에서 오줌보가 터졌을 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지. 결선에 가면 배변을 촉진시켜야지. 그래야 승산이 있을걸?”

    “으윽. 형님. 그랬다가는 본가의 비무 대회에 대해 사람들이 두고두고 그 말만 할 겁니다. 차라리 지는 게 나아요.”

    “그런가? 그래. 그럼 그냥 오줌보를 터뜨리는 걸로 하자.”

    “형님. 저는 정당하게 승부를 내겠습니다.”

    “이놈아. 의원 중에 우승자가 나와야 한다는 결의를 잊었느냐?”

    도종은 웃겨서 죽을 것 같았다.

    다른 무인들이라면 비기를 전수해 준다면서 이런 방법을 알려 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좋아. 그러면 그렇게 해서 급하게만 만들어 놔. 그러면 일단 발은 묶어 놓을 수 있잖아. 그다음에 정정당당하게 네 방법으로 승부를 봐.”

    “생각해 볼게요.”

    “생각은 뭘 또 생각을 해. 참나! 우승해서 상품은 나랑 반씩 나눠 갖자. 도종아. 응?”

    그제야 본심을 드러내는 듯이 허우천이 찰싹 달라붙자 도종은 폭소를 참지 못했다.

    “저는 제 힘으로 이겨 보이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우승 상품은 랑랑이 갖겠대요.”

    “아. 그래? 내가 랑랑이는 못 이기지. 그래. 랑랑이라서 특별히 양보하는 거다. 그러니까 꼭 우승해.”

    “예. 형님.”

    바람이 된 마선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었다.

    마선은 자기가 어떻게 당한 건지 돌이켜서 생각을 해 보았다.

    정말 피할 수 없었던 걸까 하면서 자기가 너무 방심해서 일어난 일인가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었다.

    허우천은 그 자신의 속도로는 절대 마선을 따라올 수가 없었지만 침을 다루는 것에서는 마선을 압도했다.

    그는 자기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그다음을 대비했다.

    허우천이 사용하는 무기가 침이 아닌 암기였다면 그렇게 많은 대안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선은 그때까지만 해도 침이 태생적인 한계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얘기가 달라지는 거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허우천은 침에 강기를 실을 수 있었다.

    마선이 생각하기에 그가 강기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침뿐일 것 같았다.

    다른 암기나 검에는 강기를 입히지 못하지만 일단 손에 쥔 것이 침이면 허우천은 거의 무적에 가까울 정도로 돌변하는 것이다.

    천하의 다른 누구도 허우천처럼 침으로 그런 공격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마선은 함부로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산본의가의 다른 의원들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기는 했지만 허우천을 먼저 봤으니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했다.

    마선은 도종을 보았다.

    도종이 린린의 오라비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특별한 훈련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결선에서 그와 만나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종에게서는 특유의 집념이 남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마선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 * *

    예선전이 진행되는 동안 가주와 가모는 감격을 감추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얻게 된 후에도 희한하게 약자들에게 자신들의 감정을 이입했다.

    그래서 힘이 없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했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기회를 얻게 해 주고 싶었다.

    예선전을 거치는 동안 가주와 가모는 함께 비무를 보러 다니곤 했는데 자기들이 도와준 사람들이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상공.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고작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어요.”

    가모가 말한 사람은 열호문의 대사형 마석영이었다.

    가주 역시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괄목할 성장을 보여 주었는데 마석영은 그들 중에서도 더욱 두드러졌다.

    사제들의 본이 되고 사문의 명성을 드높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늘 갖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막중한 부담감을 이기고 매 순간 성장을 보이고 있어서 그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기쁜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굴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공.”

    가모가 가주에게 대고 소곤거리자 가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필 마석영이 남이천과 붙게 되었던 것이다.

    “이천에게는 비밀입니다만 나는.”

    “말하지 마세요. 상공. 말하게 될 것 같아요.”

    가모가 웃다가 남이천과 눈이 마주쳤다.

    남이천은 가모와 가주가 자기를 응원하러 왔다고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예를 갖추었다.

    “어떡하죠? 상공. 눈이 마주쳤어요.”

    “그럼 두 사람 모두 똑같이 응원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누가 이기더라도 기쁠 테니 더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상공은 열호문의 제자를 응원할 거죠?”

    “이천은 이미 황상께도 인정을 받았고 앞길이 창창하게 열렸으니 열호문의 제자가 이기면 좋기는 하겠습니다.”

    “저도 그래요.”

    그들이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경기장에서는 두 사람이 비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석영은 상대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서 남이천을 보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사도련주를 죽일 때 공을 세웠고 신법에 능하며 황상 폐하를 곁에서 모시는 의원.

    그중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들을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큰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의원님.”

    남이천은 마석영의 말에 가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러면 아낌없이 보여드리겠습니다.”

    남이천도 자신의 상대에 대해서 정보를 모았고 열호문의 검술을 파악해 두었다.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정직한 검술.

    허초도 변초도 없이 투로가 전부 들여다보이는 간단한 초식.

    남이천은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 현실의 냉혹함을 직시하게 해 주는 것이 관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것을 정말 아낌없이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먼저 시작하십시오.”

    “…….”

    마석영은 당황한 것 같았다.

    남이천이 다 준비가 된 게 맞는 건가 해서였다.

    남이천에게는 검이나 암기통도 없었다.

    싸움이 시작된 후에 굳이 암기를 꺼내서 공격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했다.

    설마하니 남이천의 옆에 있던 항아리가 그의 무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마석영이었다.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시작하십시오.”

    남이천이 다시 선수를 양보하자 마석영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 검을 뽑아 기수식을 취했다.

    선인이 길을 가리키는 모습에서 착안했다는 초식 선인지로가 그의 검에서 펼쳐졌다.

    앞으로 발을 딛고 한 손으로 검을 잡은 채 찔러 갔던 것이다.

    그러나 남이천은 간단하게 그것을 피했다.

    남이천은 가까이에서 아진의 검술을 볼 기회가 많았고 견식이 높았다.

    게다가 안력도 좋아서 마석영의 정직한 검로는 전부 다 들여다보였고 그것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가장 경제적인 움직임으로 검격을 회피한 남이천은 다음 순간 항아리를 발로 차서 깨뜨렸다.

    깨뜨리기 전에 약간 위로 들어 올리며 깬 탓에 조각들이 허리 위로 올라왔다.

    그것이 일제히 마석영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