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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37화 (337/470)

제337화

337화

가모 자신이 궁핍했을 때 아이들에게 넉넉히 먹이지 못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런 상황의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다.

열호문 사람들은 강호의 정이 따뜻하다고 생각하며 편안히 식사를 마치고 방까지 안내받은 후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시 경기장이 마련된 곳으로 가다가 자기들이 들었던 것과 묘하게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들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들에게 다가왔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그들과 행색이 비슷했다.

어렵게 참가비를 마련해서 비무 대회에 참가했고 식사를 할 형편도 안 되는 것 같은 사람들.

가난한 문파에서 어렵게 참가비를 마련해 주어 이곳에 보내 준 것 같은 사람들.

그 순간 열호문의 사형제들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들은 아마도 산본의가의 사람들인가 보구나…….’

대놓고 도움을 주면 자존심이 상할까 해서 사문을 높이며 위로해 주고, 결선까지 보고 견식을 높이라고 말해 준 마음 씀씀이를 생각하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가슴이 울컥해졌다.

“힘은…… 저리 쓰는 것인가 봅니다. 사형. 돈은 저리 사용하는 것인가 봅니다.”

가장 어린 사제가 먹먹한 눈빛을 한 채 말하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산본의가에 대해 사람들이 무수한 이야기들을 했지만 나는 그동안 산본의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구나. 이렇게 마음을 쓰는 분들이 계시니 산본의가가 그 많은 일들을 해냈던 것이구나.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분들을 도우려는 분들이 들불처럼 일어섰던 것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은혜를 입고 누가 이 마음을 잊겠습니까.”

비무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들이 가진 실력만으로 순위가 정해지지는 못했다.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보필을 받으며 가장 좋은 몸 상태로 경기장에 오를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비무 대회에 참가한 사람 중 소수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싸움을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었는데 그들이 서 있는 경기장이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산본의가의 비무 대회는 예선전이 시작된 지 며칠 만에 그 어느 곳의 결선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 * *

“저 사람들. 쓸데없이 왜 저렇게 집중을 하는 거랍니까?”

황제가 북궁세가주에게 물었다.

그것은 북궁세가주 역시 궁금하게 여긴 부분이었다.

고작 예선전이었다.

우승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예선전에서는 힘을 아끼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예선전에서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남들의 비무를 지켜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신들의 수련을 하는 게 더 이로울 것 같은데 이곳은 분위기가 왠지 좀 이상했다.

비무를 보는 자세만 해도 그랬다.

‘어디, 누구네 닭이 더 잘 싸우는지 보자’라는 생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초식과 투로, 그것을 시작하기 전의 동작 하나하나까지 전부 분석하려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비단 한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경기장마다 그런 이들이 최소한 예닐곱 명씩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도 그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그러는 건가 하면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비무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 후에는 비무를 지켜본 이들이 비무를 마친 자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명문 무가나 문파에서는 그런 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그보다 형편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는 좀처럼 다른 무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없었는데 비무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흠…….”

황제는 왜 산본의가의 비무 대회가 특별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북궁세가주는 뭣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오?”

“소신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저자들은 쉽게 이 자리에 온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은자 다섯 냥이라는 것이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돈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배우지 않으면 안 돼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라면 확실히 다른 이들과 마음가짐이 차이가 날 수는 있겠군요.”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황제만이 아니었다.

마선 역시 희한하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한 채 비무 대회를 구경했다.

그도 어려운 형편에 돈을 모아 비무 대회에 참가한 작은 문파 출신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남들보다 특별히 어려운 대회를 치르게 될 거라는 것도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타고난 운명일 뿐 다른 이를 원망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런 이들에게 누군가 접근해서 객잔으로 데려가 숙식을 해결해 주는 것을 보았고 그때마다 바람으로 변한 채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았다.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나눠서 일을 하던 이들은 향화문이라는 정보문의 문도들이었고 그들은 산본의가 가모의 지시로 움직였다.

도움을 주기로 한 문파에 대해 미리 정보를 자세히 모아 두었기에 접근을 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막힘이 없었고 가난한 문파의 무인들은 사문에 대한 자부심까지 챙긴 채 도움을 받는 듯했다.

‘…….’

저런 방법이 있었던가 해서 마선은 한참 동안 자괴감을 느꼈다.

동정을 베푸는 것도 그냥 마구잡이로 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선은 바람으로 변한 채 가모의 주위를 자주 어른거렸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본의가 수뇌부에 대해서도 알아 갔다.

희한하게도 그들의 곁에 있는 동안 마음이 편해졌다.

수백 년 동안 그를 놔주지 않던 긴장감과 그를 자극하는 기분이 힘을 잃는 것 같고 아무 걱정 없이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선은 때론 바람이 되어, 어느 때는 흙이 되어 그들을 지켜보았다.

곳곳에 구경할 게 깔려 있을 거라던 마부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그는 패월악의 환생도 보았는데 혹시 그 아이라면 자신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끝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사이에 더 수련을 했으니.’

마선은 린린을 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조그만 여자아이라니. 그런데 좋아 보이기도 하군. 새 가족이 모두 마음에 드는 것 같고. 패월악일 때는 웃는 일도 거의 없더니 말이야.’

그러면서 자기도 이제 그런 삶은 그만두고 환생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마선을 찾는 진행 요원의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남들의 눈을 피해 원래의 몸을 하고 가서 예선전을 치르고 다시 내원으로 가기도 했다.

예선전에서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별로 많지 않은 것뿐이었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선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아진과 맞붙을 때까지는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래서 몇 초만에 끝낼 수 있는 상대여도 일부러 제법 오래 맞붙어 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실력은 철저히 감추었다.

그런데…….

계속 그럴 거였는데…….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가난한 무인들이 자꾸만 눈에 걸렸던 것이다.

나나 되니까 이렇게 해서 이만한 위력을 발할 수 있는 건데…….

이걸 보고 배우면 안 되는 건데…….

마선의 양심이 아파 왔다.

게다가 몇몇이 크게 감탄한 듯이 고개라도 끄덕이는 걸 보면 걱정이 커졌다.

‘그러면 뭐라도 배우게 조금만 보여 줄까?’

나중에는 그런 생각까지 들었고 자신의 비무를 보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초식을 조금씩 펼쳐 보였다.

마공이지만 마공의 특징을 감추고 정파의 무림인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내공의 흐름까지 바꾸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마선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오오!”

그러다 보니 마선이 원하지 않았던 일이 생겼다.

저 사람의 검격이 남다르다는 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마선의 비무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던 것이다.

‘하여간 이건 약도 없는 병이다. 아니. 그냥 실력을 숨기고 있었으면 다들 알아서 적당한 사람을 찾아갔을 텐데 이놈의 오지랖은…….’

마선은 뒤늦게 후회했고 다음부터는 다시 실력을 숨기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난한 무인들의 의욕에 불타는 눈과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초식을 풀어내고 있었다.

자기가 왜 그러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가 마선은 특이한 상대를 만났다.

대진표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어디선가 들은 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원에서 들은 이름이었다.

-오늘 허 의원의 비무가 있는 날이지요?

-허 의원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그렇군요. 본가에 허 의원만 해도 여럿이지. 허우천 의원 말이오.

-그렇겠네요. 가 봐야겠어요.

가주와 가모가 말했던 의원이었으니 두 사람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본연의 실력은 전부 감춘 채 가볍게 상대해 주겠다고 마음먹으며 마선은 일찌감치 검을 뽑아 들었다.

기수식도 먼저 취하고 모든 면에서 엉성하고 초보 느낌이 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의원이라고 했다.

‘의원이 왜 비무 대회에 나온다는 거지?’

마선은 상대의 무위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의술만 배워 왔을 사람이 언제 그런 내공을 쌓았다는 건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 내공이 느껴졌다.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다.

마선은 허우천의 비무를 보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자…… 유명인사인 모양이잖아.’

설상가상 그 자리에는 린린마저 와 있었다.

그리고 비무 대회 우승 후보로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는 서도진도 그 옆에 있었고 요즘 그들이 밤낮없이 훈련을 시키는 서도종도 함께 비무를 지켜보았다.

“힘내십시오!”

도종이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우천을 응원하는 것일 테니 마선에게 지라는 거지만 마선은 그럴 수 없었다.

허우천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고 마선 역시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

“저는 의원입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이번 비무 대회에서는 암기와 독의 사용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하려 합니다.”

“알고 있소.”

“혹시 다치시거나, 비무가 끝난 후에 몸이 불편하시거든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허우천은 비무도 하기 전에 상대방이 다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의원이라고는 하지만 특이한 사람이었다.

“알았으니 이제 시작했으면 하오.”

“예. 그럼.”

마선은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앞을 향해 뻗었다.

약간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마선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단지 몇 사람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을 뿐이었다.

* * *

마선은 자기가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는지 그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허우천은 마선을 향해 속임수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기교 넘치는 무인이 그러는 것처럼 자신이 가진 기량의 일부를 능숙하게 속여가면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자기가 가진 힘을 전부 다 드러내고 있는 거였다.

그러면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을 보면 어리숙한데 결코 쉽거나 만만치가 않았다.

그것은 알면서도 당하는 것과 같았다.

침을 들고 있는 것도 봤고 그게 날아올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날아오는 침을 피해서 도망치면 퇴로를 기다리고 있다가 침이 더 날아왔다.

날아오는 침을 향해 제 몸을 던지는 꼴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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