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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36화 (336/470)
  • 제336화

    336화

    그때까지 설마라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놀라움 가득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랑랑이 아버지예요. 랑랑이 아버지요. 랑랑이 아버지가 곤오철을 들었어요오오!!”

    랑랑은 북리소은의 손을 잡은 채 방방 뛰며 소리쳤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랑랑을 귀엽다는 듯이 보며 랑랑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도종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도종은 곤오철을 내려놓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종을 보며 감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아진은 도종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형님! 생각도 못 했는데 대체 언제 그렇게 실력이 는 거예요?”

    아진이 소리치자 도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더욱 가까이 와서 아진의 귀를 잡아당기고 속삭였다.

    “네가 그걸로 한 거 아니야?”

    “……네? 뭐요?”

    “허공섭물인가 그걸로 네가 들어 올린 거 아니냐고.”

    “네에? 무슨 말이에요? 제가 왜 그러겠어요?”

    “랑랑이가 보고 있으니까 내가 성공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도 그런 생각까지는 안 했는데요?”

    아진이 말하자 도종이 정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라버니. 역시 나밖에 없죠?”

    그런 도종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고 린린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뭐?”

    도종과 아진은 멍하니 서로를 보다가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린린!”

    “랑랑은 아직 그 환상 속에서 살아도 된다고요. 자기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환상요. 그리고 그 안에 있기만 하면 자기는 언제나 안전할 거라는 상상요.”

    “…….”

    도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랑랑은 엄마의 손을 놓고서 마구 달려와 제 아버지의 다리에 착 감기고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버지. 제가 제 친구들을 다 데려왔어요. 우리 아버지도 곤오철을 들 거라고 했는데 다른 애들이 아버지는 못 드실 거라고 했거든요.”

    그러면서 이어진 이야기가 놀라웠다.

    산본의가 가주님의 딸과 둘째 아들은 곤오철을 들고 신법을 펼칠 수도 있지만 첫째 아들은 작은 곤오철도 들지 못할 거라는 말이 나돌아서 랑랑이 그런 소리를 하는 아이들을 전부 때려 주려 벼르고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첫째여도 숙부님이 워낙 대단해서 숙부님이 산본의가를 이을 거라고 했지만 랑랑은 아버지가 곤오철을 들 수 있을 거라는 걸 믿었다고요.”

    어떤 녀석들이 그런 말을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진은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해져서 도종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도종이 웃으면서 랑랑을 안아 들었다.

    “그랬어? 어떤 녀석들이 그랬는데? 설마 마을 아이들은 아닐 테고.”

    “맞아요. 아버지. 마을 아이들은 안 그러는데 이번에 비무 대회 때문에 온 아이들이 그랬어요. 흥.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 랑랑.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까 싸우지 않아도 돼.”

    “네. 아버지. 이제 싸울 필요도 없어요. 아버지가 증명하셨으니까요.”

    랑랑은 제 아버지의 목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도종은 아진의 마음이 걱정되는 듯 한 팔로 랑랑을 안은 채 다른 손으로 아진의 팔을 툭 치고 웃었다.

    “너도 신경 쓰지 마. 인석아.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뭣 하러 신경 써?”

    “……예. 형님.”

    아진은 린린이 곤오철을 허공섭물로 들어 올려 주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했다.

    처음에는 린린이 쓸데없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

    그것은 꼭 나쁜 것만도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여우가 호랑이의 힘을 탐하지 않아도 호랑이가 여우의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도종은 아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두 사람에게 단단히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내 노력을 헛되게 하는 일이야. 그거야말로 나를 우습게 여기는 일이라는 거. 너희라면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종이 랑랑을 내려 주었다.

    “어머니에게 가 있거라.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제부터는 어머니 손을 놓으면 안 된다.”

    “네. 아버지.”

    랑랑은 우렁차게 말하고 제 어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도종은 자신을 축하해 주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린린이 아진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내가 잘못한 건가?”

    “모르겠다. 잘한 것 같기도 한데 이제부터 사람들이 형님에게 기대를 많이 할 거야.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대치가 높아지기도 했고.”

    린린도 그냥 생각 없이 그런 건 아닐 거라며 아진이 말했다.

    그러다 다시 린린을 보고, 린린이라면 생각 없이 그랬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어떤 놈들이 감히 그런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찾아내서 아혈을 짚어 버리고 한 달 동안 아무 말도 못 하게 할까 보다!”

    린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화를 냈는데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종은 그 자리에서 충분히 빛났지만 산본의가의 둘째와 셋째는 압도적으로 빛나는 존재들이었다.

    한 집안에 시대의 영웅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태어났다.

    아진의 비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알지 못하지만 알려진 것만 해도 작금의 무림에서 경쟁자를 찾아보기 힘들 고수였고 린린은 천마의 환생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 비해 도종의 존재감이 옅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자기들이 나설 일인가 말이다.

    아진은 화가 나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자기만 모르고 있었을 뿐 도종은 지금까지 그런 말을 듣고 그런 시선을 수없이 느껴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안 되겠네. 이렇게 된 이상 그 방법밖에 없어.”

    린린이 뭔가 단단히 마음을 굳힌 것처럼 말했다.

    제발 린린은 그러지 않았으면 싶었다.

    지금껏 린린이 결심해서 잘된 일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온갖 실패담만 주르륵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것이다.

    “린린. 웬만하면 너는.”

    “오라버니가 큰오라버니에게 특훈을 시켜. 어차피 오라버니가 작정만 하면 할 수 있잖아. 이남 오라버니도, 하월 공자도 오라버니가 만들었잖아. 큰오라버니라고 못할 게 뭐가 있어?”

    “…….”

    그 방법이라는 게…… 그 방법이었구나.

    아진은 멍하니 린린을 보다가 검지를 들어 린린을 딱 가리켰다.

    “맞았어. 바로 그거야. 역시 내 동생이네. 역시 한 방이 있어. 됐어. 그거야!”

    그래놓고 아진은 바람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그 한순간의 일로 인해 비무 대회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게 될 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마선은 곤오철을 들지 못했다.

    곤오철을 든다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진 힘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했다.

    도종처럼 자기가 원치 않게 곤오철을 들어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선처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곤오철을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선과 같은 이유로 곤오철을 들어 올리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곤오철을 들어 올린 사람에게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고 도박꾼들은 그들의 우승을 높게 점쳤다.

    곤오철 앞에 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가늠해 보기 위해 긴장된 모습으로 서서 전력을 다해 곤오철을 들어 올리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강호의 오랜 선배들도 가슴에서 무언가가 뭉클 솟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사형. 사형은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규모의 문파에서 사형제들이 오밀조밀 모여 와서 서로를 응원해 주는 모습은 사람들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게 했다.

    은자 다섯 냥이라는 참가비는 대규모 문파에는 거저나 마찬가지로 전혀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영세한 문파에는 그렇지 않았다.

    참가비를 마련하는 것만 해도 벅차서 식사는 대충 건너뛰며 대회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다.

    응원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전부 곤오철을 들지 못했다.

    그러나 곤오철을 든 사람이 워낙 적다 보니 실망도 오래 하지 않은 채 그들은 대진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은 순서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식사를 하러 객잔에 다녀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예산이 없었기에 속을 달래며 다른 이들의 비무에 열중했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무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좋기는 했지만 허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소리 없이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가 향화문의 문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들 중에 아무도 없었다.

    “혹시 하북의 열호문에서 오신 분들이 아닌지요.”

    “……저희 사문을 아시는지요?”

    “맞군요. 여러분의 무복을 보고 제 생각이 맞지 않을까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제 사문이 열호문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문을 밝히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사문까지 밝히지는 못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열호문의 분들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은혜를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의 뜻을 이룰 길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뵙게 되다니 이런 우연이 다 있는지요.”

    열호문의 사형제들은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서도 어느새 그를 따라 객잔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사부님의 뜻은 끝까지 따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열호문으로 돌아가실 때까지의 숙식비는 제가 모두 계산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한 끼 대접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입니다.”

    “아닙니다. 저에게 사부님의 뜻을 어기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는 객잔 주인에게 가서 열호문 사람들을 가리키고 전표를 내주었다.

    전표에는 그들이 그곳에 머무는 동안의 숙식비에 해당하는 액수가 적혀 있었다.

    “일이 있어서 함께 식사를 하지는 못합니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 다시 뵐 일이 있겠지요. 꼭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열호문의 사형제들은 정말 그 호의를 그냥 받아도 되는 건가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그건 너무 크게 부담을 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거듭 거절하려 했지만 향화문의 문도는 제법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의 말씀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면 더 이상은 이러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일찍 떨어져도 결선까지 보고 가십시오. 견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숙식비는 모두 계산을 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급히 객잔을 나갔다.

    열호문의 사형제들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에 요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기껏해야 소면 정도나 시킬 생각이었는데 나오는 음식들이 체력을 증진시켜 줄 만한 육류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낯선 분께 이런 은혜를 입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형.”

    “그러게 말이네. 큰 대회를 앞둔 사제들에게 먹을 것도 제대로 먹이지 못해 마음이 못내 무거웠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오늘 귀인을 만났군.”

    그들은 너무 울컥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에 한동안 젓가락을 들지도 못했다.

    그런 일은 비단 그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모는 향화문의 문도들을 부지런히 움직여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비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있는지 알아오도록 했고 그들을 위해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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