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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34화 (334/470)

제334화

334화

모른 척하려고 해서 그렇지 자신의 마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찾으려고 작정만 한다면 못 찾을 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선은 이미 그 마기가 많이 흐릿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마공의 심법을 익힌 폭천의와 달리 정파의 정순한 내공심법을 사용해 축기를 한 독고소영에게 자신의 마기를 찾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울 터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자리에서 뜻을 굳혔다.

자기가 살린 여자가 일을 벌였는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살려낸 사람으로 인해 무고한 자들이 다칠 가능성.

그것만 사라진다고 해도 두 발 편하게 쭉 뻗고 잘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인간들에게 동정을 베풀면 마선이 아니다! 다 늙어서 이게 웬…….’

그러나 마선은 육십 대 남자 정도로나 보였고 실제로 그가 먹은 나이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본의가 비무 대회 얘기를 들었을 때 마선의 기분이 오랜만에 나아졌다.

산본의가 이공자라는 사람이 무위가 아주 대단한가 보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랜만에 겨뤄 보면 즐거운 유흥거리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본의가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대인. 정말 재미있는 곳인데 말이지요.”

마부는 자기가 아는 얘기를 아낌없이 늘어놓았고 가주의 딸이 천마신교주라는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해 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아. 그것도 모르시는군요. 그분이 패월악이라는 교주의 환생이라고 하더라고요.”

“패월악의 환생이라.”

마선은 그때에야말로 놀랐다.

“잠깐. 그런데 왜 교주가 아니라 이공자가 우승자로 점쳐진다는 말인가?”

“그거야 그분이 더 강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마부는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그분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탐욕스러운 자들을 혼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분을 아주 존경하지요.”

“그래도 교주가 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가서 직접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대인?”

마부는 간절한 눈빛으로 마선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마선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마부가 가지 말자고 해도 자기가 가자고 해야 할 판이었다.

‘패월악이 지다니?’

가까이서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그도 패월악을 알고 있었다.

패월악은 그가 인정하는 마두 중 한 사람이었고 마선은 패월악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나를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서 한 번 볼 필요는 있겠군.’

“그런데 그것 말이네. 돈을 건다는 것. 거기에 대해서 잘 아나?”

“예? 내기요? 그건 동네 왈패들이나 그 지역을 맡은 흑도들이 맡아서 할 텐데 산본의가 주위에는 그런 게 없기는 하겠습니다. 둘 중에 누가 이길 것 같은지 정하게 하고 결과를 맞히면 돈을 주죠. 자기가 찍은 사람이 이기면 본전에 더해서 배당금을 받는 건데 많은 사람이 이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이기면 배당금은 적죠. 그런데 전혀 의외의 인물이 이기면 배당금이 커집니다. 일단은 맞춰야 본전도 돌려받고 배당금도 받는 거라서 틀리면 꽝이죠.”

“그렇군. 그런데 이번에는 다들 이공자의 우승을 점친다는 말이지?”

“예. 대인. 혹시 그것 때문에 가려고 하시는 건지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러면 일찍 가서 객잔을 먼저 맡아 두는 것이 어떻겠는지요. 대인? 아마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테니 길거리에서 자면서 구경을 해야 할 거라고들 합니다만.”

“그럼 그러도록 하지.”

어차피 돈을 아낄 이유는 없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돈이라면 부족할 것 없이 모아 왔고 이제는 자기가 돈을 숨겨 놓은 곳을 찾아보지 않은 지도 꽤 되어 가고 있었다.

패월악이 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찌 그런 일이 생긴다는 말인가. 어찌. 일단 가서 교주가 비무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내가 이공자라는 자를 꺾으면 되겠군. 그러면 이공자의 명성은 무너지고 교주의 명성에는 해가 없을 테니까.’

마선은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섰고 마부는 그가 상당히 급해 보인다고 생각하며 덩달아 서둘렀다.

마선은 자기가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잠깐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게 더 중요한 일이다. 그 여자는 운이 좋군. 그래도 그 일이 오래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끌벅적하던 객잔에는 어느새 고요함이 감돌고 있었다.

* * *

산본은 매일 매 순간 달라지고 있었다.

객잔이 일찍부터 찰 거라는 생각에 미리 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낼 곳이 넉넉하게 준비되어서, 늦게 도착한 사람도 여유있게 숙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찍 온 것이 아깝다고 느껴질 틈은 없었다.

거리마다 볼 것이 넘쳐나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특히나 산본의가의 비무 대회를 지켜보고 사업성이 있는 것 같으면 자기들도 비무 대회를 열어 보겠다고 생각한 무가와 문파에서는 더욱 열심히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산본의가 비무 대회가 끝난 후에 바로 이어서 비무 대회를 하면 사람들의 온갖 불만을 다 듣게 될 거라는 거였다.

일단 몇 번의 비무 대회가 연달아 열리고 이곳에서의 비무 대회는 그냥 환상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고 나면 그 후에 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산본의가의 비무 대회는 여러 면에서 상식을 초월했다.

그런데 그 비상식적인 일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벌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그것이 일상처럼 느껴졌다.

준비는 차질없이 되어 가고 있었고 비무 대회를 준비하는 무인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도종아. 이번에는 내가 우승을 할 테니까 너는 다음번에 우승하는 거로 하자.”

허우천은 도종을 볼 때마다 그런 소리를 했고 도종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형님. 죄송합니다. 웬만하면 제가 형님 부탁은 다 들어 드리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겠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기가 차서 웃어 버릴 일이었지만 그들은 진지했다.

그것은 비단 의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선 부정. 요즘 뭐가 그리 바쁜 것이냐. 짐이 세 번을 부르면 일단 두 번은 버텨 보는 것 같더구나.”

“어쩔 수가 없습니다. 폐하. 그것은 폐하가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는 것도 아니고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선 부정.”

“폐하. 소신은 폐하의 신하입니다. 그런데 소신이 우승을 못 하면 폐하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소신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아진이가 나오는데 무슨 수로 이긴다는 말이냐.”

“이번 비무 대회에는 독을 쓰는 것도 허락된다고 들었습니다.”

“…….”

이 자가 드디어 미친 것인가 하면서 바라보자 선이남이 사악하게 웃었다.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잠깐만 마비를 시킬 것입니다. 제선문주님이 저를 도와주시기로 했으니 이번 우승은 저의 것입니다.”

“제선문주라.”

그때까지만 해도 황제는 선이남이 하는 얘기가 말이 안 되는 이유를 백 개도 더 댈 수가 있었는데 제선문주라는 이름이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호오……! 재미있어지겠구나.”

“그렇습니다. 폐하. 그러니 저를 믿어 보십시오. 제선문주님이 전에 만들어 두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마비 독이 있다고 했습니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반 시진 정도가 걸리고 천천히 증상이 나타나서 아무도 자기가 움직이지 못하게 될 때까지 중독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황제는 선이남을 야단치려고 불렀다가 흥미진진해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선문주가 왜 선 부정을 돕는다는 말이냐.”

“의가 출신으로 가장 강한 사람이 저이기 때문일 겁니다. 폐하.”

선이남은 온몸에서 자랑스러움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러면 아진이의 우승에 돈을 걸면 안 되겠구나.”

“절대로 안 됩니다. 폐하. 소신이 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일 날 뻔하였구나. 황금 다섯 관은 걸 생각이었는데 그것을 번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폐하. 날릴 돈을 굳힌 것도 번 것입니다. 소신 때문에 황금 다섯 관을 버셨으니 이제 소신에게 두 관 반을 주시지요.”

황제는 이제 선이남이 이런 소리도 곧잘 한다며 웃었지만 선이남은 진지하게 한 말이었는지 왜 웃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선이남을 내보냈다.

이제 슬슬 그들도 산본으로 떠날 때가 되어 가고 있었다.

산본의가에서 준비한 상품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자기도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 뭔가 하나 정도는 준비해 가야 할 텐데 뭐가 좋을까 하는 생각에 황제는 머리가 아파 왔다.

그것 때문에 선이남을 부른 거였는데 이상한 소리만 해 대서 정작 하려고 했던 말은 잊어버렸다.

“하월을 부르라.”

황제가 밖에 대고 말하자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궁 태감은 퇴궁한 지 한 시진이 넘었사옵니다. 폐하.”

“…….”

황제는 기가 막혀 뭔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화를 내느니 그냥 비무 대회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다들 비무 대회 준비를 한다고 눈치를 보며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여기저기에 구멍이 송송 생겨나고 있었다.

심지어 향화문의 문도들마저도 그러고 있는 참이었으니 더 할 말은 없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비무 대회 전날 밤, 산본의가의 가주 서종욱은 잠결에 옆을 더듬어 보았다가 자리가 빈 것을 알고 눈을 떴다.

그러자 희미한 불빛 아래에 가모가 앉아서 깊은 고심을 하고 있었다.

“왜 그리 고민이 깊은 것이오. 부인.”

그러자 가모가 그를 보고 활짝 웃었다.

“상품으로 뭘 줄지 생각하느라 그랬습니다.”

“줄 것이 부족하지 않을 텐데 왜 고민을 한다는 말이오. 본가에 있는 영약이며 환단도 좋아할 것이오. 철방에서 만든 검도 아주 좋아할 것이고 말이오.”

“그것도 좋겠지만 저는 산본의가 비무 대회가 그들에게 희망이자 보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상공.”

“그렇게 될 거요. 희망이 되고 보상이 되지 않겠소?”

그는 아내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말했다.

“제가 말한 것은…… 아닙니다. 상공. 어서 주무시지요. 아침부터 바쁠 것입니다.”

가주는 말을 마저 듣고 싶기도 했지만 졸린 것도 사실이었다.

* * *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날이 밝았다.

산본에는 이미 비무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현판이 걸린 아래에 접수처가 만들어졌고 그 옆에 곤오철이 있었다.

그것은 섬에서 가져온 크기의 십 분 지 일로 잘려 있었다.

그것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예선을 따로 볼 필요가 없이 바로 본선으로 직행할 수가 있었고 접수를 마친 사람은 먼저 곤오철을 들어 보게 되어 있었다.

곤오철을 든 사람은 예선조에 편성되지 않았고 당연히 대진표도 받지 않았다.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는 편안히 다른 사람의 비무를 관람하면 되는 거였다.

접수를 마친 사람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곤오철 앞에 다가갔고 곤오철 앞으로 도전자가 나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한 채 구경했다.

아예 그곳에서 자리를 잡은 채 도전자들이 곤오철을 집어 드는 모습만 구경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아침 일찍부터 접수가 시작되고 대진표가 작성되고 예선이 이미 시작됐지만 그때까지 곤오철을 든 사람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십 분 지 일인데도 드는 사람이 없구나.”

소청의 손을 잡고 구경하던 북리의천이 말하자 소청은 정말 그렇다면서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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