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333화 (333/470)

제333화

333화

“너도 나를 속였다는 거냐?”

하월이 소청에게 말하자 소청이 해맑게 웃었다.

“네. 재밌잖아요.”

재미로 한 대만 콱 때려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월은 이를 갈았다.

이제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것 같으니 위도만 챙겨서 빨리 가자고 서두르던 린린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오라버니도 세 개는 안 되지?”

“세 개는 안 되지.”

아진이 린린의 어깨에 팔을 척 걸치고 빨리 서두르자고 말했다.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야장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주님. 아진 공자님이 어제 세 개를 같이 옮겨 주시지 않았습니까? 한 번에 들고 날라 주셨잖습니까. 제가 직접 봤는데요?”

그러자 방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얘기를 했으면 아마 섬에 가는 건 한참 뒤로 미뤄졌을 거네. 다들 한 번씩 세 개를 같이 들어 보겠다고 했을 거라서 말이야.”

그들의 유난스러운 호승심을 아는 방주의 말에 야장들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참. 비무 대회에서 본선에만 올라가도 상이 다 어마어마한데 그중 하나가 곤오철 한 관이래요.”

“참가한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지겠는데? 이렇게 되면 산본의가 비무 대회라고 해서 꼭 산본의가 사람들만 참가하게 제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도 참가하게 해서 참가비로 돈 벌면 좋잖아.”

“그렇기는 해요. 전에는 명문세가들마다 비무 대회를 종종 열었잖아요. 특히 사파와 천마신교와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울 때요. 요즘은 그런 게 없어지기는 했죠.”

“가장 문제가 되는 게 그 많은 사람들을 어디에 수용하는가 하는 거였는데 이제 그 문제도 해결이 될 것 같으니 꼭 실현 불가능한 얘기이기만 하지는 않을 것 같아. 어쨌든 그건 가모님이 알아서 하실 문제고 우리는 우리 일이나 하지.”

“예. 섬에서 돌아오시면 얼마나 만들어졌냐고 철방에 가장 먼저 오실 테니까요.”

야장들은 그 모습이 상상되는 듯 즐거운 표정을 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섬에 있던 곤오철은 전부 산본의가로 옮겨졌다.

북리의천은 그중 한 덩이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끝끝내 거절했다.

그것은 비단 아진에게 미안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북리세가의 안전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진이 그 일에 대해 운을 뗐을 때 처음에 북리의천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현실적인 생각이 들면서 북리세가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북리세가에는 어느 때보다 강한 무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어딘가는 약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들을 노리고 강한 고수들이 갑자기 기습하여 빈틈을 노린다면 곤오철을 지키지 못하고 무인들만 잃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갈수록 커졌다.

그런 마음이라면 다른 귀중품은 어떻게 가지고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북리세가에는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물건은 많지 않았다.

북리세가에 있는 것은 다른 세가에도 비슷하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곤오철은, 더군다나 아진이 주겠다는 양의 곤오철은 다른 곳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결국 거절했고 산본의가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아마 그것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북리의천이 그렇게 말을 하기에 아진은 하월에게는 주겠다고 말을 하지도 않았고 하월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런데 이 많은 걸로 뭘 하려고 전부 가져가시는 겁니까? 그 섬에 아무나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하월이 말하자 린린이 뻔한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아무나 갈 수 없다는 것뿐이지 아무도 갈 수 없다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도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 중원에 몇십 명은 될걸요?”

사실 하월이 한 말은 린린이 아진에게 했던 말이고, 지금 린린이 말한 건 아진이 린린에게 한 말이지만 린린은 까맣게 잊어버린 후였다.

아진이 처음 그 섬에 갔을 때보다 내공과 무공의 수위가 높아진 사람들은 더 많았고 시간이 갈수록 섬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진다고 보는 게 옳았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영초가 있는 걸 발견했으면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월 공자는 그걸 그냥 놔둘 건가요?”

린린은 꼬투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면서 하월 놀리기에 나섰다.

“그건…… 아니죠.”

하월은 자기가 잘못 말한 것 같다고 생각했고 소청은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너는 왜 그렇게 보고 있냐?”

“사고님이 하월 공자님을 쥐잡듯이 잡는 게 재미있어서요.”

“……!”

하월은 기가 막혀서 소청을 보았다.

그런데 악의 없이 해맑게 웃는 바람에 화를 내지도 못했다.

“너는 북궁세가에서 안 태어난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된다.”

“공자도 북궁세가에서 안 태어났잖아요.”

린린의 말에 하월은 그냥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는 잠시도 정신을 차리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러자 병 주고 약 주는 것처럼 소청이 와서 하월의 손을 잡아 주었다.

“어쩔 수 없어요. 저희 사고님은 본가에 잘못한 적이 있는 사람은 정말 오래 기억하시거든요. 이제 친해졌다고 생각돼도 방심하면 안 돼요. 특히 저희 스승님을 괴롭힌 적이 있는 사람한테는 정말 오래 가죠.”

“그런 건 처음부터 알려 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구나.”

하월이 한숨을 깊이 쉬며 말했고 소청이 그런 하월을 다독여 주고 있었다.

* * *

북리의천과 하월이 돌아간 후 본격적으로 비무 대회 준비가 열렸다.

하월은 자기도 비무 대회에 참가해도 되냐고 가모에게 직접 물었고 가모는 하월이 참가할 자격이 되는 건지 한참 고민하는 것 같았다.

“부탁드립니다. 가모님. 그리고 저 정도면 충분히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왜요?”

“저는…… 저야말로 산본의가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 아닙니까? 그건 가모님도 인정하실 수밖에 없을 텐데요?”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는지 가모는 흔들렸고 결국 그 결정으로 인해 산본의가 비무 대회의 참가자는 산본의가와 그 사업장에 속한 사람으로 한정한다는 제한이 사라졌다.

그것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동안 산본의가 비무 대회에 대한 얘기를 듣고도 자격이 안 돼서 아쉬워하며 손가락만 빨고 있던 사람들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폐관수련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돌았다.

비무 대회에 무슨 폐관수련까지 한다는 건가 하면서 코웃음을 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 분위기가 달라졌다.

“저 사람들 정말 웃기지 않아. 오라버니? 자기들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나가는데?”

린린은 정말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고 아진은 그런 린린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인데? 너는 네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냐? 내가 나가는데?”

“나는 우승하려고 나가는 거 아니야. 준우승만 하면 돼. 우승이랑 준우승을 우리 가문에서 지키면 되지. 다른 건 안 중요해.”

순순히 시인하는 바람에 재미가 없어졌다.

“이번에 우리가 모르는 무공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어. 그걸 보면서 우리도 더 발전할 수 있을지 몰라.”

린린이 의젓한 소리를 했고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린린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싸움을 속으로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를 위해 믿을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두면 좋겠다고 여겼다.

* * *

산본의가 비무 대회.

각지에 그 이야기가 파다했다.

마선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객잔에서 마부와 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 마선의 신경은 온통 산본의가 비무 대회에 대해 떠들어 대는 사람들에게 쏠려 있었다.

“상품도 엄청나다고 하던데? 다 정해진 건 아닌데 그중 하나가 곤오철이래. 자그마치 한 관.”

“산본의가가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비무 대회 상품으로 곤오철 한 관이라니. 그러면 다음에 비무 대회를 여는 사람들은 부담이 되겠군.”

“그럴 수도 있겠지. 한동안 비무 대회가 여기저기서 자주 열리기는 했었는데 말이야. 그때는 구경할 것도 있고 재미가 있었는데.”

“그랬지. 나도 비무 대회가 열린다고 하면 열 일 제쳐두고 쫓아갔었지.”

“내기하려고 그런 거지?”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웃어 가며 얘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도 내기판이 벌어지겠지? 그런데 너무 압도적이라서 재미가 없을 것 같기는 해. 전부 다 산본의가 이공자님이 우승할 거라고 하겠지. 그런 건 이변이 생겨야 재미가 있는데.”

“그렇지. 만약에 이공자님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이변이 될 텐데 말이야.”

“내가 전에 하북팽가에서 열린 비무 대회에서 금자 쉰 냥을 딴 적이 있었지. 그때 예선전에서 이변이 일어났거든.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사람한테 걸 수 있냐고 했는데 사실은 나도 실수를 한 거였어. 제정신이었으면 무가 출신도 아닌 놈한테 걸 리가 없었지. 예선전에서 그렇게 큰돈을 딴 사람은 나뿐이었지.”

마선은 산본의가 비무 대회 얘기나 더 들었으면 했는데 그 이야기는 더 나오지 않을 듯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까 했는데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자 마부가 마선의 표정을 읽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대인. 산본의가 비무 대회에 가 보시겠습니까? 저는 산본에는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습니다. 거기에는 온갖 소문의 진원지인 산본의가도 있고 산본무관에 산본철방도 가 볼 만 하다고 하고. 그곳의 현판들을 폐하께서 써 주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마선의 눈썹이 신기하다는 듯 꿈틀거렸다.

“예에.”

마부는 드디어 마선이 떡밥을 물었다고 생각한 듯 신이 나서 그 이야기를 했다.

마선은 자기가 이제 와서 속세의 일에 왜 관심을 두는 건가 했다.

그동안 그도 마부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으니 귀를 열어 두기만 했으면 마부가 아는 것만큼 세상 이야기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귀를 닫아 그런 소식에 어두웠다.

요새 와서 갑자기 그런 일에 관심이 생기는 것도 희한한 일이었다.

저절로 귀가 열리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 시작은 아마 폭천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곳곳에 방이 붙었다.

태자가 벌인 짓과 그들이 받은 처벌에 대해 명확히 적은 내용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황상이 죄 없는 태자를 죽였다는 유언비어가 떠도는 것과 맞물려 확고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루어진 처사 같았다.

거기에 폭천의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그림 아래에는 그가 벽력탄을 만들어 한 마을 사람들을 전부 몰살시키고 태자를 도와 반역을 도모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몰살당한 마을 사람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내용은 없었기에 마선은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어찌 그자를 살려낸 것인가. 어찌.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수많은 양민이 무고하게 죽어 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이어졌다.

마지막에 그가 살려낸 사람.

그 여자도 폭천의와 같은 일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고민을 한 끝에 그는 그 문제를 직접 자신이 매듭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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