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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31화 (331/470)
  • 제331화

    331화

    아진이 돌아온 걸 알고 처음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기도 했지만 곧 백 명도 넘을 정도의 사람들이 그 주위에 있었다.

    긴장된 가운데 소청은 검에 검강을 만들어 냈다.

    어느덧 그것은 소청의 키를 훌쩍 뛰어넘었고 거기에서 한 치가 더 커졌다.

    사람들은 검강의 위력이 미칠 반경을 생각하여 일찌감치 멀리 물러나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아진은 만에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를 대비했다.

    아무리 내공이 바닥이어도 사고가 생기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검강은 완벽하게 검로를 향해 튀어나갔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며 탄성을 자아냈을 정도였다.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하고 완벽한 검강.

    그러나 그것이 돌을 부수지는 못했다.

    “아아아…….”

    몇 사람이 안타까운 듯한 탄식을 하다가 지금 이게 아쉬워해야 할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청의 검강이 통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방주가 말한 곤오철일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모님이 비무 대회에 예선자가 너무 많이 몰릴 때를 대비해서 예선 통과 기준을 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이건 어떨까요. 스승님? 먼저 이걸 부숴 보게 하는 거예요.”

    소청이 말했지만 아진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면 본선에 오르기는커녕 전부 다 예선 통과도 못 하고 줄줄이 떨어질 거다. 아무도 이걸 부수지 못할 거야. 너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할 거고.”

    방주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맞다고 했다.

    곤오철.

    아진은 지금까지 만년한철인 줄 알았다가 새롭게 정체를 알게 된 광석을 자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공자님. 이걸 어떻게 하실 것인지요?”

    방주는 당장이라도 곤오철을 가져가서 무기를 만들어 보고 싶은 듯했다.

    “어디에 쓸지는 아직 결정된 게 없습니다.”

    “그러면 이걸로 검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보검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만들면 검을 들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별수 없이 다른 금속과 섞어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이것만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자 방주가 그 말을 기다린 것처럼 웃었다.

    “예. 공자님.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방주의 명령에 따라 야장들이 다가와서 곤오철을 옮기려고 했지만 힘이라면 남부러울 것 없는 그들도 그것을 들지 못했다.

    “이건 우리가 도와줘야겠군.”

    야장들이 애를 먹는 걸 보고 산본의가의 무인들이 나섰지만 그들 역시 땀을 뻘뻘 흘렸고 그때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만년한철이 갈려 나간다는 곤오철.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왔고 아진이라면 그것을 본가 사람들에게 조금도 아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그걸 들지 못해서 곤오철로 만든 검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모두가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력을 실어 가면서 들려고 했는데도 그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겁도 없이 나와서 도전을 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이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곤오철을 들지 못했다는 낙인이 찍히느니 그냥 시도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그걸 이용해 검을 만들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방주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아진에게 부탁했다.

    “공자님. 여기까지 가져 오셨으니 철방까지 옮겨 주시지요. 제련하면 검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법을 제가 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서는데 소청이 물었다.

    “사고님도 이걸 드셨어요?”

    “응. 들고 섬에서 나왔지.”

    소청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그럼 자기가 들어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소청은 그때까지 그것을 들어 보겠다고 나서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해 봐라. 위도 형님도 그걸 들고 섬에서 나오셨다.”

    “아아. 그럼 어렵지 않겠네요.”

    그 말이 그렇게 연결될 말은 아니었을 텐데 소청은 갑자기 자신만만해진 듯했고 정말 어렵지 않게 들어 올렸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소청이 그 정도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방주님. 철방에 가져다 두면 되죠?”

    소청은 신이 났고 아마 이제부터 한동안 철방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 두 시진쯤 지난 후에 린린과 위도가 나타났다.

    말들은 모두 지쳐 있었고 두 사람은 그 안에 있던 광석을 꺼냈다.

    그러자 바람을 일으키며 모여든 사람들이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중에는 아진도 섞여 있었다.

    아진은 곤오철에 대해 말을 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들지 못했어. 그리고 이게 만년한철이 아니래. 린린.”

    아진이 열심히 설명을 해 주는 동안 린린은 신기해하며 귀를 기울였다.

    만년한철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는 서운해했지만 아진이 곧바로 이후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어서 그 서운함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린린은 그런 광석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신기해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들지 못했으면 그걸 전부 다 가져오는 건 무리일 수도 있겠네?”

    “응. 그럴 것 같아. 스승님은 하실 수 있을 테니까 스승님이랑 소청이랑 가 볼까 하는데.”

    “역천마의도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역천마의한테도 하나만 주면 안 될까. 오라버니? 역천마의라면 그걸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주 잊고 있었지만 린린은 천마였고 이럴 때 슬쩍슬쩍 신교를 챙기곤 했다.

    “그래. 그러자. 아. 하월 공자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공자 공력으로는 아직 힘들걸?”

    “내가 수시로 공력을 때려 박아 줘서 할 수 있을걸?”

    “그럼 그렇게 해.”

    어차피 섬에는 그게 넘쳐나고 있었으니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이쪽에서는 더 좋은 일이었다.

    소식을 전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천하제일조가 기민하게 아진의 뜻을 알아차리곤 그 주위를 맴돌며 기다리고 있었고 아진이 서찰을 쓰자, 이제 자기가 나설 때라는 듯 우아하게 활강해 날아왔던 것이다.

    제일조가 영물인 것 같다고 추측만 무성했을 뿐 그동안 제일조의 진짜 실력을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급한 일로 제일조를 황궁에 보낸 이후 진가가 드러났다.

    제일조가 전력을 낸다면 아진이 극성으로 신법을 펼쳐 여섯 시진은 가야 할 거리를 반 시진이 되지 않아 주파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제일조가 금세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임무에 실패했다고 생각했고 제일조의 발목에 달아놓은 서찰통이 빈 것을 보고는 누군가에게 뺏긴 건가 했었다.

    그러다가 서찰에 적힌 대로 사람이 온 것을 보고서 제일조의 능력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는 제일조를 십분 활용했다.

    제일조도 그때부터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전보다는 상태가 좀 나아 보였다.

    제일조가 돌아올 때까지 아진은 철방을 계속 기웃거렸다.

    옆에서 그렇게 계속 들여다본다고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냥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일을 하시라고 방주가 아무리 말해도 정신을 차리면 아진 자신도 모르게 철방에 와 있었다.

    그것은 비단 아진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 다른 무인들과 심지어 소청까지도 그랬다.

    평소 같으면 자신만만하게 자기들의 일을 해냈을 야장들이었지만 무인들의 시선이 온통 자기들에게 쏠려 있자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규칙적으로 쇠를 두들겨 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할 텐데 자꾸만 삐끗했다.

    그러면 그때만 노렸다는 듯이 몇 사람이 다가왔다.

    “힘든 것 같은데 내가 해 볼까?”

    “아닙니다. 이런 건 기술이 필요합니다. 힘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호의를 제안했던 무인들은 의기소침해진 채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하염없이 검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직은 검이 만들어지는 단계라고 할 수도 없고 곤오철을 제련하는 과정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마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다들 여기에 계셨네요.”

    그들을 철방에서 흩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의가에서 딱 그 목소리뿐이었다.

    말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말을 한 사람이 가모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 소리가 들리면 이미 사람들은 슬금슬금 일어나 각자 기기묘묘한 보법을 밟아 사라졌다.

    다른 때 같으면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쯤은 정신을 차리고 기척이라도 알아차렸을 텐데 철방에만 오면, 그리고 그 곤오철을 두들기는 소리만 들으면 희한하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진아. 네가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지 않니?”

    아진도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치려 했지만 가모가 그를 딱 지명하자 더 이상 도망갈 수가 없었다.

    “아…… 하하하하. 네. 어머니…….”

    “이럴 때 폐하께서 우리에게 야산의 개간을 허락하시고 벌목까지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얼마나 다행이니. 아진아. 그런데 다른 곳과의 형평성도 있고 해서 무한정으로 우리가 벌목을 할 수는 없다고 하신 것도 알고 있지?”

    “……네?”

    그건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황제가 그렇게 말을 한 건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이유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본으로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던가.

    그 많은 사람들로 인해 산본은 나날이 경제가 발전하고 있고 의료뿐만 아니라 상업의 요충지로도 거듭나고 있었다.

    원래는 지리적인 이점이 없던 도시였지만 그런 이점이 없음에도 산본을 중심으로 주변의 지역들이 점점 커지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산본의가에서 시작하는 사업장은 전부 똘똘하게 수익을 냈다.

    산본에서 거두어들이는 세수가 얼마인데 그걸 하게 해 주면서 이렇게 야박하게 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하라고 하셨는데요?”

    “네가 돌아온 날부터 사흘간이라고 하셨단다.”

    이러면 확실한 거였다.

    무슨 기산점이 자기가 돌아온 날부터 시작된다는 건가.

    약이 올랐지만 그래도 황제가 다시 장난을 걸어 올 정도로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아 아진은 마음도 조금 놓이고 의욕도 생겼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려면 그때까지 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 말씀하세요. 어머니?”

    “지금 전해진 소식이어서.”

    “그러면…… 제가 모르고 있는 게 당연한 거네요. 어머니?”

    가모는 자상하게 웃었다.

    알았으면 지금부터 움직이면 됐지 뭘 따지냐는 듯이.

    “그럼 다른 사람도 전부 나서서 벌목을 하면 되지 않아요. 어머니?”

    “너는 두 사람만 고를 수 있다고 하시더구나.”

    황제는 아진에게 내기를 하자고 하는 것 같았고 아진은 의욕으로 가득 찼다.

    “……흑주야.”

    섬에서 나오면서 다 쓴 내공도 회복을 했겠다, 흑주까지 데리고 가면 야산은 순식간에 민둥산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기는 했다.

    사람들은 밀려들고 머물 곳은 없다 보니 조금 기이한 일이 생겨났는데 산본의가의 돌담을 따라 그 주위에 따개비처럼 기이한 판자촌이 생겨난 것이다.

    장원의 돌담을 한 면으로 삼고 판자를 이어 붙여 처마라고 부를만한 것을 만들고 거기에 거적때기로 장막을 드리웠다.

    그런데 그게 참.

    실속이 있었다.

    치안 유지에는 그만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가주가 모질지 못해서 철거하라고 말을 하지 않자 이러고 살아도 되나보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줄줄이 입주를 시작해 버렸다.

    그런데 가모가 누구인가.

    가모는 아무 대가 없이 남의 집 담장에 기생하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며 그들에게서 일정한 돈을 받았다.

    돈이라고 해 봐야 객잔에서 며칠 머무는 비용도 안 됐지만 장원 담벼락에 붙어사는 집의 수가 오십 호가 넘어가자 그것도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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