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0화
330화
“오라버니. 이거 혹시 그 만년한철 아니야?”
설마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진 역시 기대감이 생겼다.
만년한철이 길을 가다 주울 수 있는 흔한 물건이 절대 아니지만 이 섬에서라면 이런 식으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만년한철을 이걸로 감춰 놨다는 거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두 사람에게 그것은 이미 만년한철이었다.
만년한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 보겠지만 위도가 그걸 알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안에 있는 게 전부 다 만년한철이면 이건 무공 비급보다 더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겉에 적혀 있는 무공 비급은 종이에 써서 따로 보관하면 되잖아. 오라버니. 우리 이것도 전부 다 가져갈까? 가져가서 이걸로 검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거야. 아 참. 오라버니도 검을 만들어야 하잖아.”
“아. 맞다. 나 그거 정말 급한데.”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위 속에서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신비한 광석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는 정말 신기한 것투성이라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린린. 그런데 진짜 대단하지 않냐? 네 오라버니는 어쩌면 이러냐. 응? 그냥 바위를 때렸는데 만년한철이 툭 튀어나오고. 이 세계는 오라버니한테 잘해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아. 너는 그런 생각 안 들어?”
“들어.”
그렇게 대답해 주는 게 뭐가 어렵겠냐는 듯이 동냥하듯 한 마디를 툭 던져 주고 린린이 옆으로 이동했다.
그냥 부숴도 될 것 같은 바위를 찾는 듯했다.
그것은 겉에 적혀 있는 무공의 수위에 따라 정해졌는데 마침내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한 바위를 찾았는지 린린이 그 앞에 서서 간단히 공력을 불어넣고 손을 휘둘렀다.
“…….”
“…….”
결과는 참담했다.
아진이 너무 간단하게 부수는 걸 보고 자기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린린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점점 더 극심하게 밀려오는 통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겠는지 결국 제 손을 붙들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으흐으으으윽!”
그러고는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감정을 동반하지 않은, 순전히 아파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눈물 같았다.
진짜 답도 없다는 듯이 아진이 린린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왜 나서가지고는. 가만히 있으면 오라버니가 다 알아서 해 줄 텐데.”
“오라버니가 하니까 나도 당연히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야. 산본의가에 비무 대회가 필요하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그냥 보면 아는 거지.”
아진이 말했지만 린린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정말 아팠는지 고개까지 바닥에 처박고 몸을 떠는 걸 보면서 아진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린린의 손을 잡고 고쳐 주었다.
마나를 불어 넣는 동안 린린의 몸속 상황이 아진도 이해가 됐는데 뼈가 거의 가루 수준으로 부서져 버린 것 같았다.
“다시는 이러지 좀 마. 인마. 내가 창피해 죽겠다. 아효!”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울먹거리면서 유치하게 대꾸하는 모습은 그냥 딱 어린 여자앤데 이런 녀석이 천마라니.
아진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린린을 보았다.
린린의 시선은 아진의 어깨를 지나 그 뒤로 향해 있었는데 아진은 린린이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 하면서 린린을 바라보았다.
“왜?”
“오라버니가 만든 손자국이 더 깊이 들어간 것 같아서.”
“응?”
“마선구검식을 지운 장력보다 오라버니의 장력이 더 강한 것 같다고. 처음에 그걸 보고는 엄청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도 오라버니에 비하면 별 것 아니네.”
“당연하지. 그걸 이제 알았냐?”
자기도 이제 알았지만 린린의 앞에서는 무조건 먼저 뻐기고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라버니. 그러면 여기에 있는 걸 내가 일단 필사할 테니까 오라버니가 묵철을 깨.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만년한철을 옮기는 거야.”
묵철이니 만년한철이니 하는 건 전부 다 그들의 생각이었지만 일단 두 사람은 확실히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는 할까? 거리도 만만치 않은데 만년한철까지 들고 신법을 계속 펼친다는 건. 만년한철의 무게도 많이 나갈 것 같은데.”
“그래. 그렇지만 오라버니는 오라버니잖아.”
“하. 자식.”
아진이 듣고 싶은 말도 그 말이었기에 아진은 배시시 웃었다.
기가 막혔지만 결국 린린도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가만히 보면 산본의가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건 결국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인정과 격려였다.
잘한다, 잘한다 해 주면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하는 게 바로 이들이었다.
그들이 위도의 존재감을 까맣게 잊고 있을 때 그가 다가왔다.
“큰일 났어. 내가 약초를 너무 많이 뜯은 것 같아. 이걸 어떻게 다 가져가지? 너무 무거울 것 같은데?”
그러면서 위도는 자기가 캐놓은 약초를 보여 주었고 린린과 아진은 그를 보고 자애로운 웃음을 지어 주었다.
“형님. 제가 형님 짐 날라 드릴 테니까 형님도 제 짐 좀 날라 주세요.”
“당연하지. 그런데 너도 약초를 캤어. 아진아?”
“약초는 아니고요. 제 짐은 별로 안 무거울 거예요.”
“무거워도 돼.”
그때만 해도 위도는 만년한철의 무게와 그 개수가 얼마나 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무게를 알지 못한 것은 아진과 린린도 마찬가지였다.
위도는 그 말만 마치고 다시 약초를 캐러 갔고 너구리 몰이도 열심히 했다.
너구리들 머리에 달린 꽃잎을 따다 주면 제선문주가 기가 막힌 약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조금도 쉴 틈이 없는 것 같았다.
“오라버니. 우선은 그냥 하나만 가져가 볼까? 너무 욕심부리는 것 같기도 해.”
린린이 말했지만 아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왜? 여기에 놔뒀다가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어쩌려고?”
“그건 그런데 이렇게 많은 만년한철이 한 번에 풀린다고 생각해봐.”
“그런데 그게 왜?”
린린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아진에게 그것은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내가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내가 원할 때까지 계속 보면 좋겠어. 사고님만 해도 그래. 사고님이 돌아오셔서 얼마나 좋아? 그런데 전에는 우리가 약해서 사고님을 잃었잖아. 잃었다가 다시 찾는 것보다는 잃지 않는 게 좋잖아. 그러려면 더 강해지는 게 좋고. 우리 사람들이 만년한철로 무장해서 강해지면 좋잖아.”
“그래…….”
린린도 더 이상은 반대 없이 부지런히 아진을 도왔다.
* * *
산본의가를 지키던 사람들은 기이한 광경을 목도했다.
“이상한 게 날아와요!!”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깜짝 놀라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가 본 사람들은 하늘에서 정말 희한한 게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밑에 아진을 깔아놓고 그 위에 길쭉한 검은 떡을 올려놓으면 그런 모양이겠다 싶은 모습이 보였는데 그게 뭔지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신기해하며 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진의 몸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착지를 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엄청난 무게에 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는데 결국 아진은 산본의가에 도착하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우리 아진 공자님 아니에요?”
사람들은 일제히 경공을 펼쳐 아진에게 달려갔다.
“아이고. 죽겠다…….”
아진은 그대로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워 하늘을 보고 기진맥진했다.
“스승님. 뭐 하세요?”
소청이 그 옆으로 와서 쪼그려 앉은 채 묻자 랑랑도 그 옆에 앉아 아진을 바라보았다.
“숙부님. 졸리세요? 그래도 밖에서 자면 입 돌아가요.”
아진은 랑랑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었다.
“공자님. 이게…… 이게 뭡니까? 이거 혹시……!”
그렇게 말한 사람은 산본철방의 방주였다.
섬에서 만년한철로 추정되는 광석을 발견한 이후 아진이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
그리고 가장 듣고 싶었던 말.
“방주님. 이게 뭐인 것 같습니까?”
방주도 만년한철을 직접 본 적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진이 물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방주라면 만년한철의 특징은 알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곤오철이 아닙니까?”
“곤오…… 철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을 듣고 아진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세 사람이 간신히 섬에서 그 돌을 하나씩 짊어지고 나와서 계속 그걸 지고 신법을 펼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하에 마차를 사서 돌을 싣고 끌고 왔는데 말 여섯 마리가 그것을 겨우 끌었다.
갈수록 그게 만년한철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아진은 빨리 그걸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산본이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그중 하나만 가지고 다시 신법을 펼쳐 왔던 것이다.
그런데 곤오철이라니.
곤오철이라니…….
일단 곤오철이 뭔지는 모르지만 만년한철은 아니지 않은가.
아진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게 뭔데요. 방주님?”
왠지 천하제일조와 비슷해 보일 정도로 눈이 풀려 버린 아진을 대신해서 소청이 묻자 방주가 그 돌을 만지며 감격을 금하지 못한 채 말했다.
“곤오철을 모르느냐. 소청아. 만년한철로 만든 숫돌에 갈면 만년한철이 갈려 나간다고 하는 게 바로 곤오철이다.”
“……예?”
대답은 아진에게 먼저 나왔다.
가만.
만년한철에 갈았는데 만년한철이 갈려 나가?
그럼 곤오철이 더 강하다는 말인데?
이런 사기 돌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아진은 방주의 앞에 바짝 다가가서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해 보라고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만년한철은 본 적이 있어도 곤오철은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걸 도대체 어디에서 가져오셨습니까? 아니. 다른 것도 다른 거지만 이렇게 커다란 형태로 가져오시다니. 공자님. 공자님은 대체……!”
절망으로 가득 찼던 아진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으흐흐…… 으흐흐흐흐흐……!!”
그 시점에 웃음이 왜 그렇게 비열하게 나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실 웃을 힘도 없기는 했다.
그동안 내공이라는 내공은 거의 다 긁어 쓰고 쉬지도 못한 채 왔으니 아직 그 정도로 힘이 남아 있는 것도 장한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주님은 본 적도 없는 돌이 곤오철이라는 걸 어떻게 아세요?”
갑자기 랑랑이 물었다.
응……?
랑랑의 호기심이 그 순간에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불안해졌던 것이다.
방주가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면 밀려 나갔던 좌절이 다시 밀려올 것 같았다.
그러나 방주는 자신만만했다.
“랑랑아. 이게 곤오철이라는 것에 내 모든 걸 걸 수 있다. 그건 지금 곤오철이 나에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곤오철이라고.”
“…….”
잔뜩 기대하며 이유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그러자 소청이 갑자기 검을 빼 들었다.
“이게 곤오철이면 제가 검으로 부술 수 없겠네요?”
“그래. 당연하다. 소청이 너의 검강이라고 해도 이건 절대로 부술 수 없을 거다.”
아니. 왜 이 사람들이 남의 귀한 돌을 가지고 자존심 대결을 하려고 하는 걸까.
아진은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게 만년한철이나 곤오철이라면 정말 소청의 검강에 부서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돌을 덮고 있던 묵철은 아진의 손에 자국이 나고 부서졌지만 이것은 그러지 않았기에 소청도 부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