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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27화 (327/470)

제327화

327화

“게다가 우리 의원들은 네 덕에 단전도 만들었고 네가 준 영약으로 내공도 넉넉하게 있단다. 무인들이 정한 기준으로 일류를 상회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 근성이라는 면에서 우리 의원들을 따라올 자가 별로 없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가주가 웃으며 말하는 동안 아진은 무인들을 멍하니 돌아보았고 그들도 크게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산본의가 무인들이 하는 말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갈수록 자기들이 할 일이 없어지는데 그건 의원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서라고 했다.

문제를 일으키려는 사람은 수시로 나타났지만 일이 생겼다는 말에 상황을 정리하려고 가 보면 이미 의원들이 진상을 제압해 놓고 묵묵히 다른 환자의 진료를 이어 가는 일이 많다고 했다.

산본의가가 명성이 대단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한 번 행패를 부리고 돈을 뜯어 볼까 했던 사람들이 의원의 무위가 자기들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고 내빼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하더니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그들의 진면목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이걸 의원 대 무인의 대결로 해도 좋을 것 같다.”

가주가 그렇게까지 말을 했을 때는 모두 기함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을 잠깐 놀라게 할 정도의 실력은 될지 몰라도 어떻게 의원들이 무인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겠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원들은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쐐기를 박듯 가주가 말했다.

“그러면 나도 참가를 해야 하겠구나.”

“……예?”

어디서 나타났는지 제선문주까지 나타났을 때 아진의 얼굴색은 제대로 변했다.

아진 자신이 북리의천을 만나러 북리세가에 갔을 때 제선문의 정진환이 북리의천과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게 떠올라서였다.

‘제선문의 살수……! 그렇지.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 당시만 해도 제선문의 살수는 상당한 명성을 날리고 있었는데 그 살수들을 혹독한 수련을 통해 키워낸 사람이 바로 제선문주였다.

제선문의 살수들이 제선문주를 얼마나 두려워했었는지, 그들은 살아남아서 그에게 고통을 겪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까지 생각했다.

그 제선문주가 지금 눈앞에 서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

처음에는 의원들이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 말에 제대로 대꾸도 하려고 하지 않던 사람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자기들이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을 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살인 병기가 될 수 있는지 그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이럴 것이 아니다. 도종아. 의원들을 모아라. 작전을 세우자. 부인. 아직 비무 대회의 날짜는 정하지 마시오. 그건 우리가 정해서 알려 주겠소. 수술이 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시기는 피해야 해서 말이오.”

가주가 말하자 가모가 웃었다.

“상공. 일단 이 대회를 주최하기로 한 이상 저는 공정해야 합니다. 날짜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요. 수술해야 할 사람의 치료는 아진이에게 맡기세요. 그러면 그것 때문에 시간이 밀릴 이유는 없을 거예요.”

가모가 온화하게 말하자 가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 말처럼 명료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말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지금부터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비무 대회를 진행해 가겠다는 가모의 의지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가모님은 언제쯤으로 생각하시는데요?”

벽예월이 덩달아 바빠진 얼굴로 묻자 가모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산본에 오는 손님들을 맞아들이려면 숙박 시설을 임시로라도 갖춰야 할 거예요. 기껏 손님을 초대해 놓고 그분들을 길에서 주무시게 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도 산본에는 객잔이 많지만 그런 상황에 대비하기에는 어림도 없어요.”

벽예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테니 숙소가 아주 훌륭하기를 바라지는 않으실 테고 어느 정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비무 대회를 개최했던 분들은 어떤 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가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임시 숙박 시설이 마련되는 때에 맞춰 비무 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대략 석 달 후면 될 것 같은데. 그때면 날도 풀릴 거고 곳곳에서 산본으로 오는 사람들이 노숙을 하기에도 좋을 거예요.”

언제 그런 생각까지 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중 귀한 손님들은 비무 대회를 개최하는 세가 내에 머물게 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머님.”

북리소은이 말하자 가모가 그건 어렵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본가는 세가가 아니라 의가라 그건 어려울 것 같긴 하구나.”

북리소은도 곧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의 가족이 사는 내원과 무인들이 기거하는 처소 외에는 환자를 맞이해 치료하는 장소로 최적화되어 있어서 귀빈들을 그곳에 맞이하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그 장소는 비무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일부 환자의 치료를 위해 계속 개방되기는 해야 할 터였다.

“참가비는 은자 다섯 냥 정도로 하면 되겠지요? 입장료는 예선, 본선, 결선에 따라 나누고 예선부터 결선까지 모든 경기를 보려면 금자 다섯 냥.”

가모의 입에서 그런 말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충분히 놀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비무 대회의 승자를 궁금해하고 있을 때 가모는 홀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 세상에.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내는 입장료를 빼고 참가비만 해도 얼마야? 그런데 가모님. 저희한테도 참가비를 받으실 거예요? 저희 때문에 사람들이 오는 건데요? 저희한테는 돈을 주셔야죠. 사람들이 저희를 보려고 오는 걸 텐데 말입니다.”

하명준은 영웅들의 선상에 자기를 슬쩍 끼워 놓고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가모가 이미 생각해 놓은 듯이 대답했다.

“참가비의 대부분은 부상을 준비하는데 들어갈 거예요. 정말 대단한 것들을 많이 준비할 테니까 기대하세요. 아. 아진아. 폐하께 말씀드려서 황궁 비고에 있는 무공 비급 몇 개를 후원해 주실 수 없겠는지 말씀드려보면 어떻겠니?”

“아이고. 어머니.”

그러나 난색을 표하는 사람은 아진뿐이었고 다들 황홀함에 미쳐 버린 듯했다.

“가모님. 역시 가모님이십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모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아무래도 아진은 이 일을 피해갈 방법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가모님. 부상은 어떤 것들로 생각하십니까? 그걸 알면 참가할지 말지 마음을 정하는 게 쉬울 것 같습니다.”

위도 형.

형은 왜 또?

평소에는 세상의 물질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던 위도가 그러고 나오자 희한해서 아진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그 일로 떠들썩해서 모두가 그 얘기를 나누느라 정작 린린이 산본의가에 도착했을 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린린은 평소에 있어야 할 곳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무슨 일이 난 건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갑자기 비무 대회 얘기로 후끈한 것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아. 린린 왔냐? 어서 와. 고생 많았다.”

도종이 손을 흔들자 린린도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아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역시 아진이 가장 보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린린은 전혀 다른 이유로 그런 거였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린린은 어째 자기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것 같고 눈빛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 잠깐 나 좀 봐.”

“린린. 안 그래도 오늘까지 안 오면 내가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고생했다. 황성의 일은 전부 다 잘 해결됐어. 너도 얘기 들었지?”

“응. 그런데 중요한 게 그게 아니야. 큰일 났어.”

“큰일? 다 해결됐다니까?”

“아니.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그럼 뭐? 신교에 또 일이 생겼어? 또 반역이야? 이번에는 또 누군데?”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런 거면 차라리 낫지.”

그러면서 린린은 자기가 본 일을 모두 말해 주었다.

얘기를 할 때까지는 계속 혼자서 이상한 소리만 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역천마의가 벽력탄을 터뜨렸더니 동굴 벽이 터져나갔고 그 뒤에서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났다는 거야?”

“응.”

“거기가 어떻게 생겼는데? 건축물이나 사람들의 생김새나 입고 있는 옷 같은 걸 봤어?”

“……아니?”

“그럼 뭘 봤는데?”

“…….”

제대로 본 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것도 신기한 일이기는 했다.

평소라면 침착하게 그것들을 먼저 확인했을 텐데 그때는 빨리 그곳을 폐쇄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린린은 그곳이 계속 열려 있으면 누군가 그곳을 통해 들어와서 아진을 데려가 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곳의 대기나 빛도 더 이상 동굴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했고 폐쇄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

린린은 생각할수록 자신의 대처가 정말 잘못된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래. 린린? 무슨 일인데?”

“아니야. 그런데 그때는…….”

“뭐? 똑바로 말해 봐.”

린린답지 않게 우물우물거리기만 하는 걸 보며 답답해서 따지자 린린은 결국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말했다.

“오라버니를 잡아가려고 만들어낸 구멍처럼 느껴졌거든.”

“아아…….”

아진은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걸까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거기에 가 보고 싶어?”

“응? 아. 동굴?”

“응. 그런데 지금 가 본다고 해도 볼 수는 없을 거야. 내가 그 동굴을 완전히 부숴 놨거든.”

“……그럼 왜 물어 봤냐?”

그러면서도 아진은 할 말을 잃은 채 경이롭다는 듯이 린린을 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걸 보고 걱정이 됐다고 해도 동굴의 입구를 막는 정도로 멈췄을 텐데 린린은 그런 것도 없었다.

동굴에 그런 구멍이 생겨난 게 싫다고 그냥 동굴을 부숴버리다니.

“그런데 희한하기는 하네.”

“오라버니. 정말로 오라버니를 데려가려고 누군가 그걸 만든 걸까?”

“누가 그러겠어? 그럴 사람은 없을걸?”

“왜? 오라버니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어도 오라버니가 그곳에서 가장 강했다며. 그러니까 오라버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모두가 혈겁을 당할 것 같은 위기가 닥친 건지도 몰라. 그리고 오라버니라면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생각났다면. 그곳에도 역천마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안 그래?”

린린은 진지하게 검미를 좁힌 채 자신의 추리를 해 나갔다.

말을 듣는 아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채였다.

“와. 진짜 너는 어쩌면 그러냐?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지 그런 생각은 안 하냐?”

“그거 전부 오라버니가 해 준 얘긴데?”

“…….”

아진은 자기가 린린에게 무슨 말을 하겠나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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