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326화 (326/470)

제326화

326화

요란한 굉음과 함께 동굴이 주저앉았다.

단순히 어느 곳이 부서져 나가고 끝난 것이 아니라 우르르 무너져내린 동굴을 보며 린린은 동굴과 연결되었던 곳도 함께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 몇 번이나 더 검을 휘둘렀고 나중에는 그곳에 동굴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도 힘들어질 정도가 되었다.

“…….”

역천마의는 린린이 왜 그렇게까지 한 건지는 알지 못한 채, 동굴 벽이 무너지면서 나타났던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의문을 품었다.

“주군. 그게 뭐였을까요?”

“…….”

린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린린 스스로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돌아가자.”

“예. 주군.”

린린은 역천마의와 함께 걸음을 옮기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진을 설치해. 독도 뿌리고. 아무것도 이 주위에 오지 못하도록 만들어라. 역천마의. 우연히라도 이곳에 올 수 없게 해.”

“예. 주군.”

역천마의는 린린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도록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간 안에 만들어 두었다.

진법의 설치가 끝나고 나자 무너진 동굴의 흔적 대신 온통 푸르기만 한 숲이 드러났다.

거짓 환상이 약속해 주는 평화.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면서도 린린은 한동안 그곳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야겠어. 오라버니를 만나 봐야겠어.”

“예. 지존.”

“지금까지 만든 벽력탄은 마찬가지 방법으로 보관해. 아무도 손댈 수 없도록.”

“예. 지존. 그러면 그걸 좀 더 만들어 둘까요?”

린린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선은 기다려. 일단은 오라버니랑 얘기를 해 보고.”

벽력탄이 있다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상대방에게 넘어간다면 그것만큼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도 없었다.

역천마의는 린린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한 후 그녀를 뒤따랐다.

어느새 린린은 달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닥을 박차고 높이 떠올랐다.

허공을 밟으며 순식간에 멀어지는 린린의 모습을 보면서 역천마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던 주군의 모습에 걱정이 가득 차올랐던 것이다.

* * *

재회의 기쁨을 생각하면 사람이 떨어져 지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순간의 기쁨과 감격은 상당했다.

아진이 돌아온 것을 알고도 같이 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 감격은 한참 지속되었다.

“스승님. 사고님. 감사합니다.”

아진은 두 가문의 핵심 전력을 이끌고 와서 든든하게 의가를 지켜준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고 두 사람은 흐뭇해하며 아진을 바라보았다.

“제자를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더구나. 아진이 네가 우리를 계속 필요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도 아진이 너에게 계속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말이다.”

북리의천이 말하자 독고소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진아.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겠지. 그리고 역사의 광풍에 휘말렸을 거고 말이야. 그런데 너 때문에 우리가 중추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잖아. 그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아진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사람들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고 아진은 누구보다 생생하게 현장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하월이 동창 제독의 명을 받고 황상을 시해했을 때는 내공을 회복하느라 한참 동안 흑주와 함께 발이 묶여 있었기에 모두 그 부분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아진의 마나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진아. 앞으로는 마나를 사용해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이렇게까지 회복이 오래 걸린 적은 없었지 않으냐. 나는 이게 너에게 어떤 경고 같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리의천은 그렇지 않아도 거기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았다.

경고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좀 더 진지한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너에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 네가 그 사람들을 다시 살려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살려 주기는 했지만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너에게 생각하도록 한 게 아닌가 해서 말이다. 네가 사용하는 힘은 세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

듣고 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앞으로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황성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더 늦어졌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사람들은 벽력탄에 대해 더 듣고 싶어 했고 아진은 자기가 본 것을 상세히 말해 주었다.

“그런 걸 실제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는 더 엄하게 금지가 되겠구나.”

가주 서종욱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고 아진도 동의했다.

“아 참. 어머니.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오자마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잊어버렸네요.”

아진은 산본의가 비무 대회에 대한 얘기를 꺼냈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반색했다.

“그거 정말 괜찮은 생각인 것 같구나. 그동안 앞만 보면서 줄기차게 달려왔으니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산본의가 비무 대회라니. 거기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만 해도 엄청날 것 같은데?”

가주가 말하자 도종은 그 옆에서 산본의가에 속한 조직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폐하의 부름을 받고 임관한 분들도 참가하시는 거야? 아. 아니다. 물어 볼 것도 없겠네.”

도종이 묻다가 고개를 저었다.

먼저 그것을 제안한 사람이 말코였으니 참가 의향을 일부러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아마 이남 형님이랑 이천 형님도 참가한다고 할걸요? 그날은 아마 황제 폐하께 허락을 받고 올 거예요.”

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비무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산본의가의 현재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도 오고 싶을 터였다.

그곳에서, 그 중심에 서서, 자기들이 여전히 그 속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의 가슴 벅찬 느낌을 함께 나누고 싶으리라.

그러자 선화 부인과 북리소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간단한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요. 참가한다고 하는 사람이 수백 명은 금방 넘어갈 것 같은데요? 예선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구경꾼이 수천 명이 모이는 건 별것도 아닐 것 같아요. 아니지.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의맹의 영웅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보세요. 저라면 짐 싸 들고 갈 거예요.”

선화 부인이 말하자 북리소은이 벽예월을 바라보았다.

“벽 소저. 여기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전부 다 수용할 정도로 객잔이 넉넉할까요?”

벽예월은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받고 긴장한 듯했다.

언제나 상상을 초월한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규모가 한 단계 더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정말 수만 명이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지요?”

벽예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북리소은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수만 명은 북리소은 자신이 보장할 수 있었다.

당장 천마신교에서 올 사람들, 강호에서 올 사람들, 황성에서 올 사람들만 해도 그 수가 수천을 간단히 넘을 것 같은데 직접 무림에 몸을 담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구경하고 싶어 하는 이들까지 합친다면…….

“무림맹이 전성기였을 때는 이런 비무 대회가 한 번씩 열리면 세가마다 장원을 하나 통째로 빌리거나 객잔을 여러 층 빌려서 사용했었는데.”

북리소은이 말하자 그런 특혜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일부에게 그런 편의를 제공하다 보면 다른 사람은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텐데 그것은 함께 축제를 즐기자는 취지와도 맞지 않았다.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있니. 아진아?”

가모는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조용히 듣고 있더니 아진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런 비무 대회를 열면 좋겠다는 말이 나온 건데 그 말을 듣고 이미 정해진 것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부상으로 어떤 것들을 받고 싶은지 얘기가 오가고 그런 거예요.”

즉흥적으로 나온 이야기였지만 가모는 타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산본의가를 그리워하고 그 일에 기대를 품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워하고 기억해 주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녀는 그 마음에 보답을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구나. 상공은 어찌 생각하세요?”

그녀는 내내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던 가주에게 물었다.

그에게는 이제 그런 웃음이 아주 잘 어울렸고 사람들은 가주를 생각하면 쉽게 그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여유처럼 가주의 그런 웃음이 사람들의 중심을 바로잡아 주고 그들이 있는 곳이 안전하다고 믿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다른 걸 떠나서 가솔들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했으면 싶군요. 부인.”

가솔.

정말 그 많은 사람들이 가솔의 범위에 포섭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주가 그렇게 생각해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와…… 그러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아진아. 비무에 그런 제한은 두지 말자. 암기랑 독은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칙 같은 거 말이야. 알았지?”

도종은 자기도 참가할 생각이었는지 아진에게 먼저 그것을 확실히 하려고 했다.

“형님도 비무에 나가려고?”

“그럼. 당연하지.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이 형님이 숨겨 놓은 실력이 상당하다.”

도종이 말하자 하명준이 큼큼거렸다.

“도종이가 나간다고 하면 그럼 나도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도종이보다는 낫지. 산본의가에서 의원이 나가는 거라면 당연히 대표되는 사람이 나가야 하지 않겠냐. 도종아.”

“아니. 형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종이 정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고 하명준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는 듯 도종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들이 자신감을 갖는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 허우천이 끼어들었다.

“정말 그러겠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저도 나서야 하잖아요. 하 의원님이 나가서 상을 탈 수 있으면 저는 당연히 탈 텐데. 하 의원님이 상을 타면 얼마나 아깝겠어요? 나가기만 했으면 저 상은 내 거라는 생각에 말이에요.”

도종은 아예 경쟁 상대도 아니라는 듯이 허우천이 말했고 이제는 하명준이 발끈했다.

“아니. 형님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들은 조곤조곤하게 학자적인 태도로 얘기를 했다.

싸움 실력도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정하려는 것 같았다.

무인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그저 도토리 키재기처럼 보여서 재미있었는데 가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진에게 미리 경고했다.

“아진아. 우리 의원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그렇다만 사람을 살리는 법에 능통한 의원들처럼 사람을 죽이는 법에 능통한 이도 드물다. 너만 해도 생각해 보거라. 이 애비에게 배울 때, 이곳은 잘못 다루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배운 곳이 얼마나 많더냐.”

“…….”

아진은 정신이 제대로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