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1화
321화
형장으로 엉덩이를 내리치는 동안 살점이 튀고 피가 솟구쳤지만 내각대학사는 신음 하나 토하지 않았다.
“더욱 세게 때려라!!”
연석영은 화가 북받쳐서 소리를 질렀고 관원들은 내각대학사의 엉덩이며 허벅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때렸다.
처음에 정해진 육십 대를 지나가 연석영은 성에 차지 않은 듯 백 대로 올리라 했고 관원들은 내각대학사가 그 정도의 형벌을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연석영의 눈치를 살폈다.
“내 말이 들리지 않으냐!!”
연석영이 사납게 소리치자 내각대학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연 대인의 말을 들어 주도록 하시오. 그대들에게는 힘이 없질 않소. 누가 그대들을 원망하고 욕할 수가 있겠소. 사람의 목숨은 모두가 귀한 것이오. 그러니 그대들의 목숨을 귀히 여기고 아끼도록 하시오.”
작은 소리였지만 의지가 묻어나왔다.
관원들은 그런 내각대학사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누구 하나 다시 형장을 선뜻 드는 이가 없었고 연석영은 마침내 광분한 듯 그곳으로 달려가 자기 손으로 직접 형장을 뺏어 들었다.
“드디어 미친 게로구나.”
그 소리가 들려왔을 때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못 들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 소리가 정말 생생하게 들렸는데도 그들은 자기들이 들은 소리를 부정했다.
연석영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흑암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그들의 몸은 어디서건 튀어나왔다.
바위에서건, 나무에서건.
위에서도 떨어져 내려왔고 바닥에서 솟구쳐오른 이도 있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바닥에 숨어 있다가 솟구쳐오른 자는 왜 그런 건지 이해가 잘 안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여 있던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저, 저놈들을 잡아라! 감히 지엄한 황궁에……!”
연석영은 말을 더 잇지도 못했다.
무서웠던 것이다.
그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참 대조적으로 보였다.
몸이 터져나가도록 형장에 맞으면서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던 내각대학사에 비해 연석영의 모습은 지극히 초라해 보였다.
그것이 지나간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태자가 황위에 오른다면 새로운 시대는 연석영과 같은 자들이 다스리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울분을 느꼈다.
흑암대는 섬전처럼 움직여 내각대학사를 구했다.
“대인은 무섭지도 않으신가 봅니다.”
내각대학사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무사했구려. 선 부정. 모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는데 내가 어찌 무섭겠소. 내 동료가 이렇게 많은데 말이오.”
복면을 한 선이남이 웃었다.
“우선은 저와 함께 가시지요.”
선이남이 내각대학사의 의복을 단정히 해 주고 그를 안아 들자 내각대학사는 고통에 찬 신음을 참기 위해 이를 꽉 다물었다.
그러다가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대인 조금 서운합니다. 저 선 부정입니다.”
그의 표정을 알고 왜 그런 건지 알았다는 듯 선이남이 너스레를 떨었다.
“미안하오. 사과할 수밖에 없구려.”
이미 점혈을 마쳤다는 것을 깨달은 내각대학사가 웃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잠시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진 사람들은 그들뿐이었고 흑암대는 그곳에 남아서 연석영의 잔당에게 검을 휘둘렀다.
“나를 보호하라! 나를 지키란 말이다! 나는 황후 마마의 아버지다. 나를 지키라는 말이다!!”
연석영은 말할 수 없이 추한 모습을 하고 소리쳤다.
황제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며 누가 진실하고 충성스러운 신하인지, 누가 가려져야 할 사람인지 알아내고 싶어 했지만 연석영은 척 봐도 사악한 독을 뿜어내는 뱀과 같았다.
그를 계속 놔두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죽이지 말라고 하셨지 해치지 말라고는 하시지 않았던 것 같은데.”
“죽이지 말라고 한 것도 저는 조금 헷갈립니다. 그건 다른 사람 얘기인 것 같기도 하고요.”
비룡채 출신의 두 복면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더니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아차린 채주가 고개를 저었다.
“황명을 땅에 떨어뜨릴 셈이냐. 그러고도 너희가 죄가 없다고 할 셈이냐.”
두 복면인은 왜 하필 채주가 거기에서 나타난 걸까 하면서 다른 곳으로 슬그머니 옮겨갔다.
연석영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기에게 살 기회가 생긴 것 같다고 여겼다.
그렇게 말을 했으니 죽이지도 않고 해치지도 않으려나 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연석영은 조금 전에 명령을 내리던 이가 벼락처럼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기함했다.
“무, 무슨 일인가……! 내가 누군지 모르는가!”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느냐.”
채주의 커다란 칼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처음부터 노렸다는 듯이 연석영의 가슴팍을 베고 지나갔다.
연석영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를 바라보았다.
“……!”
화려한 비단옷이 사르락 소리를 내며 베어지고 피가 흘러나왔다.
“뭘 그렇게 놀라시오. 제대로 맞았으면 피가 쿨럭쿨럭 나와야 했을 거요. 이건 그냥 장난하다가 조금 다친 거지. 뭘 이걸 가지고 정색을 하시오. 황상께서도 장난하지 말라는 말씀은 없으셨소.”
“…….”
연석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는 쉴새 없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흑암단은 그곳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고 돌아갔지만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은 수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서 조용히 퍼져나갔다.
연석영과 내각대학사가 보인 태도의 명백한 대조가 더욱 사람들의 입을 바쁘게 만들었다.
말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황제 폐하께서 아직 살아계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더욱 깊이 품었다.
* * *
황후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연석영이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더욱 그랬다.
황후는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들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구심이 계속 머리를 들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만약 황상이 살아 있는 거라면?’
그때부터는 그녀의 머리가 다시 비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럴 일이 아니었다.
태자는 나중에 자신을 구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줄지 모르니 가문을 버리는 게 나을 듯했다.
자신은 결코 원하지 않았다고.
냉정한 것 같은 황상이었지만 지난번에도 살려 주지 않았던가.
‘아니. 태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 몰라. 그 아이가 유일한 것도 아니잖아. 다른 아이들이 있지. 그 아이들이 남아 있으면 황상은 태자를 얼마든지 버릴 수 있을 거야. 왜 그자는 죽지도 않는 거야!!’
황상을 향해 감히 할 수도 없는 말을 속으로 퍼부으며 그녀는 독기를 품었다.
한 번 든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굳어졌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태자만이 유일한 대안이어야 했다.
그러면 그는 어쩔 수 없어서라도 태자에게 자신의 뒤를 잇게 할 것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이면 되는 것이고 훌륭한 아이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황후는 황상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게 전부 그가 뿌린 업보라고.
황후는 생각을 마무리 짓고 자신의 곁에서 늘 충성스럽게 굴던 늙은 태감을 불렀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예. 마마.”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사람들을 불러오너라. 아무도 모르게. 아주 은밀히 해야 할 것이다.”
“예. 마마.”
태감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그녀가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동시에 자신이 황후의 곁에서 명을 듣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전해야 할 말을 그가 알고 있다면 그 역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태감은 그것이 서운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삶이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황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말은 그저 바람 소리로만 나왔다.
그래도 태감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모두 새겼다.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황후에게서는 더 이상의 말이 없었다.
* * *
“사람은 말입니다, 공자님. 왜 그렇게 아둔할까요? 그냥 자기한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허망하게 죽지 않아도 될 텐데요.”
그 말을 한 사람이 하필 말코였다.
혈천방의 중간급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산본의가 사람들을 못살게 굴다가 아진과 아주 안 좋은 인연으로 맺어졌던 그 말코.
아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왜 웃으십니까. 공자님?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아니. 안 웃으려고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네요. 죄송해요. 아저씨.”
그러면서 아진은, 어차피 사과도 했겠다 싶었는지 그때부터는 시원하게도 웃어댔다.
“공자님. 그래도 너무 대놓고 웃으시는 것 아닙니까? 우리 지금 몸을 숨기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어차피 저기에 있는 사람들한테서 숨기는 건 아니잖아요.”
“공자님은 가만 보면 참 뭐든 대충대충 하시는 것 같아요.”
말코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고 아진은 여전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코는 실력을 인정받아 금의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아진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각별하게 신경이 쓰이고 정이 갔지만 말코에게만큼은 그 마음이 더 한 것 같다고 느끼곤 했다.
말코도 그 마음을 느끼는 듯했고 나중에는 자기도 웃어 버렸다.
“저는 요즘도 공자님이랑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나곤 합니다. 와. 정말 그 날을 생각하기만 하면 요즘에도 자다가 벌떡 깬다니까요? 그 아주 조그만 놈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럴 때 깨고 나면 옷이 다 젖어 있어요.”
“저런. 약 한 첩 지어 드셔야겠습니다.”
그러자 말코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진심으로, 아진과 이런 식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진은 점점 더 강해졌고 자기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진에게 덤볐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아 참. 아저씨. 그때 방주님과 한번 붙어 보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진이 오래 묵은 기억을 끄집어내며 묻자 말코가 징그럽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공자님. 공자님은 사람이 아닌 겁니까? 어떻게 그런 것까지 기억하세요? 그게 언제 적 일인데요?”
“아니. 워낙 자신 있게 나가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정말 하실 수 있을까 하면서 엄청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말씀이 없으셔서요. 말씀이 없으신 것뿐만 아니라.”
“어허. 그냥 거기까지만 합시다. 공자님.”
아진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말코는 방주에게 대드는 걸 그만둔 게 아니라 한 번 제대로 붙었다가 묵사발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제가 다시! 이 사람에게 덤비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고 제가 그날 결심을 단단히 했죠.”
말코가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진은 그 모습이 너무나 잘 상상이 되는 바람에 박장대소를 했다.
“공자님. 그래도 너무 크게 웃으시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뭐. 이제는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자리에 머물지만은 않았거든요. 공자님도 아시잖아요. 그렇죠?”
“그거야 당연히 알지만…….”
아진은 말끝을 흐렸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은 것은 방주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