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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11화 (311/470)

제311화

311화

“혹시 벽력탄을 사용한 것이냐. 폭천의가 벽력탄으로 모두를 죽인 것이냐. 그게 사실이라면 그 벽력탄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니냐! 어서 말해 보아라. 오악. 내 말이 맞는 것이냐!”

이추원은 기가 막혔다.

태자가 이런 자였다니.

어차피 자기들 쪽에서도 때에 따라 태자를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억울하다고 할 것은 아니었을까.

“이 자는 미쳤습니다. 이 자가 벽력탄을 터뜨려서 객잔에 있던 사람들을 전부 죽였습니다.”

“과연 그렇게 대단하더냐. 그 벽력탄의 성능이 말이다. 나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어서 이 자를 깨우거라. 수혈을 짚은 것이냐.”

“예.”

“수혈을 짚은 지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니냐. 폭천의를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하였는데. 어서 점혈을 풀거라.”

이추원은 함께 나간 다른 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도 않고 폭천의만 걱정하는 태자를 보면서 진심으로 할 말을 잃었다.

자기들을 키워 준 것은 고마우나 그것도 태자에게 도움이 되었기에 한 것이었을 뿐 일방적인 호의도 아니었다.

이추원은 반감이 생기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폭천의의 혈을 풀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 쪽이냐. 이추원. 네가 솔직하게 말을 해 보아라. 너희가 약했던 것이냐. 벽력탄이 강했던 것이냐. 너희는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닌데. 벽력탄이 터지면 바로 신법을 전개했으면 되었을 것이 아니냐.”

“서도진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자의 스승과 제자, 그리고 절대 무위를 낮게 볼 수 없는 다른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월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하월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천우신조라고 해야 했다.

그들이 비급을 익히기 위해 오랫동안 폐관수련을 반복하지 않았다면 하월과 몇 번 정도는 마주치거나 얼굴을 읽힐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도 있었을 거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 하월이 있더라는 말을 태자에게 했다면 하월이 해 왔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음이었다.

“그들과 격전을 벌이는 도중 이미 상당수가 죽었고 저희도 내공의 소모가 큰 채로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폭천의는 정신을 차린 후 얼굴을 찌푸리다가 곁에 태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폭천의는 절대 그곳에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이제는 그와 잘 지내는 수밖에 없었기에 순순히 인사를 올렸다.

태자는 폭천의의 태도가 가증스럽기는 했지만 벽력탄의 위력에 대해 듣고 그를 내칠 수는 없었다.

그는 그 일에 투입된 자들이 죽었다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머니의 가문에 돈은 넘쳐나도록 있으니 그것으로 다시 영약을 구해 사람들을 키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자들도 처음에는 별 것 아니었지만 영약과 비급으로 키웠더니 초절정의 고수가 되지 않았던가 하면서 그는 꿈에 부풀었다.

게다가 이제는 폭천의까지 손에 넣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폭천의. 벽력탄은 몇 개나 가지고 있느냐.”

“…….”

폭천의는 일이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이제부터는 태자가 권력을 잡도록 상황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끈 떨어진 연이 된 태자의 옆에 있다가 목숨을 잃느니 이제 태자를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지고 있던 벽력탄은 산본의가의 서이린에게 전부 뺏겼습니다. 하나가 남았었습니다만 태자 전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저를 죽이려고 해서 그들에게 사용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들이 너를 죽일 이유가 없지 않으냐. 폭천의.”

“그것은 저야 모르는 일입니다. 저를 계속 협박하고 겁을 주는데 어쩌겠는지요.”

폭천의가 뻔뻔하게 말하자 이추원은 기가 찼다.

“전하. 이 자가 하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거짓입니다!”

이추원이 말했지만 태자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너는 이제 나가 보도록 하여라.”

수고했다는 말도 없었다.

죽은 이들에 대한 말 역시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고 보상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추원이 태자를 향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급히 눈을 내리떴지만 태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추원이 나가자 태자는 곧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이추원을 죽여라. 저택을 떠나기 전에 죽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부상을 입고 내공도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니 너희가 힘을 합치면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예. 전하.”

“일이 끝나거든 보고하고, 보고하러 올 때는 그자의 얼굴을 가져와 확인할 수 있게 하여라.”

“예. 전하.”

이추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분고분한 표정을 하고 눈을 감은 채 태자의 앞에 나타났다.

스스로는 걷지도, 호흡하지도 못하는 몸이 된 후였다.

“폭천의. 벽력탄을 만들어라. 지금 당장 만들어라. 안 된다는 말은 용납하지 않겠다.”

폭천의는 일이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굳이 오악의 얼굴을 보여준 것도 폭천의가 겁을 먹고 명을 따르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폭천의는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재료는 전하께서 준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는 전부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리하자.”

태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지 않았던 걱정거리들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바람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폭천의를 손에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오악을 죽인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전처럼 막강한 전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뼈아팠을 뿐이었다.

“폭천의. 화탄은 벽력탄보다 쉽게 만들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전하.”

“그러면 우선 그것을 먼저 만들도록 하여라.”

“그리하겠습니다. 전하. 그 재료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폭천의의 말에 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까지 그것을 만들 수 있느냐.”

“오늘 밤까지는…… 그때까지는 어렵습니다. 재료가 인근에서 아무렇게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상태로 제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곤란하다.”

폭천의는 태자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너를 곁에 둔 이상 내가 계속해서 부황 폐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미루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

폭천의는 설마 하는 얼굴로 태자를 바라보았다.

태자는 벽력탄만큼이나 불안정해 보였다.

그동안 황제의 말 한 마디에 의해 그 운명이 수시로 바뀌는 삶을 살아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태자의 눈에 광기가 번뜩이는 듯했다.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전하.”

태자가 미치는 것은 상관없었다.

그러나 저와 한 배에 탄 사람이 미쳐버리면 그것은 문제였다.

폭천의는 태자가 이성을 찾도록 다독여 가면서 말을 걸었다.

“외조부님을 뵐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계책이 있다고 말씀드릴 것이다. 벽력탄이 있으면 그걸 보이고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그게 없다면 화탄이라도……. 너에 대해서는 전에 외조부님께 한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네가 내 저택에 와 있는 것을 아시면 외조부님은 나를 지원할 것이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전하?”

“나는 부황 폐하가 두렵다. 부황 폐하가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나는 앞으로도 부황 폐하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게 되겠지. 명령 한 마디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부황 폐하의 생각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니.”

그러니.

“부황께서 돌아가시는 수밖에.”

“…….”

이 자는 이미 한참 전에 미쳐 버린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해서 달리 방법을 찾을 수도 없었다.

폭천의가 도망치고 싶다고 해도 순순히 놔 주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해도 그의 손을 마주 잡아 줄 사람은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화탄을 만들어라. 겉모습이라도 비슷하게 만들어라. 화탄이라고 믿게만 하면 된다. 폭천의.”

“그것을 만드는 것도 오늘 밤까지는 어렵습니다.”

“네놈이 아직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구나. 나는 네 놈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네놈이 살려면 그리 해야만 할 것이다.”

“…….”

폭천의는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고 갑자기 화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시장에 가서 비슷한 것을 사 오는 것은 어떨지요. 거기에 색을 덧입히거나 형태를 바꿔서 화탄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전하.”

“허튼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냐.”

“아닙니다. 전하.”

그러나 태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되었다. 보여 주지 않아도 믿게 될 것이다. 여기에 네가 있으니 여기에 와서 너를 보면 될 것이다. 그러면 네가 벽력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아시게 될 거다.”

태자는 기분이 좋아진 듯 중얼거렸다.

“재료가 무엇인지 전부 기록해 두어라. 당장 사 오도록 명할 것이다.”

폭천의는 태자의 명대로 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드러내 버리면 소용이 다 했을 때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것을 할 틈도 없었다.

태자라면 폭천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오악을 죽인 것처럼.

죽이고 난 다음에 아차 하면서 후회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너를 묶지는 않겠지만 가두고 감시할 것이다. 벽력탄을 만드는 데 두 손은 필요하겠지만 네가 가진 사지 육신이 전부 다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야.”

폭천의는 그 말을 듣고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태…… 태자 전하. 저는 전하와 뜻을 같이할 것입니다. 충심으로 전하를 보필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너를 믿으라니. 재미있는 말도 다 하는구나. 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내 어머니도, 내 아버지도. 내가 누구를 믿겠느냐. 누구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를 죽이라고 명할 수 있고 어머니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나를 먹잇감으로 내 줄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너를 믿겠느냐.”

폭천의는 태자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전하…… 전에는 전하를 실망시켰지만 이제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벽력탄과 화탄을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

무엇을 부탁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폭천의가 당황한 채 손을 떠는 동안 태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폭천의. 너는 그동안 같은 상태로만 살아온 것이 아니냐. 그러니 너도 잘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게 너에게 가장 최적인지 말이다. 벽력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려면 너도 괴로울 텐데. 너에게 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

폭천의는 그것이 경고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귀는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러나 폭천의는 그 말을 할 기회조차 없이 끌려갔고 태자의 사저에 있던 뇌동의 한 석실에서 폭천의의 끔찍한 비명이 소리 없이 삼켜졌다.

이각쯤 후에 태자의 앞으로 옮겨진 폭천의는 한쪽 귀에 피가 묻은 헝겊을 대고 있었다.

그는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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