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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08화 (308/470)

제308화

308화

그의 입에서는 린린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모든 것이 전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황궁 비고를 지키던 황궁의 경비 무사들도 전부 황후에게 크고 작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고 황후의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는 말과 함께 자기들은 그곳에 들어가서 비급을 보거나 가지고 나오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월이야말로 그 말을 들으면서 놀라고 있었다.

동창에 있으면서 그곳이 얼마나 엄격하게 관리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 안에서 비급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가지고 나와 볼 수도 있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도망치려던 복면인들은 모두 죽고 린린은 목숨을 거두기 전 남은 자들을 통해서도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 태자의 명령으로 폭천의를 데리러 온 것뿐이었는데 오히려 그들이 황후의 휘하에서 특혜를 누렸던 것이 추가로 드러났던 것이다.

아진은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았다.

폭천의를 놓쳤지만 이 상태로 그들을 무리하게 쫓는 것보다 태자를 찾아가 담판을 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 모른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태자에게 돌아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모두 힘을 회복하고 목표를 재정립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스승님. 저는 하월 공자와 함께 궁으로 가겠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스승님께서 잠시 의가에 와 주시면 어떠시겠는지요?”

북리의천은 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그러겠다. 태자 전하가 폭천의를 데리고 벽력탄을 만들게 한다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지. 단순히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 기회에 태자 전하를 이용해 황후 마마의 가문에서 무슨 일을 도모할지 모르니 너는 어서 서두르도록 하거라.”

북리의천의 말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린린은 자기도 따라가겠다는 듯이 아진을 보았지만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린린. 너는 의가를 지켜. 지금 상황에서 우리를 굴복시키거나 회유하기 위해서 그자들이 가장 쉽게 노릴 수 있는 곳이 본가잖아.”

“…….”

린린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아진의 말이 옳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위도는 혹시 자기가 필요하면 따라가겠다는 듯이 말했고 아진은 여러 사람이 다시 물을 필요가 없도록 한 번에 정리해 주었다.

“황궁에는 저와 하월 공자만 가겠습니다. 그러는 게 활동하기도 편할 거고 말입니다. 향화문을 통해서 자주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황상 폐하의 안위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모두 주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상 폐하의 안위.

아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모두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그리고 더 이상 그곳에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은 듯했다.

“린린. 본가에 가기 전에 먼저 신교에 가서 역천마의를 만나 봐. 그리고 벽력탄에 버금가는 병기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라고 해. 태자가 폭천의를 시켜서 벽력탄을 양산할 때 우리도 그걸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승님은 제선문주님께 말씀을 드려봐 주세요. 위도 형님은 소청이와 함께 사천당문에 들러서 협조를 요청해 주세요. 그쪽이 극독에 대해 경험이 많으니 필요한 재료를 많이 알 겁니다.”

아진은 그들 각자에게 해야 할 것을 알려주고 하월을 바라보았다.

“준비됐으면 가지요.”

“공자님은 이대로 가도 되겠습니까? 계속 공력을 많이 사용하신 것 같은데요.”

그러자 아진이 소청을 바라보았다.

“흑주는 내가 데려가야겠다. 소청아.”

“그럼요. 스승님.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그래. 그러겠다. 걱정하지 마라.”

아진은 모두를 돌아보며 너무 서두르지 말고 먼저 운기를 한 후에 출발하라고 당부했다.

“이런 인사는 짧게 하는 게 좋다. 어차피 금방 다시 만나게 될 텐데 인사를 너무 길게 하고 얼굴을 금세 다시 보면 민망하니까.”

북리의천이 말하자 다른 사람들이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두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요…….”

하월이 바닥에 쓰러진 복면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전부는 아닌 거죠? 이런 자들이 더 많이 숨어 있는 거죠?”

하월은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걱정이 되고 불안하기는 했지만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확인이 필요하기도 했다.

“정확한 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비슷한 수준의 무위를 가진 사람들이 어느 정도 더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해야 할 겁니다. 이번 일이 중요하다는 걸 태자도 알았을 테니 이 일에 투입한 사람들이 정예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어서 한 말이었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마음을 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는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주지한 채 각자 떠날 수 있었다.

서로 주고받는 시선에 격려와 응원의 의미가 깊이 담겼다.

* * *

폭천의는 자신을 데려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게 잘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는 태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태자와 손을 잡으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까 하며 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폭천의는 자기가 벽력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숨기고 우연히 화탄을 손에 넣은 것처럼 접근했다.

태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결국 그를 만났다.

태자는 그것을 어디에서 구했는지 물으며 더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폭천의는 자기가 화탄을 주운 곳에 가면 더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여지를 두었고 태자도 폭천의의 말을 믿어 주는 척했다.

아무리 폭천의를 윽박질러도 그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기가 만들었다고 하는 것보다 그냥 우연히 주운 걸로 하는 것이 말을 하기 편해서 그리 말을 한 것일 텐데 폭천의가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압박해 들어가면 오히려 폭천의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태자는 폭천의에게 제안을 했지만 폭천의는 그것이 그다지 좋게 들리지 않았다.

사가에 그가 연구할 수 있는 장소와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고 지원하며 해마다 은자 백 냥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기분이 상했다.

사람을 뭐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가 했던 것이다.

그래서 태자를 떠나 다시 혈교에 몸을 의탁했고 태자는 폭천의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혈교도의 중심인물이 자기가 그렇게 찾던 폭천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범위를 좁혀오기는 했지만 그들이 있던 장소와 가까운 곳에서 벽력탄이 터지지 않았다면 폭천의를 찾아내는 일은 요원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테니까 이 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폭천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탈출을 도와준 것은 고마웠지만 이들을 끝까지 따라가야 할 의무는 없었다.

폭천의가 태자를 떠난 이유에는 황권이 역대 어느 황조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한몫했다.

태자와 폭천의의 교섭이 한창 진행 중이었을 때 황후와 그 가문에 대한 황제의 집중적인 공격이 시작됐고 폭천의는 태자가 황제의 신임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황제의 신임을 잃은 태자라는 것만큼 위험한 존재도 없었다.

나중을 기다리며 믿고 투자를 하려고 한 거였는데 그의 곁에 머물렀다는 것만으로도 황제의 노여움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단 그렇게 되자 혈교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주저함이 조금도 없었다.

‘태자 전하와 손을 잡더라도 어쨌건 지금은 아니다.’

떠나던 폭천의는 그렇게 생각했다.

태자가 다른 황자들에 비해 뛰어난 것은 그 당시에 아무것도 없었다.

한동안은 황후의 적자라는 사실이 범접지 못할 근거가 되어 주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올무로 작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붙잡힌 채 폭천의는 한동안 상념을 이어 나갔다.

태자가 보낸 사람들은 폭천의를 빼돌리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아직 폭천의의 몸을 수색하지 않았지만 조금 더 가서 아진 일행을 완전히 따돌렸다고 생각하면 수색을 시작할 터였다.

폭천의에게는 벽력탄을 사용할 기회가 지금밖에 남지 않는 건지도 몰랐다.

린린이 벽력탄을 찾아내는 동안 폭천의는 마지막 하나가 있는 곳만큼은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랐다.

충격이 전해지지 않도록 특수하게 만든 목함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몸에 지닌 채 이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도 위험했을 테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벽력탄은 아직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폭천의는 기회를 노렸다.

“잠시만 쉬어 가면 안 되겠습니까? 이제 아무도 안 따라오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폭천의가 말하자 복면인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 역시 서서히 힘이 부치고 있던 차라 쉬기는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금 더 가면 작은 객잔 하나가 나옵니다.”

한 남자가 말하자 폭천의를 데리고 가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에 가서 잠시 머물지.”

폭천의는 하늘이 내려 준 기회를 얻은 것 같았다.

객잔에 가자고 하는 것이 의외이기는 했다.

작은 객잔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장사가 안되는 곳이라고 해도 사람은 있을 텐데 쉬는데 남의 이목이 있는 곳에서 쉬려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폭천의는 그때부터는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 남은 벽력탄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해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기입니다.”

객잔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으면 객잔이라는 것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정도로 작고 낡은 객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판도 없고 깃발에 객잔 이름을 대충 휘갈겨 적어놨는데 풍파에 찢긴 깃발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네놈이 도망치지 않았으면 이렇게 귀찮은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안 그런가, 폭천의.”

복면인 중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는 자가 폭천의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폭천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명령 때문에 잡아가는 것일 뿐이지, 그들은 폭천의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

“태자 전하를 못 믿겠던가 보지? 감히 너 같은 놈이 태자 전하를 보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도망친 것이다. 그런 게 아니냐.”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폭천의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폭천의의 의지를 굳어지게 만들었다.

‘너무 늦으면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끝난다.’

몰래 벽력탄을 빼내야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앉았다.

객잔 주인은 그렇게 많은 손님을 맞은 게 당황스러운 듯했다.

한눈에 봐도 손님이 많지 않은 곳이라 재료를 넉넉히 비축해 두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무엇을…… 드시겠는지요. 무사님들?”

그러다가 객잔 주인은 그들이 골라봐야 자기가 할 수 없는 게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금방 뒷말을 이었다.

“만두는 세 분이 드실 정도가 가능하고 소면이라면 모든 분께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세가 워낙 흉흉해서 그랬는지 객잔 주인은 그 많은 손님을 보면서도 조금도 반가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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