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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07화 (307/470)

제307화

307화

“폭천의. 벽력탄을 가지고 있으면 내놓아라.”

린린의 목소리가 들렸고 폭천의는 이제 자기가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그에게는 벽력탄이 남아 있었다.

쥐에게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도 썼는데 이 자들에게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벽력탄을 쓰는 건 별로 아까울 것 같지도 않았다.

폭천의가 벽력탄을 꺼내려고 손을 움직인 순간이었다.

“……!”

그의 손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허공에 떠오른 채로 그대로 멈췄던 것이다.

폭천의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을 때 아진이 허공에 올렸던 손을 내렸다.

‘설마 지풍을 날려서 점혈한 거라고?’

폭천의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자신의 몸에 나타난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폭천의는 어떻게든 벽력탄을 빼려고 하면서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멍청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심하네. 점혈을 당하고 그 손을 지금 억지로 움직이려고 한다는 거야? 기혈 같은 건 생각 안 하나?”

폭천의가 뭔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린린이 먼저 다가왔다.

“벽력탄이 없는 폭천의는 뭘까.”

린린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했다.

“너는 본좌의 수치다. 폭천의. 그래도 고마운 게 있기는 해. 네가 신교를 떠나 혈교에 들어간 것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너를 신교도가 아닌 혈교도로 부를 테니까. 장하기도 하지.”

린린의 손이 폭천의의 품에서 벽력탄을 찾아냈다.

폭천의는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치려 했다.

제 몸에서 심장을 꺼내 간다고 해도 그것만큼 고통스럽고 좌절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린린은 벽력탄이 들어 있던 목함들을 손에 쥔 채 그대로 으스러뜨렸다.

“……!”

아혈도 짚였는지 폭천의는 짐승 같은 신음을 흘릴 뿐 목소리는 내지도 못했다.

린린은 폭천의의 눈앞에, 가루가 된 벽력탄을 쏟았다.

폭천의는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 자신도 벽력탄이 그런 식으로 가루가 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깝기는 하구나.”

북리의천이 자기도 모르게 본심을 드러냈다.

절대고수의 무위에 비견할만한 살상력을 가졌다는 벽력탄.

그것이 존재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청이 바라보자 북리의천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저었다.

“소청아. 당연히 농담한 것이다. 우리 소청이도 물론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사조님. 저는 역시 사조님도 저랑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해서 본 건데요? 정말 아깝잖아요.”

소청의 말에 모두가 놀란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금지된 마공을 익힌 소청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금기된 것에 자유로운 마음을 가진 것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일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벽력탄을 허용했을 때의 위험성 때문에 무림에서 그것을 미리 금지하고, 발각될 경우에는 무림공적으로 몰아 멸문까지 시켜버렸지만 그것을 잘 사용할 수만 있다면…….

북리의천의 생각이 어느덧 한계를 키워 나갔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 걸리기는 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 자신이 속한 곳을 드높이고 싶은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했던 것이다.

“폭천의. 너를 살려 둘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너도 알겠지.”

린린의 경고는 짧고 간결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 그녀는 이미 폭천의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그녀는 맨손으로도 능히 폭천의의 목을 부러뜨릴 수 있었지만 거기에 더해 공력까지 끌어올렸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린린이 막 폭천의의 목을 움켜쥐었을 때 공중에서 수백 개의 암기가 날아들었다.

린린은 본능적으로 돌아서며 검을 뽑아 들어 그것들을 쳐냈고 아진이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려 다가와 그 주위에 검막을 둘렀지만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아진은 뒤를 돌아보고 하월과 위도가 있는 곳까지 검막을 넓혔다.

북리의천은 독고소영을 지키며 쉴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하늘을 새카맣게 메우고 날아드는 암기의 비에 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만한 암기라면 중형 문파 하나도 쓸어 버릴 수가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많은 양이었다.

“폭천의가 사라졌어!”

린린이 외쳤고 아진은 복면을 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폭천의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암기를 뿌리는 자들은 다른 곳에 있는지 암기는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양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계속 멍하니 바라보며 폭천의를 그대로 놓칠 수는 없었던 아진이 린린에게 외쳤다.

“다른 곳으로 피해. 저놈들이 각자 위치를 점하고 있을 테니까 암기를 날릴 수 있는 반경이 정해져 있을 거야.”

더 이상은 검막을 유지하지 않을 생각으로 그가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이들이 모두 의미를 알아듣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암기의 비가 멈췄다.

그들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바닥에서 거의 동시에 수많은 인영이 솟구쳤다.

폭천의를 데리고 간 자들은 그를 뺏기지 않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졌다.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죽이지 못할 것 같으면 폭천의의 팔이라도 잘라야 합니다. 오른팔이라도 잘라야 해요!”

아진은 자신을 향해 집중적으로 덤벼들어 오는 복면인들을 상대하면서 외쳤다.

그들이 태자의 사람들일 거라고는 생각을 했지만 태자가 그런 수준의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한 바였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하게 느꼈다.

그들의 무위는 초절정을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절정에 간신히 발만 들인 것이 아니라 벽을 깨기만 하면 그 윗 단계로도 오를 수 있는 인물들.

그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몇이나 아진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중원 전역을 다 뒤집는다고 해도 그 수가 많지 않을 텐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황궁 비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런 사람들을 키워 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서 날아드는 묵직한 검을 막아내며 아진은 생각했다.

황궁 비고는 황제와 그가 허락한 사람 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지 황제가 모든 곳을 지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황제의 명이 지엄하다고는 하지만 그가 동시에 모든 곳에 있을 수는 없고 자신의 명령이 지켜지는 것을 매번 감시할 수도 없었다.

그 일을 실제로 하는 사람은 실무자들인데 그 실무자들이 황제와 비교해서 권한이 작지 않은 사람들의 명령을 받아 움직인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진은 아찔해졌다.

황후와 그녀의 가문이 지금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영향력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라를 혼자서 다스릴 수 없다 보니 황제는 자기가 가진 막대한 권력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 줘야 했고 그 결과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이다.

자유롭게 무공 비급을 볼 수 있고 영약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훨씬 더 빠르게 성취를 이룰 수 있고 아진이 키워 냈던 사람들만큼이나 빠르게 고수의 반열에 이르렀을 터였다.

아진은 혼원파천공과 일월무극공이 제 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은 아진을 돕는 것보다 폭천의를 죽이는 것에 전념했다.

아진이 그들을 상대하면서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믿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아진은 그 일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폭천의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가 앞으로 벽력탄을 만들지 못하도록 최소한 팔만 사용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어느 정도 성과는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팔을 못 쓰게 만들라는 것은 최소한 그렇게라도 하라는 거였고 아진이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폭천의를 죽이기 위해 애쓸 거였다.

여기에서 그를 놓친다면 폭천의가 다른 이들에게 벽력탄 만드는 법을 전수할 수도 있는 것이라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황제가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크윽!”

기대하고 있던 위도조차도 연신 공격을 허용하면서 신음을 흘렸다.

그러는 동안 아진의 일행이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부상을 당하고 쓰러지는 이들은 복면인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폭천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숙련된 초절정의 무리를 상대로 그렇게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아진 일행은 결코 그 사실에만 만족할 수가 없었다.

아진은 북리의천이 준 검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진이 불어넣는 내공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의 손에 딱 붙지는 않았다.

검신과 폭의 길이가 달라서 그가 예상한 것과 오차가 자꾸 생겼던 것이다.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연장의 중요성을 폄훼하는 말이기도 하다.

더 좋은 연장이 완벽을 기하게 해 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

복면인들은 그의 주위를 켜켜이 둘러싸서 진을 형성하고 가공할 기운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진은 나중에 자신이 왜 그렇게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런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겨우 그 정도로 힘이 든다고 느낄 아진이 아니었는데도 조금씩 내공의 부족을 느끼고 있었다.

폭천의가 화탄으로 날린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을 전부 살려낸 후폭풍이 이제 밀려들고 있는 듯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 버렸으니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거였지만 시기가 뼈아팠다.

복면인들은 아진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해서 아진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거였겠지만 아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에 기가 찼다.

그런 역할을 맡아 본 적이 언제였던가.

웃기지도 않는 스탯이 나오던 헌터 시절이 아니고는 이런 일은 다시 겪지 않아도 되었는데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걱정을 하며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폭천의를 데려간 사람들이 어느 정도 멀어지고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은 복면인들은 자기들도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듯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누구 맘대로?”

그러나 폭천의를 놓쳤다는 사실에 화가 난 이들은 그때부터 폭주하기 시작했다.

폭천의를 잡지 못하게 계속 발목을 물고 늘어진 이들까지 놓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북리의천의 검이 크게 폭발했다.

그때까지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복면인들이 그때부터는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슬금슬금 뒤를 살폈다.

그리고 거기에서 승부가 결정되었다.

무기가 부딪치며 폭음이 일었고 몇 사람의 살덩어리가 떨어져 나가고 피가 비산했다.

그러는 동안 린린이 한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뜯어낼 듯이 손으로 감싸 쥐었다.

죽이려고 하는 건가 했지만 섭혼술을 펼치는 중이었다.

섭혼술을 전개하고 린린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싸움이 한창이었지만 다른 이들을 믿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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