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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95화 (295/470)
  • 제295화

    295화

    “혹시 제 검이라도 빌려 드릴까요, 공자님?”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검을 주워서 써 보기는 했는데 손에 맞지 않아서 불편하고 내공을 넣는 족족 터져 버렸습니다.”

    당채운은 아진이 왜 맨손으로 싸워야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까지 아진은 그의 검이 자신의 내공을 받아내는 것을 전혀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리의천이 그런 검을 골라주지 않았다면 아진은 자기에게 맞는 검을 고르는 데만 해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아진이 가진 막대한 내공을 받아낼 수 있는 검은 처음부터 많지 않았고 이미 그의 주변에 수십 개의 검이 터져 나가 있었다.

    당채운은 처음에 봤을 때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의 실체를 뒤늦게 깨달았다.

    위도는 이미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검에,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강기를 일으켜 그것으로 혈교도들을 향해 짓쳐들어가는데 혈교도들은 갑자기 나타난 위도를 보며 당황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내 태연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충독을 가진 사도련 놈들보다도 더 강해요, 형님.”

    “그렇게 말해 봐야 나는 그놈들이 누군지 몰라.”

    위도가 말하고 멈춰서 놈들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렇게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채집행에 나섰던 사람들이 모두 열넷.

    그들 모두가 혈교도에게 당했고 몸을 뺏긴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진과 소청이 그때까지 한 사람도 줄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했지만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아 그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이 자들의 몸은 금강불괴로 돼 있어요. 당문의 장로와 고수들이라는 걸 알고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생각하고 특별히 대법에 정성을 기울인 것 같아요.”

    아진이 위도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채운에게는 그들이 모두 동문이었기에 그런 말을 듣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금강불괴는 어떻게 죽여야 하는데?”

    “그 몸에 타격을 주고 공격에 성공하려면 내공의 소모가 큰 상승절기로 연달아 공격해야 하죠.”

    “그러니까 어떻게?”

    아진은 혈교도들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저놈들이 서로 싸우면 참 좋은데 말이에요. 그렇죠. 형님?”

    “그러겠어?”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위도는 소청을 바라보았다.

    너희 스승님 왜 이러시냐는 표정을 짓고.

    그러나 소청은 위도보다 더 먼저 아진의 뜻을 알아차렸다.

    “저도 도울게요. 스승님.”

    “돕긴 뭘 도와? 정확하게 나눠서 각자 넷씩 맡자. 단주님. 단주님이 둘은 맡아 주셔야 합니다.”

    아진이 뒤에 남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채운을 바라보며 외치고 그들의 안으로 달려들어 갔다.

    뾰족한 수도 없을 텐데 지겹기만 한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혈교도들은 아진을 무심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들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분명히 놀랄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번에야말로 전부 다 죽여 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들에게 아진이 갑자기 섬전처럼 몸을 날렸다.

    달려오던 속도에 익숙해진 채 아진이 언제쯤 이를 거라고 예상했던 이들이 아진의 속도에 놀라며 그를 막으려는 찰나 어느 순간 아진이 그들의 뒤로 가 있었다.

    그들이 잊은 것은, 아진이 자기들을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공격을 허용하지도 않은 채 버텨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누구도 대법의 정수로 빚어진 그들을 동시에 열네 명이나 상대하면서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버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눈앞에서 아진을 놓친 자는 파류월의 몸을 뒤집어쓰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아진을 향해 돌아서려고 하다가 갑자기 겨드랑이 사이에서 두 팔이 솟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게 뭔지 깨달을 틈도 없이 그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들렸다.

    “……!”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라는 건가 하면서 아진을 털어 내려고 하던 파류월은 자신의 앞으로 파류영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비켜. 이 멍청한 자식아!!”

    그는 설마하니 파류영이 날아오는 게 그 뒤에 서 있던 소청 때문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다가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소청의 옷자락이 크게 펄럭이다 가라앉았고 그의 발밑이 움푹 파여 있었다.

    미리 소청을 보고 있었다면 소청이 삽시간에 엄청난 회전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파류영을 날려 버린 것을 알았을 터였다.

    파류영의 뒤로 돌아가서 파류영이 손을 쓰기도 전에 몇 번이나 제자리에서 회전하고 걷어차는 게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했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사치였다.

    “비키란 말이다!!”

    파류영이 계속 소리쳤지만 그 역시 파류월이 아진에게 붙잡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파류영은 허공에서 멈추고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속도 때문에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쥐새끼 같은 꼬마 놈이 잡히기만 하면 그대로 목을 분질러 버리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우선 살아남을 궁리를 했다.

    그가 마지막에 할 수 있었던 것은 파류월과 부딪히는 다리에 강기를 두르고 그 다리로 그의 명치를 찍는 거였다.

    파류월은 그것을 보면서 눈이 뒤집혔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두 손에 강기를 쏟아붓고 파류영을 기다렸다.

    그러나 파류영의 다리가 파류월의 주먹보다 먼저 닿았고 아진은 파류월이 밀리지 않고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도록 뒤에서 그의 등을 밀었다.

    그 충격을 함께 받는다면 아진의 팔도 부러지는 게 옳은데도 미리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던 그의 두 팔은 멀쩡했다.

    공격한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 것은 혈교도만의 전매특허는 아니었던 것이다.

    파류영의 발은 파류월의 복부를 관통하고 등을 찢은 채 뒤에서 나왔다.

    “아. 이렇게 되면 좀 재미있어지네?”

    아진이 말을 하고 파류월의 등을 관통하고 나온 파류영의 발목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파류영은 바닥에 넘어진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는 혈교도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

    위도는 아진과 소청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두 사람이 한 말이 뭐였는지 그때까지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혈교도 몇이 아진을 막으려 하자 위도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너희는 기다려. 그렇게 발광을 안 해도 때 되면 다 죽여 줄 거니까.”

    당채운은 그 사이에서 분위기를 파악했고 이제 자기가 뭘 해야 할지도 알 것 같았다.

    아진은 동료의 복부에 다리가 걸린 파류영의 발목을 잡아 허공에 들어 올린 채 발에 강기를 싣고 쿵 내리찍었다.

    “끄으으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파류영의 상체가 꺾이듯이 앞으로 솟았고 아진은 당채운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실적을 위한 일이 아닌 만큼 당채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생각이었다.

    당채운은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며 파류영의 목을 벴다.

    그러고 나서도 다시 몸이 붙을까 봐 걱정하는 당채운의 옆으로 어느덧 아진이 다가갔다.

    “제가 소림 방장님께 배운 것이 있습니다.”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장영을 발했고 거기에서 나간 성력이 파류영의 몸을 태웠다.

    불이 붙은 것은 아니었지만 파류영의 몸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재로 변했다.

    “처음부터 그걸 날렸으면 되는 게 아니었을까요?”

    당채운이 조심스럽게 바라보자 아진이 소청을 슬그머니 보았다.

    만약 그 말이 맞는 거면 지금까지 너랑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거냐는 듯이.

    소청도 약간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아진을 바라보았다.

    “한번 해 보세요. 스승님.”

    “……그래.”

    “되기를 바라고 해 보세요.”

    “그래. 그럴 거다.”

    “안 그러실 것 같아서요.”

    소청이 다 안다는 듯이 웃었다.

    아진이 돌아서자 파류영과 파류월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 기겁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서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껏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어오던 사람들이 어떻게 한 번에 둘을 끝내 버린 건가 했던 것이다.

    곳곳에서 당문의 무인들이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당채운이 돌아와서 싸움에 가담한 이후에 더 큰 혼란에 빠진 것 같았는데 아직도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대처 방법은 터득했으니 이제부터는 어려울 게 없었다.

    황금빛 장영이 날아가고 멍하니 서 있던 혈교도 한 사람이 채 피하지 못한 채로 죽는 것을 보고 아진은 허망한 기분마저 느꼈다.

    “언제까지 그렇게 보고만 있을 겁니까! 이 자들이 우리 형제들이라면 왜 성력에 이런 반응을 보이냐는 말입니다!!”

    결국 참다못한 당채운이 숨어 있기만 하던 무인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때까지 판단을 보류하고 있던 당문인들이 비척비척 앞으로 나왔다.

    “그것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서 공자.”

    지금껏 몇 번이나 반복해 왔던 말을 이제 와서 다시 확인하겠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을 보고 아진은 아는 척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을 상대했다.

    소림의 장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는 퍽 여유가 생겼고 굳이 장영에 의존하지 않은 채 자신의 여러 절기를 펼쳤다.

    위도와 당채운은 그때까지 하나도 쓰러뜨리지 못했던 혈교도들을 셋이나 쓰러뜨린 것에 크게 고무되어 그때부터는 자기들도 나름대로 절초를 펼치며 목숨을 노렸다.

    당채운만 해도 놈들을 한 번도 쓰러뜨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 죽여 놔도 번번이 다시 살아나서 그런 거였을 뿐.

    그러니 이제 아진이 뒤처리해 줄 거라는 것을 믿고 과감하게 공격을 감행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억눌렸던 그의 검이 크게 폭발하기 시작했다.

    언제 챙겨 놓은 것인지 그의 주위에는 장창이 여러 개 있었는데 거기에 강기를 실어 온 힘을 다해 혈교도를 향해 던지기도 했다.

    콰콰콰쾅-!

    창에 실린 강력한 강기 때문에 폭음을 일으키며 몸이 터졌고 당채운은 간절하게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은 당채운의 뜻을 알아차리고 장영을 날려 그 성력으로 혈교도의 목숨을 거두었다.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매번 시신이 재로 변했던 것이다.

    허물어지는 재를 보면서 당채운은 그들을 되살리는 것은 아마도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 후에는 혈교도 놈들에 의해 몸을 장악당한 당문인들에게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복수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당채운은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당채운은 바닥에 있던 돌들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만천화우?’

    아진이 그 생각을 하는 동안 그때까지만 해도 낄 틈을 찾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당채운과 함께 돌들을 띄웠다.

    그걸로 그대로 혈교도들을 공격하려고 하는 건가 생각하며 아진은 소청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들이 끝마칠 수 있게 해 주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위도도 만약 그들이 스스로 할 수만 있다면 딱히 나설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떠오른 돌이 일제히 혈교도들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수평으로 쏟아지는 눈보라처럼 맹렬한 기세로 날아든 돌은 혈교도들에게도 귀찮은 존재였다.

    그것을 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선을 뺏기고 손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노렸다는 듯이 당채운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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