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화
275화
산본의가 지부의 무인들이 들어오자 한두 사람이 먹던 것을 그대로 남겨 두고 서둘러 계산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일이 이렇게 되면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며 차라리 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자. 봤지? 자리가 생겼네. 저자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왜 너만 이러는 거지? 머리가 꽉 막힌 것 같은데 제대로 돌아가게 손 좀 한 번 봐줄까?”
건들거리던 무인이 점소이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가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려 점소이를 때리려고 할 때 여기저기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비명이 나왔다.
그들은 계속 객잔에서 버티고 있다가는 큰일이 생기겠다고 생각한 듯 서둘러 일어나 우르르 나가버렸다.
“뭐야. 저것들. 이제는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 왜 나가지? 우리한테서 냄새라도 나나? 어이. 왜 나가는 거야. 어? 우리가 오물이라도 되나?”
그중 한 사람은 이제 밖으로 나가려는 여자의 어깨를 잡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듯, 점소이를 때리려던 무인을 바라보았다.
손을 들고만 있고 때리지를 않았던 것이다.
벌써 주먹이 날아가고 점소이가 맞아서 나뒹굴었어야 했을 텐데 그는 여전히 손만 들고 있었다.
겁만 주려고 한 건가 하던 무인은 그의 어깨에서 서서히 피가 흘러 옷을 적신 것을 보았다.
“뭐…… 뭐야. 이게! 이거 왜 이래. 어?!”
여자의 어깨를 내던지듯이 놓고 동료에게 다가간 그는 동료의 어깨에 젓가락이 박힌 것을 보았다.
그게 어디에서 날아온 건지도 몰랐지만 어떻게 젓가락을 그렇게 깊이 박을 수 있는 건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왜 이래. 어?”
그러면서 그는 박혀 있던 젓가락을 억지로 뺏고 그것이 얼마나 악수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각도와 위치가 정확하게 조절되어 그나마 그때까지는 피가 조금씩만 흐르고 있었지만 젓가락을 억지로 빼면서 그때부터는 폭포수처럼 피가 솟구쳤던 것이다.
“아아아악!!”
객잔에 남아 있던 사람들 중 기가 약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쳤지만 오랫동안 산본의가 지부의 무인들에게 핍박을 당했던 사람들은 이게 웬일이냐 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추현화는 아진의 앞에 놓인 하나뿐인 젓가락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걸 던지는 것은 봤는데 그걸로 뭘 한 건지는 한동안 알지 못했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점소이를 때리려고 했던 사람은 팔을 움직이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설마 동시에 아혈을 짚은 건가? 팔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혈을 점해서 그런 거고?’
“어…… 어느 놈이……어느 놈이 그랬어. 어떤 놈이 감히……!”
그렇게 피가 솟구친 것은 사실상 그 때문이었는데 젓가락을 뽑아낸 무인은 고함을 지르더니 다른 이들을 닦달했다.
“빨리 가서 의원님을 모시고 와. 빨리!”
“아예 지부로 데리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 모양인데 어딜 데려가! 이 정도로 피를 흘리면 죽는다고! 금창약. 금창약 어디 있어! 본가에서 보내온 것 있잖아.”
“본가에서 보내온 건 웃돈을 받고 다 팔아 버렸잖아요.”
그들이 일으키는 소란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사람을 살리는 법을 아나?”
아진이었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게 누구인가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종은 그런 경험이 신기했고 어느 정도는 흥분이 되면서 어느 정도는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기들을 향하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네놈이냐? 헛소리를 지껄인 게?”
동료가 피를 쏟는 와중에 그 옆의 무인이 소리쳤다.
“사람을 살리려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놈을 먼저 죽이면 되지. 그놈 하나만 죽여도 사람 목숨을 여럿 살릴 수 있거든. 방금 그놈은 죽일 의도로 점소이를 향해 손을 쓰려 했다.”
“죽이려고 한 건 아니다! 겁만 주려고 한 거야!”
“멍청한 놈들이 끼리끼리 붙어 다닌 거네. 설령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손을 썼으면 점소이는 죽었을 거다. 멍청해서 몰랐다는 게 책임을 피할 사유가 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그놈은 그냥 죽게 놔둬. 네놈들도 조금만 있었으면 죽을 이유가 백 가지도 더 넘게 생겼을 텐데 운이 좋은 걸로 생각해라.”
“……너는 뭐 하는 놈이냐. 설마 네놈이 이걸……!”
만약 그 자리에 산본의가의 제자가 있었다면 아진 일행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봤겠지만 안타깝게도 무인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덤비려면 너희의 목숨을 걸어라. 산본의가의 이름을 내걸고 영업을 하면서 지금껏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해서 물의를 빚어 왔다면 적어도 너희의 목숨은 내놓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다만.”
아진은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그 정도로 기분이 나빠진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당장 죽여라!”
피를 쏟으며 쓰러진 동료는 이제 완전히 관심 밖으로 사라진 듯했다.
린린이 눈을 빛내며 아진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내가 해도 돼?”
“…….”
아진은 내키지 않는 듯했지만 린린은 벌써 일어섰다.
“정말…… 죽이려고 하는 건가요?”
추현화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진에게 물었다.
“함부로 살상하는 자들입니다. 어떤 거리낌도 없이요. 우리는 이 자리에서 아무 해도 입지 않고 나갈 수 있지만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그럴까요? 이 자들은 분명히 돌아가서 더 많은 무인을 데리고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겁니다. 의원이 꼭 사람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살려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미리 그 일을 막으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저 사람들이 반성할지도 모르잖아요.”
“예. 그렇습니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쏟아지지 말라는 법도 없고 고등어 떼가 떨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그만큼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는 말이었지만 추현화를 비난하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해를 하지 않도록 곧 어투를 바꿨다.
“저자들이 우리 전부의 목숨을 노리는 게 이유라고 하면 어떨까요? 입을 나불거린 건 저 하나였는데 저놈들을 당장 죽이라고 하지 않았는지요.”
추현화도 더 이상은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아진의 말이 전부 다 옳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린린은 젓가락 하나를 들고 거기에 강기를 씌웠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젓가락이 어떻게 거기에 꽂혔겠어? 강기를 입히지 않았다면. 그리고 젓가락에 강기를 입힐 수 있을 정도면 무위가 어느 정도일지 감이 안 잡히나? 이렇게 멍청해서야 어떻게 하겠어?”
그러나 그들은 이미 어떤 것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젓가락들이 검을 빼 들고 달려드는 이들의 어깻죽지를 향해 날아가 꽂혔다.
불컥 피가 쏟아지고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혼란은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라는 것이 원래 그랬다.
* * *
객잔의 주인과 점소이들은 객잔 밖까지 따라 나오면서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자리에 산본의가의 가주가 없었다면 그 일은 절대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린린은 그들이 다시는 무공을 하지 못하도록 기혈을 뒤틀어 놓았고 아진은 그사이에 현령을 찾아가 관군을 데리고 왔다.
아진이 누구인지 안 현령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채 아진이 요구하는 인원을 즉시 내주었다.
수시로 황상을 알현하며 황상의 깊은 총애를 받는 서도진이었다.
그가 황상을 도와 부패한 관료들을 척결한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퍼진 사실이었다.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잠겨 있는 동안 현실을 도외시한 관료들이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지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산본의가 지부와 결탁하여 지금껏 호의호식해오던 것에는 그래도 그들이 산본의가 지부라는 이유가 컸다.
설마하니 서도진이 그 칼을 자신의 수족에게까지 들이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크게 잘못 안 사실이었다.
서도진은 절대, 부패한 산본의가 지부를 자신의 수족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현청에서 나온 관군들은 선을 긋기 위해서라도 산본의가 지부의 무인들에게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으며 모조리 끌고 갔다.
그들의 죄를 명백히 밝히고 각자에게 그에 합당한 처분을 하도록 명령한 아진은 그 후의 일을 서종욱에게 맡겼다.
이미 현청의 관군들이 들이닥쳐 무인들을 끌고 나갔으니 의원들이 그 일을 모르지는 않았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알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부리나케 오가던 사람들은 마침내 서종욱 일행과 맞닥뜨렸다.
지부장 나연규는 자기가 지금 누구를 본 것인가 했다.
의학당을 떠난 후 산본의가의 가주를 다시 보게 될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가주는 그저 멀리서 산본의가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소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왜 아무 연락도 없이 이곳에 있다는 건가 했다.
“스, 스승님…….”
“스승이라. 네가 나에게 뭔가를 배우기는 했던 것이냐.”
서종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었다.
아끼고 아꼈던 제자였다.
나연규만이 아니라 의학당의 모든 제자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가 제 마음 같지는 않았다.
선이남과 남이천이 잘해 주어서,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잘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방치한 결과 그가 뿌린 씨앗이 독을 품고 자라 사방으로 넓게 뿌리를 뻗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어떻게 그의 잘못이겠냐는 말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면책도, 위로도 되지 않았다.
산본의가의 힘이 이렇게 커졌다면 이런 일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해야 했다.
서종욱은 나연규를 향해 다가갔다.
“스승님…….”
나연규는 자신이 서종욱을 안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언제나 온화하고 높은 성벽 같은 사람.
측근이 저지른 실수는 자신이 떠맡아 수습하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
마음이 약하고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이니 그의 앞에서 눈물을 몇 방울 흩뿌리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처럼 외양을 꾸미면 이 일도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누리던 영화는 이제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될지 모르지만 산본의가 의학당에서 배운 의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 일을 잊을 즈음 그에게 배운 의술로 다시 사람들을 고쳐 나가면 어디서든 금방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을 터였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불민한 제자가 스승님을 실망하게 해 드렸습니다.”
나연규는 고개를 숙이고 울먹인 채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았다.
다 내 잘못이다. 다 내가 부족한 탓이거늘 어찌 너를 꾸짖겠느냐.
지금쯤 가주에게서 나올만한 말은 그런 얘기였다.
나연규는 이제 곧 스승이 저를 용서할 거라고 생각했다.
무인들은 힘을 남용했지만 자신은 그리 잘못한 것이 없었다.
사실 무인들을 종용하면서 산본의가 지부의 권력을 키우고 과시했던 것은 자신이었지만 스승이 그런 것까지 알겠나 했다.
역시나 스승이 그의 손을 잡았다.
“스승님…….”
나연규는 후회하는 얼굴을 하고 눈물을 흩뿌렸다.
따끔한 느낌이 들었지만 무엇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느낌이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
고개를 들자 서종욱이 침을 놓고 있었다.
생전 본 적 없는 침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