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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74화 (274/470)
  • 제274화

    274화

    “그런가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진통 효과에 좋은 약초에 백율채는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백율채를 사용하고 있었네요.”

    추현화는 의심 없이 그런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백율채는 효과가 좋은데 독성이 있어서 그 독성이 가끔 환자의 체질에 따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거든요. 산본의가에서는 백율채의 독성이 나타나도 그 독성을 제거하는 법이 잘 발달해 있어서 백율채를 애용했고요.”

    “맞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산본의가에서만 전해지는 방법이었어요?”

    “네. 산본의가 주위에서 지천으로 자라는 사영초를 달여서 그 물을 마시면 백율채의 독성이 사라지죠. 백율채가 좋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줬지만 사영초가 같이 자라지 않는 곳에서는 함부로 백율채를 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백율채의 효능을 아예 알려주지 않았지요. 백율채가 좋다는 말만 믿고 사용했다가 독성 때문에 오히려 병이 커질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담장 밑에 내가 사영초를 키우고 있거든요. 다른 곳에서 사영초가 자라는 걸 보고 그걸 캐다가 담장 밑에 빼곡하게 심었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왜 그러고 있는지 몰랐었는데…….”

    그녀는 신기해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랬군요. 사영초는…… 사영초가 없으면 백율채를 쓸 수가 없으니까…… 백율채가 좋다는 건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는데. 그랬네요.”

    멍하니 허공을 보던 그녀가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내가 정말…… 내가 정말 검후라는 말인가요?”

    아진은 그녀를 바라보고 웃었다.

    이제 더 이상은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억지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스승님이 사영초를 뜯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었지요. 사영초가 꼭 사고님 같다고요.”

    “사영초는 털만 많고 거칠고 못생겼잖아요.”

    그 말에 아진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사영초가 없으면 백율채는 기능을 다 하지 못하니까요. 정말 좋은 점이 많은데 자기가 가진 독성 때문에 외면받는 거죠. 그런데 사영초가 있으면 독성이 나타나도 사영초로 독성을 제거할 수 있으니까 백율채가 효과를 나타낼 수 있고요. 그 말씀에 사고님이 뭐라고 하셨냐면.”

    추현화가 웃었다.

    “네가 사영초라고 했을 것 같아요. 내가 백율채라고.”

    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독고소영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정말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공은 자기가 북리의천보다 뛰어나다며 아진에게 자신의 제자가 되라고 하던 독고소영이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만도 하다고 생각하면서.

    모두의 얼굴에 벅찬 웃음이 감돌았다.

    그러던 아진의 얼굴이 잠시 굳었고 린린에게 전음을 보냈다.

    -린린. 그런 사람이 살아 있다면 나중에 우리하고 안 좋은 일로 부딪힐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기는 해. 그런데 우리랑 안 좋은 일로 부딪히는 사람이 한 둘도 아닌데 거기에 하나 더 늘어난다고 크게 걱정할 건 아니잖아?

    -…….

    사람이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하면서 아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진짜 대단하다. 너는.

    -걱정하려고 들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독주 체제를 유지하면 다른 세가들이 가만히 있겠어? 물밑에서 무슨 계략을 펼칠지도 모르는 거고. 그런 걸 하나하나 걱정하기 시작하면 제 명에 못 죽어.

    -그래. 그 말도 맞겠다. 마선이라는 사람도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

    아진은 별로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도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 말했다.

    -알고 싶지 않을걸? 그냥 친하게 지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을 거야.

    -그 정도야?

    -전해지는 얘기를 들어 봤을 때는 천재성이 오라버니랑 거의 비슷한 것 같아. 어쩌면 오라버니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엄청나게 오래 살았잖아? 그리고 오라버니가 아무리 대단해도 바람으로 변해 버린 사람을 상대하기는 어려울걸?

    안 물어보는 건데 잘못 했다는 후회가 깊이 밀려들었다.

    린린의 말대로 그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전음을 나누는 동안 추현화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마선으로 인해 환골탈태하면서 피부가 흠도 없고 주름도 없이 바뀌어 자신이 검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던 검객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기회도 잃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백들이 메워지고 있었다.

    아직도 얼떨떨하고 아진과 린린에게 들은 말이 전부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북리의천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간절해졌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산본의가로 가면 안 되겠냐고 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가 봐야 할 곳이 있었다.

    그들을 천중으로 이끈 산본의가 지부에.

    * * *

    일대는 번화했고 도시가 산본의가 지부로 인해 얼마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는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산본의가 지부에 가까워질수록 더했다.

    곳곳에 객잔이 있었고 객잔마다 사람이 붐볐다.

    산본의가 지부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점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고 모욕적인 언사와 폭행까지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종욱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그때까지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거였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직접 눈으로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일은 그들이 객잔에 있을 때 벌어졌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객잔에는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좋건 싫건 합석을 해야 했고 점소이는 빠르게 주문을 받고 사라졌다.

    일하는 사람들이 워낙 서두르다 보니 식사를 하는 이들도 덩달아 서둘렀고 음식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와. 정말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네요.”

    도종이 사람들을 보면서 말했고 직업병의 일종인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몸 상태가 어떤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도종만 그런 것도 아니고 서종욱과 추현화도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은 신장이 안 좋은 것 같지 않은가요. 아버지?”

    “그렇구나. 아직은 상태가 많이 악화한 건 아니고 약으로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정도라면 몸에 불편을 느꼈을 테고 한 번쯤은 의원을 찾아가 봤을 것 같은데 이상하구나.”

    그러자 추현화가 입을 열었다.

    “산본의가 지부의 진료비는 비싸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렇지만…….”

    그녀는 말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하는 듯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이었다.

    “일부러 병을 키워서 고친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않습니까. 처방을 제대로 하지 않고 병을 완전히 낫게 하는 처방이 아니라 진행만 멈추는 처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서종욱은 그 말에 진심으로 놀란 듯했고 분노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직 요리가 나오기 전이었고 몸에 문제가 있는 이도 식사를 시작하기 전이라서 아진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잠시 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그는 아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통증으로 인해 남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기도 쉽지 않은 법인데 그는 낯선 사람의 접근을 거절하지 않았다.

    “실은 제가 의원입니다만 몸에 불편을 느끼지는 않으십니까?”

    그러자 그가 반색하며 줄줄이 증상을 늘어놓았다.

    배뇨할 때의 문제가 주를 이루었는데 소변을 보고 나서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금방 다시 요의를 느끼며 특히나 잠자리에서 그런 경우가 많아 숙면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것 때문인지 늘 피곤하고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피로가 계속 쌓이는 기분이고 늘 불쾌한 기분이 따라다닙니다.”

    “이곳에 사십니까?”

    “예. 의원님.”

    “근처에 산본의가 지부가 있다고 들었는데 진료를 받아보지는 않으셨습니까?”

    “가 보기는 했습니다만 차도가 있는 것 같다가 결국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진료비와 약값도 싼 게 아니라서 그냥 참고 넘기자는 마음이 컸지요. 이 정도 고통이야 참으면 참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으로요. 모아둔 돈도 없이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 제가 치료비로 돈을 다 쓰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냥 앓다가 죽어야지 어쩌겠습니까?”

    “제가 진맥을 해 봐도 되겠습니까?”

    한창 영업이 바쁜 와중에 그 사실이 알려지면 점소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아진은 일부러 소리를 낮추어서 말했다.

    “진맥은 해도 상관이 없지만 쉽게 고쳐지는 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미 포기한 상태입니다.”

    아진은 진맥하는 것처럼 그의 손목에 손가락을 얹은 후 마나를 흘려 넣었다.

    “…….”

    그는 몸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한 듯 그냥 눈만 끔벅거렸다.

    지속해서 통증이 느껴지던 병증이 사라진 거라면 반응이 달리 나왔을 텐데 신장이 건강해졌다고 본인이 직접 알아차리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마침 그가 시킨 소면이 나왔고 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그때부터 식사에 전념했다.

    아진도 고개를 숙여 보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진의 자리에도 소면이 나왔고 그들은 서둘러 식사를 해 나갔다.

    아진이 고쳐주었던 사람은 객잔을 나가면서 다시 한번 아진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의원이라고 자신에게 관심을 주며 말을 걸어준 게 고마운 듯했다.

    “추 의원님이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진이 말하자 서종욱의 얼굴은 더욱 침통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침잠해질 대로 침잠해진 순간 객잔 문을 열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어떤 전조와도 같았다.

    객잔에서 일을 일으키는 자들이 이제부터 헛소리를 늘어놓고 사람들을 핍박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이 구역에 무가가 있습니까?”

    도종이 묻자 추현화가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들은 산본의가 지부의 무인들일 거예요. 자경단을 조직해서 이 일대의 치안을 담당하며 성주와 결탁했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자경단이라는 건 말뿐이고 인근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저 사람들이 일으킨다는 말이 있지요.”

    서종욱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식처럼 키운 제자들이었다.

    멀리 떠나보내면서 그들이 잘 되기를 바랐는데 그의 염원과는 다르게 사회에 위해를 끼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우리가 들어왔으면 자리를 만들어야 할 게 아니야? 이걸 일일이 말을 해야 하나? 지금까지 힘들게 일을 하고 왔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걸 언제까지 하나하나 말을 해야 하는 거지?”

    “무사님. 그런데 지금은 자리가 워낙 없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보시다시피 전부 다 합석을 하고 있고 빈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무사님.”

    “그러면 미리 자리를 비워 놨어야지. 자리를 다 채워 놓고나서 자리가 없다고 우리를 기다리게 하면 그게 누구 잘못이지?”

    무인들은 고작 이류 실력에 겨우 턱걸이한 것 같았는데 그 무위를 믿고 건방지게 설친다는 것이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아진은 작게 한숨을 쉬면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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