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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72화 (272/470)
  • 제272화

    272화

    “단리서언이 여러 사람의 몸을 갈아타면서 영체이혼대법을 펼쳤던 거 기억나, 오라버니? 그때 단리서언이 옮겨탔던 사람 중에는 그 당시에 이미 죽었던 사람들도 있었어. 단리서언이 그 사람의 몸을 탐내서 살려낸 후에 그 몸을 차지한 거지. 두 가지 대법을 동시에 시행해야 하는 거였던 거라 엄청나게 어려웠을 테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거야.”

    “혹시 누군가 사고님의 시신으로 대법을 시행해서 살려낸 거라고?”

    “마공 중에 가능한 게 있냐고 해서 말을 한 것뿐이야. 가능성이 그렇게 큰 얘기는 아니고.”

    아진도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딱히 떠오르는 생각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위도 형이랑 같이 갔던 섬에 여러 가지 무공이 적혀 있었는데 비슷한 걸 봤던 것 같기는 해. 린린 네가 말했던 거랑 비슷해. 세월 때문에 그런 건지 뒷부분이 깎여나가서 처음부터 자세히 볼 생각을 않고 포기해 버렸던 건데 그거라면 가능한 것 같기도 해.”

    “그 마공은 단순히 살려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몸의 전성기 때로 회복할 수가 있거든. 돌아가실 때보다 몇 살 정도 젊어 보이시는 건 그런 이유일 수 있어.”

    일단 그 말을 한 후로 린린은 여러모로 꼼꼼하게 검증을 해 보는 모양새였다.

    아진은 스승이 사고를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대법으로 살아난 사람이 이전의 기억을 갖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만약 의원이 독고소영이 맞고, 예전의 기억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알아보아야 했다.

    “그 대법을 시행하면 전의 기억은 잃게 돼, 린린?”

    도종이 묻자 린린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단리서언의 경우를 보면 개인적인 일은 전부 잊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 무공에 대한 기억만큼은 확실하게 갖고 있지만.”

    그러는 동안 의원이 들어왔다.

    그녀는 차 외에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왔다.

    먼 길을 오면서 시장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린린. 네가 섭혼술로 알아볼 수는 없어?

    아진이 린린에게 전음을 보내자 린린이 살짝 의원을 바라보았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이것저것 추측만 하느니 차라리 그렇게 해서 확실하게 알아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 갑자기 난데없이 섭혼술을 실시하는 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린린은 그녀에게 섭혼술을 행했다.

    아니. 섭혼술을 시도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섭혼술을 시도하려는 린린을 바라보고 의원이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소저. 혹시 도움이 필요한가요?”

    “…….”

    린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의원님. 무례하게 굴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의원님께서 저희가 알던 분과 너무 닮았고 그분이 저희에게 너무 소중했던 분이라서 이런 무례를 범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진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자신들의 힘으로 알아내는 것이 한계가 있다면 그녀에게 직접 묻는 수밖에 없었다.

    “의원님. 정말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혹시 의원님의 성함이 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서종욱이 고개를 저었다.

    “순서가 잘못되었다. 아진아. 그러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부터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예의다.”

    그리고 서종욱이 먼저 예를 차렸다.

    “저는 산본의가의 가주 서종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 아이들로 도종과 도진, 이린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아종과 아진, 린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서종욱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독고소영이 맞다면 그 말을 듣고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것이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떠올랐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그들의 신분에 대한 것 때문이었다.

    “설마요……. 제가 산본의가의 가주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되다니요. 가주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의원 중에 가주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제 의료원에서 뵙다니. 이런 영광이 다 있다니…….”

    그녀는 아진에 대한 얘기도 익히 들었을 텐데 오히려 도종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녀가 가진 관심은 순전히 의원으로서 갖는 호기심으로 보였다.

    서종욱은 아진이 얼마나 실망했는지 알 수 있었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곁에 있던 린린은 아진보다도 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섭혼술이 통하지 않아서였다.

    “의원님. 혹시 의원님이 누구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서종욱은 그녀의 호감을 바탕으로 다시 물었다.

    “추현화입니다. 안타깝게도 가주님이 생각하시는 사람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가주님과 가주님의 가족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것을 알면 정말 기뻐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서종욱은 실망을 애써 감추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말이 나왔으니 더 이상 숨기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본가의 명성을 등에 업고 혹시 제자들이 사람들이나 인근의 의원들을 핍박하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발길이 닿는 대로 오다가 여기에 이르렀군요.”

    그러자 그녀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역시 가주님이십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규모를 키우는 것에만 관심을 두느라 내부의 문제를 살필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들은 이야기가 걱정스러운 것들뿐이라 마음이 좋지 않더군요. 혹시 추 의원님께서 느끼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추현화는 웃음을 지었다.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으로 인해 미안한 기색을 하는 가주를 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산본의가에 대해서 들었던 말이 전부 사실인 것 같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직 나이 어린 분들이 아닙니까. 그런 분들이 많은 힘을 누리고 있지요. 그러다 보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급히 달리다 보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그분들도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추현화가 말을 하는 동안 아진은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특정한 발음을 할 때의 입 모양과 입가에 만들어지는 주름, 그 옆의 보조개를 보았다.

    그것은 아무리 흉내 내고 똑같이 만들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원님.”

    아진이 갑자기 그녀를 부르자 추현화가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릴 때 눈이 한 번 감겼다가 위로 치떠지는 모습이야말로 영락없는 사고의 모습이었다.

    아진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의원님. 정말 무례한 부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한 번만 의원님의 맥을 짚어 보게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녀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아진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얼마나 절박한지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공자가 빨리 답을 찾았으면 좋겠군요.”

    그러면서 그녀가 팔을 내밀었다.

    아진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손목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눈에서 속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기를 흘려 넣지 않아도, 그녀의 혈맥을 살피지 않아도 이미 아진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사고의 것이라는 것을.

    한두 줄기가 흘러내리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감정은 갈수록 격해졌고 그의 울음은 오열로 변했다.

    추현화야말로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독고소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린린이야말로 놀란 표정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살렸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죽을 때 독고소영이 어떤 상태였는지는 린린도 알고 있었다.

    목이 몸에서 분리되었고 그녀를 살리기 위한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마침내 죽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 북리의천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그날의 감정이 생생했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왔던 것이다.

    ‘마선. 마선이라면……’

    린린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삼백 년 전 마선이라 불리던 천태랑의 천지영생대법.

    자연지기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며 특히나 바람과 흙의 기운에 능통하여 자기 자신이 그것이 되기도 했다고 전해졌었다.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으나 다른 이들이 만들어놓은 무공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모든 무공을 스스로 창안하였는데 그가 창안한 무공 중 후대에 제대로 전해지는 것은 없었다.

    그것을 익힐 수 있는 이가 없어서 실전되었다는 것이 정론이었다.

    천마는 아니었지만 당대의 천마보다 더 유명했던 것은 물론이었고 그로 인해 천마가 보낸 추살조로부터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을 당하다가 어느 날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

    그 후로 한 번도 마선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보며 그가 죽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 믿음은 점점 더 견고해졌다.

    그런데 왜 지금 그 이름이 떠오르는 것인지 린린도 알 수가 없었다.

    약관의 나이에 마신지경을 뛰어넘었다는 그는 수많은 기사를 만들어 냈다.

    그가 흙이 되었다가 흙에서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바람이 되어서 그런 거라는 말도 있었다.

    불과 물로도 변하려고, 남은 시간 동안 거기에 매달렸지만 그것은 끝끝내 실패한 것 같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마선에 대해 린린이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다.

    ‘흙이 되었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생명을 불어넣어 준 거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가능했을까?’

    린린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아진은 격해진 감정을 억지로 추스르고 추현화를 바라보았다.

    “의원님. 의원님께서는 혹시 검신 대협에 대한 얘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검신 대협의 고명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겠지요. 강호의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분에 대해서는 알 겁니다. 나도 그분에 대해서는. 아……! 공자가 그분의 제자군요. 맞아요. 대협의 제자가 산본의가의 둘째 공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신기해요. 강호의 영웅을 내가 만난 거잖아요.”

    아진은 끈기를 가지고 물었다.

    “의원님. 그러면 혹시…… 제 스승님께 정인이 계셨다는 것도 알고 계신지요?”

    “그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사도련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었는데. 오랫동안 대협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들었거든요.”

    아진은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보며 청했다.

    “의원님. 굉장히 외람된 부탁입니다만 제가 다시 한번 의원님의 맥을 짚을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렇게 하세요. 공자. 공자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사람을 속이고 흉계를 꾸미려는 사람 같지 않아서 나도 경계심이 생기지는 않네요.”

    그러면서 그녀는 아진에게 팔을 내밀었다.

    아진은 그녀의 팔을 그 전과 다르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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