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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66화 (266/470)

제266화

266화

“가주님이나 황후 마마를 뵙게 되거든 네놈이 직접 그리 말해 보거라.”

“제가 그분들을 어떻게 뵙겠습니까.”

말을 하는 품새가 정말 볼 수 있으면 얘기라도 해 보고 싶은 것 같았다.

“건방지게 굴지 말고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거라. 네놈 생각에는 네놈이 하늘 아래에서 가장 대단한 놈 같을지 몰라도 밖으로 나가면 네놈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널려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저는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하는 것은 싫습니다. 이건 삼류도 안 되는 왈패들이나 할만한 짓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냥 쥐어패서 죽이는 게 낫지 집에 몰래 들어가서 앵속을 놓고 오라니요.”

“명성을 흔들자는 계략이 아니냐. 이놈들은 다른 놈들과 다르다. 명성을 흔들어놓지 않으면 다른 놈들이 복수하겠다고 벼를 수도 있다. 조직도 갖추었고 충성심도 대단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니 그냥 가주님이 시키신 대로 하는 것이 낫다.”

곡주가 말을 해도 마영루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런 마영루를 보고 곡주가 웃었다.

처음에는 곡주도 제 수하들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지는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는 동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풀어 줬더니 어느 순간 이렇게 되어 버렸다.

힘이 역전되어 버린 것도 문제였다.

곡주가 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오다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자리를 손에 넣자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수하들이 충성만 져버리지 않는다면 그의 작은 제국이 견고히 유지될 것 같았고 곡주는 거기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마영루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

비교적 순순히 곡주의 말을 듣는 자들을 비웃는 거였다.

소하연은 마영루가 곡주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중요한 임무를 앞두고 분열을 일으켜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참았다.

지금부터는 자신의 임무만 생각하기로 했다.

일은 잘못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곡주가 걱정하는 게 뭔지도 알 것 같았다.

만약 곡주가 누군가의 음모로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자신도 곡주를 위해 복수를 할 것이라서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저곳인 듯합니다. 곡주님.”

안찰사의 장원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찰사나 되는 자의 장원이 그렇게 허름하고 소박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장원에는 전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건물 한 채와 별채 같은 것이 하나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창고가 있었다.

그래도 옆에 있는 창고와 별채 때문에 전각이 전각다워 보이는 효과는 있었다.

“안찰사 정도면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까?”

마영루가 말하자 곡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장원을 본 순간 곡주는 안찰사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감이 왔다.

“나는 이런 인간들이 정말 싫습니다. 인간이면 인간답게 추측이 가능해야 하지 않습니까. 곡주님?”

마영루의 말에 곡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일을 시작해라. 안에서 일을 하는 놈들이 있으면 전부 죽여버려라. 그리고 마공서와 앵속을 적당한 곳에 숨겨 두도록 해. 너무 잘 숨겨서 사람들이 그걸 찾지 못하면 안 된다.”

“존명!”

그때부터는 다섯 명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불평을 멈추지 않던 마영루도 막상 일이 시작되자 제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일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는 것에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집안에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안찰사 정도면 집안일을 도와주는 하인이 몇 명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지? 설마 하인을 하나도 두지 않고…….”

곡주는 그게 말이나 되나 해서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소식을 미리 전해 듣고 안찰사가 저택의 사용인들을 모두 빼돌린 것을 그들이 알 방법은 없었다.

마영루 역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거기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느니 계획하고 있었던 것을 끝내자는 생각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밖에서 본 것보다 더 기가 찼다.

천령곡만 해도 거의 100칸이 되는 장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마영루는 말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며 곳곳에 물건을 숨기고 나왔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상하던 것과 너무 다른 모습에 괜히 양심이 찔리고 불편해져서 그들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 자신이 악당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더라도, 만만치 않게 탐욕을 부리던 자를 끌어 내리는 것은 그다지 죄책감이 들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 안찰사는 그들이 만나 왔던 사람을 모두 통틀어 가장 상태가 안 좋았다.

“다 되었습니다.”

별채와 창고까지 돌아다니며 물건을 숨겨 두고 온 이들이 곡주의 앞에 섰다.

“수고했다. 이제 돌아가자.”

저항도 없고, 저항할 사람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순탄한 임무.

그런데도 웬일인지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부에서 기척을 가장 먼저 느낀 사람은 마영루였다.

“사람들이…….”

그러면서 그는 급히 도를 뽑아 들었다.

어디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느껴지지 않던 기척이었다.

북리의천이 그때까지 자신과 검풍대, 그리고 말들의 기척까지 완벽하게 감추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려면 기막을 어느 정도로 광범위하게 펼쳐야 하는 건지 상상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들어가는 내공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미리 공격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공이 남아돌아서 그랬다는데 그들이 할 말은 없었다.

마침내 북리의천이 검풍대를 이끌고 나타났을 때 곡주는 기가 막혔다.

안찰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인데 역으로 오히려 자기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저게 뭡니까, 곡주님! 가주님이 설마 저희를……! 가주님이 저희를 버린 것이 아닙니까!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개 같은!”

마영루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곡주는 그를 막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획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너무나 이상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곡주도 이상했어. 이런 일에 왜 우리를 전부 끌고 와야 했다는 거지? 이 일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거였나? 전혀 어렵지도 않은 일에 우리 전부를…… 혹시 곡주가 이 일을 꾸민 것 아니야? 가주의 명령이라는 말은 곡주가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고 어떻게 보장하지?’

불신은 불신을 낳고 의심은 의심을 낳았다.

사람들은 이제 그곳에서 서로 힘을 합해서 싸울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모두 위기를 모면할 생각뿐이었다.

가장 먼저 탈출을 시도한 사람은 마영루였다.

‘이렇게 많은 무인이라니. 게다가 관병들도 아니야. 이 자들은 숙련된 무인들이야. 최소가 일류. 아니…… 최소가 일류라니.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 아니야?’

마영루의 입에서 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 사이에서 도망치는 것조차 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된다.”

북리의천이 외친 것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날카롭게 반짝이는 것들이 날아왔다.

소도나 비수인가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그것을 날리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서야 그것이 침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 식으로 침을 날려서 공격하는 문파는 많지 않았다.

사천당문이 아니면 산본의가인데 사천당문도 근래에 와서는 그런 공격은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누구도 산본의가의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침에 강기를 덧씌워서 정확히 날려 사혈을 노리지 못했다.

침을 날려서 그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면 굳이 아까운 시간을 침을 날리면서 허비할 이유가 없었다.

‘산본의가인가! 그러면 저자는……!’

답은 간단하게 나왔다.

화점마다 검신의 용모파기집을 갖춰두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용모파기집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에는 상당한 괴리감이 존재했다.

곡주도 북리의천을 알아보고 침음성을 삼켰다.

‘북리의천이 왜 이 자리에 있다는 말인가!’

그자가 항주의 왜구를 토벌하고 항주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하니 그사이에 온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곡주의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져 갔다.

날아오는 침을 막는 것만 해도 힘이 들었다.

수백 송이의 민들레가 동시에 홀씨를 흩날리는 것처럼 침이 끝도 없었다.

가느다란 침을 보면서 그렇게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들 중 아무도 없었다.

“으으으아악!!”

마영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고함을 질렀다.

검풍을 만들어서 침을 날려 보내도 그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날아왔다.

억지로 끝마쳐 놓은 것을 매번 다시 시작하는 느낌에 마영루는 진심으로 긴장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이 내공을 소모해 가면서 침을 막는 동안 정작 북리의천의 무인들은 내공의 소모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침에 강기를 덧씌우느라고 그때는 내공이 소모되었지만 모든 침에 강기를 덧씌운 것도 아니었다.

그거야말로 곡주의 정예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검과 도로 그것들을 쳐내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모든 침에 강기가 덧씌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북리의천의 무인들 역시 계속 강기를 싣는 것은 어려운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침을 튕겨 내는 검에 강기를 싣지 않았는데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에게 전가되었다.

강기가 실린 몇 개의 침이 사혈을 노리고 들어왔던 것이다.

화들짝 놀라 침을 뽑아낸 후에 그들은 날아오는 침을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네놈들이 무엇인데 우리 앞길을 막는 것이냐!”

곡주는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북리의천은 재미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너희가 이곳에 와서 한 짓을 알고 있다. 너희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이 이부상서라는 것도 알고 있고 안찰사의 명성을 해치고 정도영을 복직시키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만하면 답이 되었으면 하는데 어떤가.”

“……!”

곡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누가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했고 그 후에는 역시 자기가 배신당하고 버림받은 거라고 믿었다.

“이런 멍청한!”

마영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가 듣기에는 곡주가 가주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림당했다는 것 같았고 곡주에게 줄을 댔다가 자기마저 난처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천령곡의 정예들은 복잡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곳에서 살아 나갈 방법이 있기만 하면 좋을 텐데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너희가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너희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해 왔는지 황상께 고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너희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닥쳐라!!”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북리의천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동안 해 왔던 일을 말하면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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