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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61화 (261/470)
  • 제261화

    261화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무공을 배우고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의 기량을 선보일 일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동창 제독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습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동창 제독은 하월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길게 내려와 있던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밖에 소리가 들리도록 해 놓은 장치였는지 이내 사람들이 들어와 하월을 데리고 나갔다.

    그들은 하월과 함께 가는 동안 하월이 주의해야 할 것과 숙지해야 할 것을 끝없이 주입했다.

    지금부터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겠다고 생각하며 하월은 그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동창이나 황후전이나 하루는 똑같았지만 하월에게는 그곳에서의 시간이 훨씬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세가에 도착한 북궁천영은 곧바로 말에서 내리는 대신 멀리에서 세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명성은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영화롭던 순간이 망막에 새겨진 듯 잊히지 않아서 더 괴로운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그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텐데 그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문을 지키고 서 있는 무사의 수만 해도 그랬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숫자가 줄어 있었고 서 있는 자들의 기세는 북궁세가의 무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었다.

    전 같았다면 당장 그들을 향해 가서 호통을 쳤을 것이다.

    북궁세가의 무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기에 그들을 쫓아낸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음날이 되면 세가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무인들이 다시 줄을 지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눈앞에서 아무리 실망스러운 모습을 봐도 그냥 자기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북궁천영이 세가로 들어가는 동안 무인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전과 같은 절도 있는 동작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북궁천영의 귀에, 뒤에서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희한한 일이지. 작은 공자님이 어떻게 동창에 들어갔다는 건지. 언제 무공을 익혔냐는 말이야.”

    “동창에 들어갔다는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며? 나는 그렇게 들었는데?”

    “동창의 환관이 데려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잖아. 그러면 확실한 거지.”

    그들에게도 이미 소문이 퍼진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북궁천영은 걸음을 빨리했다.

    지금쯤 아버지도 그 소식을 궁금해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가에 돌아오기 전 북궁천영은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지만 들리는 소식은 믿기 힘든 것들뿐이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경내를 서성이고 있던 세가주가 북궁천영을 향해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북궁천영에게 들을 말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던 품새였다.

    “소가주는 그 이야기를 들었느냐.”

    “예. 아버지.”

    “그게 다 무슨 말이라 하더냐. 황후 마마는 무사하시더냐.”

    북궁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큰 문제는 황궁의 심처에서 황후가 공격을 당했다는 것인데 그 후에 일어난 일의 파장이 워낙 커서 그것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감히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이냐. 누가!”

    “그것이 중요하겠습니까.”

    북궁천영은 그것이 대수롭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누가 그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그랬을 뿐이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소가주.”

    “황후 마마께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여기고 계십니다. 일은 일어났지만 마마께서는 다치지 않으셨고 황상께서는 황후 마마를 걱정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정이 없다고 해도 그런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고 걱정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후 마마는 이참에 명빈을 찍어낼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명빈 마마를 말이냐.”

    가주는 멍한 얼굴로 북궁천영을 바라보았다.

    황후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 일을 당하고 놀란 가슴이 다 진정되지도 않았을 텐데 벌써 그런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황후가 공격을 당했다고 해서 황상의 마음이 황후에게 돌아선다거나 황후를 동정할 거라는 예상은 너무 섣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하실 것이라 하더냐.”

    “뻔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명빈이 신임하는 자들이 그 일에 연루된 것처럼 꾸며서 이번 기회에 도려내려고 할 것입니다.”

    “혹시 그 일에 네가 나설 참이냐.”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물린 후였지만 북궁천영은 더욱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구문제독과 금의위, 동창이 맡은 일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가끔은 여러 조직이 동시에 동원되기도 하면서 경계가 더욱 희미해졌다.

    한 가지 일이 황족 수호와 황성 경비처럼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경우도 많아서 더욱 그랬다.

    이번 일 역시 그리될 터였다.

    황후의 특별한 명령까지 있었으니 더더욱 구문제독부의 역할이 커질 터였다.

    “흠…… 그래도 좀 안 되기는 하였구나. 한때 황상의 총애를 받았다고는 하나 지금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아니더냐.”

    북궁천영은 그런 아버지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서 노인네의 회상을 들어 줘야 하는 건가 해서였다.

    “하월이 놈 얘기는 무엇이냐. 그놈은 무공을 익힌 적이 없질 않느냐.”

    “잔재주를 부린 모양입니다. 무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창에 바보들만 있는 것도 아니니 그놈이 부린 꼼수는 자연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가주는 북궁천영을 잡아두고 몇 가지를 더 묻고 난 후에야 그를 놔주었다.

    “들어가서 쉬도록 해라.”

    “예.”

    북궁천영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제 처소로 돌아갔다.

    전각 지붕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존재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른 채였다.

    북궁천영 정도라면 아무리 숙련된 자객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척을 알아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구문제독의 목숨을 노리는 이는 많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비하는 것이 필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북궁천영이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은 그들이 이미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였다.

    아진에게 강력한 조종을 당하고 먼저 혈루로 향했던 두 살수는 그 후로 눈물 없이는 말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었다.

    혈루의 루주는 만만한 자가 아니었고 갑자기 두 살수가 들이닥치자 정해진 신호를 통해 수많은 살수를 불러들여 그들을 공격하게 했다.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는 죽지 말라던 명령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몇 번이나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쏟아진 채로도 그들은 다시 살아났고 상처는 아물었으며 뼈는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붙었다.

    그 모습을 보고 루주와 살수들이 충격에 빠져 있는 동안 두 살수는 단호하게 무기를 휘둘렀고 결국 의뢰인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구문제독 북궁천영.

    왜 그자의 이름이 거기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두 살수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혈루에 있던 마지막 사람까지 전부 죽여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이곳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을 나눈 것도 아니었다.

    그저 독자적으로 임무를 맡은 두 살수가 우연히 함께 행동에 나선 것처럼 전각 지붕에 자리를 잡고 북궁천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북궁천영이 들어간 처소에 불이 밝혀지고 시비와 하인들이 드나들며 그의 시중을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과가 완전히 끝난 후에 두 사람은 북궁천영의 거처로 향했다.

    “……웬 놈들이냐!”

    자신의 기감을 벗어날 수 있는 자가 없을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던 만큼 북궁천영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두 살수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기세 좋게 검세를 뿌렸다.

    그러나 북궁천영은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척을 숨기고 기습을 감행했다면 모르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몸을 드러내놓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살수인 자기들에게 유리한 공격을 포기하고 북궁천영의 전면에 나섰다.

    한눈에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그들이 천마의 섭혼술에 당해 정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게다가 이미 여러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북궁천영은 그들을 죽이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처럼 그들의 몸은 단칼에 쓰러졌다.

    거기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북궁천영의 예상 범위 내에서 일어났다.

    “……!!”

    바닥에 쓰러졌던 이들이 다시 일어나서 처음과 다른 바 없는 모습으로 움직일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격투가 벌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북궁천영은 벌써 몇 번이나 살수들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시신은 차갑게 식을 틈도 없이 다시 일어섰다.

    “어떻게 된 거라는 말이냐!!”

    북궁천영이 소리치며 밖에 있던 이들을 불러들였다.

    “아무도 없느냐! 자객이 들었는데 네놈들은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그 소리를 듣고 경비 무사들이 안으로 득달같이 달려 들어왔다.

    아무리 가세가 기울었다고는 하지만 구문제독의 처소에 자객이 들었다는 말은 쉽게 믿기지 않았다.

    검을 빼든 이들이 들어와 고함을 쳤고 날카로운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퍼졌다.

    감히 북궁천영을 공격하고 그로 하여금 지원을 요청하게 한 살수들이라 실력이 대단할 거라고 여겼지만 살수들은 생각 이상으로 약했고 금방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나 간단히 심장이 뚫리고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목뼈가 부러지며 고개가 돌아갔다.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의 몰골이 아닌데.

    그런데도 기어이 그 몸이 다시 움직였다.

    “으아아악!!”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하며 성급히 검을 검집에 넣은 자의 목덜미가 살수의 손에 붙잡혔다.

    우드득-.

    살수는 표정이라고는 없는 얼굴을 하고 북궁세가의 무인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려 갔다.

    시간이 지나도 살수들의 실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그들이었고 바닥에는 세가 무인들의 시신이 수북하게 쌓여 나갔다.

    살수들에게는 승리의 환희도, 살아남았다는 감격도 없었다. 그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검을 움직일 뿐이었다.

    북궁천영은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싸움의 결과를 안다고 생각했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고 제 앞에서 쓰러지는 것은 살수들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죽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휘두르는 검격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그들은 다시 일어서서 북궁천영을 향해 검을 들이밀었다.

    압도적인 무공을 선보이던 북궁천영도 내공과 체력이 한계에 이르자 속수무책이었다.

    슈각-.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검이 그의 가슴팍을 베고 지나갔다.

    비틀거리는 순간 연거푸 검이 들어오고 그의 가슴이 길게 베어졌다.

    “……!”

    북궁천영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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