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252화
아진의 전음이 들려온 것과 동시에 린린이 단리서언의 백회혈에 손을 얹고 공력을 밀어 넣었다.
그것은 단리서언뿐만 아니라 린린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혈을 직접 공격하는 것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산본의가가 아니었던가.
믿을 수 없는 집중력으로 순식간에 막대한 공력을 불어넣어 몸을 진탕시키고 린린이 손을 떼 버리자 단리서언의 영혼과 육신이 순간적으로 분리되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차지한 육체에 대한 지배를 잃으면 통제할 수 없는 대법.
결과는 참혹했고 정교하게 이루어지던 질서가 무너지며 단리서언의 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모습은 마치 충독에게 잠식된 사도련주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일 정도였는데 얼굴과 몸에서 수많은 형체가 바뀌며 꿈틀거리다가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기막을 두를 테니까 여기에서 해치워. 린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아진이 말하자 린린이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가 해 줘. 소림 방장님에게 배운 장법으로 단리서언의 몸을 태워 줘. 단리서언의 육신은 그렇게 처리해야 할 것 같아.”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린린이 있던 자리로 가서 단리서언의 몸속에 불가의 성력을 밀어 넣었다.
단리서언의 몸 안에서 기운이 부딪치며 폭음이 일어났다.
그것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그때마다 살점이 솟구치고 피 분수가 일며 뼛조각이 덩달아 튀어 올랐다.
“…….”
“…….”
아진과 린린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서 비급을 구한 걸까…… 비급을 구했을 때는 이런 결과를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겠지?”
아진이 말하자 린린은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알 것 같아서. 그 비급. 어떻게 구했는지.”
린린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알려 줄까? 알려 주면 오라버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단리서언처럼 될 수 있다면.
영체이혼대법으로 몸을 갈아탈 수 있고 그 몸의 능력을 제 것처럼 쓸 수 있게 된다면 그 무공이 탐이 나겠냐는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 내가 왜 내 몸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몸을 노리겠냐?”
“반박을 못 하겠다. 그래. 멋져. 그래야 우리 오라버니지. 나도 그래.”
“너도 그래? 너는 왜? 린린. 잘 생각해 봐. 너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두 사람이 어느새 툭탁거리고 있을 때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단순히 그 기척만으로도 그들이 소청과 마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허둥지둥 두 사람에게 다가오자 린린은 설인정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루주는 구하지 못했어.”
그들은 혹시 그러지 않았을까 하며 걱정하고 있다가 린린의 표정이 그렇게 슬퍼 보이지 않는 것에 안심한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지존.”
역천마의가 설인정의 시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했다.
“응. 다시 만나게 되겠지.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기대하면서 기다리려고 해.”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존.”
숨 가쁜 시간이 지나간 교전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역천마의와 비고의 경비 무사들, 그리고 섬마대주와 대원들까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었을 터였다.
모여든 사람들은 그동안 설인정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린린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패월악 교주가 아니라면 단리서언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정말…… 정말 지존이십니까…….”
몇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맞다. 내가 패월악이다.”
“돌아오신 것입니까. 교주님. 정말 돌아오신 것입니까……!”
그들이 얼마나 감격에 들떴는지는 모르지 않았지만 린린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시 교주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신교가 다시 안정된 기반 위에 설 때까지 지켜보겠다만 내가 교주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누가, 누가 지존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전사들은 안타까운 듯 물었고 린린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신교다. 힘을 숭상하는 신교라는 말이다. 누가 그 자리에 적합한지는 신교의 섭리대로, 그리고 마신님의 뜻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린린의 말에 아진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아진은 산본의가에서 함께 했던 마두들 중 한 사람을 지목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교의 교주는 역시 다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시 혼란이 찾아올 것입니다.”
후계 구도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의 수장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 조직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빠르게 쇠퇴하는 일도 종종 생기는 법이다.
권력을 양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 분열을 일으키는 동안 그들의 약점을 노리고 공격해 오는 이들에게 무너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많은 이들이 그 점을 염려했지만 린린은 고개를 저었다.
“본교는 약하지 않다. 하지만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내가 이곳에 남아서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볼 것이다. 혼돈을 야기하려는 자들은 먼저 나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린린은 그곳에서의 역할이 컸다.
린린이 뱉은 그 한 마디로 동요가 크게 가라앉았다.
그것을 보며 아진은 패월악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천상천면의 장례를 치를 것이다. 너희는 천상천면처럼 본교를 위해 밖으로 나가 조용히 희생해 온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가 누리는 삶은 그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라.”
“예, 지존!”
단리서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그것을 궁금해하는 이도 없었다.
오직 교주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리서언이 죽은 이 시점에서는 다시 린린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 시간부터 본좌가 교주 대행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나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대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죽이겠다.”
린린에게서는 어느새 패월악의 기세가 자연스럽게 풍기고 있었기에 겉모습이 다르다고 해서, 그리고 린린이 아직 어린 여자라고 해서 우습게 보는 이는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린린이 이곳에 서 있을 수도, 단리서언을 죽일 수도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소청이 아진의 옆으로 와서 신기하다는 듯이 린린을 보고 있었다.
“네 사고는 정말 대단하지?”
아진이 소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못 믿겠어요. 사고님이 저런 분이라는 거요. 정말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스승님.”
소청은 천마신교라는 완전히 색다른 곳에서 린린이 수많은 사람을 압도하는 광경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사고님은 저희랑 같이 돌아가시는 거지요?”
소청은 걱정이 되는 것처럼 아진을 보며 물었다.
“그래. 그럴 거야. 대행이라고 했잖아. 교주가 선출돼서 자리에 오르는 걸 보면 갈 거야.”
“다행이에요. 스승님. 저도 여기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면 모르지만 그게 아니면 앞으로 사고님을 뵙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건가 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사고를 그렇게 좋아하고 있는지 몰랐구나. 너한테 잘해 주지도 않잖아.”
아진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소청의 눈이 동그래졌다.
“전혀 아닌데요. 스승님? 저는 사고님이 정말 좋아요. 저는 정말로 사고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것은 또 의외라서 아진이 소청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다고? 왜?”
“사고님은 멋지잖아요. 스승님이랑 사조님도 멋진데 사고님은 훨씬 더 자유분방하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별로 죄책감도 안 느끼고 사고님에게 편할 대로 생각하시고요. 저도 꼭 그런 사람이 될 거예요.”
다른 부분이 아니라 그런 막 돼 먹은 모습이 소청에게 큰 감명을 남긴 것 같아 아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 번 린린이 사람들의 앞으로 나선 후에 그 주위로 수많은 신교도가 모여들었고 아진과 소청은 린린과의 사이에 사람들의 벽이 생겨 가로막히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파는 점점 더 늘어났다.
린린이 아진 쪽을 한 번 보기는 했지만 우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에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러자 소청이 아진의 손을 꼭 잡았다.
“스승님. 제가 있으니까 너무 슬프지는 않으시죠?”
“응?”
“사고님이 바쁘셔도요. 그래서 신경 써 주지 못하셔도 당분간은 저하고 이렇게 기다려요.”
“그래.”
아진은 자기가 딱해 보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마의도, 비고의 경비 무사들도, 그리고 섬마대도 사람들 틈으로 녹아들어 가는 듯하더니 그들 주위로 수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것은 천마신교의 변화였다.
기민하게 변화를 감지한 사람들이,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을 향해 붙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들은 조급하게 굴 이유가 없겠지만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 어떻게라도 잘못을 탕감받으려고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원로회에 원로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존. 호법들도 그렇습니다.”
“단리서언이 부른 후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라지기 전에 모두 단리서언을 만난 듯합니다.”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보고가 이어졌다.
린린에게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기들이 알아 온 것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지금 단계에서 린린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기도 했다.
“단리서언을 돕거나 묵인한 채로 지금껏 신교를 잘못된 방향으로 통치한 사대마가와 여러 마종에 대해서는 곧 조사를 시작할 것이다. 그자들이 사사로이 신교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여라.”
“존명!”
교주의 명을 따르는 수 개의 무력부대가 하나처럼 움직이며 각자 구름처럼 흩어졌다.
린린은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수시로 명령을 내리며 그 상황을 정리했다.
각자 할 일을 가지고 자리를 떠났고 얼마쯤 지나자 린린도 아진과 소청에게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만두 멋있다.”
아진이 말하자 린린이 피식 웃었다.
“앞으로 얼마 정도는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내가 없으면 혼란스러울 거야. 교주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암살할 수도 있고. 그래도 내가 있으면 조직을 임시로라도 통솔할 수 있으니까.”
“그래. 이해해. 며칠 여기에서 머물면서 주변에 있는 약초를 캐면 되겠다.”
아진의 말에 린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소청아. 이 사고님 멋있지?”
린린이 소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소청은 감격에 겨운 듯 눈을 반짝이며 정말 그렇다는 말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사고님이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 줄 몰랐어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사고님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계속 서 있던데요? 눈이라도 마주치면 기절할 것 같았어요.”
“그래. 그랬을 거다. 신교의 전사들에게 교주라는 건 그런 존재지.”
린린의 말에 신교를 향한 애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그런데 차기 교주는 어떻게 뽑는 거야? 나는 역천마의를 추대할 줄 알았는데.”
“역천마의가 될 가능성도 있기는 하겠지만 역천마의가 교주가 된다고 해도 내가 추대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능력을 증명해서 올라가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말이 나와.”
“그렇기는 하겠다.”
아진은 린린이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유능하게 일 처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세상에서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 린린은 이미 신교를 통치했던 전력이 있었고 그런 것이 능숙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