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251화
“역행!”
아진은 소청의 아버지가 남겼던 무공서를 바탕으로 해서 시험 삼아 만들었던 술법을 떠올렸다.
구결과 초식을 전부 완성하고도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어서 실패한 술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공을 소망하며 외쳤다.
성공만 한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술법.
일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었지만 순식간에 이갑자 이상의 내공이 소진되어서 웬만한 상황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을 술법이었다.
실패한다면 당장 린린의 몸을 안고 도망쳐 제가 가진 마나를 모두 쏟아부어서라도 린린을 살려야 했다.
그러나 구결에 맞춰 기혈 곳곳에 공력을 밀어 넣은 순간 아진의 몸이 설인정의 옆으로 떠밀 듯이 돌아와 있었다.
아직 린린의 몸에는 불이 붙지 않았고 단리서언도 불을 만들지 않은 상태였다.
아진은 검을 꺼내 수십 개의 검영을 만들어 단리서언을 향해 날렸다.
아진이 역행을 사용해 현재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지 못한 린린은 갑자기 그가 그러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단리서언을 향해 협공을 펼쳤다.
아진과의 협공.
그렇게 하고서 쓰러뜨리지 못할 상대는 없다고 린린은 자신했다.
그랬기에 자신의 검이 연달아 단리서언에게 막혔을 때 린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진도 마찬가지였다.
아진은 지금 절대로 설렁설렁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 한 번의 공격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것이 자기가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정확성을 기했다.
그러나 단리서언에게서는 도통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의 검격을 나눈 끝에 아진은 그것이 단리서언의 압도적인 공력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리서언은 단리서언대로 난감했다.
그는 검으로 겨룰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일이 꼬였던 것이다.
역행의 효과로 시간이 돌아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진뿐이었다.
그것이 비록 일 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을 돌이켰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단리서언은 아진의 행동이 이상하게 연결된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그때부터는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사람은 단리서언이 넉넉히 막아낸다고 생각하며 놀랄 수도 있었겠지만 단리서언 역시 손이 엉키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단리서언은 당황한 속에서도 검을 휘둘렀다.
자신이 영체이혼대법으로 차지한 몸이 자연지기를 극성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외에 검술의 성취까지도 높았으니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크게 봉변을 당할 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리서언은 좀 전의 그 기이한 일을 마음속에서 지워 버렸다.
‘어떻게 저런 공력을 가진 게 가능한 거지?’
아진은 단리서언에 대해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십갑자가 넘는 공력만큼은 상상하지 못한 바였다.
그 압도적인 공력으로 계속 몰아붙인다면 그와 린린이 함께 협격을 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듯했다.
단리서언도 그 생각을 한 듯 전세를 공력 싸움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먼저 상승무공을 펼쳤고 아진이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공력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그 순간에도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단리서언의 묵직한 검이 들어왔다.
아진은 손목이 저릿해져 오는 통증을 느꼈다.
자기가 그렇게 느낄 정도라면 린린에게는 충격이 훨씬 더 클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린린도 아진이 그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가 버텨 준다면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아진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나서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린린은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면서 기회가 오면 연격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리서언의 검을 몇 번 받아보고 린린은 아진이 왜 그랬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이건 신교의 검이 아니다. 설마 무당파의 검?’
천마신교의 교주가 태극검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무당에서 안다면 그 자리에서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었다.
단리서언의 검은 신묘한 변화를 보이며 아진을 노리고 들어왔다.
극에 이른 태극검이 아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버티면 조만간 소청과 마두들이 올 터였다.
그때까지 버티면 단리서언을 놓치지 않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아진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천마신교에서 린린이 혼자 힘으로 단리서언을 꺾지 못하고 다른 이들과 협격을 해서 무너뜨린다면 다른 이들이 린린이나 다른 마두들을 진심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단리서언이 가진 힘은 정상적이지 않았고 다른 이들의 영혼을 속박해 두고 있다가 영체이혼대법으로 그들의 몸을 차지해 싸우는 것이지만 신교의 사람들은 그것까지도 단리서언의 능력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 상태로 단리서언을 쓰러뜨린다면 신교도와 전사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진은 몇 번 린린을 쳐다보았다.
린린 역시 단리서언을 상대하는 동안 생각이 많아지는 얼굴이었다.
아진이 그렇게 생각을 했을 정도면 신교의 교주였던 린린이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오라버니. 지금부터는 내가 싸울게. 지더라도 이건 내가 싸워야 해.”
린린이 말했을 때 아진은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오히려 단리서언이 그 상황에 어리둥절해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승기를 잡은 것도 아니고 우위를 점한 것도 아니며 시간이 흐를수록 린린이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단리서언은 린린이 자신의 공력을 모를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보인가? 아니면 천상천면과 함께 죽을 각오를 한 것인가?’
어떤 것이건 상관은 없었다.
단리서언은 이제야말로 사람들의 앞에서 자기가 패월악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린린.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이 끝이 아닌 경우가 있더라. 지금의 너는 완성된 네가 아니야. 사람은 싸우는 동안에도 변할 수 있어. 싸움의 끝에 서 있을 너를 기대할게. 내가 모르는 너를.
아진은 린린에게 전음을 보냈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이기기만 해, 린린.
그 말에 린린이 피식 웃어 버렸다.
-솔직히 너도 질 자신 없잖아. 안 그러냐? 산본의가에서 태어나 놓고 말이야.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해. 시끄러워서 집중할 수가 없잖아.”
이 사람이 혹시 단리서언 편인가 싶을 정도로 계속 떠들어대는 통에 린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조바심 나는 것 같던 린린의 얼굴에는 한층 여유가 생겼다.
어쩌면 마찬가지이리라.
끝을 끝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설인정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사람은 그녀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자신의 삶을 끝마쳤는지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다른 이들은 설인정을 모르니까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미안했던 마음이 발목을 잡았나 보구나. 너무 늦어 버렸다는 죄책감이 손을 굳게 만들었나 봐.’
린린은 조금씩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설인정. 본좌를 좋아해 주어 고맙다. 나 자신도 좋아하지 않았던 나를 오랫동안 기억해 주어 고맙다. 다시 만나자. 염마를 만나거든 꼭 내 얘기를 해. 네가 내 수하라고. 내가 자랑스러워하던 수하라고.’
어느덧 린린의 검이 모든 구속을 벗어던진 듯 자유롭게 허공을 수놓았다.
‘여기에서 내가 지면 염마가 웃겠구나. 단리서언에게도 진 천마 얘기를 왜 하냐면서. 너를 위해서라도 이겨야겠어. 너도 내가 지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지, 설인정?’
린린의 얼굴에는 어느덧 웃음이 지어졌고 모든 긴장감과 부담을 벗은 그녀의 검은 점점 더 자유로워졌다.
린린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뒤로 빠져 있던 아진은 마교도들의 싸움이 그렇게까지 정당해야 하나 회의도 들고, 단리서언의 허점이 뒤늦게 보이기도 해서 린린에게 슬금슬금 공략법을 알려 주었다.
-단리서언에게 몸을 뺏긴 사람의 특징인 것 같아, 린린. 검을 휘두를 때 좌수가 뒤로 빠져. 단리서언의 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몸이라서 단리서언이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 움직임을 읽고 네가 먼저 반응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그 습관을 알고 있다고 네가 말해 버려. 그러면 그게 신경 쓰여서 잠깐이라도 동작이 엉키게 될 거야. 그때를 노려.
린린은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의 말을 듣고 나서 보니 정말 단리서언은 매번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건 재미있어서 그러는 건가?”
그것은 여러 효과를 동시에 발휘했다.
그 정도 검격이 오고 갔으면 이제 슬슬 지칠 때도 됐을 거라고 생각하던 단리서언은 린린의 목소리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에 놀랐다.
설마하니 환생한 린린의 내공이 그렇게까지 심후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단리서언은 린린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했다.
“단리서언. 그건 어떻게 하다가 얻게 된 거야? 무공비급을 손에 넣기라도 했나? 정당한 방법이 아니었을 건 확실할 테고. 그것도 실력이라고 우기면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섬마대주라면 자긍심은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강해지고 싶던가? 비루하고 구차하게라도?”
린린이 웃으며 말하자 단리서언은 린린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꺼낸 말인지 몰라 화가 났다.
그러다가 린린에게 괜히 휘말린 거라고 생각하며 기수식을 취하고 검을 찌르려 하자 린린이 뒤로 풀쩍 뛰고 웃으며 단리서언의 자세를 흉내 냈다.
그러면서 뒤로 돌린 손을 배배 꼬며 기녀가 춤을 추는 것처럼 흉내 내자 단리서언이 기가 막힌다는 듯 린린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다시 검을 휘두르려 하더니 린린이 한 동작이 뭐였는지 비로소 깨닫는 얼굴이었다.
“……!”
“몰랐던 거야? 나는 재미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지. 이제 어쩔 거지? 그런 습관은 바로 고쳐지지도 않는데. 거기에 신경 쓰면 다른 것들이 엉키게 될 거고. 재미있겠네. 자. 섬마대주. 어떻게 할 건지 보여줘.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건지.”
단리서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러나 그는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리서언의 착각이었다.
새끼발가락의 발톱 하나만 깨져도 온몸을 지탱하는 힘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균형이란 것은 그렇게 오묘하고 세심하게 이루어지는 법이라서 그가 모르는 척 무시하려 한다고 해서 쉽게 될 일이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웃으며 조롱하던 린린의 기세는 다음 순간부터 곧바로 변했다.
같은 사람이 맞는가 할 정도로 무섭게 단리서언을 노린 린린의 검에서 서서히 검강이 일어섰다.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왜 지금까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가 할 정도로 압도적인 기세였다.
린린은 단리서언에게서 시선을 조금도 떼지 않고 그를 압박해 들어갔다.
단리서언이 집중력을 놓친 시간은 몇 초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린린은 완벽하게 기회를 잡았고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 시간 동안 단리서언이 헤매도록 만들었다.
단리서언은 그동안 해 왔던 것을 이번에도 간단히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동작이 되지 않았다.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동작이, 그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분석하며 떠올리려고 하는 순간 어색해졌다.
그것이 처음부터 자신의 무공이었고 자신의 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엉키지는 않았을 텐데 린린에게 동작을 미리 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면서 행동에 제약이 가해졌다.
그때를 노리던 린린은 자신이 아껴두었던 절초를 펼치며 그를 검로에 완전히 가두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검의 폭풍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는 생각으로 초조해진 단리서언은 그 몸을 버리고 다른 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리서언이 둘 수 있었던 악수 중 가장 나쁜 수였다.
-단리서언의 단전과 백회혈, 둘 중 한 곳을 노리고 네 공력을 주입해서 진탕시켜. 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