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250화
교전 전체가 통째로 흔들렸다.
또 다른 힘을 동시에 사용해서 바닥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천상천면이 오해를 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땅이 갈라지고 요동하고 있었다.
교전 안의 수많은 집기가 갑자기 생겨난 계곡 같은 균열에 푹푹 가라앉고 부서졌다.
단리서언은 천상천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 다가왔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바랄수록 천상천면의 얼굴은 더욱 편안해졌다.
단리서언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천상천면이 갖게 된 수많은 얼굴에는 원래 주인이 있었다.
상상으로 빚어낸 산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가 획득한 얼굴은 그녀와 격전을 치르고 천상천면의 앞에서 죽은 자들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의 얼굴을 제 것으로 삼았고 천 개의 얼굴을 훔치는 동안 천상천면의 능력이 개화해 다른 이의 능력을 훔치는 것도 어느 정도가 가능해졌다.
거기에는 희생이 따랐고 제 피를 제물로 바쳐야 했는데 그 처절함 속에서야 능력이 발동되었다.
그것이 천상천면이 그때까지 계속 단리서언을 도발한 이유였다.
단리서언의 손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얼음이 그의 주먹 위에 점점 크게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저러면 저 안에 있는 손은 어떻게 되는 건가?’
천상천면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냐하면 자기도 그 능력을 사용한다면 같은 걸 느끼게 될 테니까.
단리서언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러면서 천상천면의 얼굴을 노리고 위에서부터 찍어누를 생각으로 뛰어오른 순간 천상천면은 시간을 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먹이 날아오는 때를 노려 얼음벽을 만들었다.
성공이었다.
“……!!”
단리서언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붉게 부풀었다.
부푼 것은 습막이 차올라서였다.
천하의 단리서언이 아파서 울다니.
천상천면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웃었다.
단리서언은 천상천면이 웃는 것을 보고 당장이라도 천상천면의 얼굴을 부숴 버리고 싶었지만 좀 전에 일어난 일이 이해되지 않아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인가.
그는 멍한 얼굴을 하고 천상천면을 보았다.
천상천면은 기능을 다 한 얼음벽을 유지하느라고 마기를 낭비할 필요가 없어서 그것을 치워 버렸다.
‘저게 어떻게…… 천상천면이 이런 걸 할 수 있었다고?’
놀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생전 그렇게 효율적인 움직임은 본 적이 없었다.
단리서언이었다면 위아래 공간을 전부 막는 벽을 만들었을 것이다.
천상천면처럼 딱 주먹만 막는, 작은 창처럼 조그만 벽을 만들었다가 없애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천상천면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얼음벽을 만들었다가 치우고도 그다지 힘든 기색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천상천면도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이 갑자? 아니면 삼 갑자쯤 되려나?’
단리서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천상천면이 이 능력을 계속 사용하면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고작 반 시진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원로회와 호법들의 진기를 흡수한 단리서언의 공력은 이십 갑자가 넘었다.
다른 사람 같았다면 그 많은 진기를 흡수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날을 위해서 공력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몸에 미리 만들어 두었는데 그것이 주효했다.
“신기한 짓을 한다만 여기까지다.”
단리서언은 천상천면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말했다.
“친절하기도 하지.”
천상천면이 조롱을 담아 말했다.
단리서언은 천상천면이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보겠다는 듯 가만히 시선을 주었다.
고요하게 일렁이는 것이 괜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천상천면도 이제 곧 한계가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리서언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버티는 것뿐이었다.
죽음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패월악 교주의 부하로서 용기 있는 모습으로 죽겠다는 생각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바람은 말이야.”
천상천면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면서 단리서언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바람이 일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도 없는 바람이, 교전의 안에서 불고 있었다.
천상천면은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벽?
아니. 여기는 아직 벽이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뼈가 부러진 것을 느끼며 천상천면은 자기가 지금 어디에 부딪힌 걸까 하고 생각했다.
“궁금한가? 그것도 바람인데.”
단리서언이 웃으며 말했다.
“두 바람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그 말은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말 같기도 했다.
천상천면의 몸이 으스러질 듯이 뭉개졌다.
두 바람이 그녀의 몸을 양쪽에서 몰아세우며 몸이 거대한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아…….’
이런 죽음은 천상천면의 수많은 상상 속에서도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전신 모공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이거. 생각보다 더 끔찍하겠다…… 지존께서는 내 시신을 어떻게 보실까. 역겨워서.’
천상천면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제 시신을 보고 얼굴을 찌푸릴 지존이 상상되었다.
그것이 못내 죄스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심기만 어지럽힌 것은 아닌가 해서.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 같아서.
눈앞이 하얗게 터지는 것 같더니 온통 하얗기만 한 벽 위로 진한 핏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상상이었겠지만.
‘아프다. 아직은 살아 있나 봐.’
조각조각 부서져 어그러진 천상천면의 얼굴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지존의 삶에 두 번이나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 호흡에 대한 집착처럼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천천히, 천천히 가라앉았다.
‘다음에는 정말. 지존의 조카로 태어나면 좋겠어요. 서 소협의 아이로요.’
그녀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단리서언은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소름이 끼쳐서 천상천면을 노려보았다.
상대를 그렇게 만들어 놨는데 두려움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상대를 그런 모습으로 죽였으면 왜 제 몸이 떨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보았던 천상천면의 처연한 모습을 보며 단리서언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영원한 고통 속에 남겨지는 이는 자신이고 천상천면은 짐을 훌훌 내려놓고 이곳을 떠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단리서언은 거기에 그대로 있다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 같아서 돌아섰다.
그가 돌아선 것과 두 사람이 내려선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들의 다리는 경공의 마지막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곳에 이제 막 도착해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두 사람의 투명한 눈에 담긴 것은 온통 의혹뿐이었다.
“……!”
단리서언은 눈앞에 서 있는 두 남녀가 패월악의 환생과 그녀의 오라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리서언의 시선이 분주하게 오갔다.
그것은 린린도 다르지 않았다.
린린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요란한 일이 벌어진 것은 알겠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정도 일이 벌어지려면 사대마가가 한꺼번에 덤빈 건가 하면서 고개를 돌리던 그녀의 시선이 한 곳에 걸려서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그냥.
그것은 그냥 피투성이가 된 평범한 시신일 뿐이었는데 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천상천면.”
린린이 그녀를 불렀다.
“내가 왔다. 천상천면. 대답해. 설인정.”
그 이름을 부르면서 단리서언을 노려보았다.
그녀를 어떻게 했냐고 물으려는 얼굴이었다.
단리서언은 숨이 턱 막혔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었지만 그 눈은 분명 지존의 것이었다.
누구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압도하면서, 태어난 것이 수치스럽게 느껴지도록 노려보지는 못했다.
패월악이 아니라면.
아진은 어느새 천상천면에게 다가갔고 그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와 그대로 천상천면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제발. 제발 성공해. 오라버니. 제발 성공해 줘.’
린린은 그를 믿었다.
그리고 설인정을 믿었다.
린린의 오래된 기억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리던 설인정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신기한 것임을 린린은 미처 알지 못했다.
린린은 눈앞에 단리서언이 있는 상황인데도 그 뒤에 있는 아진과 설인정에게서 온전히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질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단리서언은 손을 펼쳤다.
지금껏 봐 왔던 술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불꽃은 스스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크기를 키워 나갔다.
단리서언은 린린과 아진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 자기에게도 벅차다는 것을 깨닫고 린린을 불기둥에 가두었다.
성문처럼 높이 치솟은 불길은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넘실거리며 린린의 생명을 노렸다.
린린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견디기 어려운 화기를 무시한 채 아진과 설인정을 보았다.
아진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라면 설인정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린린의 얼굴에 당혹감이 새겨졌다.
천상천면.
설인정이 갖고 있던 천 개의 얼굴은 단순히 그녀가 여러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만이 아니었다.
역천마의의 복잡한 대법으로 만들어진 설인정이라면 아진의 치유가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망연자실한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진은 린린이 불길을 피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몸을 날렸다.
설인정에게 자신의 치유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다시 살릴 수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된 이상 설인정에게 미련을 갖고 매달릴 여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린린이 저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가 린린에게 채 이르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불길에 녹아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