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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48화 (248/470)

제248화

248화

마치 마신도 힘이 다 떨어지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그 길이 열렸다.

마신도 전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단리서언의 무인들이 교전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이 서리는 동안 단리서언의 얼굴에는 웃음이 지어졌다.

그는 급히 신교의 호법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단리서언의 앞에 도열했다.

원래 호법 정도의 지위에 있으면 교주도 인정하고 대우를 해 주었는데 단리서언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들의 옆에 있는 원로회의 존재들도 단리서언의 앞에서 앉지 못하고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 호법들이 다른 것을 바랄 수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단리서언은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원로들을 하나씩 호명했다.

호명을 받은 원로들은 비록 단리서언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대립하고 갈등할 때가 아니라 단리서언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그의 앞으로 나갔다.

단리서언은 손을 뻗었다.

말도 없이 그러고 있는 단리서언을 보면서 가장 먼저 불린 원로가 무슨 일인가 했을 때 단리서언이 갑자기 그를 끌어당겼다.

손을 댄 것도 아니었다.

가공할 허공섭물이었다.

원로는 단리서언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강력한 마기를 지닌 이였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이 모두 그랬다.

그런 원로를 단리서언이 간단히 허공섭물로 당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다음에 벌어지는 모습에 더욱 경악했다.

단리서언은 원로의 몸을 한 손 위에서 튕기듯이 떠올리더니 머리가 손에 오게 하고 몸을 뒤집었다.

그런 채로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놀라운 일은 계속 이어졌다.

원로의 입에서 믿기 힘든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그의 몸이 순식간에 홀쭉해졌다.

몸의 진기가 단리서언의 손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경악에 찬 사람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는 동안 단리서언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 옆에 있던 원로를 끌어당겨 진기를 흡수해나갔고 비어 있는 손으로 다른 이를 다시 끌어당겼다.

진기를 모두 흡수하는데 걸린 시간은 길지도 않았다.

천마신교의 원로와 호법들이 모두 단리서언에게 진기를 흡수당하는데 걸린 시간은 한 시진이 채 되지 않았다.

단리서언은 몸 안의 혼탁한 마기를 정갈하게 갈무리해서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몇 번 운기를 하자 섞여 있던 마기가 기혈을 뚫고 지나갔다.

‘한결 낫군.’

단리서언은 그제야 자신감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언젠가 원로와 호법들의 진기를 전부 흡수해 버리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직접 실행을 하는 것은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신이 변덕을 부리자 단리서언은 더 이상 결단을 미룰 수가 없었다.

신교 전력의 5할 정도가 사라졌다.

사라진 것인지, 단리서언에게 옮겨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 전력을 가진 이들의 존재가 사라진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이제 이 몸도 쓸모가 다 한 것 같은데.’

진기를 빨아들이는 무공을 사용하려고 가지고 있던 몸이었다.

원로회와 호법들의 진기를 모두 빨아들였으면 이 몸은 버려도 별로 아깝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단리서언은 어떤 몸을 택해 영체이혼대법을 실시할지 궁리했다.

무엇이 보이는지 한참 동안 허공을 주시하며 장고에 들어가 있던 단리서언이 마침내 무언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점차 커다란 웃음이 감돌았다.

‘패월악.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번에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단리서언이 펼치는 영체이혼대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식과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단리서언의 모습 자체에는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심지어 체격조차 변하지 않았고 오직 그가 가진 힘만이 달라질 뿐이었다.

그가 어떤 능력을 보고 몸을 바꿨는지 겉모습을 보고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가 지금까지 가졌던 힘들에 비해 더 강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할 터였다.

단리서언은 교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신이 벼락을 떨어뜨린다고 해도 이제는 순순히 져줄 마음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 지어지는 웃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사악해져 갔다.

* * *

왠지 분위기가 묘해졌다.

객잔에서 나온 후 아무도 쉬자는 사람이 없었고 먼저 말을 꺼내는 이도 없었다.

린린과 아진의 사이에는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진은 자기가 린린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한 건가 걱정했고 몇 번 린린에게 혹시 자기 때문에 기분 나쁜 게 있냐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린린은 별 대답을 하지 않고 앞으로 가 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아진도 그냥 말 거는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자기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게 있는 게 싫었다.

더군다나 소청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진이 정말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화가 난 어른들 때문에 아이가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결국 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이린. 멈추고 나 좀 봐.”

린린은 아진의 말을 듣지 않으려 했지만 아진이 그대로 멈추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이름이라는 게 그랬다.

늘 린린이라 부르던 사람이 갑자기 서이린이라고 부르자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확 떠밀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서운했다.

아진은 린린이 돌아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사과했다.

“저희 때문에 불편하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마두들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소청에게 다가가 소청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청아. 어른들 일로 너를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왜 그러는지 알아보고 풀도록 할게. 내가 잘못한 걸 수도 있으니까 만약에 그렇다고 하면 내가 사과하고.”

“네. 스승님.”

소청은 아진도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자기 때문에 일부러 린린과 풀려고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린린은 투덜거리면서 돌아왔다.

“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린린을 야단치는 것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닐 것 같아서 아진은 린린의 손을 잡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서운한 게 있으면 말해서 풀어. 지금은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우리 눈치를 보게 해야겠어?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생각하고 좀 참을 줄도 알아야지.”

“오라버니는 그게 되나 보지? 나는 안 돼. 안 돼서 그래.”

린린은 귀를 꽉 틀어막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이 고집을 부렸다.

그런 모습이 처음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렸을 때 이후로 한동안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그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하지 말까? 말 걸지 말고. 나도 네가 그러는 것처럼 할까?”

린린은 아진이 말하는 것들을 전부 다 상상해 버렸다.

그러자 그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속을 뒤집어 놓은 게 누군데.

“야. 서이린.”

“서이린이라고 하지 마!”

그게 꼭 신교로 가 버리라고 하는 것 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어서 린린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진은 기가 막혔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야. 너 왜 이러냐. 진짜?”

린린이야말로 답답했다.

지금까지 이런 기분이 든 적은 없었다.

자기가 누구냔 말이다.

천마다.

다른 천마도 아니고 패월악.

그런데 그런 자기가, 토라진 것 같은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말이 된다는 소리인가.

린린은 화끈 달아오를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화가 나고 마음이 풀어지질 않았다.

아진이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도 알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게 맞을 거라는 것도 이해하는데 왜 이렇게 서운한 건지.

아진은 린린이 또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리려고 하자 고집스럽게 말을 해서 결국 입을 열게 하는 데 성공했다.

“기분 나쁜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다른 사람들까지 기분 나빠지게 하지 말고. 왜 사람들이 우리 눈치를 보게 하냐고!”

“오라버니는 다른 사람들 기분만 중요해?”

어느덧 린린은 너무 분해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야. 린린.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지 않다는 걸 네가 모르냐? 정말 몰라서 물은 거야?”

“…….”

린린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말만 하면 전부 다 유치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린린. 왜 이러는 거야. 응?”

그가 달래려는 것처럼 린린의 손을 잡았다.

아진은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이유를 이것저것 다 가져다 댔다.

그러면서 이것 때문이냐 저것 때문이냐 묻다가 결국 신교에 남으라고 했던 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이 서로 어색하게 허공만 노려본 채로 있었다.

생각보다 더 어색했다.

“그게 인마. 그게 너한테 거기에 꼭 있으라는 말은 아니잖아. 무슨 의미로 말한 건지 모른 거야?”

“그건 아니지만…….”

린린이 토라진 채 말하자 아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잖아. 너한테 신교가 어떤 의미인지 아는데 그럼 신교는 그냥 내팽개치고 산본의가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말을 해?”

“그래. 그렇게 말해야지. 그렇게 말하라고!”

린린은 숫제 떼를 쓰듯이 말했다.

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자식. 다 큰 줄 알았더니 아직도 아기네.”

그러면서 아진이 린린의 머리 위에 손을 척 얹었다.

“…….”

린린이 아진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린린이라고 자기가 지금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그러고 있는 것뿐이었다.

아진에게 그런 말까지 듣고 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데 화는 안 풀리고 아진은 그 화를 풀라고 하고.

그래서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린린. 오라버니는 네가 걱정돼. 그리고 네가 본가를 위해서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네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랬어.”

“…….”

린린은 고개를 숙였다.

아진이 왜 그랬을지 자기가 모르면 누가 알까.

그런데도 그런 말 대신에 함께 본가로 가야 한다고 말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오라버니라면 그럴 거야? 오라버니라면 오라버니가 있었던 세계에 남겠다고 할 거야?”

“나는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그렇지…….”

예를 아주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오라버니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봐. 아니. 오라버니의 스승님이 그랬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오라버니는…….”

린린은 이 예가 옳은 건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렇게 예를 드는 것도 귀찮고 그냥 다시 화가 났다.

알아서 알아들으면 좋지 않은가 해서.

결국 아진이 린린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알았어. 린린. 나랑 같이 꼭 본가로 돌아가자. 신교는 다른 사람이 맡으라고 하고. 단리서언이 안 되는 것뿐이지 그 자리에 적당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는 천마 하지 말고 오라버니랑 돌아가자.”

“…….”

그거였다.

결국 듣고 싶었던 말은 그거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다고 헤벌쭉 웃을 수는 없어서 린린은 표정을 관리했다.

그래도 웃음이 비죽 튀어나와 버렸다.

아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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