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246화
그동안 아무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던 전대 교주 살해사건이 다시 수면에 떠 올랐고 단리서언이 마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신교도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졌다.
신교는 마신을 섬기는 집단인데 교주가 마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전대교주의 시신을 마신의 신전에 걸어 두었으니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분 오라버니가 누군지는 다들 이름만 들어도 알 거요. 정의맹주를 지냈던 검신 대협의 하나뿐인 제자지 않소? 산본의가의 둘째 공자시고 말이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러면 그분이 산본의가의 아가씨로 태어나셨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미끼를 물었다.
그 정도면 이제부터 애가 타는 사람들은 그들이 되는 것이다.
암천대문은 자기가 가진 수많은 정보 중 어떤 것들이 그들의 입을 벌리게 할 수 있을까 하며 적당히 이야기를 풀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굴었더니 자기들만 너무 중요한 얘기를 들었다고 생각해서인지 술술 불었다.
“형씨도 알겠소만 천상천면님께서 요즘 교전에서 사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잔뜩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천상천면.
암천대문은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특히 자주 들었던 이름이었다.
홍성루의 루주인 설인정의 별호.
별호에 관심이 많은 암천대문은 그 이름을 더욱 소중히 외워 두었던 것이다.
“홍성루는 어쩌고요?”
그녀가 홍성루를 잠시 비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교로 들어간 후의 상황은 들을 수가 없었기에 암천대문은 상대에게 말할 거리를 주며 유도했다.
“그건 모르지요. 잠시 쉬러 오신 것 같기도 하고. 오래 계셨지 않습니까. 바깥에서요. 그러니 교로 돌아가고 싶으셨겠지요. 너무 오래 잊혔다고 생각해서 윗분들께 불러 달라고 청하려고 간 건지도 모르고요. 어쨌거나 거기에서 그분이 그 소문을 내고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걱정이 많아요. 게다가.”
말소리는 문장 단위로 줄어드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거의 어휘 단위로 소리가 작아지는 것 같았다.
암천대문은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엉덩이를 의자에서 뗀 채 두 팔로 자꾸 기어서 두 사람의 입에 번갈아 가며 귀를 대느라 모양새가 꽤 볼썽사나웠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거기에서 연달아 사고가 났다잖아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걸까요?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퍼지면서도 아직 위로는 올라가지 않은 게 그 이유래요. 천상천면님은 죽기를 각오하고 그 소식을 전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천상천면님은 그 이야기가 위에 들어간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암천대문은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각종 사고에 대해 듣고 크게 놀랐다.
이러다가 그도 마신을 믿게 되는 게 아닐 정도로 정말 신기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내용으로 암천대문을 놀라게 했다는 사실이 흐뭇해진 듯 그때부터 여러 이야기를 부지런히 털어놓았고 암천대문은 그곳에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결국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결국에는 그 말이 들어가게 될 텐데 그러면 천상천면님이 얼마나 모진 고통을 당하다 돌아가시게 될지…….”
암천대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지급으로 알려야 할 소식이었다.
그는 조금 더 얘기를 나누다가 더 이상은 크게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암천대문의 표정을 보고 짱돌도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암천대문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객잔을 나오고 그때부터는 지급으로 소식을 전했다.
산본의가에서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천마신교에서 패월악을 위해 순교를 결심한 자가 있었던 것이다.
* * *
“지급이다.”
부지런히 날아오는 전서구를 향해 위도가 바닥을 차고 날아 올라가 전서구를 잡고 내려왔다.
그것도 대단한 기술이었다.
곧 사람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중에는 아진도 있었다.
위도는 아진에게 전서구를 내밀었고 아진은 암호로 쓰인 종이를 펼쳤다.
[홍성루주가 교로 돌아 가 교전에서 ‘그분’이 돌아오심을 전함. 아직 교주는 모르나 언제 들키게 될지 모름.]
전서구가 빠를지 사람이 빠를지 모르는 상태로 전서구도 일단 날리고 사람도 오는 것 같았다.
아진은 당장 린린을 찾아갔고 린린은 랑랑이랑 놀고 있다가 그를 발견했다.
“소청아. 랑랑이 좀 보고 있어.”
“예. 사고님. 랑랑아. 뭐 하고 놀까?”
랑랑과 놀 기회만 노리고 있던 소청은 감격한 얼굴로 말했고 아진은 린린을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
그리고 전서구의 쪽지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걸 본 린린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하기만 했다.
“안 갈 거야?”
“어딜?”
“신교.”
“왜?”
“야. 너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
아진은 린린이 왜 이러나 하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적힌 건데? 나 이 암호 아직 못 외웠어.”
“…….”
아진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확 찌르고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이 암호를 외우라고 한 게 지금 3년이 넘었다. 이 인간아!”
“이 암호는 진짜 잘 만들어진 것 같아. 정말 모르겠거든.”
아진은 이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린린을 놔두고 역천마의를 찾아갔다.
그러면서 섬전대와 비고의 경비 무사들을 동시에 불렀다.
린린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깨닫고 아진을 따라갔다.
“루주가 신교로 간 모양입니다. 패월악 교주님이 돌아왔다는 소문을 내고 있대요. 루주는 죽을 각오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서구에 적힌 내용만으로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는데 그들이 신교로 출발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정보문의 사람이 도착했다.
정보문에는 아진이 특별히 여러 경공을 아낌없이 전수했는데 그중에 성취가 뛰어난 사람이 온 것이다.
그는 짱돌과 암천대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급히 전해 주었다.
아진 일행이 서두르고 있었기에 한동안 그들과 함께 달리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는 모두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한 후였다.
‘설인정이 기어이.’
역천마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설마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단리서언이 모를 수가 있는 겁니까?”
“마신님이 지켜 주신 거지.”
뇌혈검의 말에 린린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이 말했다.
아진은 경공을 펼치다가 마두들 외에 소청과 위도도 따라온 것을 알아차렸다.
마침 위도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린린. 비고로 가서 영약을 먼저 먹는 게 나을까?”
“공력이 부족해서 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린린의 말을 들은 순간 아진은 자기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진은 천마신교도 전체와 싸워서 설인정을 구하는 것을 생각했고 린린은 단리서언과 그의 측근들 정도만 해치우는 것을 계획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싸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린린의 생각을 이해했다.
“네가 명령을 내려.”
린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아진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아진이 명령을 내렸던 탓이었다.
“특별히 안 그래도 되는데.”
“나도 특별히 안 그래도 되니까 네가 통솔해. 이번에는 나도 네 부하야.”
린린은 그때부터 생각을 하는 듯 말수가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명령은 마두들에게 내려졌다.
단리서언이 있는 곳 중심으로 각자가 침입해 들어가 안에서 단리서언을 같이 공격하자는 내용인 것 같았다.
린린은 설인정을 구하는 것보다는 단리서언을 해치우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 말이 맞기는 할 것이다.
아직은 설인정이 붙잡힌 상태도 아니고 그녀의 무공은 미혼술의 부류로, 전투에는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는 동안 역천마의는 몇 번이나 린린을 보았다.
혹시나 했지만 아마도 지존은 영영 모를 것이다.
설인정의 마음 같은 것은.
설인정에게는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는데 지존은 그런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할 터였다.
‘어쩌겠냐. 설인정. 지존은 너를 살리셔야겠다는데. 멀리서라도 지켜볼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것 아니야?’
역천마의는 설인정이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건방지다는 생각도 했다.
감히 지존을.
그러나 오래 생각해 봤자 머리만 복잡해지고 자기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결국 포기해 버렸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갑자기 내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마두들은 그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슬슬 하나둘 낙오하기 시작했을지도 몰랐다.
자기들이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단전이 부릉거리는 것을 무시하면서 계속 달리기는 했지만 갈수록 버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정말 딱 죽을 것만 같았다.
폐가 혀를 밀고 밖으로 빠져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억지로 버티고 버텼는데 쉬자는 말이 나오자 그들은 객잔으로 들어가 방을 잡고 먼저 축기에 들어갔다.
린린은 하나같이 다들 약골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청은 그 말을 들으면서 웃었다.
린린이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옆에 아진이 보였다.
‘스승님도 계시구나.’
그리고 그 옆에서 온갖 요리를 주문하고 있는 위도를 보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도는 경장육사 같은 것을 주문하고 요리 방법도 하나하나 간섭을 하려 들었다.
돼지고기를 너무 가늘게 채 썰면 씹는 맛이 사라지니 큼직큼직하게 썰어 달라고 하는가 하면 죽순은 웬만하면 많이 넣지 말라고 하고 싱겁지 않게 해 달라면서 점소이의 옆에서 한동안 떨어지질 않더니 자신의 입맛대로 완벽하게 주문을 했다는 판단이 든 후에야 자리에 와서 앉았다.
린린은 입맛이 없었고 여기에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아쉬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아진은 그런 린린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저 무심하고 무표정하기만 하던 린린에게 그런 표정을 짓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고님께 아주 소중한 분이신가 봐요. 그분요.”
“응?”
소청의 말이 이상했는지 린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쓸데없는 짓을 하잖아. 시키지도 않은 걸.”
“왜 그러신 건데요?”
“그야…….”
린린은 설인정이 왜 그랬을지 생각했다.
“내가 실패한 일을 해내자고 생각했을 거야.”
“그렇군요.”
소청은 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안다고 고개를 끄덕여?”
“아니에요.”
소청이 큭큭거리자 린린도 조금 긴장이 풀리는 듯 소청의 머리를 헝클며 장난했다.
“이번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면 사고님은 혹시 그곳에 남으실 생각이 있으세요?”
소청이 묻자 린린이 아진을 보았다.
소청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그대로 눈동자만 움직인 거라 표정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