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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45화 (245/470)

제245화

245화

그녀는 다시 마신상의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 그 후로는 호교사자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돌아선 채로 그의 부름에 대답해 주지 않는 것.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두렵게 느껴진 건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교전에서, 마신상 앞에서 그가 느껴왔던 기분과도 비슷했다.

호교사자는 마신상 앞에 서 있는 설인정을 보면서 그녀가 마신과 교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간절히 바랐으면서도 끊임없이 거절당한 그것을 그녀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숨통을 끊어 버리고 싶은 욕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했다.

마신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이 첫날 있었던 일이었고 그 후로 교전에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호교사자는 설인정을 두려워하고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마신과 소통하는 교도.

호교사자의 눈에는 그 사실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도 가까이 다가간다거나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번에도 말해 봤자 거절이나 당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번 설인정에게 물어 보기도 하고 말을 걸어 보기도 했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교전에는 매일 사람들이 찾아왔다.

호교사자는 사람들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호교사자의 지위를 이용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설인정이 마신의 비호를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쉽사리 다가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교전에 찾아와 마신상을 보려는 사람들 정도면 신교 내에서도 믿음이 좋은 자들에 속했다.

그들은 마신상 앞에서 묵상을 하는 설인정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그녀에게 무슨 말이건 듣고 싶어 하며 다가간 사람들에게 설인정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다가 마지막에는 꼭 그 이야기를 했다.

패월악 교주께서 돌아오셨다고.

모두가 믿은 것도 아니었고 모두가 믿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그 말을 당장 단리서언에게 고하려 했다.

하지만 설인정의 행보가 며칠 만에 들통이 나고 단리서언이 보낸 자들이 와서 끌고 갈 거라던 예상과 달리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인정을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나갔다가 마차에 치여 다리가 부러진 이도 있었고, 그냥 쓰러져서 죽은 이도 있었고, 눈이 멀어 버린 이도 있었다.

교전에 다녀오다가 이상한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신교 내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천상천면이 돌아와 교전을 지키고 있고 거의 온종일 마신상의 앞에 서서 묵상을 하며 그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패월악 교주가 돌아왔다고 알리고 있는데, 그 말을 듣고 교주에게 알리러 가던 사람들이 사고를 당해 희생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그 소문이 직접 단리서언의 귀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적어도 처음의 예상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리기는 했다.

그 소문을 단리서언에게 전하려고 한 사람들 역시 같은 운명이 된 탓이었다.

단리서언에게 소문에 대해 말을 하려고 달려가다가 갑자기 다리가 굳은 채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넘어져 얼굴이 깨진 채 피를 쏟으며 죽은 이도 있었다.

죽음의 방식은 한결같이 전형적이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죽을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문은 효과적으로 퍼져나갔다.

누군가 갑자기 당한 죽음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었는데 죽음의 소문이 이리저리 번지며 그 이야기를 함께 퍼뜨렸다.

지존이 돌아오셨다.

신교의 천마, 패월악이 다시 살아나셨다.

사람들은 기쁨과 감격에 겨워 소식을 전했다.

단리서언이 이미 그런 유언비어가 나돌 거라고 경고했지만 곳곳에서 일어난 죽음이 그의 경고를 덮었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단리서언이 한 말에 농락당하는 대신 단리서언의 속셈을 읽었다.

설인정에 의해 점점 더 많은 진실이 퍼져나갔다.

단리서언이 황실을 전복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가 황금을 위조해 나라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려고 했다는 사실도, 왜구와 이민족을 이용해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도.

단리서언이 모르는 가운데 신교의 많은 이들이 환희에 들떠 있었다.

패월악 교주님이 돌아오셨다.

진정한 마도 천하를 이루기 위해.

그분이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리 없는 함성이 들끓기 시작했다.

* * *

객잔의 한 가운데에 있는 가장 좋은 탁자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행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힐끔거리면서 도대체 뭘 하는 작자들일까 했다.

뭐가 들었는지 빵빵하게 채워진 보따리가 옆에 수북수북했다.

“형님. 이것 좀 가지고 다니지 마시라니까요.”

자기는 좀 세 보이는 별호를 갖고 싶다면서 별호를 직접 붙인 암천대문이 짱돌에게 말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정보문으로 활약이 대단한 향화문은 개방만큼이나 특징이 뚜렷했는데 정보 수집 활동을 하다가도 좋은 약초가 눈에 보이면 그걸 캐지 않고는 못 배겨서 늘 빵빵하게 채워진 보따리를 몇 개나 들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고 있었던 것이다.

신원을 속이고 활동을 하라는 특별한 임무가 떨어져도 대부분은 꼬리를 잡혔다.

그것은 이미 그들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려서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약초만 눈에 보이면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자고 하면서도 결국은 기어이 다시 돌아가서 그것을 뜯어 가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그렇게 뜯은 약초를 인심 좋게 나눠 주면서 어디가 아플 때 이렇게 쓰라고 알려 주면 주위 사람들을 손쉽게 정보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점은 있었는데, 이는 신원을 노출하면 안 되는 일을 수행할 때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지금만 해도 욕심 사납게 뜯어 모은 약초가 보따리마다 가득 들어 있었다.

문주인 짱돌이 먼저 그러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냐면서 암천대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짱돌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반박의 여지 없이 중원 제일의 정보문으로 거듭난 향화문의 문주가 전과 다름없이 짱돌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있는데 밑에 있는 놈이 저 혼자 암천대문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렇게 불러달라고 애걸복걸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런데도 암천대문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넉살 좋게 다가가 그들이 가진 정보를 탈탈 털어오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특별히 집중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객잔 안에서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나누는 이야기까지도 알아듣고 누가 쓸만한 정보를 가졌는지 알아내는 기술도 대단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그가 짱돌을 보더니 보따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개망초나 칡뿌리도 있습니까, 형님?”

“개망초는 있지. 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걸 뜯어서 다닌다고 타박하던 놈이었지만 눈빛을 저렇게 하고 물을 때는 바로 약초를 내어 줘야 했다.

“예. 형님. 다섯 근 정도 되나요?”

“스무 근이 조금 넘을 거다.”

“아니. 진짜. 그걸 다 언제 뜯으셨데. 나도 계속 옆에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짱돌은 이미 개망초를 꺼내고 있었다.

이럴 때를 위해서 늘 보자기를 여러 개 가지고 다녀서 순식간에 작고 귀엽고 소중한 보따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암천대문은 그것을 가지고 구석진 자리로 걸어갔다.

“…….”

“…….”

그곳에서 죽엽청 한 병을 시켜놓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암천대문을 바라보았다.

뭐냐는 얼굴이었다.

“듣다 보니 내 사형과 동향분인 것 같아서 반가워서 와 봤습니다.”

“동향?”

그들은 웬 헛소리냐는 듯이 말했는데 암천대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얼굴로 볼 것 없소. 조용히 말을 하고 있어서 나도 소문을 내고 싶지는 않고 그냥 여기서 이렇게 사형의 동향분들을 만난 것이 반가워서 뭐라도 좀 주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니까.”

그러면서 그는 개망초가 든 보따리를 풀었다.

“이건 개망초요. 나는 약초꾼이고. 이번에 약방에서 웬 독초 몇 가지를 캐다 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고 산에 올라갔는데 찾는 건 보이지도 않고 개망초만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도 개망초도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라 우선 뜯기는 했는데 다시 독초를 캐러 올라가야 한다오. 짐이 너무 많아서 어쩔까 하고 있었는데 받으시오. 약방이 보이면 팔려고 가지고 왔는데 이만한 마을에 약방도 없어. 일이 안 되려고 하니까 그러는가.”

그는 별 트집을 다 잡으며 혼자 씩씩거리고 말했다.

그 마을에 정말 약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약방이 있다면 그들은 암천대문이 약방을 찾지 못해서 자기들에게 선심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짜로 약초를 얻게 됐는데 그걸 거절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숙취 해소하는 데 좋으니까 끓여서 마시시오. 딱 보니 술을 자주 드시는 것 같은데.”

지금만 해도 죽엽청을 마시고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형씨도 여기 앉아서 한 잔같이 하시구려.”

약초꾼들에게는 개망초를 알아보는 것도, 그것을 캐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일반인에게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 그들은 귀에 익숙한 약초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채 말했다.

암천대문은 고맙다며 자리에 앉아 술을 한 잔 받아마시고 은근슬쩍 이야기를 물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묻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그가 단리서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서 그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단리서언을 직접 단리서언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분.

지금 계신 분.

그들의 대화 중에 중점적으로 나온 이들은 그렇게 지칭되고 있었는데 천마신교의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있는 암천대문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와 대화 중에 나온 지명과 인명 몇 개를 듣고 ‘그분’과 ‘지금 계신 분’이 각각 패월악과 단리서언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함께 죽엽청을 마시던 두 사람은 아마도 신교의 밀명을 받고 중원에 나와서 교세 확장을 위해 은밀하게 활동을 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평소라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주의를 기울일 텐데 어쩌다 나온 이야기이고 ‘그분’이니 ‘지금 계신 분’이라는 정도로만 말을 하면 누가 알아듣겠나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오. 그분이 돌아오셨다는 말이 사실이오? 그 이야기는 나도 들은 적이 있고 사실은 그분이라고 하는 분을 직접 본 적도 있어서 말이오. 그분의 오라버니랑 말이오. 지금은 그분이 여자지 않소?”

암천대문이 하는 말에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쯤 심장이 미친 듯이 두 방망이질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놀랄 필요 없소. 나도 사실은 그쪽이오.”

그들은 암천대문이 신교 사람이라는 줄 알고 더 놀란 얼굴을 했다.

“지부는 다른 곳에 있는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맡은 일을 수행 중이오.”

암천대문은 몸을 바짝 앞으로 당기고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두 사람은 반신반의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패월악에 대해 워낙 잘 아는 것 같고 더군다나 자기들이 모르는 얘기까지 알고 있는 듯해서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신교도들에게 그것은 그저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분이 돌아오셨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단리서언을 계속 따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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