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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32화 (232/470)

제232화

232화

“그런데 지존. 신교에 가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하는 게 좋을까요? 모두가 지존의 말을 믿지는 않을 거예요. 저처럼 지존과 지낸 시간이 많았던 사람은 지존과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눠보면 알아볼 수 있지만 신교도들 대부분은 지존과 직접 말을 나눠 본 적도 없잖아요.”

역천마의가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내비쳤다.

린린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단리서언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알려 주면 지존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섬마대주가 말했지만 다른 이들은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

“지존이 지존이라는 말은 믿기가 힘들 테니까 아예 처음부터 다르게 공략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역천마의님이 전면에 나서서 단리서언이 마신님을 배신했다고 알리는 겁니다. 그리고 단리서언이 황실을 전복하려고 한 계획을 알리고요.”

“저도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전대의 교주가 죽은 게 상당히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교주의 시신이 신전에 전시되듯 걸렸는데 그건 신성 모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섬마대원들이 말하자 린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단리서언이 저지른 짓인 건 확실해?”

“맞아요. 지존. 단리서언이 자랑하듯이 저에게 말했어요.”

역천마의가 말하자 린린이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신교도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린린은 줄곧 생각했다.

믿지 않으면 그때는 신교의 방식으로 힘으로 밀어붙이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진이 말한 것처럼 자신은 신교도들을 생각보다 훨씬 더 애틋해하고 걱정하는지도 몰랐다.

한번 말해서 믿지 않으면 두 번 세 번을 설득하고 증명을 해서라도 그들이 믿을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알고도 단리서언에게 붙으려는 사람들이 있을까, 역천마의?”

그건 훨씬 전에 나왔어야 할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때에야 한 것은 린린이 불안해서 계속 미뤄온 탓이었다.

“그건 지존께서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을 거예요. 지존이 교주의 자리에 계시는 동안 지존을 거부했던 모든 이들이 그러겠지요. 이번에는 훨씬 더 단합할 거예요. 다시 살아서 돌아오셨다는 걸 알게 되면 정말 두려울 테니까요. 지존은 마신의 은총을 받은 분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고 모든 신교도와 전사가 지존을 지지할 거예요.”

사실상 수뇌부 중에는 이 사실을 좋아할 사람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순전히 절대적인 강함을 동경하고 마신에 대한 믿음으로 선 자들은 린린의 편에 서겠지만 정치적인 이유와 자신과 가문의 이익을 따지는 자들이라면 린린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그 구도는 정말 위험해요. 누구 하나 확실히 우세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더욱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례가 없던 분열을 맞고 말 거예요.”

그것은 린린이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럼 역천마의가 교주가 된다면 어떨까?”

린린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그쪽이었다.

다시 천마가 되는 것은 린린의 소망이 아니었다.

만약 그걸 바랐다면 처음부터 일부러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죽었고 염마를 협박해 새 삶을 얻었으며 후회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린린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녀가 정말로 그걸 원해서 역천마의에게 묻고 있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을걸요? 그 경우에는 절대적인 지지층이 오히려 더 떨어져 나가기만 하죠. 그러면 단리서언을 지지하는 쪽이 우세할 거고 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단리서언파에 의해 전부 죽을 거예요.”

그것은 단순한 추측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까웠다.

“그것도 쉽지 않네?”

역천마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일단은 알게 해야 합니다. 진실을요. 우선은 단리서언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처럼 하면서 기회를 노리자고 해도 좋을 거고요. 일단 단리서언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만 알아도 사람들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섬마대주가 말하자 모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단리서언을 무너뜨릴 힘이 없으니까 그의 체제를 인정은 해라. 하지만 단리서언은 마신이 세운 자가 아니다. 단리서언은 신교도들을 희생시켜서 황조를 전복하려고 하고 있다. 그 정도 어조로 전하면 될 것 같아요.”

역천마의가 말하는 동안 린린의 생각은 다시 깊어졌다.

“나랑 단리서언이 싸우면 누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

“단리서언요.”

“말할 것도 없어요.”

“단리서언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에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어요. 마신의 경지는 아니고 안 좋은 쪽으로 사악한 대법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존이라고 해도 단리서언은 못 이기세요. 그건 아마 검신 대협이나 서 소협도 그럴걸요?”

섬마대주가 말하자 린린이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린린이 굉장히 기분 나쁘다는 듯이 묻자 섬마대주는 자기가 말실수를 한 걸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이야기였기에 소신 있게 말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저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존.”

린린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답을 구하는 표정이었는데 역천마의까지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단리서언은 강해요. 지존. 그자는 사이한 술법을 써요. 저도 그자를 거의 죽인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실패했죠. 그 후에 단리서언은 더 강해졌어요. 단리서언은 그런 존재예요. 자신의 약점을 알면 더 강해지죠. 제 생각에는 아마도 어떤 사람들의 육체를 몸 안에 복속시켜 두었다가 그걸 사용하는 게 아닐까 해요.”

역천마의의 말은 알쏭달쏭했다.

“영체이혼대법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네. 정확히 그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 수 더 넘어서기는 했죠. 영체이혼대법을 펼칠 수 있는 사람도 그 대법을 시행할 횟수가 제한돼 있어요. 그게 필요해질 때 딱 맞는 육체를 구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그때를 대비해서 단리서언은 여러 몸을 미리 준비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있다’라는 개념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 여러 육신을 어디에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역용술을 생각해 보세요. 얼굴이 바뀐다는 건 없던 얼굴이 생긴다는 거잖아요.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얼굴이요. 단리서언도 마찬가지인 거죠. 약점이 발견된 몸은 버리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다른 몸으로 바꾸는 거예요. 기억과 힘과 능력은 그대로 전이되고요.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채 이미 그자는 수많은 전생을 했는지도 몰라요.”

역천마의의 말이 계속될수록 린린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비고의 경비 무사와 섬마대원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 단리서언에게 느껴졌던 압도적인 힘의 크기를 비로소 이해할 것 같았다.

‘정말 질지도 모르겠는데?’

린린은 자신과 단리서언의 대결을 상상하며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가 서 있던 자리에 아진을 세워 놓고 보니 역천마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오라버니가 이겨. 오라버니는 안 져.’

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갈수록 린린의 눈에는 더욱 강한 확신이 서렸다.

“그래. 가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기다리는 거야. 모두가 함께 버틸 수 있게 힘과 희망을 주면서. 돌아올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고 약속을 지키면 돼.”

린린의 말은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나 근심에 억눌려 있지 않았다.

“나는 신교의 사람이야. 천마였지. 나는 마신을 믿고 마신이 세운 사람이야. 내가 가진 힘은 내 힘으로 얻은 게 아니야. 마신의 은총이고 축복이지. 마신은 지금도 나를 보살펴. 신교도들 모두 그래. 그러니까 우리는 마신을 버리고 마신에게 버림당한 단리서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린린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린린의 진솔한 고백을 들으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기이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했다.

자기들이 무엇을 위해서 그 자리에 서 있는 건지 첫 마음을 회복한 것 같았다.

주위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그들은 어느새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앞이 불구덩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딛고 있다는 것도 그대로인데 지금의 그들은 웃고 있다는 것만이 변해 버린,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 * *

홍성루의 총관이 다급한 얼굴을 하고 뛰어 들어왔다.

“루, 루주님. 루주님!”

“무슨 일이냐.”

설인정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총관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시끄럽고 초조해하는 사람을 질색했고 총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평소에는 루주의 성미를 잘 맞추는 편인데 그날은 이상했다.

설인정은 총관이 대답도 하기 전에 그가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얼룩덜룩한 금속.

언뜻 보기에 녹이 슨 쇳덩어리 같은 것을 보며 그녀는 총관이 왜 그런 걸 가지고 자신을 찾아온 건가 했다.

“이걸 먼저 보셔야 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루주님. 이게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반 시진 전만 해도 분명히 황금이었는데 지금도 변하고 있습니다.”

설인정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가 하는 얼굴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게 황금이었다니?”

“사실입니다. 루주님. 제가 어찌 루주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손님이 이것으로 계산을 하고 나간 후에 금고에 넣어 두었고 그 후에 장부를 정리하면서 금고를 다시 살폈는데 이것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변하고 있는 게 여러 개입니다. 지금 당장 같이 가서 확인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설인정은 드물게 보법까지 밟아 가며 총관이 말한 곳으로 갔다.

“이걸 가져온 이가 누구냐. 누가 이것으로 계산을 했냐는 말이다.”

“환령상회의 상주와 총관이 사람들과 와서 한참 마시다가 갔습니다.”

“환령상회?”

“예. 루주님.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아이들 몇을 환령상회로 보냈습니다. 어찌하는 게 좋을지요?”

설인정은 일단 상황을 확인이나 하자고 생각하며 금고가 있는 곳으로 급히 갔다.

금고에 가서 확인해 보니 총관이 말한 그대로였다.

“어어! 이것도 그러네? 이건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왜 이러는 거지? 루주님.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 여기에 있는 것들도 이런다면 이건 환령상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 황금에 장난질을 한 것 같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인지…….”

“받을 때 확인은 확실히 했느냐.”

“당연합니다. 루주님.”

황금으로 직접 값을 치르는 일은 많지 않다.

기루에 와서 아무리 잘 먹는다고 해도 황금 한 관 어치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홍성루라면 얘기가 달랐다.

사람들의 입에 홍성루의 이름이 계속 오르내리며 홍성루에서 대접을 받아야 제대로 대접받은 거라는 소문이 돌고 황도의 고관대작 중에도 홍성루에 출입해 본 적 없는 이들이 많아서 이곳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치솟았다.

손님 입장에서 접대를 받으러 오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물주로서 오려면 신분과 재력이 증명돼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입회비를 내야 하는데 새로 홍성루의 회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서 매일 들어오는 황금의 개수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홍성루가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면 시중에 유통되는 황금이 가짜라는 사실을 그렇게 일찍 알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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