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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28화 (228/470)
  • 제228화

    228화

    위도는 직접 공격을 막고 반격을 하려는 것보다는 단리서언의 공격을 피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수록 단리서언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어쩌다 한 번씩 보여 준 권격이며 검격은 절대 그 수준이 낮지 않았는데 왜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해서였다.

    ‘노림수가 있는 것인가? 나를 유인하려고 하는 건가?’

    단리서언은 격투를 하는 동안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가 무슨 수를 쓸 건지 알아내려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나오건 그는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압살해 버리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자는 영 골치가 아팠다.

    ‘단리서언. 정신 차려. 본래의 너로 돌아가. 이놈도 다를 게 없어.’

    단리서언은 억지로 자신을 달래고 말했다.

    섬전처럼 내지른 검격은 너무나 허망하게 수포가 됐다.

    이리저리 움직여 검을 피한 위도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단리서언은 지금까지 내 오던 속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몸을 날려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위도가 선보였던 속도는 따라갈 수 없었지만 그렇게 내지르는 검격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기에 주변에 있던 이들은 긴장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단리서언은 이제야말로 자기 뜻대로 상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검에 위도의 옷자락이 찢겨나갔다.

    그 와중에도 몸에 검이 닿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위도는 쥐새끼처럼 이리저리 피했지만 단리서언은 이제 거의 끝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하면 곧 이놈의 살을 뼈에서 전부 다 발라내 버릴 수 있다.

    단리서언은 속으로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꽤 괜찮은 놈이었다.”

    단리서언은 죽기 전에 그것이나 알라는 듯, 위도에게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 후에 그의 검에서 수십 개의 검영이 생겨나며 잔상이 위도를 노렸다.

    그러나 위도는 그것이 전혀 무섭지 않은 듯이 저벅저벅 단리서언을 향해 다가왔다.

    마치 불이 뜨거운 것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겁도 없이 불에 손을 집어넣으려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위…… 위 대협!”

    사람들이 놀라 그를 향해 몸을 날리려는 찰나 위도가 검영을 베어내고 단리서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단리서언은 경악하고 헛숨을 들이쉰 채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하고도 위도의 손가락이 제 가슴팍을 파고들어 살점을 뜯어내는 것을 다 피하지는 못했다.

    단리서언의 가슴팍이 피로 물들었고 멈추지 않은 피가 그의 의복을 적셨다.

    조금만 늦었다면 뼈가 으스러지고 심장을 뜯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리서언의 머릿속에서 땀이 솟았다.

    채영이야말로 충격을 받은 얼굴로 단리서언을 바라보았다.

    ‘대체. 대체 뭐란 말이냐. 저놈은!’

    단리서언이 위도를 노려보고 있을 때 위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은 허공을 날아오는 날카로운 창 같았다.

    단리서언이 아무리 여유 있는 척 가장하려고 해도 위도의 몸이 다가와 제 손을 스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리서언은 용을 쓰고 위도를 쳐냈다.

    위도가 옆으로 밀려난 것은 한순간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채 단리서언은 바닥을 차고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창피하다는 생각 같은 것을 할 틈도 없었다.

    저를 향해 몸을 날리던 자는 분명히 괴물이었다.

    정상이 아니었다.

    전략도 없이 그런 자를 상대하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단리서언은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위도는 단리서언의 이해 밖에 존재했고 그가 짓는 표정은 단리서언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방대한 마기를 주입해 공격하는 단리서언과 위도는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공격이 가로막히고 내기가 진탕된 것은 한 번이었지만 단리서언은 그 실패가 자꾸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위축되었다.

    ‘도망치는 건 아니다. 단지 지금이 아닐 뿐이다.’

    그는 애써 자위하며 산본의가를 빠져나갔다.

    위도에게서 조금 떨어진 채 그를 관조하려 했지만 벌려 놓은 거리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자꾸만 그 거리를 더 벌리다 보니 어느덧 미령을 넘어서 버렸다.

    채영까지 구해 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 못한 것은 아니고 그냥 하지 않은 것이기는 했다.

    채영은 단리서언이 혼자 도망쳤다는 것은 몰랐지만 그의 생각은 읽었다.

    마지막에 그에게 들려온 마음의 목소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는 거였다.

    채영의 앞으로 뇌혈검이 나왔다.

    “검을 들어라.”

    뇌혈검의 말에 채영은 격노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본교를 배신할 수 있느냐! 마신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마신님이 두려워서 이곳에 있는 것이다. 교주는 마신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라면 그 사실을 알 텐데.”

    “닥쳐라!”

    “그래. 너와 내가 가는 길이 다르다면 굳이 이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검을 들어라.”

    다른 이들도 뇌혈검을 도와 함께 채영을 쓰러뜨리고 싶은 것 같았지만 뇌혈검은 채영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거두고 싶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기는 했지만 마신을 향한 믿음이 진심인 것은 뇌혈검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검이 부딪히고 그 기운이 충돌하자 격렬한 폭음과 함께 바닥이 들썩였다.

    뇌혈검은 이곳에서의 격투가 거칠어질수록 산본의가에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채영을 향해 짓쳐나갔다.

    채영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대기가 뇌혈검의 검에 찢겨나가는 것을 보았다.

    어느 순간 채영은 검을 내리고 죽음을 기다렸다.

    산본의가의 무인들을 상대하며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뇌혈검과 끝까지 맞붙어볼 만도 했겠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저항이 무의미했다.

    뇌혈검은 전사의 목을 일격에 베어냈다.

    몸통을 잃은 머리가 바닥을 굴렀고 이내 몸통도 쓰러졌다.

    죽기 전 채영은 자신에 대한 주군의 쓸쓸한 평가를 새긴 채 눈을 감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주군을 지키는 것이 존재 이유였던 그에게 그것은 참혹한 평가였다.

    그래서 차라리 죽음은 명료하고 따뜻했다.

    채영의 몸에서 흐른 피가 흙바닥을 적시는 동안 느닷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사람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투가 있었던 건가 하면서 깜짝 놀라 두리번거렸다.

    이내 돌풍이 일더니 위도가 사라졌다.

    “위 대협이 갑자기 왜 저러시지?”

    무인들은 위도가 사라진 곳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가주와 제선문주가 함께 약을 만들고 있었다.

    한 사람은 커다란 솥 안에 든 것을 주걱으로 저으면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일정하게 불의 세기를 유지하면서.

    두 사람 모두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는데 그러고도 멈추지 않은 듯했다.

    위도를 본 가주는 오랜 가뭄 끝에 구름을 본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어서 오세요. 위 대협.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열두 시진 동안 쉬지 말고 추나술을 하라고 하면 하겠습니다만 이건 정말 힘이 드는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가주님.”

    위도가 달려가 가주에게서 주걱을 받아들고 젓기 시작했다.

    “문주님. 어떻습니까? 약은 잘 만들어질 것 같은가요?”

    위도는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이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는 듯 그에게 물었다.

    “장담하오. 이것만 있으면 웬만한 상처는 말끔하게 나을 것이오.”

    문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그제야 사람들은 상황을 알아차렸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들의 무기를 내려놓지 않은 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는 것을.

    * * *

    석양이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항주는 빛을 받아 따뜻하고 평화롭게 보였으며 제가 가진 상처를 모두 감추고 있었다.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데 웅크린 등이 아름다운 것처럼 그것은 기이한 불균형을 이루었다.

    “소청아. 이곳이 항주다.”

    말에 탄 채 도시를 바라보며 북리의천이 말했다.

    “예. 사조님. 그런데 왠지 슬프게 느껴져요.”

    “그렇구나. 소청이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구나.”

    “그래도 이제 달라지겠죠?”

    “그래. 그럴 것이다. 그러려고 우리가 온 거니까.”

    북리의천이 소청을 자상하게 바라보았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두 사람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강호의 전설.

    그 한 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났다.

    ‘강호의 전설과 그의 사손’이라고 할 필요도 없이 이제 소청도 강호의 전설로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북리의천이 소청과 함께 항주의 왜구를 토벌하러 갈 거라고 말했을 때 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북리의천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는 왜구의 숫자부터 해서 지금까지 토벌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는 설명까지 구구절절 읊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이 북리의천이어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향화문의 정보력이 정의맹 정보각의 수준을 크게 웃돈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북리의천의 곁에 얼마나 많은 지략가가 있는지 알아서이기도 했다.

    그가 하고 싶은 말 중에 북리의천이 알지 못하는 것은 없을 터였다.

    -단리서언이 일을 꾸미려 해. 황상을 겁박하기 위해 왜구를 패로 쓰려 하네. 그러니 우리가 쓸어 버리는 수밖에.

    낭왕을 찾아간 북리의천은 거두절미하고 용건을 말했다.

    북리의천은 단리서언을 교주나 천마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그에게 교주이자 천마는 린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떻게 알게 됐는가.

    -벽 소저가 천기를 읽었네.

    낭왕은 웃음을 터뜨렸다.

    -향화문에 벽 소저까지. 도대체 자네는 가지지 못한 게 뭔가?

    -그러게 말이네.

    북리의천의 긍정에 낭왕이 더 큰 소리로 웃어 댔다.

    -가세. 설마 죽기야 하겠나. 자네랑 소청이가 만 명씩만 맡게.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좋은 생각이네. 역시 맹주야.

    그렇게 이른 항주였다.

    북리의천은 마음이 급했다.

    이곳을 먼저 정리해 줘야 아진과 황상이 편하게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소청도 사조가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

    “한 번에 치는 거지요. 사조님?”

    소청이 북리의천에게 물었다.

    “그래. 그렇지.”

    “꼭 그래야 하는 거지요?”

    “……응?”

    북리의천은 소청이 무슨 생각으로 그것을 연달아 묻는 건가 해서 바라보았다.

    “달리 생각한 작전이라도 있느냐. 소청아?”

    “그건 아닌데요.”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해 보아라.”

    북리의천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소청이 약간 자신 없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편에는 흑주가 있으니까 적들이 기습을 당했다는 사실을 느끼지도 못하게 미리 공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소청이 말하자 그의 품에 있던 흑주가 방금 자기 이름을 말한 게 맞냐는 듯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흑주가 더 난리가 났구나. 네 생각을 계속 말해 봐라. 소청아.”

    “왜구들이 장악한 사업장이 여러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사업장 하나를 갑자기 처리하면 그 소문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 일이 아주 빨리 끝나 버리고 생존자가 전혀 없으면 아예 소문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생존자가 생기면 나중에는 소문이 나겠죠.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그런 소문이 나면 우리 수를 많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소청의 말에 북리의천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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