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227화
산본의가의 무인들은 자기들이 위도를 돕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위도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무인들은 그동안 위도의 실력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실력은 연무장에서 훈련하는 동안 지나가면서 조금이라도 볼 수 있었지만 위도는 아진이 아예 작정하고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서 수련을 시켜서였다.
그러나 아진의 스승인 북리의천이 특별히 그를 가르치고 아진과 린린이 돌아가면서 위도의 실력을 기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위도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오지 말라는 위도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정말 그가 혼자 싸울 수 있게 해 주는 게 맞는 것인지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들은 기다렸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막은 후에도 위도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한두 번,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러댄 단리서언은 그나마 조금은 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그는 계속 주먹을 내질렀다.
일단은 죽인다.
그러고 나면 다시 살려내서 고통을 켜켜이 쌓아 주겠지만 우선은 죽이는 게 먼저였다.
단리서언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이제 곧 목뼈가 부러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이번이 마지막,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외쳤다.
‘…….’
주먹질은 아홉 번을 지나고 열 번을 넘어섰다.
죽어도 한참 전에 죽었어야 했고 목이 부러져도 한참 전에 부러져야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 작자는 아무런 반격도 가하지 못하면서 그대로 버텼다.
단리서언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기에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열 번으로 죽지 않으면 스무 번을 치면 그만이고, 스무 번으로 되지 않으면 서른 번을 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쉰 번이 넘고 예순 번이 넘도록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절대 경지의 고수가 호신강기를 펼친다고 해도 그렇게 오래 펼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내공을 어떻게 감당한다는 말인가.
‘다 된 거다. 이제 얼마 안 남은 거야. 이놈도 한계일 거야.’
쥐어 짜낼 힘을 다 짜내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건데 상대가 쓰러지기 직전에 자기가 멈춰서 포기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
단리서언은 이를 악물고 양손으로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죽어. 죽어. 죽어 버리란 말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절초를 펼쳤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것은 그자를 죽이는 데 초식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과시하고 싶어서였다.
특별한 초식이 아니라고 해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강한 주먹을 안면에 정확하게 날리면 죽는 것이 당연했다.
목이 부러지고 뼈가 함몰되고 피투성이가 된 채 호흡이 막혀 꺽꺽거리다가 죽는 게 정상이 아니냐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리서언의 주먹과 위도의 얼굴이 마주 닿는 접합부에서 지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의 살갗이 짓이겨지고 거기에 피가 더해지면서 반죽이 되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거였는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것이 위도의 상처에서 나는 소리라고 여겼다.
단리서언조차도 한참 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벗겨진 살갗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뼈가 드러나 버린 손이 자신의 것임을 그조차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위도는 오히려 편안히 누워서 단리서언이 주먹질을 하는 동안 대주고 있을 뿐이었다.
“……!”
단리서언은 순간적으로 헛숨을 들이쉬었다.
‘호신강기를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사용했다면 지금쯤 단전이 붕붕거리고 찢어질 듯이 괴로울 텐데. 차라리 그냥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텐데.’
이 자는 바보인 건가?
혹시 통증을 느끼지 못해서 이러는 건가?
잠깐은 그런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통증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처가 나는 것이 다른 사람과 완전히 달랐던 탓이었다.
단리서언의 손에 난 상처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간단히 그것을 고쳐 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고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생겨난 상처가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단리서언보다 더 놀란 사람은 채영이었다.
채영은 단리서언이 동요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고고하고 강한 모습으로 모두의 머리 위에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이가 아니었던가.
채영은 자기가 나서야 하는 건가 생각했다.
그러나 섣불리 두 사람 사이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잘못하면 단리서언에게 자기가 죽을 것 같았다.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서 자신에게 화풀이를 해 버릴 수도 있는데, 단리서언의 화풀이는 대충 쥐어패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목숨을 취할 터였다.
단리서언은 심호흡을 하고 주먹에 강기를 둘렀다.
지금까지 강기를 안 둘러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단리서언이 누구던가.
강기를 두르지 않았다고 그의 권격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단리서언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것이라도 이유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는 강기에 답이 있다고 주입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순간 위도의 눈빛이 단리서언의 얼굴에 들러붙었고 단리서언도 분명히 그것을 보았다.
‘……!’
단리서언은 자기가 본 눈빛이 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지 못하는 저주라도 받은 몸인가 할 정도로 그는 눈앞의 남자가 엄청난 고통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단리서언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단리서언의 손이 멈췄다.
상상할 수 없는 표정을 봐 버린 탓에 너무 놀라서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린 것인데, 평정심까지 잃은 상태에서 급격히 주먹에 공력을 밀어 넣다가 멈춘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갈 길이 막히자 공력은 휘돌아 들이쳤고 단리서언의 몸에 진탕을 일으켰다.
한꺼번에 내공을 때려 박듯이, 해일이 몰아 덮치는 것처럼 주먹으로 밀어 넣다가 그것의 반격을 당하자 코와 입, 눈에서까지 핏물이 흘렀다.
참지 못한 기침이 튀어나오자 입에서 내장 조각까지 섞인 피가 비산했다.
온갖 일을 경험한 단리서언이었지만 이런 일은 결단코 처음이었다.
위도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끝인가? 겨우 이걸 하려고 온 거야? 나는 또 뭐.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했잖아. 그게 아니면 내가 기다리는 놈이 아니었나 보네. 할 거 다 했으면 그냥 가라? 나는 기다리는 놈이 있어서. 더 대단한 놈.”
그가 단리서언의 정강이를 향해 다리를 횡으로 휘두르자 단리서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단리서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지금 잘못하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단리서언은 어떤 반격도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냥 공격을 전부 다 받아 내는 것이 나았다.
그러고도 죽지만 않는다면 이 일을 전부 다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채영은 견고하기만 했던 자신의 세계가, 자신을 둘러싼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자신의 주군이 그렇게 속절없이 당한다는 말인가.
정말 기가 막힌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제대로 된 권격조차 오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방적인 공격 후에 갑자기 단리서언이 쓰러졌다.
얼굴에 난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피를 쏟으면서.
채영이 멍한 얼굴로 단리서언을 보고 있을 때 사람들이 채영의 존재를 떠올렸다.
“모두 저놈을 맡으시오.”
위도가 소리치자 그때까지 못 박힌 듯 굳어 있던 무인들이 잠에서 깬 것처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채영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뇌혈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그들은 모두 단리서언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다.
위도가 왜 쓰러지지 않는 건지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단리서언이 주먹에 강기를 두르려다 내기가 진탕되었다는 것도 알아차렸고 그 시간이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마치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젓는 것처럼 채영을 향해 개떼처럼 달려들어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을 퍼부어 댔던 것이다.
단지 단리서언에 비해서 약하다는 것뿐이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함부로 볼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누구이던가.
아진이 지금껏 영약을 먹이고 자신의 비급을 전수해 가며 키우고 산본의가를 맡긴 사람이었다.
갑자기 단리서언 같은 위인이 나타나서 이상한 기세를 피워 올리니 놀라기는 했지만 그들 각자의 기량은 웬만한 거대 문파의 최정예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단리서언이 쓰러져 있을 동안만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처럼 그들은 내공을 아끼지 않고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절기를 펼쳤고 그 결과 채영은 수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절기를 뽐내는 동안 누더기가 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틈이 보이면 그곳으로 도망칠 텐데 빠져나가지 못하게 겹겹으로 막고 공격을 하는 바람에 채영은 위기를 느꼈다.
몇 번 도망치려고 시도를 하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매번 거대한 벽에 부딪히고 튕겨 나가고 말았다.
단리서언이라고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진탕된 내기가 빨리 안정되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는 내 차례라고 보면 되는 거지?”
위도의 목소리는 마치 사형이라도 언도하는 것처럼 음산하게 들렸다.
“……!”
단리서언은 즉각 반발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최대한 빨리 내기를 안정시키는 것에 집중해야만 했다.
위도는 단리서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그를 넘어뜨린 후 허리 위에 올라타더니 그때부터 무식하게 주먹질을 해댔다.
툭.
툭.
놀리는 것처럼 짧게 끊어치는 것이 기분도 나빴지만 타격의 강도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느리게 들어오던 주먹이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극쾌.
아니.
이 정도면 초극쾌라 해야 했다.
나중에는 잔상만 남을 정도로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으으으아아아악!!”
내공의 진탕이 멈춘 것을 깨달은 순간 단리서언은 그대로 몸을 튕겼다.
동시에 단리서언의 검세가 위도를 훑고 지나갔지만 위도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해냈다.
넉넉하게 피한 것은 아니고 분명히 조금은 거기에 휘말렸는데도 몸에 상처가 남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단리서언은 진저리가 처질 정도로 화가 났다.
아무리 대단한 내공 고수가 나타난다고 해도 한계는 명확히 존재하는 법이다.
절대의 고수가 혼자서 수만의 병사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자는 지금 그런 공식을 너무 가볍게 무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위도의 출신을 알지 못한 단리서언이 그 실력의 원천을 그저 내공과 호신강기로만 생각을 해서 오해한 것이었지만, 일단 거기에서 막히자 위도를 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해 보자. 네가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분명 위도는 단리서언이 상대해 본 적 없는 괴물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단리서언의 호승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단리서언이 다시 위도를 향해 검을 휘두르자 그가 서 있던 바닥에 족히 삼 장 깊이는 될 법한 균열이 길게 생겨났다.
그러나 위도가 먼저 몸을 움직여 균열이 땅을 더 이상 가르지 못하도록 바닥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바닥이 갈라져 산본의가에 있던 수십 채의 전각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리서언은 위도가 그 점을 신경 쓰는 동안 섬전처럼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