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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20화 (220/470)
  • 제220화

    220화

    아진이 위도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라며 투입하는 이들은 모두 아진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었고 위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들도 탱커니 딜러니 하는 것에 대해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로 위도를 볼 때까지는 탱커의 위력에 대해 상상도 하지 못했다가 위도를 겪으며 계속해서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이 몸으로 공격력까지 높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린린이 아쉬워할 때마다 위도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공격력이 높은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다 잘하면 좋잖아요.”

    “다 잘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고지식한 위도가 린린에게 소신 있게 자기 생각을 펼쳐서 린린의 속을 긁어놓는 모습을 보면 아진은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어찌 됐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위도야말로 비밀리에 최종병기로 재탄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아진은 결국 자신도 영약을 복용했다.

    북리의천과 소청, 린린은 처음부터 정해진 거였고 위도는 내공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기에 거기에서 제외되었다.

    그로 인해 각자에게 일갑자의 내공이 늘었다.

    처음에는 영약을 사용해 내공을 기적적으로 빨리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가도 나중에는 늘릴 수 있는 내공이 십 년이나 몇 년 단위로 줄어드는 것을 생각하면 일갑자의 내공을 증진한 것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면 그때는 각 사람이 수천 명을 상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내일쯤 해서 황상 폐하를 뵙고 오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측근을 부른 자리에서 아진이 말했다.

    “혹시 이상한 느낌이라도 드느냐. 아진아.”

    북리의천이 아진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스승님. 벽 소저가 찾아왔습니다.”

    아진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긴장했다.

    위도는 벽예월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아진이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벽 소저는 천문관의 제자로 천기를 읽을 줄 압니다. 그리고 이번에 천기를 읽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벽 소저의 말로는 천마신교가 일어나 중원을 덮치고 황실을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해진…… 거야? 천기에 나온 건 못 바꿔?”

    위도가 눈이 동그래진 채 물었다.

    “아니요. 우리가 대비해서 미래를 바꿀 여지가 아직 있다고 합니다.”

    “천마신교가 사용할 방법도 알고 있다더냐. 아진아.”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들을 이용하려고 한다는데 그들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천마신교에서 도우려는 것 같습니다.”

    “이런 미친! 왜 지금까지 그 말을 안 했어. 오라버니?”

    린린은 그곳에서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거였고 펄펄 뛰었다.

    비단 린린에게서만 나온 반응은 아니었고 천마신교의 다른 마두들도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들에게는 신교도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단리서언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신교를 오욕의 역사로 이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당장 신교로 가서 그자를 찾아내 도륙 내 버리겠어. 단리서언,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린린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아진에게도 새로웠다.

    매사에 귀찮아하면서 어떻게든 자기는 빠지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던 린린이 단리서언의 이야기에 거의 광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자기와 천마신교가 별 상관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린린을 다독였다.

    “그래. 그러니까 네가 그 일을 막아.”

    린린은 그 말에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히는 듯했다.

    “신교의 자금력과 정보력이면 그 일이 절대로 어렵지 않을 거예요. 간자를 심는 것도 그럴 거고요.”

    역천마의가 말을 하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도 린린만큼이나 다혈질적인 기질이 다분했기에 단리서언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기가 힘든 듯했다.

    “전대 교주를 살해한 것도 단리서언의 짓이었을 것입니다. 단리서언은 마신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리서언이 전대 교주를 살해해서 시신을 매달아 놓은 장소가 신전이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단리서언은 천마신교의 미래 같은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자는 마도 천하를 위해서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섬마대주가 말하자 다른 경비 무사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습니다. 단리서언에게 신교도들은 그저 고기 방패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한두 사람이 수긍하고 나섰다.

    “절대 단리서언이 그런 짓을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어떤 신교도도 그런 일에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뜻은 확고했다.

    단리서언은 신교도를 이용해 내분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신교도 내부에 이 사실을 미리 알리고 그 안에서 내분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아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린린. 몇 사람과 함께 신교에 잠입할 수 있겠어? 그리고 단리서언이 꾸미는 짓을 알려 줘. 너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너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신교 내에 존재할 것 같은데.”

    “당연하지. 신교도들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할 거야. 단리서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면 모두 놈을 막을 거야.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그렇게 할 거야.”

    린린은 의지를 보였다.

    아진의 말을 듣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자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며 의지가 더욱 뜨거워지는 듯했다.

    “그건 지존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신교도는 절대로 황실을 전복하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섬전대주가 소리를 높였고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들의 강한 분노를 느끼자 확실히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진아. 네가 아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북리의천이 말하자 아진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단리서언은 토번과 토욕혼을 자극해서 전쟁을 일으킬 겁니다. 항주에 왜구가 와서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데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그곳에서부터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들이 침입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신교에서 나서서 제거해 주고 침략을 용이하게 만들 거라고 했습니다. 모두 벽 소저가 해 준 이야기들입니다.”

    “벽 소저가 천기를 보고 알아낸 것들이라면 그것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단리서언이 지금 그들과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예. 그래서 폐하를 뵙고 함께 대응해 나가려 합니다.”

    “토번과 토욕혼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구는 절대로 화친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왜구가 항주에서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곧 항주에 가서 왜구를 치자고 낭왕과 이야기도 했었는데 전에는 사도련주의 일 때문에 미루다가 그 후에는 또 다른 일들에 밀렸구나.”

    “스승님께서 그 일을 생각하고 계셨다면 항주의 일은 스승님께 전부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폐하의 황금패를 드릴 테니 항주의 왜구를 먼저 토벌해 주십시오. 스승님. 이번에는 정의맹과 힘을 합치셔야 할 겁니다. 그곳에 있는 왜구의 수가 벌써 이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들었다. 우리가 서로 이권 다툼을 하느라고 그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동안 놈들이 세를 불려 나갔지. 그것이 고스란히 서민들의 삶에 재앙으로 이어졌고 말이다.”

    아진이 북리의천에게 그곳의 일을 맡기자 다른 이들이 눈을 빛냈다.

    자기들에게도 맡길 일이 있으면 시켜 달라는 듯했다.

    그러나 우선 신교와 왜구를 대상으로 한 작전 외에는 곧바로 무력을 행사할 계획은 없었기에 아진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지금 토번은 어느 때보다 강한 군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습니다. 토번의 군주는 정치와 책략 모두에 능하고 군대를 능란하게 다룹니다. 토번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토욕혼과도 전쟁을 치르고 왜구도 토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단리서언도 그것을 노릴 겁니다. 황군이 한 곳을 집중적으로 노릴 때 다른 곳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구의 토벌은 황군의 도움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다. 그래도 혈천방과 비룡채는 황상께서 잠시 빌려주시면 좋기는 하겠구나.”

    북리의천의 말에 아진이 웃었다.

    “그렇게 하실 겁니다. 스승님. 계책을 상세하게 세우시고 짱돌 아저씨를 통해 저에게도 알려주십시오. 단리서언이 얼마나 깊숙이 사람들을 심었을지 모르니 계획이 사전이 새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건 정말 주의하셔야 합니다. 신교도는 어디에나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역천마의가 확언을 하자 북리의천은 긴장이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금부터 움직이는 것이 낫겠습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다급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아진이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린린. 본가를 지킬 인력은 남겨 둬야 하니까 그건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해.”

    아진의 말에 린린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들었어? 산본의가의 이공자님이 집이 비는 동안에 마두들에게 집 좀 봐 달라고 하시는데.”

    그러자 천마신교에서 온 이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상황이 웃긴다고 생각해서 웃은 것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벅찬 감격을 느꼈다.

    아진이 아무 의심 없이 자기들을 믿어 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럼 제가 여기에 남겠습니다. 지존. 저만 남으면 됩니다.”

    뇌혈검이 말하자 린린도 그 말에 반박은 못 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남겠습니다. 지존. 혹시 부상자가 생기면 치료를 해야 하니까요.”

    역천마의의 말에 린린은 기가 막힌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본가가 어떤 곳인가.

    산본의가였다.

    눈을 감고 걸어가다 누군가와 부딪히면 그 사람이 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큰 곳이 그곳이다.

    어지간히 다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살려 놓는 것이 본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동료들의 안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이곳에 남겠다는 역천마의를 보면서 기가 막혔던 것이다.

    역천마의도 말을 해 놓고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게…….”

    역천마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언제 자기가 산본의가에 그렇게까지 마음을 쏟았는지 역천마의 자신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하려는 일도 많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우리랑 함께 가도록 해. 역천마의.”

    “네. 그럼요. 지존.”

    역천마의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진은 그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도 역천마의가 꾀를 부리느라 남겠다고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산본의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이 한없이 고마웠다.

    “형님.”

    아진이 위도를 부르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위도에게 향했다.

    위도는 가끔씩 시선이 허공에서 방황하곤 했다.

    사람들은 위도가 그러는 것이 영초를 너무 많이 먹은 부작용인지도 모른다고 말하곤 했다.

    “어?”

    한 박자 늦게 위도가 대답하자 아진이 웃음을 지었다.

    “본가를 맡기겠습니다. 형님.”

    “……응?”

    위도는 갑자기 그 압박감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것 같아서 놀란 얼굴로 아진을 보았다.

    그도 지금까지 아진이 하는 말을 열심히 들어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아진이 말하는 것들의 규모가 너무 커서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깨달았다.

    자괴감.

    서도진이 이곳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황상과 함께 나라의 안위를 위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 황도에 가겠다고 말하는 지금, 자신은 그동안 뭘 했던 건가 하는 생각에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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