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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17화 (217/470)

제217화

217화

그렇다는 걸 알았으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폭포수처럼 더욱 쏟아졌다.

단리서언은 한심하다는 듯 하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차가 멈출 때까지 대화는 완전히 멈췄다.

하월은 계속해서 멍청한 생각들을 이어나갔고 단리서언은 그때마다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마침내 마차가 멈추자 단리서언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기루는 하월도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기루마다 뒤를 봐주는 곳이 있었지만 이곳은 뒤에 누가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나 들어가지 못했고 그곳을 이용하려면 루주에게 받은 회원권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회원권이 일 년에 얼마라고 했더라?

“황금 두 관이다.”

앞서 걸어가던 단리서언이 말했다.

“…….”

물어본 건 아닌데.

대답해 달라는 게 아니었는데.

도대체 저자는 어떻게 남의 생각까지도 읽는다는 말인가.

하월은 이제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게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그는 또 생각해 버렸고 단리서언은 그를 한껏 경멸하면서 그 말에 대꾸했다.

원래는 남의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해 줄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월이 생각하는 것은 뭐든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서 절망하게 해 주려고 열심히 대꾸해 주는 중이었다.

그가 다가가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건장한 체구의 장한(壯漢)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뭘 저렇게까지 하나 했는데 그것은 그나마 밖이라 그런 거였고 일단 단리서언이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서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그를 맞아들였다.

‘신교의 것이었군.’

하월은 그제야 그 기루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단리서언은 그를 힐끔 바라보기만 했다.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는 걸 보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하며 단리서언은 여러 가지로 계산을 해 나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단리서언의 앞에서 깊이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지존.”

“몇 층이냐.”

“6층으로 가시면 되옵니다.”

“4층부터 전부 비워뒀겠지?”

“그렇습니다. 지존.”

하월은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덜덜 떨리는 다리로 단리서언을 겨우겨우 따라갔다.

그동안 웬만한 기루는 다 가 봤던 하월조차도 놀랄 정도로 기루의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사소한 것까지도 전부 황금빛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단순히 황금빛을 띠는 것이 아니라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하월은 뒤늦게 깨달았다.

도대체 이 방 하나를 만드는데 황금이 얼마가 들어갔을까 하며 하월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단리서언이 먼저 가서 자리에 앉았다.

하월을 노려보는 단리서언의 얼굴에는 불만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자기가 제대로 고른 게 맞는지 알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곧 술상을 보겠습니다. 지존.”

“되었다. 특별히 부를 때까지는 아무도 들이지 말아라.”

“예. 지존.”

루주가 나가고 단리서언이 하월을 쏘아보았다.

하월은 그 눈초리를 차마 받아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나는 황상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나 내 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

하월은 자기가 지금 들은 말이 무엇인가 하며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울렁거렸다.

“네가 내 수족이 되겠다고 말하면 만전의 돈은 갚아줄 수 있다.”

하월은 단리서언을 바라보았다.

미처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이미 표정을 통해 전부 다 읽혔다.

“그렇게 하면 너는 네 세가에 어떻게 할 셈이냐.”

“무인들을 전부 내쫓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장의 수뇌부를 전부 바꿀 것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많지도 않았지만 대답은 즉각적으로 나왔다.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복수를 꿈꾸는 것은 그렇게나 달콤했다.

“그자들이 필요할 텐데도 그러겠다는 말이냐.”

“예. 저를 무시한 놈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단리서언은 하월이 생각보다 훨씬 더 하수라는 것을 알았지만 탓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놈이 조종하기에 수월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거야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해라. 북궁천영도 죽일 생각이냐.”

“그건. 당분간은 지켜봐야 합니다.”

“지켜봐야 한다. 왜 그런 것이냐.”

“그래도 소가주의 자리를 정당하게 승계를 받은 후에 일을 처리하는 게 좋을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려면 북궁천영이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으냐.”

“북궁천영이 나서도록 할 것입니다. 저에게 소가주 자리를 넘기도록 말입니다.”

어차피 그런 일이야 단리서언에게는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어찌하려고 하시는지…….”

하월이 조심스럽게 단리서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단리서언은 그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지만 말을 해 주었다.

“황실의 재정을 바닥나게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전쟁입니까?”

“그래. 맞다. 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황상이 어떻게 할 것 같으냐.”

하월은 그 상황을 상상해 보려 했다.

“군대를 일으켜야 한다. 그게 전부 다 돈이지. 누군가에게 급히 돈을 빌려야 할 텐데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면? 그러면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되는 것이다. 황조가 무너지는 것은 정해진 이치지.”

하월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가 내리면 피하기에 급급했지 비를 멈추게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교주는 비구름에 호통을 쳐서 비를 멈추게 하려는 것 같았다.

교주라면 정말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건 어찌하려 하십니까?”

“그거야말로 간단한 일이다. 이쪽의 정보를 조금 주고 그쪽을 도우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작전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렇게만 하더라도 팽팽하게 대립하는 국경의 상황을 변하게 할 수는 있을 터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으냐.”

단리서언이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지존이시라면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멍청한 놈은 아니군. 그래. 나는 할 수 있다. 네가 할 일은 별것 없다. 만전을 다시 손에 넣어. 그리고 황실을 무너뜨리는 거다.”

“……!”

하월은 감히 입을 열지도 못했다.

그저 입이 벌어지고 웃음이 지어졌을 뿐이다.

단리서언은 여전히 믿어도 될 놈인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하월을 바라보았다.

‘어쨌거나 상관은 없겠지. 오히려 이렇게 멍청한 놈을 가지고 일에 성공하면 성취감이 더 커지겠어.’

단리서언은 먼저 일어섰다.

“명일 사만 오천 관을 가지고 만전으로 가마. 기다리고 있거라.”

“예. 지존.”

“지존이라는 말은 쓰지 말도록 해라. 다른 아이들에게는 굳이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는다만 네 놈은 스스로 입단속도 하지 못할 것 같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을 감추지 않은 채 단리서언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월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하자 단리서언은 먼저 몇 걸음을 앞서서 걷다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하월과 함께 있는 것조차 진저리가 나서였는데 하월은 그저 단리서언의 능력에 감동하고 있었다.

‘달라지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건방진 놈들의 혀를 전부 뽑아버리겠어. 눈알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누구를 먼저 손봐 주는 게 좋을지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 * *

하월이 북궁세가로 돌아갔을 때 세가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먼저 세가에 돌아온 가주는 하월을 찾았고 그가 세가에 없다는 것을 알고 격노했다.

“그놈이 나가도록 그냥 두고 보기만 했다는 것이냐!”

“데리고 간 자의 무위가 워낙…….”

“닥치지 못하느냐!!”

누가 하월을 데려간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밝혀진 것은 없었고 그 과정에서 스무 명에 가까운 세가 무인들이 죽었다.

고작.

고작 하월 하나로 인해서.

하월을 데려가기 위해 단리서언이 죽인 자들까지 하자면 그 수가 더 늘었다.

무사는 곧 돈이다.

무사를 양성하기 위해 들인 돈을 생각하면 가주는 당장이라도 하월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북궁천영이라도 다르지 않았다.

세가가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있을 때 하월이 들어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기가 막혀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어디로 기어나갔다가 이제 오는 것이냐!!”

북궁천영이 큰소리를 쳤지만 하월은 그를 한 번 힐끔 보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북궁천영은 기가 막혔으나 하월을 잡아 세울 수가 없었다.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뭐지? 왜 저런다는 말이냐!’

북궁천영은 그 상황을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월이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꿇릴 게 없이 자신만만하다는 뜻이기에 지금의 하월이 자기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 갔다 오는 길이냐.”

북궁천영이 느낀 것을 가주 역시 느꼈는지 그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월은 그들의 말투가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보며 역겹다고 생각했다.

하월은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싶었지만 그래도 다음날 만전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말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야 그것이 자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 터였다.

“내일 만전으로 갈 겁니다. 거기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요.”

“만날 사람?”

가주가 같잖다는 듯이 말했고 북궁천영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네까짓 게 뭘 한다고 거기에 간다는 거지? 네놈에게도 염치라는 게 있기는 한 거냐? 지금 그곳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는 있는 줄 아는 것이냐?”

겨우 누그러뜨렸던 화가 다시 솟구쳤다.

“내일.”

하월이 입 닥치라는 소리를 대신해 그들에게 큰소리로 일갈했다.

“만전으로 사람이 찾아올 겁니다. 그 사람을 만나 본 다음에 얘기를 하십시오. 그 일이 불발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두 사람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으면 저렇게 건방지게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하월은 그 말을 남기고 제 처소로 들어 가버렸다.

“저놈이 정녕 미친 것이냐.”

가주의 말에 북궁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에게 혼란을 가득 안기고 제 처소로 들어 가버렸던 하월은 밤늦게 움직였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북궁천영의 처소였다.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은 그 시간에 왜 하월이 그곳에 오는 것인가 하면서 북궁천영에게 소식을 전했다.

“들라 해라.”

용건을 가지고 찾아온 놈을 그냥 돌려보낼 이유도 없었다.

그 전날이었다면 호통을 치거나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지게 두들겨 패서 돌려보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묘하게 달라졌다.

하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

초조한 기색을 숨기려 애쓰는 북궁천영을 보면서 하월은 웃음을 지었다.

“형님께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네놈이 감히 제안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다는 말이냐. 나는 네놈이 대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말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으실 텐데 말입니다.”

하월이 느슨하게 웃으며 말하자 북궁천영은 크게 조롱이라도 받은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도 하월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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