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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14화 (214/470)

제214화

214화

“잘못 먹고 탈이 난 건 없었어요?”

“아이고. 왜 없겠어요?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게 몇 번인데요?”

위도는 그 말이 나오기만 기다렸던 것처럼,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아진은 소청과 부지런히 다니면서 영초와 약초, 독초들을 뜯었다.

한 군데에서 나던 것은 각각 한 곳에 담아 나중에라도 섞이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

위도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이제 돌아갈 생각인 거라고 여긴 듯했다.

“저…….”

위도는 그들의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말했고 아진은 위도가 왜 그러는지 짐작이 갔지만 자기가 제안하는 것보다는 위도가 말을 하도록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혹시 괜찮으면…….”

“예.”

“나도 당신을 따라가도 되겠소?”

“그러시죠.”

“……정말 그래도 됩니까?”

“당연하지요. 안 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위도가 놀란 듯이 아진을 보았다.

이곳에 온 후의 시간은 거의 비슷하게 흘렀는데 위도의 삶은 엉망진창이라고 말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듯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이곳에서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은 사귀어 보지도 못했고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기 일쑤였으며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그 긴 시간을 버텨온 것이다.

아진도 누구 못지않게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를 대신해서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워 주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러나 위도는 그런 방패막이나 울타리가 전혀 없이 그에게 적대적인 세상에 혼자 맞서야 했다.

“거기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너무 안 좋은 사람들만 만났어요. 그래서 매 순간 날이 서 있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어려웠을 거고요.”

아진은 첫 만남을 떠올리며 말했고 위도도 거기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혼자 있는 건…… 정말 뒈지게 싫어요.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습니다. 정말로요.”

위도의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그는 자기가 그런 거로 울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가 손으로 눈을 꾹 눌렀다.

잠시 그렇게 누르고 있으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는데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눈물이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콸콸 쏟아졌고 나중에는 어깨까지 들썩여가며 울었다.

아진은 그의 처지가 이해가 돼서 그가 시원하게 울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위도는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잡혀 있다고 생각한 듯 미안해했지만 사실 그런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동안 혼자 고생이 많았다.”

황제까지 나서서 그렇게 말하자 위도의 오열이 커져 갔다.

거의 일각이 넘게 울고 나서 위도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못난 모습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아이고. 어쩌자고 이랬는지. 그래도 울고 나니까 시원하기는 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섬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위도가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섬에 적혀 있던 무공 비급은 보셨습니까?”

“예. 봤습니다.”

“그런데 왜 적지 않으십니까? 혹시 쓸 것을 챙겨 오지 않아서 그런 거면 제가 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아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 없습니다. 다 외웠습니다.”

그러자 위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희 스승님은 한 번 보시면 다 외우세요. 저희 사고님도 그러시고요. 저희 스승님이랑 사고님은 모두 천재세요.”

소청은 기회가 생겨서 좋은 듯 스승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그 많은 걸 전부 말입니까?”

“전부 다 외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외우고 기억할만한 것은 몇 개 안 돼서요.”

위도는 이전의 말에 더 충격을 받아야 하는 건지 뒤의 말에 더 충격을 받아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대체…….”

다른 것은 이미 알고 있거나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수준이 낮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위도는 아진에 대해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말까지 듣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진은 말을 할 때마다 위도를 부를 호칭이 없어 얘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자 먼저 호칭을 정하기로 하고 말했다.

“뭐…… 나이 먹은 것 말고는 더 잘하는 게 없기는 하지만 그렇게 불러주겠다면…… 고맙소.”

“예. 형님의 경공은 일보월하라는 것입니다. 일보월하를 벽에 새겨진 글만 보고 그렇게까지 해내실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만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서 끝까지 펼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오?”

“제가 조금 가르쳐 드리려고 하는데 그게 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가 섞일 수가 있고 지금 당장 일보월화를 펼쳐야 하는데 그게 헷갈리면 안 되어서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잘할 수 있소.”

“그렇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이 앞에 앉으십시오.”

아진은 그가 구결을 외우고 초식을 펼칠 때 내기의 흐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곳을 타통해 주고 그에게 다시 내공을 움직여보도록 했다.

위도는 초식에 맞춰 내공을 움직이더니 눈이 커졌다.

“이게……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이오?”

그의 말에 아진은 그 문제가 다행히 간단히 고쳐졌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형님은 이미 스스로 깨친 것이 많은데 그것들이 조금씩은 바르지 못하게 자라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바로잡아 주면 몰라보게 그 위력이 커질 겁니다.”

“혹시 그렇게 해 주겠다는 말이오?”

“저는 앞으로 제가 형님의 도움을 받을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가를 바라고 이러는 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좋소. 나도 그렇게 하는 게 좋소.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건 나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아직 서툴지만 많이 가르쳐주시오. 그리고 나를 잘 이용해 주면 좋겠소.”

“그런 거라면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형님.”

위도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함께 섬을 떠났다.

아진은 섬에서 가지고 나갈 것들이 많아져서 걱정이 많았는데 위도가 짐 대부분을 들어 주어 부담이 훨씬 덜 했다.

딱히 그것을 노리고 위도의 기혈을 타통해 준 것은 아니었는데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위도는 훨씬 안정적으로 일보월하를 펼쳤고 도중에 바다에 빠질 걱정을 하지 않은 채 갈 수가 있었다.

다시 절강에 이르렀을 때 황제는 아직 떨림이 다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생애에 그런 경험은 다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너무 가슴이 벅찬 듯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고 아진은 황제가 감정을 갈무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황제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웃음을 지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꿈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다시 자신의 삶으로 걸어 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도 며칠간의 휴식이 그에게 새로운 힘을 채워 주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다시 바빠지겠구나. 아진아.”

“예. 폐하. 영약을 먹이고 무인들을 훈련하며 교주의 행동에 대비할 것입니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느냐. 네가 아니었다면 병력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그 생각을 하느라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그 문제는 여전히 계속 고민을 해야 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대안이 생긴 것이 어디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영약을 복용시키는 일이 어느 정도 끝나면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나도 그 일에 대해서 조만간 너와 다시 의논하고 싶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북진무사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고 북진무사는 황제의 호위 병력을 동원해 황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채집행은 잘 되었습니까, 서 소협.”

북진무사가 떠나기 전 물었고 아진은 밝은 얼굴로 그렇다고 대답을 해 줄 수 있었다.

“황상의 용안이 저리 밝으신 것은 진심으로 처음 봅니다. 서 소협이 황상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드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야 저도 기쁠 것입니다.”

“황궁에는 언제 오십니까?”

“조만간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인사를 길게 나누지 않아도 되겠군요. 살펴 가십시오.”

그렇게 인사를 마무리 지어 가는데 소청이 아진에게 다가왔다.

“스승님. 저는 위도 아저씨와 함께 가면 되는데 스승님이 폐하를 황궁까지 모셔다드리는 것이 어떤지요?”

“…….”

영약을 복용시키겠다는 것에 마음이 뺏겨 조급했는데 소청의 말을 듣고 보니 북진무사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호위 병력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무위가 얼마나 강한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 모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문제였는데 그 부분에서 너무 쉽게 믿어 버렸던 것이다.

‘표사들을 그렇게 잃었으면서도 내가 너무 섣부르게 생각했구나.’

아진은 소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아저씨와 함께 먼저 가 있어라. 나도 곧 뒤따르겠다.”

“예. 스승님.”

소청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위도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아진은 북진무사의 일행이 떠나기 전에 그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를 불러냈다.

“황성까지는 먼 거리라 황상께서 지치실 것이 걱정되는데 아무래도 제가 모셔다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소협에게 급한 용무가 있는 듯해서 청을 하지 못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북진무사가 기꺼워하며 말했고 아진은 황제가 자기와 가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다른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불순한 무리가 끼어서 사특한 계략을 세웠다면 그렇게 해서 간파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면 변복을 하시고 밖으로 나오시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내 북진무사가 떠났고 잠시 후에 아진은 변복을 한 채 다가오는 황제를 발견했다.

황제도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린 듯했고 아진에게 고마워하는 한편 미안해하는 기색도 보였다.

“짐의 유랑 때문에 너에게 너무 큰 수고를 끼쳤구나.”

“아닙니다. 폐하. 폐하께서 굳건하셔야 모든 일을 믿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대로 계속 경공을 펼칠 수 있느냐, 아진아.”

“흑주가 있으니 걱정할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렇구나. 흑주가 있었지. 그러면 부탁하겠다.”

황제는 익숙하게 아진에게 업혔고 아진은 경공을 펼쳤다.

위도가 했던 일보월하를 자기도 한번 해 볼까 하면서 일보월하의 구결을 읊고 초식을 펼치자 한걸음에 강 하나를 건넌다는 이름처럼 그 아래의 풍경이 순식간에 몇십 장씩 뒤로 물러났다.

‘신기하군.’

굳이 자기가 사용하던 경공을 버리고 그것을 할 이유는 없지만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기혈을 단련하는 의미는 생겨나는 듯했다.

‘이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런 생각으로 가다 보니 어느덧 황궁에 이르렀고 황제는 기습을 받을 여지도 없이 안전하게 처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너무 즐거워서 다음에도 또 가자고 자꾸 조르게 될 것 같구나. 아진아.”

“교주의 일을 처리하고 나면 제가 곳곳을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폐하.”

“그래.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어서 가도록 해라. 너무 오래 붙잡았다.”

“예. 폐하.”

황제가 친히 배웅해 주려 했지만 아진은 걸음을 떼지 못했다.

웬만하면 그냥 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운기조식을 한 번은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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