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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13화 (213/470)
  • 제213화

    213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세상에 이런 구슬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내공을 움직이는 게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새 힘이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위도는 그게 신기해서 거기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아진 일행은 어차피 흑주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알고 있었던 만큼 빨리 너구리들에 대해 듣고 싶었다.

    너구리들은 위도가 섬을 떠나고 아주 자기들 세상인 것처럼 판을 치고 돌아다닌 것 같았다.

    “아. 저놈들. 죽지도 않고 돌아다니네.”

    “저 너구리들 머리에 난 꽃이 영초인 건 맞습니까?”

    “너구리 머리에 난 꽃은 한 번도 먹어 보지 않았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소? 나는 그냥 섬에서 정상적으로 나고 자란 것들만 먹어도 되는데.”

    순식간에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은 아진은 그동안 위도가 겪었던 기분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떤 게 영초인지 그런 건 잘 모르겠소. 그래도 내가 먹은 게 어떤 것들인지는 알려줄 수 있소.”

    아진의 말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아진의 모든 신경은 너구리 머리에 난 꽃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건 소청도 마찬가지였다.

    “폐하. 잠시만 여기에서 기다리십시오. 소청아. 폐하를 잘 모셔야 한다.”

    “네. 스승님.”

    소청은 자기도 같이 가고 싶은 것을 애써 참는 듯했다.

    “폐하는 내가 모실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시오. 이 아이도 공력이 보통이 아니던데.”

    위도가 말하자 황제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짐을 죽이기를 하겠느냐, 공격을 하겠느냐. 아진이 너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많을 테니 짐을 죽여 봤자 네가 짐을 살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겠지. 짐은 여기에서 구경하고 있을 테니 어서 너구리를 잡아 보아라.”

    황제야말로 들떠서 못 견디는 듯했다.

    “그런데 꽃을 뜯어내면 아프려나?”

    아진은 너구리를 쫓아가다가 문득 멈춰서 말했다.

    너구리들은 아진을 피해 도망치는 것 같더니 아진이 따라오지 않자 왜 안 오냐는 듯이 아진에게 달려왔다.

    그러다가 아진이 다시 쫓아가자 또 도망치는데 마치 아진에게 놀자고 그러는 것 같았다.

    도망치는 자세부터가 전력으로 달리는 품새가 아니라 기분이 좋아서 깡충깡충 뛰는 것처럼 보였다.

    소청도 영초를 노린다기보다 너구리들과 노는 것처럼 쫓아다녔다.

    “스승님. 잡아야 하는 거 맞죠?”

    “그러게 말이다.”

    “일단은 잡아 볼까요?”

    “그러자.”

    잡기로 하고 맹렬히 몸을 날렸는데 의외로 그게 쉽지 않았다.

    깡충거렸던 것은 그저 놀아 주려고 그런 것일 뿐 제대로 달리기만 하면 잡힐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듯이 모두가 작정을 하고 도망쳤다.

    순간적으로 신법을 펼쳐서 몸을 날려도 매번 헛바람만 안을 수 있었을 뿐 너구리는 매번 유유히 품을 빠져나갔다.

    운남에서 고독을 잡을 때 소청이 특히 재능을 발휘했던 게 떠올라서 소청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소청을 보았지만 소청도 너구리만큼은 쉽게 잡지 못했다.

    “으으으으!”

    성격 좋은 소청조차도 너구리를 연거푸 놓치고 나자 화가 나는 듯 그때부터는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들었다.

    너구리들은 심심하던 차에 나타난 인간들이 재미있는지 신이 난 모습이었다.

    심지어 너구리의 머리에서 자라는 꽃들이 어찌나 활짝 피었는지, 처음 봤을 때와 같은 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파리는 모두 여덟 장.

    코스모스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하늘을 향하기도 하고 고개를 든 것처럼 바짝 일어서기도 했다.

    너구리가 정말 신이 나면 활짝 만개하는 듯했다.

    너구리가 신이 날수록 아진과 소청은 약이 바짝 올랐다.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도망쳐 버릴 때는 고함이라도 버럭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실제로 그 두 사람은 곳곳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황제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런. 혹시 너구리를 잡을 방법이 없느냐? 그동안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느냐?”

    황제가 위도에게 물었지만 그는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아플 텐데 저걸 어떻게 뽑겠습니까. 폐하?”

    “뽑지는 않고 그냥 꺾기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

    “꽃들이 저기에 생명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꺾으면 너구리도 힘을 잃지 않을지요?”

    “정말 그런 생각을 해서 안 꺾은 것이냐?”

    “당연합니다. 폐하.”

    “잡으려고 했다면 잡을 수는 있느냐?”

    “물론입니다. 폐하.”

    위도는 황제의 도발에 순식간에 넘어갔다.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너구리를 잡으러 가려는 것 같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폐하를 지켜야 합니다. 저를 믿고 맡긴 일인데 처음 맡은 임무에 실패할 수는 없습니다.”

    “제법이구나. 그런데 이 섬에는 어차피 다른 사람은 없지 않으냐.”

    “그렇지만 너구리가 저렇게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지요? 너구리는 생긴 것하고 다릅니다. 폐하. 기분 좋을 때는 저러고 다니지만 기분이 나빠지면 아주 성질이 포악해집니다.”

    황제는 너구리에게 그런 습성이 있는 건가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잡았! 으아아아아!!”

    소청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지간히 열이 받은 듯했다.

    “어어?”

    소청을 지켜보던 황제가 팔을 들고 앞쪽을 가리켰다.

    “보았느냐. 방금 꽃이 떨어졌다. 이파리 하나가 떨어졌단 말이다.”

    황제의 말에 위도도 소청 앞의 너구리를 보았다.

    그러자 소청의 약을 올리고 신이 나서 데굴데굴 구르던 너구리가 자기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바닥에 떨어진 이파리를 보고 통곡을 했다.

    소청은 너구리에게 뺏기기 전에 잽싸게 그것을 쥐었다.

    “뭐야. 소청아? 어떻게 했어?”

    “저는 한 게 없는데 너구리가 기분이 좋아서 구르다가 꽃잎이 떨어진 것 같아요. 스승님.”

    “그래? 그러면 그걸 공략해 볼까?”

    “네. 스승님.”

    아진은 소청에게 어떻게 한 건지 다시 한번 묻고 너구리를 향해 달려가 허공에 몸을 날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너구리 때문에 정말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더니 너구리가 신이 나서 허공으로 깡충 뛰어오르더니 아예 공중제비까지 돌며 내려왔는데 너무 신이 나서 까부는 바람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졌다.

    소청에게 하나를 잃은 놈과 다른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은 제 머리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좋아. 저거다.”

    “네. 스승님!”

    소청도 방법을 알았다는 듯이 그때부터는 꽃잎만 노렸다.

    꽃잎에도 영험한 효력이 있을 것 같아서였는데 너구리들은 오랜만에 나타난 방문객들이 퍽 마음에 드는 듯 지치지도 않고 뛰어놀았다.

    한 번은 정말 너구리를 잡을 뻔했고 꽃을 손에 쥐기도 했는데 그걸 뽑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그냥 놔 버렸다.

    그러자 너구리도 놀란 듯 멀리 달아났는데 꽃 한 송이에 있던 이파리 여덟 개가 한꺼번에 주르륵 떨어졌다.

    너구리는 앞발로 제 머리를 더듬어 보더니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머리 위에 얹었는데 그래 봐야 조금만 뛰면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너구리는 그걸 보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듯 포기해 버렸고 소청이 달려가서 그것을 챙겼다.

    “서른일곱 장이나 모았어요. 스승님. 이건 무슨 효능이 있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제선문주님이랑 역천마의라면 금방 알아내겠지.”

    “그러면 더 많이 가져가야겠네요.”

    두 사람이 잠시 꽃잎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너구리들은 혹시 놀이 시간이 다 끝난 건가 하는 듯 두 사람의 곁으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황제는 그 모습을 보며 자기도 거기에 끼고 싶어서 몸이 들썩거렸다.

    “정말 귀엽지 않으냐. 황궁에 한 마리만 가져가면 정말 좋겠다.”

    “여기에서는 저렇게 행복하고 자유롭게 뛰어놀지만 황궁에 가면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폐하.”

    황제도 정말 꼭 가져가고 싶다는 건 아니었기에 괜히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고 큼큼거렸다.

    그러나 위도는 황제가 눈치를 줘도 굴하지 않았다.

    어차피 현대인이라 황제가 위협을 한다고 해도 별로 먹히지도 않을 거였다.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그냥 납작 엎드리는 시늉을 할 뿐이지 이곳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황제를 존엄하게 여기거나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진과 소청은 너구리들이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관심이 안 가는 것처럼 더욱 꽃잎에만 열중했고 너구리들은 계속 놀자는 듯 두 사람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왁!!”

    그때 아진이 옆으로 돌면서 너구리들을 깜짝 놀라게 하자 몇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고 한 송이에 매달려 있던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때부터는 아진과 소청이 신이 나서 웃어 댔고 너구리들도 나중에는 아주 통 크게 그까짓 꽃잎 몇 장은 줘도 된다는 것처럼 굴었다.

    몇 번은 정말 너구리가 유혹적으로 앞에서 알짱거렸고 꽃을 손에 잡을 수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진과 소청은 갈등을 일으킨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안 되겠지?”

    아진이 그렇게 말하면 소청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좀 웃기기는 해요. 스승님.”

    아진도 소청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충독을 죽일 때는 피도 눈물도 없이 죽였고 운남에서 독물들을 잡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유독 너구리에게만 그러는 것이 어찌 보면 가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세상이 다 그런 거야. 귀엽잖아.”

    “그건 그래요.”

    어느덧 소청은 너구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옆에 있기에 손으로 쓰다듬으면 닿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었지 정말 자기가 쓰다듬어 주도록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너구리는 기분이 좋은지 자기를 계속 쓰다듬도록 머리를 대주고 있었다.

    소청은 그 유혹까지는 참을 수가 없었는지, 너구리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꽃잎을 전부 똑 따 버렸다.

    너구리의 머리에는 꽃대만 남아 있었는데 너구리는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소청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너구리를 보았다.

    혹시라도 너구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거였는데 별다른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꽃이 없어도 상관은 없나 보다.”

    “그런 것 같아요. 스승님.”

    그리고 그들은 다음날이 됐을 때, 사라진 꽃들이 다시 피어난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열심히 모은 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아진과 소청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그때부터 너구리 사이를 누비며 꽃을 땄다.

    너구리들은 어제보다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듯 카카칵 거리며 뒹굴고 난리가 났다.

    어느덧 위도도 그 무리에 합류해 있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아진이 자기에게 맡긴 임무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들이라면 섬 안의 어디에 있다가도 황제에게 순식간에 달려갈 수 있었기에 꽃잎 채집에 한동안 열을 올렸다.

    그런 후에는 섬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영초를 땄는데 위도는 자기가 아는 대로 그것들의 효능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어떤 게 내공을 얼마나 올려주는지는 모르는데 그냥 이것저것 섞어 먹고 나니까 내공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건 확실해요. 그리고 이건 염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고 이건 상처가 났을 때 으깨서 붙여놓으면 상처가 빨리 나아요. 이건 배가 아플 때 끓여서 먹으면 좋고요.”

    그런 것을 일일이 하나씩 전부 먹어 보고 효능을 알아 갔을 거라고 생각하자 새삼스럽게 위도가 더 불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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