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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11화 (211/470)

제211화

211화

“맞습니다. 산본의가 이공자 서도진. 그게 나입니다. 그런데 섬에서 나온 건 언제였습니까?”

“여기에서 눈 뜨고 한 사오 년이 지난 후였던 것 같소.”

“그때 무공을 할 수 있었던 거군요.”

“거기에는 영약만 있는 게 아니었소. 섬에 비급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소. 돌이란 돌, 바위란 바위, 동굴이란 동굴마다 구결이 적혀있고 초식에 대한 설명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소.”

아진은 정말 희한하다고 생각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도중에 점소이가 술상을 봐 와서 그때 잠깐 대화가 멈췄지만 그 후로는 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알아야 말이지. 어떤 것들은 제멋대로였고 글씨 자체를 알아보기가 어려웠소. 그래도 상태가 그나마 나은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가지고 익혔는데 중얼중얼 구결을 외우고 초식을 따라 하니까 그게 되는 거요. 처음에 했던 건 삼류 무공이었는데 이제는 그게 뭐였는지도 생각이 안 나네.”

아진은 위도의 말에 집중했고 그도 아진이 집중한다는 것을 알아서 그랬는지 음식을 먹을 틈도 없이 얘기를 해 나갔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이 순진한 구석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잠깐만요. 당신이 기막을 두르고 있으면 안 되겠소? 나는 곧 내공을 써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진이 말하자 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듯이.

그리고 기막을 펼치는데 엄청난 내공을 가진 사람답게 조금도 힘들어하는 모습이 없었다.

“하나둘씩 익히고 났더니 다른 것들은 뭘 말하는지 알겠더군요. 잘못 쓰인 것도 알 것 같았고 말이오. 그거라도 있었으니 거기에서 그 시간을 다 버텼지. 그러다가 나중에 섬을 돌아다니다 그걸 발견한 겁니다. 대륙으로 가는 방법요.”

“그런 게 적혀 있었습니까?”

“예. 신기하죠? 그 사람들은 거기에 어떻게 가서 살았던 건지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친절하게 대륙까지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무슨 무공을 펼쳐야 갈 수 있는지, 내공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열심히 수련을 했죠. 그런데 그거 압니까? 그거 뻥이었어요.”

“……네?”

“거짓말이더라고요. 나쁜 인간들. 섬을 빠져나가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 것 같아요. 이십 리나 모자랐단 말입니다. 그 구간을 헤엄쳐서 왔어요. 진짜 죽는 줄 알았죠.”

위도가 말을 하고 그게 믿기냐는 듯이 큰 소리로 웃어댔다.

“혹시 나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까? 헌터로 각성하기 전에 수영 선수였거든요. 내가. 다행히 이 몸뚱이에도 그 능력이 어느 정도는 이어진 것 같더라고요. 그거 아니었으면 진짜 죽었을 거예요. 도중에.”

“이십 리는 왜 모자랐던 건데요? 내공이 부족하던가요?”

“아뇨. 그건 내공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넘도록 계속 경공을 펼치는 게 어렵더라고요. 구결을 외우는 것도 그렇고 초식 자체가 제대로 안 돼요.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죠.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거기는 했지만요.”

아진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나는 그곳에 가려고 합니다.”

“그 섬에 말입니까?”

위도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 있는 영약이 필요합니다.”

“그 섬에 영약이 있다는 말을 정말 믿기는 한 모양입니다? 지금껏 내가 그렇게 끈질기게 말을 했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이 다들 나를 놀리기에만 바빴는데요.”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아진의 표정을 살폈다.

아진이 정말 진지하게 하는 말인지 알아보고 싶은 것 같았다.

“나도 검신 대협의 제자에 대해서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자가 이미 스승을 뛰어넘었다고도 하더군요.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게 다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아진을 바라보았다.

“내가 같이 가면 어떻겠소?”

“왜 그러겠다는 말입니까?”

왠지 아진에게는 그의 호의가 순수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순수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떨어져 버렸는데 자기는 몇 년 동안 무인도에 갇혀 있었고 서도진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산본의가의 이공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정파 무림의 일인자라고 불리는 검신의 제자로서 명성을 날렸고 본가인 산본의가의 명성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화가 날까.

아진은 그런 마음을 갖는 게 당연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기가 위도였다면, 그리고 이 자리에서 자신을 만났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위도를 탓하자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다고 생각할 무렵 위도가 먼저 일어났다.

“그렇게 합시다. 사도련주를 죽였다는 말을 들었소. 그래서 이곳에 있는 무인들도 당신을 노리고 있소. 당신에게 비무를 청해서 꺾을 수만 있다면 단번에 무림에 이름을 날릴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오.”

아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비무를 청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에 달했다.

그러나 아진은 그 사람들과 비무를 하느니 차라리 산본무관의 수련생들과 지도대련을 해 주는 편을 택했다.

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면서 다른 이의 비무 신청을 받아 준다는 말인가.

아진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당채운 같은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그것은 무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했지만 아진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었다.

“나도 당신 덕 좀 봅시다. 나는 내가 이곳 생활을 이렇게 못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소. 그런데 정말 어렵소. 나는 이곳 사람들도 마음에 안 들고 내 말을 믿지 않는 것도 짜증이 나오. 나는 정말 강한데 기회를 얻지도 못하오.”

아진은 위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중에 탄성을 냈다.

S급의 탱커.

방어력은 막강하지만 공격력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내공을 얻고 초고수가 되었다면 전투를 할 때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서서히 상상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과 싸워본 적이 있습니까? 비무 같은 걸 해 본 적이 있냐는 말입니다.”

“그렇소.”

“거기에 대해 말해 줄 건 없어요?”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떠났소. 그렇지만 내가 이겼소. 그자들이 알았건 몰랐건. 그자들은 나와 싸우고 돌아가서 앓아눕고 일어나지 못했을 거요. 겉으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런 식으로 기혈이 뒤틀린 자들이 한 둘이 아니지. 아마도 앞으로 내공을 사용하지 못할 거요. 그러면 내가 이긴 게 아니겠소?”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S급 탱커의 위력이지.”

위도는 웃었지만 아진은 그러지 못했다.

“나를 데려갈 생각이 있소? 후회하지 않을 거요. 정말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겠소. 아니. 그러나 마나 당신이라면 내가 무슨 문제를 일으키건 그걸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소? 그러면서 뭘 주저하시오?”

위도는 생각을 지극히 간단히 하는 것 같았다.

아진도 오래 생각할 시간은 없었고 일단은 위도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어 그에게 비무를 제안했다.

“비무 말이오? 그래도 일단 식사를 할 시간은 줄 거요?”

“그러겠습니다.”

“알았소. 그럼 조금만 기다리시오.”

식사를 하는 동안 아진은 그가 몇 살인지 물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후의 나이가 모두 아진보다 많았다.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아 실력 검증만 되고 나면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하고 계십시오. 일행에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시오. 옆에서 보고 있으니까 영 불편해서 먹질 못하겠는데 천천히 오시오. 다른 데로 가지 않을 테니.”

“알겠습니다.”

아진은 황제에게 돌아가 위도에 대해서 말을 해 주었다.

위도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은 말을 하지 않고 그 부분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 두었다.

그것은 방에서 나오기 전에 위도와 미리 말을 해 둔 사항이었다.

황제는 그 이야기를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언젠가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신교의 뇌옥 중에 그런 곳이 있다고 한 것 같았는데. 아주 깊은 곳에 뇌옥이 있는데 거기에 사람을 가두고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저절로 죽게 했다고 하더구나. 뇌옥을 만든 특수한 돌 때문에 그 안에서는 아무도 내공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몇십 년이 지나고 그곳에 내려갔더니 곳곳에 무공 비급이 새겨져 있었다더구나.”

아진은 그 말을 들으며 신빙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에 문제가 생겨서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는 뭔가를 남기고 죽고 싶을 것 같았다.

그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살아갈 날이 창창하다고 생각됐을 때는 자기가 깨우쳐 왔던 무공을 절대 다른 이에게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런 미련이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거기에 그런 무공이 남겨져 있는 거예요, 스승님?”

“그렇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 사람의 체질이 신기해.”

아진은 위도에 대해 설명했고 소청은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 물었다.

“그건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공격을 받아내는 동안 자기 몸에 받는 타격은 크지 않고 오히려 그자에게 공격한 사람에게 그 해가 미치는 것 같다.”

“그러면 그분이랑은 함부로 싸우면 안 되겠네요?”

“그래. 소청아. 그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 사람이랑은 절대 싸우면 안 된다. 나를 욕하는 걸 들었다고 해도 안 돼. 알았지?”

“……네.”

소청은 만약 정말 그런 상황이 오면 참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에게 있는 내공이 거의 팔갑자라는 말에도 그랬지만, 도중에 바다에 떨어져서 그때부터는 헤엄을 쳐서 왔다고 말하자 정말 믿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댔다.

“아진아. 우리도 뭔가 방비를 미리 해 두면 어떻겠느냐? 배를 가져가지는 않는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는 동안 바다에 나무를 하나씩 박아둔다거나.”

“수심이 어느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폐하.”

“……그렇구나. 수심이 깊으면 그것도 소용이 없겠어.”

황제는 그 후에도 여러 이야기를 했다.

우선 혼자 흑주를 데리고 섬에 먼저 갔다 와 보고 그렇게 사전답사를 끝난 후에 와서 자기와 소청을 데려가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아진이 흑주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걱정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는데 소청에게만 황제를 그렇게 오랫동안 맡기는 게 아니라면 아진도 그러겠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 즉답을 못 하자 황제도 무슨 이유인지 짐작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너를 믿는다. 서두르지 말고 최상의 상태로 시도해 보자.”

“예. 폐하. 조금도 걱정하실 일 없을 것입니다.”

“그래. 나는 그 말을 믿을 것이다.”

걱정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두겠다고 해도 될 텐데 황제도 참 웃기는 사람이었다.

그랬으니 지금까지 무공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아진을 가까이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위도가 내려왔다.

위도가 소란도 부리지 않고 아진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자 사람들이 그를 힐끔거렸다.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그리고 그를 욕하는 사람들.

욕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문젯거리가 소란을 부리지 않으니 이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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