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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99화 (199/470)
  • 제199화

    199화

    말에 탄 사람들이 더욱 힘차게 말을 달렸다.

    보랏빛 나비 떼들이 지나간다는 소문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들렸다.

    그게 워낙 희귀한 광경이기도 하고 그 뒤를 무인들이 따르는 것이 더더욱 신기해서였다.

    곳곳에 진을 치고서 정보를 모으려고 퍼져 있던 개방의 거지들 역시 그 소문을 알고 있었고 직접 퍼뜨리기도 했다.

    무림맹에서는 그 소식을 바탕으로 나비 떼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재미있는 것은 나비의 진행 방향이었다.

    나비는 밑에 길이 없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그 위를 날았고 산이 나와도 그렇게 했다.

    그때마다 나비를 따르는 사람들이 난감해하면서 이리저리 길을 돌아 나비를 쫓아간다고 했다.

    도대체 그 나비들은 뭘까.

    그리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호기심이 생기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정보력으로 그 사람들이 정의맹주였던 검신과 그의 제자, 그리고 사손으로 이루어진 무인들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의맹주를 낭왕에게 넘기고 홀연 사라진 검신이 제자와 사손을 데리고 나비 떼를 쫓고 있다.

    이처럼 기이한 일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제 나비를 쫓는 무리에는 처음에 함께 했던 사람들 외에도 더 많은 인원이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그나마 몸을 숨기는 척이라도 하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어차피 자기들이 같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거라고 생각한 듯 그냥 몸을 드러내 버렸다.

    며칠이 지난 후에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눠 먹을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나 추살접의 추적 무리는 그렇게 정신이 풀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나비 떼를 놓칠 것 같으면 여지없었다.

    검신 대협이 보라색 나비 떼를 쫓아간다.

    그 소문은 널리 퍼졌고 마침내 천마신교에까지 들어갔다.

    * * *

    사라진 역천마의.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보라색 나비 떼.

    천마의 집무실에 무거운 적막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침묵을 깨고 섬마대주가 말했다.

    교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단리서언이 섬마대주를 그만두며 직접 지명한 자였다.

    “초씨세가와 단리세가의 무인들이 죽은 것은 역천마의의 짓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사용된 무공을 보면 그것은 정파의 것인 듯 합니다. 그 자리에는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있었고 공격은 주로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 같았습니다. 공력이 심후하고 손속이 잔인합니다. 정파 놈 중에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놈이 있나 할 정도로 그랬습니다.”

    “할 수 있으니까 그 일이 벌어진 거겠지.”

    교주가 말했다.

    그는 지금 추살접을 떠올리고 있었다.

    역천마의는 잊었을지 모르지만 교주는 역천마의가 추살접을 만들기 시작할 때 그녀의 실험실에서 그 나비를 본 적이 있었다.

    역천마의가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그냥 교주가 본 거였다.

    ‘그래서 내가 그 나비를 봤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교주는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생각했다.

    “나비 떼를 쫓아다니는 자들이 있다지?”

    “……예?”

    섬마대주가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냐는 듯이 묻자 교주가 웃었다.

    “역천마의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명령을 내려라. 역천마의를 찾는 것을 중단하고 나비 떼를 쫓으라고 말이다.”

    “나비 떼…… 를 말씀입니까?”

    교주는 성격이 포악했고 이유도 되지 않는 것으로 사람들의 목을 얼마든지 잘라 버릴 수 있는 자였다.

    그런 교주에게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묻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그것은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워낙 말이 되지 않는 얘기여서였다.

    그러나 교주는 친히 이유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추살접이다. 본교의. 역천마의가 만든 것이지.”

    “예?”

    “다시 묻지 마라. 그때는 아무리 내가 아끼는 네놈이라고 해도 목을 쳐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건 한 두 번의 다짐으로 쉽게 고쳐지는 일이 아니니까 아예 지금 반쯤 잘라 줄까?”

    “아, 아닙니다. 교주님!”

    “당장 떠나라. 당장 그놈들을 쫓아가라고 해. 그러면 그자들이 역천마의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존명!”

    섬마대주는 여전히 수많은 의혹이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그렇게 말하고 신형을 감추었다.

    * * *

    아진과 북리의천은 그 문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비고를 지키는 네 명의 경비 무사들이 공력을 드러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들이 마기를 사용한다는 사실과 마공을 익혔다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럴 일이 없었지만 나중에는 그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라고 여기며 아진은 북리의천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었다.

    북리의천은 이제 더 이상 피하거나 숨기지 말자고 하며 자기가 낭왕에게 했던 말과 낭왕이 써 준 문서를 보여 주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스승님이라면 이런 일을 쉬쉬하고 덮어두기만 할 게 아니라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해결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진이 그렇게 말하자 북리의천은 용기가 났다.

    함께 길을 나선 사람 중 대부분은 이제 비고의 경비 무사들이 마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기들이 알아차린 것을 북리의천이나 서도진이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들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기다가 나중에는 스스럼없이 경비 무사들과 어우러졌다.

    시간이 지나고 사건이 생기고 서로가 돕고 의지하면서 유대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

    마두를 차별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보다 그런 부분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북리의천의 생각이었는데 그가 노린 대로 일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경비 무사들이 자기들의 성실함과 인간됨으로 사람들을 끌어야 하고 마두라고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해 줘야 하는 거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해 내는 듯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소청에게만 집중적으로 마음을 썼고 그 모습이 사람들에게 점수를 땄다.

    소청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고 있었기에 소청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라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보랏빛 나비 떼를 쫓아가던 도중에 아진은 추살접에 대해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이게 천마신교에서 사용되던 것인지, 아니면 역천마의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것인지 궁금증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이 처음에 천마신교와 관계가 없었다고 해도 일단 역천마의가 대법을 시행한 후에는 거기에서 천마신교의 색이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아진은 북리의천과 린린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들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역천마의와 경비 무사들이 갑자기 천마신교를 떠난 후에 추살접이 날아다니면 천마신교에서도 추살접을 노릴 수 있겠다는데 쉽게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졌다.

    아진은 경비 무사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말…… 그렇겠군요.”

    그들은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듯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저희는 여기에서 빠지는 게 좋겠군요.”

    지존과 함께 다니는 것이, 그리고 소지존과 함께 다니는 것이 너무 기뻤던 그들은 이제 그 여행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자기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다가 천마신교도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자기들의 바람으로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진은 무슨 말을 하냐는 것처럼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여러분을 넣고 구성했습니다. 이제 와서 여러분이 빠지면 곤란해집니다. 황제 폐하께서 교주를 불러 정파 무림인을 자극하지 말라고 말씀을 해 주셨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신교를 나온 여러분이 이곳에 있다는 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강합니다. 잘못한 게 있어도 크게 꿇리지 않을 정도로 강하지요.”

    아진이 말하자 경비 무사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만약 아진이 울타리가 돼 주겠다고 한다면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사도련과의 싸움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자들이랑 대화를 해 나가고 문제를 잘 풀어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 일만 신경 쓰도록 해 주십시오.”

    “예. 그 명을 받들겠습니다.”

    경비 무사들은 마음을 놓으며 말했다.

    린린은 그들을 보고 웃음을 지었고 경비 무사들은 더욱 분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따라온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마주했다.

    * * *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이 서로 그 자리에서 마주쳤다.

    벌어진 일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이제는 제법 분명해진 참이었다.

    ‘죽은 줄 알았더니. 차라리 죽은 게 나았을 것이다!’

    섬전대주와 함께 온 대원들은 눈앞의 네 경비 무사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비고를 지키는 경비 무사가 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는 일은 그냥 비고 앞에 서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곳이 어떤 곳이던가.

    신교의 심처 중의 심처.

    가장 믿을 수 있는 이가 되었기에 그 자리에 서서 그 임무를 맡을 수가 있었던 것인데 이게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역천마의가 사라졌다고 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비고를 지키던 무인 네 명이 같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분명히 그들이 적들에게 끌려가 죽었을 거라며 비통해했다.

    반드시 그렇게 돼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곳에서 숨이 붙어 있는 채 적의 편에 서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끌려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기 전, 몸을 숨긴 채 지켜보는 동안 그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남자아이와도 그랬고 말에 탄 여자와도 그랬다.

    지금 그럴 정신이 있다는 건지.

    그럴 기분이 든다는 건지.

    섬전대주와 대원들은 깊은 배신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릴 방법이 없었다.

    “어찌합니까. 대주님.”

    대원들은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당장 가서 네 놈의 목을 베 버리겠다는 의지로 눈이 번들거렸다.

    대주 역시 주저하지 않았다.

    “죽이라는 것이 교주님의 명이었다. 뭘 망설이느냐.”

    “전부 몰살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래. 그렇게 해라. 싸움에 휘말린 자들을 보호해 가면서 싸울 수는 없었다고 말을 하면 될 것이다.”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은 없지만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노리고 있었다.

    배신자들을 잡았다고 꼭 그들의 목숨만 거둔다면 그게 어떻게 보복이고 그게 어떻게 응징이 되겠는가.

    그들은 그렇게 결의를 하고 바닥을 박찼다.

    그들의 마기를 느끼지 못할 경비 무사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린린도 마찬가지였다.

    “죽이는 게 낫겠나?”

    린린은 말에 탄 채 앞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지존이 누구신지 안다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내가 누군지 알려줄 마음이 없는데? 그건 위험 부담이 많이 따르는 일이야. 저자들. 섬전대 같은데. 섬전대가 어떤 자들인지 내가 모르나?”

    린린이 말하자 흑의의 경비 무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잊으셨습니까. 지금의 교주도 지존께서 그 자리에 계시는 동안 섬전대주였습니다. 섬전대주가 지존에 대한 충성심이 깊을 거라는 것도 편견일지 모릅니다.”

    린린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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