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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97화 (197/470)
  • 제197화

    197화

    아진의 몸에 있던 마나가 폭포처럼 소청에게 들어갔다.

    그리고 그 막대한 양의 마나는 소청의 몸에서 기적을 만들었다.

    역천마의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은 결코 의술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 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진을 바라보는 역천마의의 눈에는 그런 표정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진이야말로 살아 있는 괴물 같았다.

    아진이야말로 벌레들의 왕 같았다.

    역천마의가 자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아진은 마나를 들이붓느라 여념이 없었다.

    소청의 상황을 살펴보고 싶기도 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 같아서 계속 마나를 들이부었다.

    역천마의는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소협. 얼굴과 턱이 정상으로 돌아갔어요. 목뼈도 붙었고 다른 뼈들도 그런 것 같아요.”

    역천마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소청의 상태를 설명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찢어졌던 입술이 자국도 없이 저절로 봉합된 거였다.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무수한 조각으로 부서져 버려 도저히 손쓸 수 없게 된 것 같은 턱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역천마의는 놀라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자기가 해야 할 것을 착실히 해 나갔다.

    아진은 그녀가 해 주는 말을 들으면서 마나의 흐름을 조절하고 소청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청아. 다 됐다. 이제 네가 네 몸에 명령을 내리는 거다. 네 심장은 다시 박동을 시작한다. 네 맥박도 정상으로 뛰고 혈액은 힘차게 혈관을 돌아 곳곳의 장기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너는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건강한 몸을 갖게 되는 거야.”

    아진의 목소리가 힘있게 들려왔고 서서히 소청의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역천마의가 감격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북리의천과 린린은 그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은 채 벌레를 항아리에 담았다.

    생각 같아서는 벌레를 난도질을 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제부터의 작업은 다시 역천마의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역천마의는 소청이 눈을 뜨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항아리 속에 추살접을 넣었다.

    그 나비들이 어디에 있다가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순식간에 역천마의의 주위에 수백 마리의 자색 나비가 생겨나더니 항아리 속으로 날아들어 갔다.

    아사 직전에 내몰렸던 것처럼 나비들은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벌레에 붙어 앉았다.

    서로가 조금이라도 더 벌레를 뜯어먹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지옥을 연상시켰다.

    “나비들이 항아리에서 날아오르면 그때부터 충독을 쫓을 겁니다. 충독의 벌레를 가진 자를 쫓을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남은 벌레를 쫓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예요. 나비들이 죽지만 않으면 결국에는 사도련주를 찾게 될 겁니다.”

    북리의천은 마침내 그 일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비들이 벌레를 전부 먹고 항아리에서 나오면 그때부터는 사도련주를 향한 끝없는 추적을 계속 해야 했다.

    소청과 인사를 나누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북리의천은 소청의 얼굴을 안았다.

    “소청아. 너는 이 사조의 자랑이다. 너를 알게 돼서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겠구나. 더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기분이 어땠는지 전부 다 말해 줘야 한다.”

    린린 역시 북리의천과 함께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청의 손을 꼭 쥐었다.

    “이렇게 되게 해 줄 거라고 내가 말했지?”

    그리고 린린이 소청의 뺨을 쓰다듬어 주는 것을 보고 역천마의는 경악했다.

    도대체 이곳에 온 이후에는 놀랄 일이 끝도 없이 벌어져서 얼마나 더 놀라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준비됐느냐. 린린.”

    “예. 가면 됩니다.”

    밖에서는 이미 북리의천이 준비해 둔 무인들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소식을 전하고 오마.”

    “그건 제가 할까요?”

    역천마의는 북리의천이 그곳에 있으면서 나비들을 끝까지 지켜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면 부탁하겠소. 역천마의. 역천마의의 공이 정말 컸소. 내 사손을 살려 주어 정말 고맙소.”

    “…….”

    역천마의는 움찔했다.

    자기는 실패했고 아진이 아니었으면 소청은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히려 벌레의 크기를 잘못 가늠해서 소청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다.

    비록 역천마의가 의도한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동안 그녀가 속해 있던 세계에서는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결과만이 중요하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줄 뿐이었다.

    결과가 잘못되면 목숨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했는데 이곳에서는…….

    역천마의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아진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역천마의. 린린이 유일하게 기억하며 자랑하는 사람이라서 전부터 역천마의에게 기대하는 게 컸지만 상상한 것 이상입니다.”

    역천마의는 그 말에 울컥해졌다.

    지존이 자신을 유일하게 기억하고 자랑까지 했다니.

    정말 그러셨어요? 하는 표정으로 린린을 바라보자 린린이 항아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빨리 가 봐야 하는 것 아니야?”

    “아. 네. 지금 가요. 지금 갈게요.”

    역천마의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줄곧 안에서 소식이 들려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역천마의의 표정을 보고 환호했다.

    “석 소저. 된 거군요. 성공했습니까?”

    북리의천에 의해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외쳤다.

    비고를 지키던 네 명의 경비 무사들도 역천마의를 보며 확답을 기다렸다.

    이미 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듣고 싶었다.

    “그래요. 맞아요. 됐어요!”

    역천마의가 들뜬 목소리로 말하다가 얼른 뒤를 이었다.

    “추살접이 벌레를 먹고 있어요. 벌레를 전부 먹으면 그때부터 사도련주를 찾아서 날아갈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부터 나비들을 지키면서 사도련주을 같이 쫓아가셔야 해요.”

    역천마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더니 짙은 자색의 구름이 떠오르는 것처럼 기이하고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이제부터 자기들이 나비를 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역천마의가 추살접이라고 부르는 나비를 미리 보지는 못했고 그 나비가 그렇게 많다는 것도 몰랐다.

    그 광경은 일견 아름다웠지만 나비들이 벌레를 뜯어먹고, 다시 그 벌레를 뜯어먹기 위해 광분해서 날갯짓을 하는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비의 뒤로 북리의천과 린린이 나왔다.

    무인들은 옆에 있던 말에 올라탔다.

    북리의천과 린린도 준비되어 있던 말에 탔다.

    아직 주인이 오지 않은 말은 아진과 소청의 말뿐이었는데 무인들은 더 이상 그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나비 떼를 따라갔다.

    네 명의 경비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고 그곳에서 두 개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진의 손을 꼭 잡은 소청이었다.

    “마나를 너무 많이 쓰지는 않으셨어요. 스승님?”

    소청이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아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많이 썼지. 그러니까 네가 이 스승을 지켜 줘야 한다.”

    “네. 스승님.”

    행복한 얼굴로 대답하고 소청이 맑게 웃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하고 투명한 웃음이었다.

    * * *

    역천마의는 벽예월을 찾아갔다.

    이제 산본의가에서 그녀가 할 일은 고독을 조련하는 거였다.

    역천마의는 소청의 몸에서 나온 벌레가 아직도 뇌리에 깊이 새겨져서 눈을 감아도 그 생각밖에는 나지 않았다.

    “석 소저. 정말 대단하세요. 대법이 성공했다는 얘기 들었어요.”

    벽예월이 말하자 역천마의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사실 저는 실패했어요. 그런데 서 소협이 성공한 거예요.”

    “공자님이요?”

    벽예월이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다른 이들이 나비 떼를 따라가고 아진은 소청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소청을 보여주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어차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져도 나비 떼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간단히 경과만 보고했던 것이다.

    그동안 모두가 얼마나 소청을 걱정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모두 그 소식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진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소청의 어머니는 의연했고 소청에게 다가가 꼭 안은 채 잘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진과 소청은 오래 머물지 못한 채 나비 떼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금방 떠나야 했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소식을 궁금해했다.

    그러다 보니 그 자리에 있었던 역천마의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이 계속해서 쏟아졌고 역천마의는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달갑지도 않아서 벽예월이 있는 곳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마침 고독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 알려 주기도 해야 해서 그곳으로 온 건데 벽예월은 역천마의를 보며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자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기 얘기를 허물없이 들려주었고 천마신교를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 역천마의는 그것을 비교할 기준이 없어서 벽예월이 살았던 삶이 이곳 사람들의 평범한 삶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신교가 편했던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듣던 역천마의는 나중에 그런 생각까지 했다.

    벽예월과 역천마의는 서로 자기들이 아는 얘기를 주고받았고 벽예월은 역천마의의 대법을 신기해했다.

    역천마의는 역천마의대로 벽예월이 천기를 본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다.

    그것 말고도 역천마의에게는 벽예월과 잘 지내야 할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네 명의 경비 무사들이 벽예월에게 팍 꽂혀서 역천마의를 계속 볶아댄 탓이었다.

    자기들이 돌아올 때까지 벽 소저와 부디 친해져 있으라면서 사도련주를 잡고 돌아오면 벽 소저와 함께 차라도 마실 수 있게 해 보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역천마의가 그런 꿍꿍이를 가진 것도 모른 채 벽예월은 역천마의에게서 아진에 대한 얘기를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애를 썼다.

    “벽 소저는 혹시 서 소협을 좋아하세요?”

    역천마의는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 사람이었고 벽예월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노골적으로 물었다.

    벽예월은 고운 얼굴을 붉히며 역천마의를 힐끔거렸다.

    “공자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어요? 모두가 공자님을 좋아할걸요?”

    역천마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네 명의 경비 무사들만 해도 그랬다.

    지존이라면 몰라도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복종을 할 사람들이 아닌데 아진의 말에는 전혀 거부감도 없이 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비고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 때문인 것 같았는데 그렇게 강하면서도 남을 억압하려고 하지 않는 아진을 보면서 역천마의는 그가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은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할 행동도 예측할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아진에게는 역천마의가 갖고 있던 모든 판단 기준이 효력을 잃었다.

    “여기는 재미있네요.”

    역천마의는 고독에게 먹이를 주며 말했다.

    “여기는 정말 특별해요. 산본의가도 특별하지만 마을 전체가 특별하죠.”

    벽예월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려주었고 역천마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존이 이곳을,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을 아낀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면 나도 지켜줘야지.’

    역천마의는 인심 좋게 자기가 알고 있는 약 제조법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가주와 제선문주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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