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196화
아진은 역천마의가 혈도를 짚는 것을 지켜보았다.
인체의 혈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아진은 역천마의가 무엇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소청과 북리의천만 제외하고 그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역천마의에게는 그것도 어느 정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 앞이라면 이 정도까지 긴장하지는 않을 텐데 이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다들 엄청난 전문가들이라 시험을 치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섭혼대법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도 자기를 따를 수 없다고 자부하는 역천마의였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자기 자신을 다독였다.
소청은 이내 몽롱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아진이 돌아오기 전에 역천마의와 린린에게, 그리고 북리의천에게서 자기가 받게 될 대법에 대해 설명을 들은 소청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대법을 받을 준비를 했다.
소청에게 중요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알고 산본의가의 가주 서종욱은 그들을 내원에서 지내게 하고 내원으로는 누구도 가지 못하도록 경계를 특별히 강화했다.
그들이 있는 전각은 비고를 지키던 네 명의 경비 무사들이 철통 경비를 서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물샐 틈 없이 준비되었고 이제 역천마의가 성공을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소청은 정해진 대로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역천마의는 대법을 진행해나갔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자 소청에게 명령을 내렸다.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거라.”
그러나 시간이 얼마쯤 지나도록 소청에게서는 별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역천마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소청에게서는 이번에도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당장 역천마의를 꾸짖고 싶은 것을 참으며 린린은 역천마의를 노려보았다.
아진은 그런 것까지도 전부 역천마의에게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며 린린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진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린린은 시선을 돌렸다.
소청을 걱정하는 마음도 전부 같았고 대법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천마의는 대법이 실패했다는 것을 직감했고 그때부터 식은땀을 흘렸다.
어디에서 잘못된 건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지나친 바람.
그리고 자신의 능력 부족.
결국 이유는 그 두 가지인 듯했다.
역천마의는 그동안 숱한 대법을 시행하면서 반드시 대법을 성공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이번처럼 강하게 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역천마의는 아직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몇 번 시도했고 결국 입술을 깨문 채 소청의 혈을 풀었다.
긴 침묵이 감돌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소청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역천마의의 실망감에 비할 것은 아닐 터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소청에게서 벌레를 꺼내는 것은 영영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느 부분이 안 된 것입니까. 역천마의.”
역천마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공력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소청의 공력이 저를 압도합니다. 그래서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혈도를 눌러도 그 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역천마의가 한 것처럼 하면 됩니까?”
역천마의가 한 것처럼 하면 되냐는 말에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지 못해서였다.
“설마…… 소협께서 섭혼대법을 해 보겠다고 하시는 건가요?”
역천마의는 워낙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물으면서도 자신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역천마의는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가 함부로 자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아진은 정말 신중하고 어떻게 보면 겁도 많은 것 같았지만 일단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앞만 보고 달려나갔고 그 일을 마침내 이루어 냈다.
‘정말 이 사람이 할 수 있을까?’
역천마의는 저도 모르게 린린을 바라보았다.
린린은 왜 시간을 끄느냐는 듯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할 수 있는 걸 알려 주라는 것 같았다.
“제가 했던 것은 전부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소협?”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역천마의의 앞에서 자기가 기억하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대단한 오성이었다.
제자의 일이라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 번 본 것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맞습니다. 그렇게 하고 명령을 내리면 거기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해진 절차입니다.”
“알겠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이미 한 번 혈을 눌려서 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할 것입니다. 아니면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아요.”
역천마의가 확인을 해 주자 아진은 역천마의가 눌렀던 대로 혈을 다시 짚었다.
역천마의는 조금이라도 잘못된 혈을 누를까 봐 아진의 옆에서 혈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러나 사실 아진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역천마의가 불러주는 것이 더 안심되기는 했다.
정해진 혈 자리를 전부 누르고 아진은 역천마의가 했던 대로 대법을 시행했다.
역천마의가 외웠던 구결도 그대로 외웠다.
달라진 것은 대법을 시행하는 자가 역천마의가 아니라 아진이라는 것.
그리고 아진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소청에게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역천마의가 공력의 차이에서 소청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아진은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청아. 손을 들어 보아라.”
아진의 음성은 단호하지도 않았다.
제발 대법이 성공했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것이 될 리가 없다는 불안함이 공존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반신반의한 채 아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소청의 손이 허공으로 올라갔다.
역천마의는 크게 놀랐고 아진은 이제 된 거냐는 표정으로 역천마의를 바라보았다.
역천마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몇 가지를 더 시켜서 확실히 된 것인지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소청에게 내리는 명령은 갈수록 수행하기가 어려워졌다.
단순히 손을 들어 올리라는 것을 떠나 힘이 드는 동작을 하게도 했고 정교한 수결을 맺어 보라고도 시켰다.
“지금부터는 소협의 생각대로 하십시오. 이제부터는 제 목소리가 끼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어차피 자신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가도 소청이 자신의 명령은 무시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역천마의는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말했다.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역천마의에게 의지하고 그녀에게 하나하나 물어 가면서 하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했다.
소청에게 자유를 주는 길.
소청을 다시 흠 없이 건강하게 만드는 길.
그는 소청의 손을 잡았다.
역천마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대법을 시행하면서 그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진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소청에게라면 자기도 그렇게 간절해질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소청아. 이 스승은 네가 잘 해낼 거라는 걸 안다. 너는 지금까지 매번 그렇게 나를 놀라게 해 왔으니까. 너는 나를 도와서 이기고 나는 너와 함께 이겼다. 우리는 그걸 아주 잘하지.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꾸나. 소청아.”
아진이 말을 하고 조금 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내가 함께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네 몸이 너에게 복종할 것이다.”
그의 말이 이어지고 소청의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규칙적으로 평화롭게 움직였다.
“너의 심장은 이제 박동을 멈출 것이다. 너의 맥박도 멈출 것이고 너의 피는 더 이상 혈관을 돌지 않는다. 혈마다 다니며 모든 움직임을 멈추도록 명령하거라. 소청아.”
그리고 그는 마치 진기도인을 해 주는 것처럼 세맥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그 속도는 충분히 느렸지만 아주 느리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맞춰 소청이 움직임을 멈춰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이 밝혀져 있는 긴 복도를 따라 지나가면서 그곳에 있는 촛불을 하나씩 하나씩 전부 꺼 나가는 것처럼 소청은 아진과 함께 그 지난한 작업을 해나갔다.
소청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호흡이 점점 약해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멈추는 것을 보았다.
소청의 죽음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의 심장은 충격으로 격렬히 뛰었다.
과정상 지금은 그렇게 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충격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아진 역시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부터 자신이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청이 느끼는 불안은 더 크지 않을까 했다.
소청이 잠들어 있는 것이, 그리고 숨이 멎은 것이 지금으로서는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벌레가 나와야 했다.
자기가 들어앉아 있는 몸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그곳에서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나와야 했던 것이다.
북리의천은 검을 빼 들고 있었고 린린은 항아리를 든 채 소청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벌레가 나오면서 소청을 다치지 않게 하기만을 바라면서 그들은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소청의 복부가 불룩하게 튀어 오르며 벌레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소청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우드드득-.
벌레가 심장을 보호하는 뼈를 지나는 동안 뼈가 부서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역천마의가 아진을 보았다.
역천마의가 생각했던 것보다 벌레의 크기가 훨씬 더 컸던 것이다.
그러나 아진은 역천마의를 보지 않았다.
그녀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모든 생각과 시선은 오로지 소청의 입에만 가 있었다.
벌레는 느렸지만 꾸준하게 움직였다.
목뼈가 으스러져 나갔다.
턱도 전부 부서지고 입이 찢어졌다.
그동안 벌레의 숙주들이 당했던 일이 소청에게도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진은 두려움이 밀려오려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껏 일단 벌레의 숙주가 되었던 사람 중에는 아진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해야만 했다.
소청을 살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안 된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를 조롱하며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세상을 전부 뒤집어엎어서라도 되돌릴 거였다.
아진이 북리의천과 린린을 바라보자 그들은 짧게 그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벌레가 나온 순간 아진은 소청을 치료할 테니 두 사람이 벌레를 확실히 잡으라는 말이었다.
그 긴 의미가 그들의 사이에서 정확히 오갔다.
소청의 입이 벌어졌다.
만약 생명이 유지되고 있었다면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어야 할 순간이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벌레는 그동안 그들이 봐 왔던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진은 벌레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곧바로 소청에게 다가갔고 그 전부터 미리 끌어 올려놓았던 마나를 들이부었다.
“소청아.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네 몸을 먼저 고칠 거다. 그러고 난 뒤에 호흡을 시작해. 그렇게 하는 거다.”
아진은 잘못된 게 하나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미 너무 큰 착오가 생겼지만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