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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94화 (194/470)
  • 제194화

    194화

    “원래 고독을 사용해서 대법을 시행할 때는 벌레들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아요. 고독은 암놈과 수놈이 서로를 각별하게 아낀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수놈과 암놈을 떨어뜨려 놓고 다른 놈에게 고통을 주면서 갇혀있는 고독을 조종하는 식으로 대법을 시행해요. 숙주의 몸에 들어가 있는 고독이 몸부림을 치면 숙주는 괴로워하다가 죽어 가죠.”

    역천마의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상당히 잔인했지만 충독과 그 벌레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잠식하고 조종하고 죽어 가게 만드는지 봐 왔던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하려는 대법은 그것과 달라요. 이번에 고독은 그냥 다른 벌레를 죽일 수 있는 전사로 키워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충독을 만났을 때 그 벌레를 직접 공격할 수 있도록요. 제가 들었을 때 충독의 벌레들이 숙주에게 이식될 때 몸에 상처가 생긴다고 들었어요. 고독이 그 상처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벌레를 공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진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대법을 시행하면 가능해요. 그리고 가능하게 만들 거고요. 그러려고 여기에 있는 거잖아요.”

    역천마의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것 같다가 드디어 그곳에서 출구를 보게 된 기분이었다.

    역천마의는 그 외에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사도련주를 적극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역천마의는 그렇게 말하고 품에서 나비 한 마리를 꺼냈다.

    그동안 그 나비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역천마의는 그 나비를 잠깐 보여주고 다시 집어넣었다.

    “나비도 생존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기는 해야 해요. 인간처럼 많은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요. 그런데 이 나비들은 그런 것들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날 수 있는 욕구도 금지당하고 있고 이대로라면 이 나비들은 전부 죽을 거예요. 굶어서요.”

    나비가 굶어 죽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섭취해야 할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나비들도 결국 같은 운명이 될 거라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이 전에 우선 소청에게서 벌레를 꺼내는 게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나비들에게 그 벌레를 줄 거예요. 그러면 나비들은 그걸 먹고 날아갈 거고 대법에 의해서 내 뜻에 조종되는 아이들이라 일반적인 나비와 다른 습성을 보일 거예요. 그리고 다른 욕구를 가지게 될 거고요.”

    아진은 역천마의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괴로움을 느꼈다.

    불쾌하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역천마의가 하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먹지도, 날지도 못하게 가두고 억압하다가 풀어 주면서 대가를 얻어 내는 것이라 그랬는데 그게 역천마의가 하는 대법의 규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은 그렇고…….”

    역천마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사이에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으면 물어 보라고 하자 린린이 손을 들었다.

    “나비가 사도련주를 찾아낼 수 있다고?”

    “네. 충독이 있는 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날아갈 거니까요. 나비를 풀어줄 때는 준비된 무인들이 오십 명 이상은 있는 게 좋을 거예요. 마지막까지 추살접을 놓치지 않고 계속 가야 할 거거든요.”

    추살접.

    그 이름이야말로 나비들에게 딱 적당한 것 같기도 했다.

    “추살접을 도중에 일시적으로 잡아둘 수는 없나?”

    “그렇게 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이 일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추살접은 다른 아이들에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아이들인데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는 말은 못 해요.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사람에게 나비를 맞추지 말고.”

    “나비에게 사람을 맞추라는 말인 거군.”

    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비에게는 마지막으로 맡았던 냄새, 마지막으로 먹었던 충독에 대한 기억만을 강렬하게 남겨주고 그 욕망이 다른 어떤 것으로도 퇴색되지 않게 한 채 계속 날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이 역천마의의 요지였다.

    북리의천은 역천마의의 말을 듣고 잠시 사람들을 모으고 와도 되겠는지 물었다.

    그러자 역천마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서두르실 필요는 없어요. 그건 여기에서 설명을 듣고 나서 하셔도 돼요. 어차피 소청에게 대법을 하고 나서 할 일이니까요.”

    역천마의가 말하고 소청에게 실시할 대법에 대해 설명했다.

    “이건 아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에요. 도중에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소청은…… 죽거나 백치가 될 수도 있어요. 벌레를 꺼내는 것은커녕 그대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벌레의 종이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을 듣는 동안 끔찍해져서 아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소청을 아끼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모두 비슷했다.

    “방법을 설명할게요. 소청에게 섭혼대법을 시행할 거예요. 섭혼대법에 대해서 들은 분도 계시겠지만 섭혼대법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제가 하려는 섭혼대법은 모를 거예요.”

    역천마의는 좌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소청에게 섭혼대법을 걸고 명령을 내릴 거예요. 그러면 소청은 평소에 할 수 없던 것까지 할 수 있게 돼요. 평소의 능력으로라면 할 수 없던 일도 일시적으로 가능해져요. 소청이 가진 내공의 제약으로 할 수 없는 상승무공도 할 수 있게 돼요.”

    “구결을 몰라도?”

    린린이 묻자 역천마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결이나 초식, 형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원래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라고 몸의 모든 힘을 과도하게 끌어 쓰는 것이라 부작용이 커요. 죽지는 않겠지만 죽음에 버금갈 정도로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충독의 벌레에 잠식됐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도 그와 비슷했던 것이다.

    “제가 시킬 건 소청에게 자신의 몸을 조종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이건 그 자체로 부작용은 그렇게 크지 않아요. 그리고 소청은 자신의 몸에 죽으라고까지 명령할 수 있게 돼요.”

    “……네?”

    아진은 자기가 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물었다.

    그러나 역천마의는 그 말이 맞다는 듯이 다시 확언했다.

    “소청은 자신의 몸에 죽으라고 명령을 내리게 돼요. 심장과 맥박에, 그리고 모든 장기에 명령을 내려서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

    아진은 역천마의가 하는 말을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것이 끝이 아니고 화가 났다.

    린린을 보자 린린 역시 불쾌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역천마의도 사람들의 반응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 듯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렇게 되면 소청의 몸 안에 있는 벌레는 숙주가 죽었다고 인식하게 될 거예요. 벌레는 소청의 몸에서 기생하는 거고 소청에게서 영양분을 얻고 있었을 텐데 소청이 죽으면 위기를 느낄 거예요. 그동안 그 안에서 계속 버텼던 것은 자기가 그 안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였을 텐데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 벌레는 밖으로 나오려고 할 거예요.”

    “그게…….”

    여기저기서 비명과 같은 탄성이 동시에 나왔다.

    벌레가 나올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광경을 상상해 버렸다.

    목뼈가 부러지고 턱이 부서져 나가고…….

    소청이 그런 일을 당한 모습이 상상되는 바람에 몇 사람은 입을 틀어막았다.

    린린과 북리의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역천마의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느 정도 평정을 유지해오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런 반응을 보이자 역천마의도 그들이 그러는 이유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을 계속 살펴봤어요. 기를 불어넣어서 벌레의 위치랑 크기도 알아봤고요. 벌레는 그렇게 크지 않아요. 그동안 벌레에 대해 들은 대로면 벌레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라야 했을 거예요. 소청이 어리다는 것도 있지만 소청의 몸을 감안해서도 벌레는 크지 못했어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순탄하게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거예요.”

    그렇게만 된다고 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역천마의. 할 수 있는 거지? 이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해. 그럴 수 있는 거지?”

    린린이 역천마의를 윽박지르듯 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 순간만큼은 역천마의가 그 말에 대답해 주기를 바랐다.

    대답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달라지는 게 없을 터였는데 그래도 역천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게 해 드리겠습니다.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교주의 오라버니의 제자지만 교주가 하는 행동을 보면 자신의 제자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역천마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부탁한다. 역천마의.”

    린린은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그 정도로 끝냈다.

    “그러면 준비가 되는 대로 시작하겠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가게 될 거예요. 사도련주를 쫓는 것까지, 그리고 사도련주와 그 일당을 전부 잡아들이거나 죽이는 것까지요.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우선은 그 일을 위해서 대법의 시행을 미룰 겁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멈출 수 없다는 걸 이해하셔야 합니다. 개인에게 특별한 사정이 생기면 그 개인은 빠진 채로 일이 진행될 거예요.”

    역천마의의 말에 아진이 북리의천을 바라보았다.

    그는 황제를 보고 와야 했다.

    더군다나 사도련주와의 결전이 이렇게 임박해 버릴 것 같으면 그 전에 반드시 황제를 보고 와야 했다.

    북리의천은 아진의 생각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황궁에 다녀오겠습니다.”

    아진이 말하자 역천마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분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역천마의의 말을 듣고 아진이 린린에게 다가갔다.

    “고독을 벽 소저에게 맡기는 게 어떨까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린린은 좋은 것 같다고 했고 아진은 벽예월에게 그 일을 부탁하는 건 네가 맡으라고 말한 후에 황궁에 갈 채비를 마쳤다.

    “이대로 가는 것이냐. 아진아.”

    “예. 스승님. 시간을 늦추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진은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바닥을 찼다.

    의관을 정비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마침내 소청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게 됐는데 황제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하는 생각 같은 것은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 * *

    황제를 보러 갔다가 그의 침전에서 황제를 만나지 못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황제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침전으로 돌아왔고 아진이 온 것을 알게 되자 민망한 얼굴을 했다.

    -이것도 짐의 의무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전음으로 말했다.

    아진은 황제가 황후나 후궁의 처소에서 잠자리를 하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덩달아 민망해하다가 곧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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