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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93화 (193/470)
  • 제193화

    193화

    장작은 기분 좋게 타들어 가고 있었고 아진은 소청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주며 스승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언젠가,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지금 이 순간이 떠오르면서 지독하게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적당히 좋은 사람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자꾸 걱정되네.’

    인생이 유한한 이상 이별은 필연일 텐데 이제는 그런 것을 상상하는 것으로 자꾸만 가슴이 저릿해져 왔다.

    사고를 잃고 나서 생긴 습관이었는데 아마도 그 통증은 평생을 달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 * *

    산본의가로 돌아가는 길에 아진은 북리의천에게 자기 생각을 말했고 북리의천은 크게 반겼다.

    “묘책이다. 묘책이야.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황상의 총애를 받는 제자를 두고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니. 내가 이렇게 어리석구나.”

    아진은 그의 말을 들으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사도련주를 잡는 일에 집중하면 되겠구나. 아진이 너는 곧 황상을 뵙고 오도록 하거라.”

    “예, 스승님.”

    그때부터는 걱정할 것 없이 단숨에 산본의가로 향했다.

    제선문주와 역천마의는 채집행에 성과가 있나 하며 급히 달려와서 아진이 들고 있는 커다란 짐을 보았다.

    “우선 거기에 있는 걸 먼저 내려 주고 다른 분들과 인사를 나누도록 하시지요.”

    제선문주와 역천마의는 똑같이 서둘렀고 아진도 일단 그들에게 넘겨 주어야 임무를 완전히 끝내는 거라는 생각에 두 사람을 따라갔다.

    북리의천과 소청도 칭찬받을 생각에 벌써 기대가 되는 듯 그 뒤를 따랐다.

    제선문주는 실험실로 사용하는 3층에서 짐을 풀도록 했고 삼 백 마리도 넘는 고독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역천마의는 그걸 보다가 커다란 항아리를 가지고 왔다.

    “이걸 전부 여기에 넣어 주세요.”

    역천마의의 말대로 각각의 옥병에 나눠서 들어가 있던 것들을 한 항아리에 넣으면서 아진은 이러다 서로 물거나 싸워서 죽이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역천마의에게 들을 것도 없었다.

    툭 툭 소리를 내며 항아리에 떨어진 고독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서로를 공격하고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싸움은 오래가지도 않았다.

    “빨리 섞는 게 좋아요. 운이 좋은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강한 놈이 살아남게 하려면요.”

    일찍부터 항아리에 들어가서 다른 놈들과 미리 싸우다가 힘이 빠져서 원래 강했던 고독이 죽을까 봐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세 사람은 의욕적으로 고독을 항아리에 넣었고 그동안에도 싸움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죽은 놈들은 바닥에 깔렸고 살아 있는 놈들은 위로 올라왔다.

    역천마의는 그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고독이 들어 있는 것과 다른 짐을 눈여겨보았다.

    “저건 뭔가요, 소협?”

    “아아. 고독을 잡아먹으려고 덤비는 놈을 죽였더니 한눈을 판 사이에 다른 놈들이 와서 옆에서 죽어 있더라고요. 혹시 몰라서 가져와 봤습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것들인데…… 이게 청린사인 건 아시죠? 홍사도 있고 이건 인면지주, 이건 독각화망이에요. 작정하고 찾으려고 해도 하나도 제대로 찾기가 힘들고 이런 것들 하나를 찾으려고 몇십 년씩 각지를 들쑤시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건 오공이에요? 크기가 이 정도면 천년오공은 되는 것 같은데.”

    역천마의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듯이 아진을 보았다.

    “그것들 전부 다 영약으로 쓰이는 것들 아닙니까?”

    아진은 그 이름을 들으며 물었다.

    “맞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놀라고 있죠.”

    제선문주는 항아리에 들어간 고독들을 보다가 역천마의가 하는 말을 듣고 다가왔다.

    “그게 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제선문주로 있을 때 남궁세가주가 그것들을 구해오라며 우리 아이들을 닦달해서 그걸 구하러 갔다가 죽은 애들이 몇인데…….”

    제선문주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영물이 영물인 이유를 그라고 모르지는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그런 복은 타고나야 가능한 건가 보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리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네요. 저는 그런 사람이 좋더군요.”

    역천마의가 말했고 제선문주는 정말 놀랍다는 듯이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서 반응이 나오다 보니 그에게서 나오는 반응은 특별했다.

    그는 단순히 놀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반드시 구해 오라던 영물.

    제자들에게 그 영물들을 구해오라고 하면서 매번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했던 때가 떠올라서 제선문주는 영물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그놈들. 무덤에도 한 번 찾아가 보지 않았는데.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만 했지. 가자면 못 갈 것도 없었는데 얼굴 한 번 보여 주질 않았네. 하긴. 나 같은 스승이면 얼굴을 안 보여 주는 게 차라리 더 나으려나.”

    그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정말 답을 듣고 싶어서 말하는 건지 그것조차 불확실한 말을 하고 또 했다.

    “이건 어떻게 할 겁니까?”

    아진이 물었지만 역천마의도 우선 당장은 그 영물들에 대한 계획은 없는 것 같았다.

    “우선 제 생각을 말씀드릴게요. 소협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독단적으로 진행하지는 않을 거예요. 전부 소협이 허락해야 그때부터 진행할 거예요.”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건. 소청의…….”

    역천마의는 소청을 소청이라고 부르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역천마의의 마음속에서 소청은 소지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소지존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소청이라 불렀다.

    “소청의 몸속에 있는 벌레를 밖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거예요.”

    역천마의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아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한 거냐고 몇 번이나 묻고 싶었다.

    그러나 역천마의 자신도 확신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그녀가 계속 말을 하도록 놔두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충독을 쫓을 수 있는 나비들을 만들 거예요. 그 나비들은 저에게 있어요. 어떤 것을 쫓아가야 할지만 알려주면 나비들은 바로 추적을 시작할 거예요.”

    아진은 소청에게서 벌레를 쫓아버릴 수 있다는 말의 달콤함에 빠져 솔직히 다른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역천마의도 그 사실을 아는 것 같았다.

    “우선은 고독들을 보세요. 지금까지는 진행이 잘돼 가고 있는 편이에요.”

    역천마의는 아진을 항아리로 데려가서 말했다.

    “고독이 위로 나오지는 않겠습니까?”

    항아리의 모양이 중간이 불룩하게 생긴 모양이고 고독이 가운데 부분을 타고 올라오다가 매번 떨어지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번 걱정이 들기 시작하면 아무거나 다 마음에 쓰이는 법이었다.

    “괜찮아요. 그래서 미리 항아리 안쪽에 고독이 타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기름을 발라두었고요.”

    아진은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처참해 보일 수가 없는 전투가 끝도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암놈과 수놈은 확연히 구분되었다.

    암놈이라고 수놈이라고 서로를 봐주는 일도 없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공격했고 한 번 공격하고 나면 거의 바로 승부가 결정되었다.

    “남은 게 몇 마리 정도예요?”

    아진이 묻자 역천마의가 이제 오십 마리 정도인 것 같다고 했다.

    문득 아까웠다.

    이놈들은 자기들이 강하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계속 싸움을 시키는 이유는 마지막 남은 놈이 가장 강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그런 것도 있고.”

    역천마의가 고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야 충분한 독기가 모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데 사실 이번에 잡은 고독의 수가 워낙 많아서 이 정도만 돼도 이미 독이 많이 차기는 했을 것 같아요.”

    “그러면…….”

    “만약에 원하신다면 지금 이 상태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고독은 전부 다 꺼낼 수도 있어요. 사실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는데 그게 더 효과가 있을 것도 같아요. 충독을 고독들이 죽일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이건 정말 잘 보관해야 해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관리해야 하고요.”

    역천마의는 고독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을 걱정하는 듯했다.

    아진은 그 말을 들으면서 벽예월을 떠올렸다.

    왠지 벽예월이라면 그것을 잘 관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징그러워서 싫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임무가 유동적이어서 고독을 꾸준히 관리하는 건 어려울 것도 같아 일단은 벽예월에게 먼저 부탁을 해 보기로 했다.

    그녀도 지금 총관이 되어 맡은 일이 정말 많았지만 일을 맡기고 안심할만한 사람으로 한 사람만 꼽으라면 생각나는 게 벽예월이었다.

    “그걸 누구에게 맡기는 게 좋을지는 이미 어느 정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 같으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할게요.”

    역천마의는 그렇게 말하고 그때부터 자신의 계획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독이 침투하지 못하는 특수한 장갑을 끼고 각각의 옥병에 고독을 옮겨 담았다.

    그때까지 살아남았다가 거기에서 시간이 늦춰지는 바람에 다른 놈들에게 공격당해 죽는 놈이 생기면 억울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움직였고 아진도 그것을 도왔다.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은 고독은 모두 쉰 네 마리였다.

    “이 정도면 정말 많은 거예요. 그리고 충분히 강하고요.”

    역천마의는 암놈과 수놈이 담긴 옥병들을 따로 구분해서 놓고 고독의 시체들이 있는 항아리를 바라보았다.

    “저 독은 엄청나요. 독공을 익힌 사람이 저걸 봤으면 아마 난리가 났을 거예요.”

    아진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물 중에 이미 죽은 건 저기에 섞어서 독을 더 극대화하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한데. 그런데 독이 서로 견제해서 오히려 효과를 반감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자신은 없네요.”

    “나도 같은 생각이오. 그렇게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소.”

    제선문주가 옆에 있다가 말했다.

    “그러면 이건 우선 이 상태로 모아두는 것으로 할게요.”

    역천마의가 말하고 아진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설명할 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 얘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한 번에 모여서 같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역천마의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소청의 몸에서 벌레를 쫓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아진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북리의천과 린린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북리의천은 소청이 그 자리에서 직접 듣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생생한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소청이 듣고 견디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거였는데 아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일단은 자기들이 이야기를 들은 후에 순화해서 소청에게 말을 해 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진은 그 자리에 벽예월도 불렀고 비고의 경비 무사들도 와서 함께 듣도록 했다.

    비고의 경비 무사들은 소청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역천마의가 그러는 것처럼 그들도 소청을 소지존으로 생각하면서 앞으로 소청의 호위는 자기들이 맡겠다고 속으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혀 나가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설명을 시작할게요.”

    역천마의는 고독을 모아서 서로 싸우게 했고 지금은 쉰 네 마리가 남았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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