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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91화 (191/470)

제191화

191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천마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흑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얘기를 들어 알고 있는 역천마의였는데 흑주가 자신이 만든 피독 팔찌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것 같다고 했던 것이다.

야명주에 이어 피독주까지.

온갖 좋은 구슬이 할 줄 아는 건 전부 할 줄 아는 구슬이라며 역천마의가 탐난다고 했던 게 떠올라서 아진은 피식 웃었다.

다른 피독주는 그것을 입에 물고 있으면 독이 몸이 퍼지지 않는다던데 턱이 정상적인 사람치고 커다란 흑주를 입에 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역천마의는 흑주를 가지고 있기만 해도 피독의 효과가 나타날 것 같다고 했고 만일을 위해 새로운 피독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전에 만든 것처럼 오래 마기를 불어넣어서 만들지는 못했고 광물도 원래의 것을 만든 것과 차이가 나는 대체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해서 아진은 그것을 챙겨왔다.

독지의 주변에 이르렀을 때만 해도 곳곳에서 사람들과 종종 마주쳤다.

그들은 독지에 사는 독물을 채취해 돌아가려 하면서 아진 일행에게 주의를 시켰다.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버티면 안 됩니다. 나올 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올 일을 생각하고 그 힘을 남겨 둬야 한다는 것을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운남의 독지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곳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곳까지 와서 괜한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듯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맙다고 말하며 독지의 중심을 향해 가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안으로 갈수록 주위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자연적으로 사는 풀벌레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고 그때부터 나타나는 것들은 그 자체가 몸에 극독을 품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심하거라. 소청아.”

북리의천은 그렇게 말하고 소청의 손을 꼭 잡았다.

아진은 등에 커다란 자루를 지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고독을 담을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독에 강하다는 노루 가죽이나 옥으로 되어 있었다.

아진은 역천마의가 말해 준 생김새를 머릿속에 다시 떠올리면서 앞으로 나아 갔다.

‘정말 여기야말로 던전이랑 판박이네.’

갑자기 커다란 뱀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뿔이 달린 이상한 짐승이 부리나케 달려와 공격을 하기도 했다.

볼 일 없는 놈들은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한사코 덤비며 공격을 하는 놈들은 어쩔 수 없이 잡았다.

“스승님. 저게 고독 아닐까요?”

소청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아진이 막 쌍각사를 죽였을 때였다.

쌍각사는 그곳에서 마주친 인간에게 자기가 죽임을 당할 거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듯 유유히 다가와 아진의 목을 노렸는데, 아진은 쌍각사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공격에 당해 주는 듯하다가 쌍각사가 얼굴 앞까지 다가왔을 때 강기를 덧씌운 검으로 목을 잘라내 버렸다.

지금 아진에게 중요한 것은 고독이었기에 다른 것들에는 웬만하면 마음을 주지 말자고 생각을 하며 사체도 회수하지 않았다.

아쉽기는 하지만 잘못 하다가는 욕심을 부리다 독지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닮기는 한 것 같은데 고독은 아닌 것 같아. 석 소저가 말한 것보다 확실히 작아.”

역천마의가 말하기로 수컷과 암컷의 크기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청이 말한 것은 고독의 크기와는 맞지 않았다.

소청은 아쉬워하면서 다시 눈에 불을 밝히고 고독을 찾았다.

“찾았다!”

그 말은 세 사람에게서 동시에 나왔고 게다가 세 사람은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소청의 손을 잡고 있던 북리의천은 손을 놓고 검파에 손을 가져가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죽이면 안 되고 사로잡아야지?”

“조심하셔야 합니다. 스승님. 소청아. 너도. 너무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죽여.”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청은 잡았다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고독을 잡으면 집어넣으려고 옥병을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소청은 고독을 잡아넣고 아진에게 와서 옥병을 수북하게 받아 갔다.

“나도 잡았구나.”

북리의천도 싱글벙글하면서 아진에게 왔다.

“아진아. 이건 우리가 잘하는 것 같으니 너는 그냥 옥병이나 잘 간수하면서 따라와라.”

“스승님. 정말 그러셔도 되겠네요. 아, 또 잡았다!”

“나도다!”

아진은 괜히 의욕이 생겼다.

너무.

재미있어 보였던 것이다.

아진은 자기가 봐 두었던 고독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고 소청이 그곳으로 다가가는 걸 보았다.

‘아깝네.’

그래도 다시 또 찾을 수 있겠지 하면서 열심히 두리번거렸지만 소청과 북리의천이 고독을 더 잡는 동안 아진은 고독을 구경도 하지 못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찾는데 혼자만 못 찾고 아쉬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조님. 얼마나 잡으셨어요? 저는 스무 마리 넘은 것 같아요.”

“소청이는 못 이기겠구나. 나는 이제 일곱 마리다.”

“와. 또 잡았다!”

이제는 대화에 끼워 주지도 않았다.

‘아! 저기 있다!!’

드디어 아진이 고독을 발견하고 고독을 잡으러 가려고 했을 때 하늘에서 날아온 새가 눈앞에서 벌레를 콕 집어 가버렸다.

“야. 너도 진짜 너무 한다.”

아진이 한탄을 하고 새를 검으로 죽였다.

역천마의가 필요하다는 수량이 있는데 새에게 뺏기면 오늘 안에 다 못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북리의천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진이는 그걸 하면 되겠구나. 그렇게 서로 역할 분담을 하면 되겠다.”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아진은 고독을 노리며 날아오는 놈들을 쫓거나 잡았다.

“스승님. 옥병 좀 더 가져다주세요.”

소청이 말해서 가 보니 소청의 주변에 옥병이 가득했다.

“여기에 지금 고독이 다 들어 있는 거야?”

“네. 스승님.”

소청은 오랜만에 자기가 잘하는 일을 발견해서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았고 아진과 북리의천은 소청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진은 소청과 북리의천이 혹시 많이 지치거나 중독되지는 않았는지 자주 살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없이 그들은 유희처럼 그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스승님. 금영 누님이 잡으라는 만큼은 다 잡은 것 같은데 더 잡아도 돼요?”

소청은 어느새 그렇게 말했고 아진은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이 할머니라고 하던 역천마의를 소청은 누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주위가 서서히 어두워가고 있었기에 앞으로 이각 정도만 더 있다가 나가자고 하자 소청은 더욱 서둘렀다.

북리의천도 그때만큼은 아이가 된 것처럼 아진의 눈치를 보면서 서둘렀다.

이각이 지났을 때는 더욱 그랬다.

아진이 이제 가자고 할까 봐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스승님. 이제 슬슬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두워지면 독물들이 잘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날이 밝을 때도 독물들이 주변의 물건들과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독지를 빠져나가다가 놈들을 밟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며 말하자 두 사람도 더 이상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아진에게 돌아왔다.

“와. 스승님이 잡으신 거예요?”

소청의 말에 아진은 자기가 잡은 새를 말하는 건가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보았는데 실제로 벌어진 일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먹이사슬의 세계가 펼쳐진 듯, 새를 노리고 온 작은 짐승부터 그 짐승을 노리고 온 큰 짐승들에 뱀과 각종 벌레까지 그곳에 우글거렸던 것이다.

싸우다 죽은 것도 있었는데 그것들을 노리고 점점 더 많은 짐승이 덤벼들고 있었던 것이다.

북리의천과 소청이 아진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직 해도 있는데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까 저것들도 잡아가면 안 되냐는 것 같았다.

아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은 한꺼번에 덤벼들어 그곳에 있던 온갖 독물들을 전부 다 잡았다.

그들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운남의 수많은 부족 중 그중에 하나만이라도 잡으려고 몇 달 동안 독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진은 그런 것까지는 모르고 막판에 짜릿한 손맛을 느낀 것에 만족하며 다른 누구보다 기쁘게 웃었다.

“이것도 전부 가져갈까요? 스승님?”

아진이 묻자 북리의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런 걸 잘 볼 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요긴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그렇게 하자.”

아진은 짐승들의 사체도 각자 처리를 해서 든든하게 들었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스승님. 사조님.”

소청이 말했지만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두 사람은 소청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견디고 버티니까 이런 날이 오는 것 같아.”

아진은 그렇게 말을 하다가 두 사람이 겪은 큰 고통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 두 사람에게라면 자신의 비밀을 말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말을 안 믿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제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냥 자기는 이런 삶을 살았었다는 말을 듣고 조금이라도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차피 독지를 벗어나려면 시간이 걸렸고 이곳에는 그들 외에 따로 오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아진의 마음을 더욱 굳어지게 만들었다.

“스승님. 그리고 소청아. 사실은 그동안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아진이 말하자 두 사람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북리의천은 소청의 손을 잡고 있었고 소청은 다른 손으로, 짐을 진 아진의 옷자락을 잡고 가는 중이었다.

“사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아진에게서 긴 이야기가 나왔다.

소청은 놀란 얼굴로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북리의천의 반응이 궁금한 듯 북리의천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북리의천이 웃으면서 소청을 보고 물었다.

“왜 나를 보느냐. 소청아.”

“사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해서요. 정말 신기하잖아요. 저는 스승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스승님이 정말 엄청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냥 무위가 훌륭하신 분이라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럼 소청이가 잘 본 거구나.”

두 사람은 신기해하면서 그곳에 가족이 남아 있는지 그곳에도 스승과 제자가 있는지 물었다.

“스승님과 제자는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교육 기관이 있고 많은 걸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돈을 주고 대가로 받는 관계에 가깝고 이곳처럼 서로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관계는 아니었어요. 여기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스승님과 소청이를 만난 거였습니다. 스승님과 제자가 저에게는 큰 의미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며 질문을 했다.

아진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이 반짝이며 빛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하니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아진아. 그러면 네가 나를 처음 만나서 병을 고쳐 줬을 때 그때 너에게서 나온 그 힘이 그거였던가 보구나. 그 치유력이라는 것 말이다.”

“예. 스승님.”

아진은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게 차근차근 잘만 올라가는데 자기는 그러지 못했고 그게 몇 년 동안이나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놀리곤 했다고 말하자 두 사람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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