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185화
함께 들어가던 경비 무사들도 그 말을 경청하고 있었는데, 구음절맥에 걸린 린린에게 만년화리 내단을 복용하게 하고 안에서 중화하게 한 후에 몸을 갈아서 먹을 생각을 했더라는 말까지 나오자 역천마의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아진은 그들의 분노를 이해했다.
경비 무사들은 그자가 지금 어디에 있냐면서 당장이라도 가서 찢어 죽일 듯이 화를 냈는데 어째 역천마의의 표정은 조금 이상하게 변했다.
“그자…… 가…… 지존께 그랬다는 거…… 지요?”
역천마의의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린린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역천마의?”
“지존. 저는 그 구음절맥에 걸렸다는 여자가 지존인 걸 몰랐습니다. 아니. 그리고 저는 처음부터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고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의 몸을 이용해서 만년화리의 내단을 복용할 수 있을 거라고…… 그놈이 그 썩을 인간인지는 몰랐고요……. 전혀요. 지존. 그래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린린은 잠시 역천마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 알면서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를 이용하면 영약을 복용할 수 있을 거라는 방법만 가르쳐 준 거라 크게 화가 나지는 않는 듯했다.
그래도 역천마의는 린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한 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린린을 계속 힐끔거렸다.
단리서언은 그렇게 무섭지가 않은데 패월악은 무서웠다.
단리서언은 역천마의를 수도 없이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위협은 역천마의를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것 정도였고 실제로 그런 일을 하기도 했다.
역천마의는 그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고 그게 절대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일은 아니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패월악은 무서웠다.
패월악이 치르게 하는 대가는 고통이 아니었다.
그냥 자신이 쏟았던 관심을 조용히 거두어 버리는 것뿐이었는데 역천마의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 이상 지존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더 큰 공포는 없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어쨌든 그렇게 해서 만년화리 내단을 구했다고. 그건 오라버니한테 줬어. 그리고 우리는 무령독화도 구했다? 그건 오라버니랑 내가 같이 캤고 우리가 나눠서 먹었어.”
“내가 캤지.”
“같이 캤잖아.”
“내가 캤지.”
아진이 정말 기억 안 나서 그러는 거냐는 듯 묻자 린린이 한숨을 쉬었다.
“맞아. 같이 갔는데 이게 엄청나게 빠르게 도망 다니는 거야. 내가 정말 아주 잠깐 쉬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에 오라버니가 캤어. 무령독화 뿌리가 얼마나 긴지 모르지? 그거 정말 빨리 도망 다닌다? 나중에 무령독화를 보면 전력을 다해야 해. 위로 솟구쳐서 도망치는데 오라버니 아니었으면 도중에 놔 버려야 했을 거야. 그때 정말 높이 올라갔지. 오라버니?”
“응.”
아진은 높이가 대략 어느 정도 됐는지 알려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설명을 해 주었고 역천마의와 경비 무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거기까지 올라가는데 다른 걸 잡고 가신 것도 아니고 그냥 무령독화만 품에 안고 가신 거라고요? 무령독화에 매달린 듯이요? 세상에. 상상만 해도 소름 돋는데……. 저라면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놔 버렸을 거예요. 그러다 죽은 사람도 있겠네요.”
그들은 엄청나게 몰입을 하며 맞장구를 쳤고 아진은 그런 반응을 보자 신이 나서 그때부터 열심히 입을 털었다.
그들은 하늘 같던 패월악 교주의 오라버니가 하는 말이라는 생각에 아진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것이다.
세상에 누가 있어 패월악 교주와 이렇게 함께 돌아다닐 수가 있는가 했다.
“저희 교주님을 처음 보셨을 때 어떠셨어요?”
역천마의가 묻자 아진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린린은 만두 같았죠. 눈썹은 숯 검댕이 같고. 세상에서 린린처럼 못생긴 아기를 찾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는데 얼굴이 다 이상한데 다 합쳐놓으면 너무 귀여운 거예요. 그래서 산본의가가 린린 때문에 난리가 났었죠. 아버지랑 형님도 진료를 하다말고 린린을 보느라고 난리였고요.”
아진은 그 일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흐뭇하게 말을 해 주었다.
“어머. 저희 지존이요?”
역천마의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린린 때문에 산본의가에 속침이 발달한 건 모르시죠? 그게 다 린린 때문이었어요. 원래 처음부터 다들 실력이 있었으니까 그게 가능한 거긴 했지만요.”
아진은 린린이 오랫동안 자기를 형님이라고 불렀다고 말을 하면서 그때는 린린이 바보인 줄 알았다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다가 린린과 눈이 마주치자 즉각 입을 다물었다.
“지존을 돌봐 주셔서 감사드려요. 소협.”
역천마의가 말하자 아진이 린린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내 동생인데 내가 잘해 주는 게 당연하죠. 린린에게 약속도 했고요.”
역천마의는 진심으로 감격한 얼굴이었다.
“우리 오라버니에 대해서는 얘기를 들었어. 역천마의? 오라버니는 사람을 고쳐. 죽은 사람도 살리지.”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저는 정파 특유의 허풍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죠.”
역천마의는 그게 정말이냐면서 린린에게 묻다가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린린은 그게 사도련주의 충독에는 안 통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많은 이야기가 빠르게 지나갔고 이제 역천마의와 경비 무사들은 그들이 하는 말을 완전히 믿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비고의 초입을 지나고 있었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는데 아직 그들을 공격해오는 자들은 없었다.
“사도련주가 어떻게 그런 걸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나는 역천마의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충독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예요. 비고에서 영약을 몇 개만 더 가지고 나가면 충독보다 훨씬 더 무섭고 강한 벌레를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번식력만 높여도 충독에 비할 게 없겠죠. 해 볼까요. 지존?”
역천마의는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정말 만들게 될지 아닐지는 몰라도 비고에 들어올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여기에 왔을 때 웬만한 건 다 가지고 나가자. 어차피 여기에 두고 가면 단리서언이 쓸 거야. 사람들에게 영약을 먹이고 강하게 만들면 강해진 사람들과 싸워야 하게 될 거고. 다른 사람들도 내 말을 믿어 준다면 좋겠지만 그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러자 역천마의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린린을 보았다.
“왜요. 지존? 그냥 딱 보면 지존이신데요?”
그러자 경비 무사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역천마의님. 저도 이제는 지존이 하신 말씀을 전부 믿습니다만 그래도 믿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대부분은 그 말을 못 믿을 거예요.”
역천마의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처음으로 창이 날아왔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그것은 신호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수백 개의 창이 시간 차이를 두고 날아왔다.
그사이에 암기와 화살도 있었고 들어오는 사람의 정면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들었다.
삼백 개. 사백 개.
그러다가 천 개를 넘고 그것을 다시 넘어섰을 때 아진 일행은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물러선다고 해도 포기하지도 않고 공격은 계속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오는지는 몰라?”
경비 무사들이라면 알지 않을까 해서 물었지만 그들은 아는 것이 없었다.
“만 개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거예요.”
역천마의가 말했는데 처음에는 설마라고 생각하던 아진도 나중에는 그게 불가능하기만 한 숫자는 아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린린이 그것들을 막아 냈다.
그러다가 천 개가 넘어갈 즈음에는 경비 무사들에게 눈짓을 하고 그들을 전면에 세웠다.
그들은 각자 병장기를 빼 들고, 날아오는 암기들을 쳐냈다.
처음에는 창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더니 나중에는 암기와 화살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뒤에 나오는 거라고 해서 앞서나온 것보다 약한 것은 아니었다.
날아오는 것을 전부 다 쳐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서 사각으로 피하려고도 해 봤지만 사각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비고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격을 갖춘 사람, 그리고 허락을 받은 사람뿐이었고 이런 식으로 허락 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은 지치거나 힘이 빠진 채로라도 각각의 관문을 전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초반에 힘을 빼놓자는 거군.’
그 전략은 상당히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함께 가는 이들은 역천마의까지 포함해서 일곱 명이었는데 각자의 무공 수위가 절대 낮지 않고 내공도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경비 무사 중에는 벌써 헉헉거리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진은 슬슬 그들과 자리를 바꿔야 하나보다고 생각했지만 린린은 비고의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전에 한 번인가 왔었는데 그때는 안에 마신의 부조가 이렇게 크게 돼 있다는 걸 몰랐었어. 내가 교주가 됐을 때 교주가 사용할 수 있는 영약이 하나뿐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나는 교주쯤 되면 영약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 말에 역천마의가 웃었다.
아직 웃을 힘이 남아 있다는 게 부럽다는 듯 경비 무사 한 사람이 역천마의를 바라보다가 앞에서 날아온 암기에 팔을 벴다.
“으악!”
한 번 생겨난 균열은 순식간에 커졌고 그러는 동안 그를 향해 집중적으로 암기가 들이닥쳤다.
움직임과 비명으로 감지하는 것인가 하면서 린린은 날아오는 암기의 속도를 눈여겨보았을 뿐 다친 경비 무사를 고쳐 주려고 하거나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가서 대신 싸워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암기는 확실히, 부상한 경비 무사 쪽으로 집중되었고 그는 몇 개를 놓치던 수준에서 나중에는 집중포격을 받고 결국 쓰러졌다.
그 후에 더 많은 암기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하나씩 숨통을 제대로 끊어 가겠다는 건가 보네.”
린린이 말하자 그 옆에 있던 경비 무사들은 기겁을 한 채 린린을 보았다.
설마하니 끝까지 구해 주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경비 무사가 쓰러지자 암기는 다시 고르게 퍼부어댔고 린린이 역천마의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역천마의가 쓰러진 경비 무사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동안 아진은 쓰러진 자를 살려냈다.
역천마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눈을 팔다가 암기에 맞았고 린린이 역천마의의 팔을 잡아 뒤로 빼내고 검강을 만들어 달려나갔다.
“정도껏들 하라고. 이 영감탱이들아. 웬만하면 봐 주겠다는 거지 끝까지 성질 긁어도 봐 주겠다는 건 아니니까.”
린린이 달려가자 다른 사람들도 함께 달렸다.
린린은 주위를 구경하는 듯하면서 암기가 튀어나오는 곳을 알아본 거였는지 그대로 달려나가 그곳을 향해 검강을 연거푸 날렸다.
푸쾅-!
펑, 펑 소리와 함께 기관장치가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경비 무사들도 이제부터 뭘 해야 하는지 깨달은 듯 린린의 뒤를 따라서 달려갔다.
린린은 큰 것들만 부수면서 달려갔고 린린이 지나간 후에도 간간이 암기들이 계속 날아왔는데 이제는 경비 무사들도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아차리고 기관장치를 노리며 부숴 나갔다.
역천마의도 분위기를 읽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역천마의가 원하던 방식으로 싸울 수가 있었다.
모든 싸움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쓰러진 후에도 뒤를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채 마음껏 내달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