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184화 (184/470)
  • 제184화

    184화

    역시 마두는 마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일단 살기를 흘리면서 싸움을 시작하자 그들의 눈이 무섭게 변해서였다.

    마기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눈빛이었다.

    비고 자체가 워낙 외딴곳에 있었고 비고 주위에 울창한 나무가 둘러싸여 있는 데다 특별한 진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어느 정도는 비밀이 유지되는 듯했다.

    진을 통과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린린의 몸이 열쇠의 역할을 해서였는데 신기하게도 패월악이 아닌 지금의 린린도 그 몸으로 해진에 성공했다.

    그 말은 천마신교의 어느 곳이건 전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다른 가문에서 사사로이 만든 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천마가 가진 특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린린이 하는 말을 더 쉽게 믿어 주는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같은 이유로, 단리세가의 무인들은 커다란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천마신교가 두 정파 무인들에게 뚫려 버렸다고 생각했을 테니 그러는 것이 당연했다.

    먼저 한 남자가 아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안광에서 흉흉한 살기가 폭사했다.

    검은 정직했고 그것이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뭘 하자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교도 없고 숨김도 없는 검이라 오히려 아진은 조금 당황했다.

    지금 뭘 어쩌자는 건가 해서.

    아진은 혹시 속임수가 있는 건가 하고 린린을 힐끔 바라보았다.

    린린은 아진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는 듯했다.

    “그냥 죽이면 돼. 오라버니.”

    “그렇지? 이런 놈이 뭘 믿고 처음에 나서는 건지 몰라서.”

    아진은 괜히 놀랐다는 듯이 검을 휘둘렀다.

    내공을 실을 것도 없이 그냥 단순한 검격만으로도 그의 몸을 갈라버릴 수 있었다.

    ‘뭐지……?’

    아진은 여전히 의아했다.

    아직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거였는데 아진 자신이 그사이에 압도적으로 강해져서 그런 거라는 것은 알지 못한 채 불신에 휩싸여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린린의 품에서 나와 대기하고 있던 흑주가 빠르게 달려가 진기를 빨아들였다.

    그 모습을 보자 아진은 안심이 되었다.

    자기가 내공을 다 사용하고 위험해져도 흑주가 넉넉히 내공을 주입해 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때부터는 자신이 하던 대로 그냥 해 버리자는 마음이 들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검강.

    그것이 아진의 검에서 떠나가고 있었다.

    단리세가의 무인들은 검신의 제자라는 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상대가 누구인지를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었다.

    아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대기가 검의 움직임에 휘말렸다.

    따로 특별하게 의도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도 그 주위의 모든 것들이 거기에 동조했다.

    땅바닥이 우지끈 갈라지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단지 검에 공력을 퍼부어 검강을 만들어 냈을 뿐인데도 그랬다.

    아진이 그들을 향해 빠르게 몸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마땅히 아진을 향해 마주 달려가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발목에 쇳덩이가 매달려버린 것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저런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면서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서걱-.

    서걱-.

    검신은 아직 멀리에 있었지만 날카로운 검강이 수많은 사람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뒤를 따라 덤벼드는 흑주였다.

    흑암을 뭉친 것 같은 구슬이 그들을 다가와 진기를 빨아들였다.

    “안 돼. 오지 마. 오지 마!!”

    고통스럽게 부르짖어도 애원은 수포로 돌아갔다.

    누구도 그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피 같은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동정조차 받지 못하는 후회이자 슬픔이었다.

    허공을 찢어대는 검의 울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날카로운 비명과 바닥에 쓰러지는 사람들의 소리 역시 그 뒤를 계속 따랐다.

    완벽한 학살.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것을 보는 경비 무사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단리세가 역시 초씨세가와 비견할만한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세가에 속한 무인 하나하나의 힘이 막강했던 것이다.

    지금의 교주 단리서언은 단리세가가 자신의 가문인데도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견제하는 정책을 썼다.

    가문이 강해지면 그곳에서 새로운 교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무가에 주어지는 것보다도 지원이 훨씬 덜했고 결국 거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오늘 이 자리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은 결국 그런 자들이 교주를 넘볼 수도 있고 교주를 근심하게 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거였는데 그런 그들이 손도 쓰지 못하고 아진에게 쓰러졌다.

    그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의 방법이 상이하다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미쳤을 것이다.

    검격을 몇 번 보고 저건 어느 문파나 가문에서 사용하는 어떤 검술이라는 판단이 바로 서기 전에 아진이 짓쳐들어오고 단호하게 검을 휘두르는 바람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쓰러지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여전히 경비 무사들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제발 멈춰. 우리는 돌아가겠다. 여기에서 너희를 만나지 않은 것으로 할 테니까!”

    누군가 소리치며 말하자 아진이 웃었다.

    “재미있네. 그런 것으로 하면 그렇게 되는 건가? 아닐 텐데? 그리고 왜 굳이 그런 짓을 한다는 거지? 그럴 필요 없는데.”

    아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사람들은 오금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등줄기에서 쉬지 않고 땀이 쏟아졌다.

    “부, 부탁이다!”

    “살려 주십시오.”

    “감히 대협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점차 달라졌다.

    그러나 아진은 이미 마음을 정한 후였고 후환을 남겨두는 일 같은 것은 할 생각이 없었다.

    옆에 서 있던 동료들 대부분이 쓰러진 상황에서, 남아 있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그 시간에 그곳에 온 것을 후회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단리세가의 정예 중의 정예.

    그들은 아진을 막기로 하는 것을 포기하고 모두가 한꺼번에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것은 누가 사전에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본능대로 움직인 것뿐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검신의 제자라고 하더라도 모두를 쫓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운이 좋으면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들은 내달렸다.

    오해한 것이 있다면 남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는 그 일이 아진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 몇 사람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검풍도, 검기도 본 적이 있고 검강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그들을 뒤따라 온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검의 해일이었다.

    노도와 같은 검강의 줄기 줄기가 눈앞으로 쏟아졌다.

    “……!”

    그 압도적인 광경에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잊은 그들을 향해 흑주만이 몸을 날렸다.

    조금만 늦으면 포식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는 흑주야말로 정말 용기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비명이 오히려 죽음보다 더 늦게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간과 공간 자체가 뒤틀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간은 온통 피로 물들었고 함께 터져버린 살덩이는 어느 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섞였다가 그대로 서서히 내려앉았다.

    그만한 무게를 가진 것들이 그렇게 얌전히 내려앉는다는 것도 역시 이상한 일이었다.

    경비 무사들은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모두 봤으면서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세상에는 온갖 기이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무공이 있지만 그들이 본 것은 정말 할 말을 잃게 했다.

    “우리 오라버니가 그런 경향이 있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지. 그것 말고도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야. 새로 태어나서 잘됐다 싶을 정도로. 아. 내가 그 얘기를 해 줬던가? 내가 염제하고 싸웠는데 이겼어. 그래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 건지 알려 주고 그 몸을 준비해 달라고 했지. 그렇게 해서 얻은 몸이 이거야. 괜찮지?”

    린린은 싸움이 다 끝난 것도 아닌데 한가하게 앉아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계속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역천마의도, 그리고 숨소리를 죽인 채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경비 무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패월악 교주라면 염제 따위를 눌러 버리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더 이상 린린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라버니. 대충 정리하고 비고로 들어가. 비고 안이야말로 힘쓸 일이 많을 거야. 흑주. 오라버니를 도와줘.”

    린린은 느긋하게 움직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던 역천마의가 풀쩍 뛰어내려 그녀의 곁에서 함께 걸었다.

    “실험에 필요한 게 있는데 저도 몇 개만 챙겨도 되죠?”

    “마음껏. 여기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일단 안까지 갈 수 있으면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겨야겠지.”

    비고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밖은 네 명의 경비 무사가 지키고 있지만 안에서 지키는 사람은 백 명이 넘었다.

    인력 낭비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영약의 가치를 따지자면 절대 그렇게 말하고 말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비고는 그자들이 지키고 있나?”

    린린의 말에 경비 무사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 중 죽음을 앞두고 죽음을 거부한 채 천마신교의 수호자로 남기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대법을 시행해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 비고를 지키게 해 왔다.

    그래서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지금껏 정확히 알려지지도 않았다.

    대략 백 명이 넘을 거라는 것 정도였지 구체적인 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존. 본교에 들어올 때 어떻게 해진하셨어요?”

    역천마의가 묻자 린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안 했어. 진이 내 존재를 인식했는지 아무 문제 없이 들어올 수 있었어. 본교를 지키는 무인들의 곁을 지나온 적도 있었는데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던데?”

    역천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안에서도 통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안을 지키는 분들은 신교의 어른들이야. 웬만하면 죽이지 말고 피하는 식으로 하고 싶어. 오라버니.”

    린린은 아진에게 안을 지키는 이들에 대해 알려 주었고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런 게 더 어려운 일이기는 했다.

    죽일 기회가 있을 때 죽이지 않았다가 두고두고 후환이 남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린린의 말을 듣고 보니 그들에게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았다.

    가는 동안 린린은 역천마의에게 그동안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사소하고 사적인 일들은 넘어가도 자기가 구음절맥에 걸렸었다는 얘기와 남궁세가의 가솔이 만년화리 내단 복용에 자기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말을 하자 역천마의의 눈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