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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83화 (183/470)

제183화

183화

역천마의는 경악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자기가 교주님을 다시 만난 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교주에게서 들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꼭 살아 나가야 했다.

역천마의는 자신의 교주가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지 않은 채 그냥 저벅저벅 가고 있는 거라는 것을 깨닫고 우선 나무 위로 몸을 날려 기척을 숨겼다.

일단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역천마의는 특급 살수보다도 더 훌륭하게 기척을 감출 수 있었다.

아진은 역천마의가 몸을 숨기는 것을 알고 다행이라고 여겼다.

왠지 린린 때문에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네 명의 경비 무사가 린린을 바라보았다.

이런 경우에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그들은 완전히 할 말을 잃은 채로 린린을 바라보았다.

이건 한눈에 봐도 신교 사람도 아니었다.

제정신도 아닌 것 같았다.

대체 누가 이곳까지 온 걸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그들은 린린을 쳐다보았다.

“멈춰라. 한 발만 더 움직이면 죽이겠다.”

적의, 황의, 흑의, 녹의.

각자가 네 가문의 상징색으로 지어진 무복을 입고 있어서 어느 가문의 추천을 받은 경비 무사인지 알 것 같았다.

린린은 발을 들었다가 그걸 내려놓을까 말까 하는 듯했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흑의인이었다.

이미 린린에게 기회를 줄 여지가 없게 됐다고 생각한 듯 그가 날카롭게 몸을 날렸다.

“죽으려고 온 것 같으니 죽여 주마.”

“아. 잠깐. 나는 사주를 받았다. 사주한 사람은 저기에 있고.”

린린이 갑자기 아진을 가리키자 아진은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한때는 내 충성스러운 부하들이었을 테니 한 번의 기회는 주겠다. 나는 교주 패월악이다. 너희를 죽이는 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너희를 죽여야 할 필요는 없어.”

마치 기계처럼 아무런 표정이나 감정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던 사람들의 눈빛이 갑자기 흔들렸다.

‘……?’

아진은 설마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보았다.

린린이 그동안 해 왔던 말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감히 어설픈 변명으로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마라. 반드시 너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황의인이 무섭게 소리치며 린린에게 덤벼들자 린린이 뒤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렇게 나오면 귀여워서 죽일 수가 없잖아.”

린린의 말은 그들을 더욱 자극했고 린린은 점점 더 난감해지는 듯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패월악을 존경했던 것 같고 패월악을 위해서 싸우겠다는 것 같은데 그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증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천마의는 그냥 알아보던데. 너희는 왜 못 알아보는 거지?”

린린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흑의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역천마의라는 이름이 적중한 것 같았다.

“역천마의님을…… 만나셨다는 말입니까.”

어느새 그는 린린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너 같으면 네 몸이 이렇게 바뀐 후에 신교에서 누굴 찾을 것 같지? 그래도 나한테는 역천마의가 가장 만만하니까 역천마의를 찾아올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왜 여자가 되신 겁니까? 혹시 역천마의님의 대법으로 살아나신 건가요?”

그들은 린린의 말을 들어볼 것도 없다는 것 같은 처음의 태도는 완전히 잃어버리고 그때부터는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난 건 역천마의도 모르는 일이야.”

“…….”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는 아진은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자기라면 당장 무위를 보여 달라고 할 것 같은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걸 볼 것도 없이 이미 린린이 교주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던 것이다.

‘뭘 보고? 설마 저 건들거리는 성격? 만사 귀찮아 죽겠다는 저 태도?’

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린린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몇십 년이 지난 후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 제 속을 긁어대면 아진도 린린을 바로 알아볼 것 같기는 했다.

린린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흑의인의 앞에서 나타났다.

“누군지 알겠다. 너. 내가 가마를 타고 지나갈 때 나한테 와서 이름을 말했던 애지. 그런데 그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교주님. 저 아무개예요. 아무개요. 제가 교주님의 호위가 될게요. 그랬던 것 같은데. 와. 그 말 듣고 엄청 소름 돋았었는데.”

흑의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입이 벌어지더니 그다음에는 화르륵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붉어졌다.

그의 양옆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정말 그런 짓을 했었냐는 듯 창피해 죽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린린은 흑의인을 그렇게 당황하게 해 놓고 옆으로 한 발자국씩 옮겼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일화도 떠오를까 하는 것 같았지만 다른 이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너희는 누구야? 너희는 다 커서 들어왔나? 본교에?”

“무슨 말씀입니까! 정말 서운합니다. 저한테 직접 섬전대원이 되라고 말씀까지 하셨잖습니까.”

녹의인이 분개하며 소리치자 린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설마. 나 그런 말은 잘 안 하는데.”

린린이 귀를 후비며 말하자 이제는 억울해하기까지 하며 그들이 방방 뛰었다.

린린에게서 짙은 살기가 폭사된 것은 그때였다.

그러나 아진이 더 빨랐다.

그 시간에 비고에 나타날 이유가 없던 단리세가의 무인 이십여 명이 그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기습하려고 하다가 비고 앞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몸을 드러낸 채 다가온 듯했다.

-저들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느냐.

린린은 단리세가의 추천을 받은 경비 무사에게 전음을 보냈고 그는 린린이 자신에게 전음을 보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단리서언이 그들을 비고 앞에 세우며 다른 이의 전음은 듣지 못하고 오로지 교주의 전음만을 들을 수 있게 해 둔 후에 비고의 경비 무사들은 상호간에도 전음을 보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금제를 뚫고 린린이 전음을 보자 한 줌 남아 있던 의심마저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아닙니다. 지존.

-그러면 저자들을 죽여도 되느냐.

-그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잘됐구나.

린린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게 누군가. 정의맹주의 제자와 그 누이가 왜 이곳에 있다는 것이냐.”

그들의 말에 경비 무사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분야에 따라 다른 문파에 속한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단리세가의 무인들은 린린과 아진의 모습을 용모파기집을 통해 봐 왔거나 신분을 감춘 채 중원에 나가 활동을 해 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마신교의 마두들이 신분을 감추고 중원에 나가 활동을 하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들 중 강경한 노선을 가진 이들은 사도련주가 사파 천하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간절하게 마도천하를 외치며 세상을 마도의 신념으로 물들이려 하고 있었다.

패월악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지만 패월악이 신교를 다스릴 때도 신교 내부에서 중원 침략을 주장하던 자들은 늘 많았다.

신교가 십만대산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이 아니고 신교에 저력도 있는데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신교가 중원 점령을 시도하며 마도천하를 기치로 내걸고 전쟁을 불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중원은 피로 물들었고 죽음은 중원의 무림인들만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린린의 전신(前身)이었던 패월악은 그 점을 생각했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내모는 전쟁을 승인하지 않았다.

수뇌부들, 특히 명문 마가와 가장 크게 대립했던 이유가 그거였을 것이다.

린린은 아직도 생각했다.

그들에게 사실 전쟁은 중요하지 않았을 거라고.

천마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워 천마에게 유약하다는 이미지를 덮어씌우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뿐이라고.

눈앞에 서 있는 단리세가의 무리 중에 몇 사람은 린린도 알아볼 수 있었다.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지어졌다.

린린만 자란 것이 아니었고 그들 역시 시간의 흐름을 겪었다.

“여기에는 왜 온 건지나 들어볼까? 너희가 여기에 온 건 교주도 모르는 일인 것 같은데. 교주에게 부탁했더니 안 들어 주던가? 물건을 조금만 달라고 했는데 닥치고 찌그러져 있으라고 그런 거야?”

린린의 말에 단리세가의 무인들은 화가 나고 충격을 받아서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했다.

“지, 지금 뭐라고 한 것이냐!”

누군가 소리치자 그중에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은 사람이 그를 말렸다.

“흥분할 일이 아닙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런 자는 그냥 죽여 버리고 우리는 우리가 계획한 일만 하고 돌아가면 됩니다.”

“그보다 저것들이 왜 여기에 있다는 건지…….”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연히 이 앞을 지나다가 저자들이 비고를 습격하는 것을 보고 막았다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해서 해명도 될 거고 말입니다.”

뭐가 잘 됐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해댔다.

“그러는 동안 검을 휘둘렀으면 지금쯤 일을 다 끝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진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고 그곳에 있던 이들은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누가 보냈느냐. 검신이냐. 아니면 정의맹이냐. 사도련주를 쫓는다고 하더니 일이 제대로 안 됐던 모양이군. 정파 놈들은 저희가 실패하면 저희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고 공력 탓을 하곤 하지. 우리 비고에 있는 영약을 먹기만 하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던가?”

그들의 말에도 아진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입으로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들과 더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너희는 쉬고 있어도 된다. 오라버니가 알아서 할 거야.”

네 명의 경비 무사들이 각자 병장기를 들고 기수식을 취하자 린린이 말했다.

아진이 보기에는 특히나 단리세가에서 추천을 받은 이는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기를 이끌어 준 사람들이라는 부분에서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 것 같기도 했다.

아진은 언젠가 린린에게서 신교의 질서에 대해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신교에서는 교주가 모두의 위에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교주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신교는 다시 여러 종류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가문으로 인한 분류도 있고 가문을 초월해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도 있다고 했다.

마신 외에 세부적으로 다른 신들을 섬길 수도 있는데 그로 인한 구분도 생기고 그런 이유로 인해서 누가 누구에게 복종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아진은 경비 무사들도 그런 이유로 각자가 완전히 교주에게 승복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리세가의 무인들은 처음의 놀라움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듯 그때부터는 각자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아진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무기도 있었고, 저런 것도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각자 날카로운 파공성을 일으키며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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